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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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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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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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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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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옛날 옛적 어느 변호사가 - 거울 잠궈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7. 옛날 옛적에 어느 변호사가



성곡은 열 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 생활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흘러가는 일상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 오고 난 후에 성곡은 갑자기 공부 잘하는 법을 깨달았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영어를 배우고 온 것은 아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가 일 억 정도를 유산으로 받았는데, 엄마는 그 즉시 미국의 한 대학 부설 어학원에 등록하고 유학 비자를 받아서 성곡을 데리고 들어왔다.

학생비자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건 보통 한국인들의 이민 코스 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은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신분을 학생으로 바꾼 후에 취업을 통해서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한다.

성곡 엄마의 경우에는 한 단계를 건너 뛴 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차이는 미미한 편이었다.

“너 미국가서 공부 안 해볼래?”

하고 어느 날 밤에 엄마가 물었을 때 성곡은 엄마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것 외에는 별 생각없이 “응”하고 대답했었고, 그 뒤 한 달 쯤 지났을 때는 미국에 있었다.

엄마가 미국으로 오려고 마음먹은 이유를 성곡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성곡은 사피로가 욕했던 것처럼 호로자식이었다.

엄마는 어쩌다가 성곡을 낳아서 길렀고, 아버지의 성이 성씨라서 성곡도 '성'씨라는 말을 들었지만 성곡은 엄마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사피로 선생은 성곡 엄마가 재혼한 줄 알았지만 성곡은 그 결혼이 엄마의 첫 결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결혼했을 때 아예 따라가지 않았다.

미국 오기 전에 성곡의 집에는 간혹 두 남자가 번갈아 가며 얼굴을 비쳤는데, 두 사람 모두 엄마가 말하는 소위 '친구'였다.

그들이 서로 보는 경우는 없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해서 서로 마주쳐서 성곡이 보는 앞에서 주먹질을 하고 싸웠었다.

엄마가 스케줄 조절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성곡은 그때도 알았다.

이후에도 두 번 쯤 더 소란이 있었고, 엄마가 맞아서 경찰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성곡은 엄마가 그 두 사람이 피곤해져서 정리하느라 미국으로 도망쳐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에 와서는 고생길이었다.

엄마는 나름대로 재정계획도 세우고 뭔가 하려 했지만 모두 잘 되지 않았다.

반 년도 되지 않아서 가져온 돈은 다 떨어졌고, 그 후로는 식당에 나가서 서빙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식당에서 웨이추레스로 일하는 것이 돈이 된 모양이었다.

엄마는 젊고 예뻤고, 잘 속고 별 다른 능력을 보인 적도 없었지만, 다른 한국 사람에 비해서 그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그 때문인지 팁도 많이 받았다.

성곡은 어느 월말 밤에 엄마가 어학원에 내야 할 돈과 렌트비를 헤아리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내 주제에 사업은 무슨 사업이냐? 휴. 난 이렇게 사는 게 딱 맞아.”

아마 또 누군가로부터 함께 식당을 차리자거나 옷가게, 혹은 화장품가게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거라고 성곡은 생각했다.

식당에서 버는 돈이 제법 되었는데도 성곡이 고생한 것은 그만큼 쓰는 곳이 많아서였다.

엄마는 늘 화장을 해야 했고, 식당에 나갈 때 입는 옷 외에도 어학원에 가거나 외출할 때 입는 옷에 돈을 많이 들였다.

엄마의 '친구'들이 옷이나 가방을 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늘 옷과 가방과 화장품, 그리고 주얼리가 부족했다.

물론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학원에 매달 줘야하는 등록비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올 때 말이라도 성곡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엄마는 사실 성곡의 학교 생활에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한국에서와 똑 같았다.

엄마는 자기 페디큐어 색깔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도 성곡의 생일은 늘 지나고 나서, “참 맞다. 지난 주 토요일이 네 생일이었네.”하는 식으로 기억해냈다. 다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성곡은 공립학교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ESL 코스에서 영어를 배우며 정식 과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ESL 코스에서 공부에 눈을 떠버렸다.

한국에서 배우던 방식과 미국에서 가르치는 방식의 차이가 성곡을 일깨운 것이었다.

미국 방식이 옳다거나 낫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를 하는 데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과, 배우는 것이 '지식'이라는 아무 실체가 없는 허구라는 것, 그리고 지식은 음식과 같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한국에서 배웠던 것들을 미국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생각해보고, 미국에서 배운 것을 한국에서 배운 대로 해보면 훨씬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식은 음식과 같다는 것이 가장 큰 것이었다.

사람마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입의 크기가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소화시키는 위장의 크기도 다른데, 이건 지식에도 똑 같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성곡은 그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배우지 않았다. 선생이 어떻게 가르치든 성곡은 자기 방식대로 지식을 쪼개거나 합쳐서 먹기 좋게 가공하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유머나 욕설, 유행어를 양념으로 첨가하여 받아 들였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주어지더라도, 그 요리방법을 생각하면 습득하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곡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먹기 싫은 것을 꾸역꾸역 먹는 것처럼 배우는 것을 보고 사육 당하는 돼지 같다고 생각했다. 적절히 요리가 되었을 때, 지식의 습득은 우아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성곡은 자기 방식으로 ESL을 끝냈고, 4학년 과정의 모든 내용을 2주만에 완벽하게 습득하고 월반까지 했다. 그러나 일부러 더 이상 월반은 시도하지 않고 책에서 지식을 구해서 즐거움의 양식으로 삼았다.

지식을 조리하는 기술이 날로 늘어가면서 성곡의 거짓말 기술도 함께 성장했는데, 어떤 지식이든, 어떤 정보든, 자기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쪼개고 가공하는 버릇은 그가 세상을 보는 방법조차 바꾸어 갔다.

성곡이 탁월한 천재성을 보이자 엄마가 정신을 차렸다.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성곡을 명문 중고등학교에 보내야 한다며 식당일 이외에 파출부일을 시작했고, 성곡이 사춘기에 접어들 때 쯤에는 이전처럼 드러내놓고 남자를 만나지도 않았다.

남자를 만나는 습관은 못 버렸지만 엄마도 철이 들고 있었다.

그러나 성곡은 모든 일들,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에게 세상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모든 게 거짓이다. 그리고 거짓을 간파하는 것은 지혜고, 참말 같은 거짓말을 하려면 상대방의 의표를 꿰뚫고 본질과 욕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던 와중에 사피로 선생을 만나서 그와 성격이 잘 맞아 여러 가지를 배우며 즐거웠다.

사피로는 성곡이 거리를 두고 있던 거짓된 현실의 사람과는 달라서 더 현실적이었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특이한 매력은 성곡을 붙잡고 이끌었다. 현실 아닌 이상한 상상의 세계로.


맨하탄에도 우버를 탈 수 있다. 대부분의 택시가 우버 아니면 쉬프트(우버 경쟁업체)를 겸하고 있다. 택시에 오르면서 성곡은 자기가 배웠던 것들을 다시 점검해보고 쓸 수 있는 기술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 확인했다. 펄 비즈와 스펙터 빌리외에 쓸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더 찾아냈다. 미러 락(Mirror lock)이라는 기술인데, 사피로 선생에게 배울 때는 거울 보는 기술인 줄 알았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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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옛날 옛적 어느 변호사가 - 거울 잠궈 21.03.22 1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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