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54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3.24 07:02
조회
19
추천
0
글자
10쪽

9. 흑백 오셀로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9. 흑백 오셀로



법대에서 협상하는 법을 배울 때였다.

지금은 어느 대학의 법대 학장으로 간 조금 별난 성격의 영국 출신 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학생들을 두 명씩 짝지어서 무작위로 다른 팀과 협상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제비를 뽑아서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자기 측에 유리한 협상을 하여 성공하면 승점 2점을 얻고, 실패하면 승점 1점을 얻으며, 협상이 결렬되면 3점을 차감했다.

세 시간에 걸치는 수업시간 동안에 누가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든 협상이 종료되고 나서 학생들이 평가했다.

교수는 결과에 신경쓰지 않았고, 성적에 반영되는 것은 오직 누가 가장 많은 협상을 했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장 많은 협상을 한 팀이 획득한 점수가 제일 높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많은 협상을 한 팀은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획득한 점수가 높았다.

이에 대해서 교수가 간단히 설명했다.

“머저리가 아니라면 늘 어그레시브(Agressive, 공격적)한 쪽이 이득을 보기 마련이야. 어그레시브하지 않으면 한정된 시간에 많은 협상을 해내지도 못하지.”

교수의 지론에 따르면 '공격적인 태도를 준비하지 않고는 어떤 협상에 나서지도 말라'였다.

그 교수는 다른 게임도 하나 만들었는데, 그 게임의 이름은 '딜 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 파괴자)'였다.

딜 브레이커도 두 명씩 팀을 이루어 하는 게임으로, 상대방이 제시하는 좋은 조건을 거부해서 협상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각 팀이 손에 쥔 쪽지에는 상대방에게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고, 제시할 각 항목마다 제시했을 때 그 팀이 받을 점수와 함께 상대팀이 거절했을 때 그 팀이 받을 점수가 표시되어 있었다.

결국 무조건 협상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고 적절하게 딜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경우가 있기도 했다.

이 게임을 하고 나면 대체로 학생들은 녹초가 되었다.

실제로 해보면 협상 깨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고 있는 상대방과 협상한다는 것만큼 피곤한 경우도 없었다.

성곡은 이 게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어지간해서는 학생을 칭찬하지 않는 그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성곡을 칭찬했었다.

“자네들은 변호사가 법정에서 소송만 하는 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소송의 97퍼센트 이상은 판결없이 끝나지. 자네들이 컴플레인트(Complaint, 고소장) 아무리 잘 쓰고 법정에서 댄스(Dance, 이 경우에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보이는 퍼포먼스, 쇼맨쉽)를 잘 춰도 돈 많이 못 벌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자네들 밥먹여 줄 건 법이 아니라 이런 네고시에이션(Negotiation, 협상)이야.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아. 돈 많이 벌려면 실체법보다 절차에 더 익숙해져야 하고, 그보다는 협상을 더 잘하는 게 필수야. 물론 코크처럼 다 잘하면 최고지만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중요한 순서대로 집중해.”

협상은 형사거래(plea bargin)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자와 기소 검사 간에도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교수의 말이 지당했다.


성곡은 그 때 교수한테 배우면서 느꼈던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사람이 개입되어 하는 것은 모두 오셀로 게임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오셀로 게임에서 상대방의 돌을 먹게 되면 자기 돌로 바뀌게 되는데, 상대방의 돌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돌을 자기 돌 사이에 넣는다는 의미다.

이 오셀로 게임에서는 언제 자기 돌이 남의 돌로 변하고 남의 돌이 자기 돌로 변할 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즉, 흰돌도 흰돌이 아니고 검은돌도 검은 돌이 아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의 주인공인 오셀로의 이중성을 본따 만든 이 게임은 묘하게도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간파하고 있다.

인간은 마음은 상황이 조금만 바껴도 쉽게 변한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말과 작심삼일 등등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널리 알리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쉽게 변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성곡은 언제든지 적도 자기편으로 변할 수 있고 자기편도 순식간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협상에서 이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어떤 협상이든 단지 입으로 불어서 촛불끄기와 다르지 않다.

그저 얼마만한 힘으로 불어야 가장 작은 힘으로 촛불을 끌 수 있는가 하는 정도다. 그러므로, 상대만 간파할 수 있으면 언제나 협상은 가능하다.

협상의 유불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협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인 것은 당연하고, 협상을 할 수 있으면 오셀로 게임처럼 항상 판을 뒤집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전체를 더 잘 보는 눈을 가졌다면 판을 뒤집는 것은 어렵지 않다.


“코크, 정말 지긋지긋하게 악랄하군요.“

델모어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성곡은 대답하지 않았다. 괴물이 하는 이런 쓸모없는 말에까지 대꾸하며 잡담할 시간이 없었다.

델모어한테 억지로 받은 힘은 협상을 할 가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레즈니코프에게 받았던 힘의 크기와 비교하면 약해도 너무 약했다.

성곡은 레즈니코프가 정말 강한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그 힘이 거의 사라진 지금은 델모어한테 받은 힘으로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델모어가 고작 저 정도인 것으로 봐서 어쩌면 성곡은 자기가 다시는 라탐앤 왓킨슨에서 발휘했던 투명 스파이더맨 같은 능력을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주구슬과 스펙트빌리를 계속 쓸 수 있다면 까짓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차질이 생겼다.

성곡은 자기 스스로 그런 힘을 가질 때까지는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누가 쓰고 싶어서 쓰나.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쓰지.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힘이 약한 만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에 더 신경쓰는 것이 그나마 방법이라면 방법이고, 약할 때는 블러핑(bluffing, 허세)는 필수다.

성곡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빨리 델모어가 오리진을 설명하기를 눈으로 재촉했다.

델모어는 힘빠진 손을 떨면서 모텔방 벽에 볼펜으로 도형을 그리는 중이었다.

얼마나 많은 힘을 성곡에게 빼앗겼는지 서있기도 힘들어 다리가 달달 떨렸다.

찢어진 블라우스를 한손으로 잡고 억지로 가슴과 등을 가리려 노력하면서, 델모어는 하나의 원을 여섯 개로 쪼개고, 쪼개진 여섯 조각이 원호와 뾰족한 중심의 위치를 바꾸어 다시 모였다.

그걸 보면서 성곡은 델모어가 바보 맞다고 생각했다.

당장 화장실에 있는 큰 타월 하나만 어깨에 둘러도 다 가릴 수 있는 몸을 어떻게 해도 가릴 수 없는 손과 찢어진 블라우스로 해결해보려 바둥된다.

“이걸 원에서 나온 태양이라고 해요. 아무것도 없던 태초의 우주에 구멍이 뚫리고 안과 밖이 뒤집어지게 된 걸 우리는 빅 펑크(Big funk)라고 불러요. 우주 곳곳에, 아니 태양이 있는 곳마다 빅 펑크가 있었고, 지금도 간헐적으로 빅 펑크는 터지고 있는 중이죠. 우주는 계속 커지고.”

“그게 오리진인가?”

하고 성곡이 물었다.

델모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우주의 오리진은 이거죠. 다른 존재들도 모두 오리진을 가지고 있어요. 우주가 빅 펑크에 의해서 탄생한 것처럼, 모든 존재가 자기 식의 빅 펑크를 통해서 탄생한 거죠.”

델모어는 발발 떨리는 발끝을 세워서 벽의 높은 곳에 네모를 그렸다. 네모 속에 조금씩 각도를 틀어서 내접하는 다른 네모를 연속으로 그려넣으며 말했다.

“이게 뭔거 같아요?”

“네모. 많이 그렸네.”

“미개한 지구인이란....”

델모어가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성곡은 듣고도 가만 있었다.

발 근처에 밟고 서더라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이는 쓰레기통을 두고도 엄지발가락으로 서서 발발 떠는 외계인 또는 괴물이 할 만한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델모어가 말했다.

“우주의 모습이죠. 인간들의 각의 중첩과 원을 구분하지도 못하지만."

“처음에 그린 동그라미가 우주 아니었나?”

하고 성곡이 물었다.

델모어가 화를 냈다.

“답답한 소리 말아요. 각의 중첩이 아니면 어떻게 360도니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어요? 내가 그린 건 전부 '각 관계도'라고.”

성곡은 입을 다물었고, 바보 같은 델모어는 비방과 욕설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몇 가지 도형을 더 그렸다.

도형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그거 알아요?”

델모어는 성곡을 쏘아보며 말했다.

“제가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다는 걸. 당신이 오리진을 못 찾으면 모든 게 허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어. 알 것도 같으니까. 이제 네 사람들 불러도 돼.”

하고 성곡이 말했다.

델모어가 멈칫했다.

“알고 있었어요?”

“걱정마. 이 정도 속인 걸로 겁탈하진 않을 테니까. 난 원래부터 여자는 안 믿어.”

델모어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곡이 팔베개를 하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델모어는 입으로 비누방울을 뿜어내서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쓸어담았다.

성곡은 머리 옆에 있는 베개를 델모어에게 던져 주었다. 벨모어 발치에 떨어진 베개는 피투성이가 된 성곡의 모습으로 변했고, 성곡은 스펙트 빌리를 사용해서 침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스펙트 빌리는 빛과 소리를 속이는 능력이었다.

성곡은 빛과 소리로 속여야 할 대상 하나를 더 정해서 자기 모습으로 보이게 응용한 것이었다. 거기에 미러 락을 이용해서 형상을 하루 정도 고정해놓은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하며 귀에 대고 성곡이 속삭이는 소리에 몸서리칠 때 델모어의 부하들이 모텔로 들여 닥쳤고, 델모어는 피투성이 주검이 된 성곡을 끌고 모텔을 빠져 나가 라탐앤 왓킨슨으로 돌아갔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현세 전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26. 블랙메일 from 도플갱어 21.04.08 15 0 12쪽
39 25. 권력의 빛 또는 그림자 -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으로 죽게 21.04.07 20 0 14쪽
38 24. 수영장의 접시들 - 지구를 지키는 괴물들 21.04.06 16 0 10쪽
37 23. 시인의 이름 - 두 명의 신을 죽인자 21.04.06 13 0 10쪽
36 23. 시인의 이름 - 더 야해 21.04.05 12 0 8쪽
35 22. 우주의 철옹성 21.04.05 16 0 11쪽
34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사랑 혹은 혼란 21.04.04 14 0 9쪽
33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5 0 10쪽
32 20. 헤드 헌팅 21.04.02 17 0 14쪽
31 19. Some woman Oscar Crane. 어떤 여자 오스카 크레인 21.04.02 15 0 17쪽
30 18. 천천히 폭주하다 - 수영장 21.04.02 17 0 7쪽
29 18. 천천히 폭주하다 - 테이블 밑에서 21.04.02 13 0 7쪽
28 17. 시험의 종소리 - 델모어의 수작 21.04.01 21 0 7쪽
27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21.04.01 17 0 8쪽
26 16. 블랙벨과 초상화 21.03.31 17 0 12쪽
25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21.03.30 19 0 9쪽
24 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21.03.30 17 0 9쪽
23 14. 반신의 거동 21.03.29 20 0 13쪽
22 13. 생명 창조의 화요일 밤 - 탐색 21.03.28 22 0 15쪽
21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동행하는 적 21.03.27 17 0 9쪽
20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21.03.27 18 0 9쪽
19 11. 너 내꺼 - 확인사살 21.03.26 18 0 10쪽
18 11. 너 내꺼 - 캐캐묵은 소리 21.03.26 16 0 11쪽
17 8. 늑대들의 기법전수 - 거짓말까지 잘 배웠다. 21.03.25 19 0 8쪽
16 10. 늑대들의 기법 전수 - 죽을까? 그럴리가 있나. 21.03.25 17 0 8쪽
» 9. 흑백 오셀로 21.03.24 20 0 10쪽
14 8. 침대 회담 - 변호사 본능 21.03.23 20 0 11쪽
13 8. 침대 회담 - 드라이아드 21.03.23 19 0 10쪽
12 7. 옛날 옛적에 어느 변호사가 - 역습 21.03.22 21 0 10쪽
11 7. 옛날 옛적 어느 변호사가 - 거울 잠궈 21.03.22 17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EarlGrey'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