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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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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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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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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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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15. 자기만의 괴물




금요일에 델모어는 강 건너 롱아일랜드 시티에 있던 성곡의 아파트(임대다. 성곡은 사피로처럼 큰 집을 갖기 전에는 어떤 집도 사려하지 않았다.)에 사람을 보내서 그의 개인 소지품을 모두 옮기게 하고 버려도 될 것은 버렸다.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는 성곡의 살림살이는 사적인 기념품 같은 것 이외에는 가구 몇 개의 옷이 전부였다.

바쁘게 사느라 텔레비전도 없었다.

옷이 중요하다. 양복은 새로 맞추겠지만 그 사이에 입을 양복은 필요했다.

그 일을 이후에 회사로 돌아와 몇 가지 업무를 더 처리하고 델모어는 퇴근했다.

회장겸 매니징 파트너를 하려다가 성곡에게 빼앗겼지만 델모어는 불만이 없었다.

목표하던 접시 위원회의 위원이 되었고 지배력은 크게 늘어서 이제 꽃피기 시작했다.

델모어의 목표는 드러난 조직인 라탐앤 왓킨슨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접시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집단 지배를 가장한 독재체제에서 위원장이 가지는 권력의 크기를 성곡은 모른다.

성곡이 회사를 다 가져도 레즈니코프가 가졌던 권력의 20분지 1도 되지 않는다.

델모어는 만약 자기가 위원으로서의 자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면 성곡이 레즈니코프를 죽이는데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즈니코프가 살아나버리면 델모어의 위치는 다시 그의 개인 비서 이상이 아니다.

심복으로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는 있겠지만 원래 최측근인 개인 비서가 그 정도는 가진다.

레즈니코프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인간 아닌)은 델모어였다.

계획에 있지는 않았지만 성곡편에 서서 레즈니코프를 제거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다. 위원회 위원의 자리는 이제 영원히 그녀의 것이 되었으니까.

업무배정과 프로젝트 관리에 익숙한 델모어는 자기 비밀 스케줄에 있는 오늘의 마지막 업무를 성곡의 집에서 할 예정이었다.

델모어가 성곡의 새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아홉시 정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파트로 들어가려니 발이 엘리베이터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힘의 저울질에 익숙한 델모어의 본능은 몸이 성곡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딱히 공포심이 드는 건 아니었다.

지배력이 늘어나면서 이런 감각도 늘어났다. 델모어는 살그머니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고 주차장을 통해서 달아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사피로는 아파트를 둘러 보며,

“좋군.”

하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성곡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감정을 담고 말했다.

“몸 팔아서 샀습니다.”

조금 전에 사피로는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갑자기 성곡 앞에 나타났다.

사피로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장이 녀석, 파리(Paris, 프랑스 수도) 입성이라도 한 모양이네.”

“나폴레옹 입성요? 히틀러 입성요? 설마 드골? 다 사양합니다.”

성곡은 골이 날 수 있는 대로 다 나 있었다.

살고 싶으면 살아서 자기를 찾으라는, 초등생 작문에도 안 나올 말을 해놓고 나 몰라라 사라지더니 (다이아몬드를 주긴 했지만) 이제 해볼 만하다 싶은 상황에서 다시 나왔다.

더구나 파리 입성이라니.

나폴레옹의 파리 입성은 100일 천하로 끝이 났고, 히틀러의 파리 입성은 고작 몇 년만에 연합군에 의해 끝장났고, 드골의 입성은 아름답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하면서 정치판을 들락날락하며 정권을 쥐기도 하고 뺏기기도 했으니 어느 경우나 성곡이 닮고 싶은 모델이 아니다.

더구나 라탐앤 왓킨슨은 걸핏하면 적에게 문을 열어주는 파리처럼 허술해 빠진 곳도 아니다.

속으로 영감탱이가 초를 친다고 욕했다. 이미 마음은 그가 친아버지라고 거짓말했다면서 때렸을 때 삐쳤다.

창문에 비친 사피로의 얼굴은 슬며시 웃고 있었다.

“내 젊었을 때 같군.”

그 말에 성곡은 더 골이 났다.

그런 말은 자식이 대견할 때 하는 말이지, 엄마의 정부도 아니었던 변태 또는 고자가 할 법한 말은 아니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사피로가 화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늘 네 말을 거꾸로 들어. 그래야 참말이 되니까. 하지만 네 본심을 들으려면 거기서도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했지. 진실도 거짓도 네 본심은 아니었으니까.”

성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어디가요? 안 하던 말을 다 하고. 불편하게.”

“간다.”

사피로가 짧게 대답했고 성곡은 입을 다물었다.

사피로가 사라졌을 때조차 성곡은 그가 자기를 완전히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결혼했을 때도 곁을 지켜준 사람이 사피로였고, 살아남기 위해 빌딩 외벽 중간에 매달려 있을 때도 알아서 구해줬던 사피로였다.

성곡은 자기가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하면 다시 사피로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이라 '합리적'으로 생각했기에 과감한 행동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괴물들의 지배자인 하이잭커조차 가소롭게 여기는 사피로라면 어떤 경우에서든 성곡의 목숨하나는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디로....”

하고 성곡이 말을 꺼냈다.

사피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섭리'가 이끄는 곳으로.”

“휴.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고요? 문장 전체가 갑자기 튀어나온 대명사처럼 흐릿하게 말하지 마시고.”

성곡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따졌다.

마음에서 어떤 간절함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피로가 말했다.

“당장은 네가 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럼, 시험은 끝났군요. 살아서 찾아오라던.”

사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곡은 계속 따져들었다.

“이미 이행을 착수한 일방계약(unilateral contract, 당사자 한쪽의 의무이행에 의해서만 성립되고 성립과 동시에 이행도 끝이나는 계약)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 아세요?”

“몰라.”

“하여간 책임지십시오. 살고 싶으면 살아서 오라 했으니, 제가 살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성곡은 입에서 나오는대로 법을 들먹였다.

사피로는 대꾸없이 성곡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성곡은 울컥치미는 울음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11학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사피로가 지금처럼 성곡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미국의 고등학교에는 대부분 마약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성곡은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생 중에서도 몰래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사피로가 머리에 손을 얹고 그를 달래주었던 날은 성곡이 마약 딜러들한테 심하게 폭행을 당한 날이었다.

성곡이 아르바이트 하던 수퍼마켓에는 정육코너가 있었고, 정육코너에서 일하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약쟁이였다.

그는 성곡에게 대마초를 주면서 학교에서 팔아오라고 시켰다. 당연히 성곡은 거절했고, 그 약쟁이와 세 동료들한테 냉동고로 끌려가서 옷이 벗겨진 채 심하게 맞았다.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성곡을 성폭행하려고까지 했다.

그들 방식의 입막음이고 조종 방식이었다.

고기를 쓰는 큰 칼, 우악스러운 덩치, 영하 20도 이하인 냉동고, 온통 퍼렇게 멍들고 팬티만 입은 몸, 그 속에서 성곡은 발버둥치며 구석까지 몰려 냉동고 벽에 등을 붙였고, 등은 얼음보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벽에 쩍쩍 거리며 달라붙었다.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내려 얼었다. 이미 약에 취한 그들에게 '적당히'라는 것은 없었다.

성폭행의 위험까지 더해서 성곡은 죽음을 생각했다.

그 때도 성곡을 구해준 사람은 성곡을 만나러 수퍼마켓에 왔던 사피로였다.(정말 우연히 왔던 것인지는 모른다)

사피로는 냉동고로 들어와 네 명의 약쟁이들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성곡의 머리에 손을 얹어주었다.

성곡의 마음속에서 그날 그 순간부터 사피로는 진짜 아버지가 되었다.

성곡은 고개 속인 채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이제 정말 못 볼 수 있다는 싶어지자 여자들과 즐기며 보냈던 시간의 백분지 일만이라도 사피로를 찾아가는데 썼더라면 하는 생각에 더 눈물이 복받쳤다.

“언제 가요?”

하고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는 “곧”하고 대답했다.

성곡은 바(bar)로 가서 포도주를 가져왔다. 잔을 들고 창가에 나란히 서서 남쪽 멀리 보이는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사피로가 입을 열었다.

“세상은”

“판타지죠.”

성곡은 갈라지는 목을 포도주로 축였다.

사피로가 말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현미경으로 보면 이전에 안 보이는 게 크게 보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무시하면 안 보이고, 안 봐도 사는 데 큰 지장 없지. 네가 본 괴물들이나, 저 방에 있는 드라이아드들, 그냥 세균이나 박테리아와 마찬가지야.”

“그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걸요.”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원래 그렇지.”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독자분들과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소통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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