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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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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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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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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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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블랙벨과 초상화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16. 블랙 벨과 초상화



현실에서는 총론보다 각론이 더 중요하다.

명예훼손을 헌법 이론으로 보자면 복잡하지만 실무에서는 대 여섯 가지 판례만 찾아도 해결책이 나온다.

성곡은 당면 문제에 도움을 받고자 재빨리 말했다.

“스펙터 빌리나 펄 비즈는 힘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잘쓰면 돼.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누구도 계란 하나 드는 데 포크리프트(folklift, 지게차)를 쓰지 않아.”

효율적으로 힘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건데 사피로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렇게 하는 중입니다.”

하고 이제 더 노골적인 요청을 했다.

“샘즈 핸드(Sam’s hand, 샘의 손)를 펄 비즈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샘즈 핸드는 가로채는 손인데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배웠던 것이다.

자기가 내는 것과 똑 같은 것을 상대방이 계속 내고 있다면 정신이 탈탈 털리고 만다.

더구나 한 번 비길 때마다 판돈을 두 배로 키우는 약속이 되어 있을 때는 지는 순간까지 멈추지 못한다.

성곡은 사피로와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한 번에 80억 달러를 잃었다. 물론 갚을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성곡은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거나 좌절시킬 수 있는 이 샘즈 핸드가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사피로가 말했다.

“네 걸 만들어. 넌 거짓말장이잖아. 내가 가르친 걸로 네 걸 지어내면 돼. 언제까지 몸에 안 맞는 내 옷을 입고 살거냐? 다 큰 놈이.”

성곡은 대학 면접관과 인터뷰 하러 갈 때, 정장이 없어서 헐렁한 사피로의 양복을 빌려 입고 갔다.

입학 허가를 받고 났을 때 사피로가 선물로 양복 두 벌을 맞춰줬었다. 로펌에 입사할 때까지 성곡이 가진 정장은 그 두 벌뿐이었다.

“쳇!”

하고 투덜거리는데 사피로가 성곡의 잔에 무언가를 톡 떨어뜨리며 말했다.

“대신 이걸 가져라.”

“에이, 더럽게.”

하면서도 성곡은 포도주를 마시고 입술로 그 물건을 잡았다. 백금 반지인데 새끼손톱만한 검정색 보석이 박혀있었다.

“이번엔 이걸 주고 가시려고요?”

하고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가 말했다.

“블랙다이아몬드다.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지는 거지.”

“5캐럿은 되어 보이는군요.”

반지에 붙은 블랙다이아몬드는 직사각형 라운드 형태로 세공되어 있었다. 속에는 마치 우주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졌거나 말거나 지난 번에 받은 핑크 다이아몬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아니다.

성곡이 슬며시 물었다.

“선생님 혹시 보석상 가지고 있어요?”

사피로가 성곡의 욕심에 어이없어 하며 무시하고 잔을 들지 않은 손바닥을 펼치자 주먹만한 핑크 다이아몬드가 소환되었다.

성곡은 불헌듯 드는 불길한 생각에,

“혹시 그걸 다시 가져가려고....”

하며 절대 안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선물이든 공짜든 이미 인도와 수령이 끝난 물건의 소유권은 받은 사람에게 귀속된다. 다시 가져 가는 건 강탈이다.

입을 다물고 완강하게 거부의 뜻을 다시 보였다.

사피로가 성곡의 손에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보석이 아니다. 블랙벨이다.”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진 보석이겠지요.”

하고 성곡은 어림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사피로가,

“우주전함이야.”

하는 말에 성곡의 얼굴은 완강함에서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사피로가 말했다.

“우주전함이면서 우주전함의 컨트롤러지. 내가 이전에 썼던 거야.”

세상이 판타지인데 SF가 가미된 듯 더 놀랄 것도 없다.

성곡은 자세히 들여다 보며,

“광속 우주선 그런 겁니까?”

하고 물었다.

자세히 봐도 반지는 그냥 반지고 우주선 로고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피로가 말했다.

“아광속으로 달릴 수도 있고 공간을 도약할 수 있지. 공간의 축을 더하거나 뺄 수도 있고, 차원도 넘을 수 있다는 말이야. 넘을 수 있는 차원이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더구나 전함이야. 스타트랙의 엔터프라이저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곡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

“어떻게 작동해요?”

“네 의지로. 오리진에 연결하는 것처럼 블랙벨에 연결하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

성곡이 물었다.

“동력원이 설마 오리진입니까?”

사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곡은 실망한 투로 말했다.

“에이. 그럼 지금 당장은 못쓰잖아요. 보나마나 오리진의 힘이 엄청 필요할텐데.”

사피로가 손가락으로 블랙벨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들 버블(middle buble, 중간 거품)”

순간 성곡을 둘러싸고 반투명한 거품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피로의 손가락 끝에서 펄비즈가 터져나왔다. 성곡은 기겁하고 몸을 웅크렸으나 펄비즈는 성곡을 에워싼 미들 버블에 닿는 순간 흡수되고 말았다.

성곡이 고함쳤다.

“죽는 줄 알았잖아요!”

“이 버릇없는 놈이.”

사피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전함의 기능을 작게 쓸 수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성곡은 골이 났지만 그래도 블랙벨이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기에,

“알았어요. 핑크 가져가세요.”

하고 말했다.

사피로의 손에서 핑크 다이아몬드가 사라졌다.

성곡이 사피로의 얼굴을 빤히 보며 넌지시 말했다.

“그 핑크도 우주선이나 그런 거죠?”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피로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성곡은 조금 실망한 듯이 말했고, 사피로는 떫뜨름한 표정을 지었다. 성곡이 그걸 빌미로 또 뭘 요구할지 걱정이 되었다.

성곡은 자기의 원래 아파트에서 옮겨온 짐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가서 레터지 크기의 액자 하나를 찾아서 가져왔다.

오랫동안 외부를 감싼 브라운 페이퍼를 벗기고 사피로에게 주었다.

“가져 가세요.”

음성은 조금 퉁명스럽고 탁했다.

사피로가 받은 액자에는 사피로와 성곡의 엄마가 사이에 중학생 성곡이 서있는 일가족의 초상화가 들어있었다.

성곡이 사피로를 만난 열 다섯 살 때 그린 것이었다.

“가끔 우리 엄마도 보고 싶을 거잖아요.”

하는 말은 목이 잠겨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피로는 말없이 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곡은 유리창을 두 주먹으로 치고 그 위에 얼굴을 얹었다.

“XX,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잡지. XX 엄마는 XX. 그것도 못하고.”

엄마를 또 욕했다.

이전에는 사피로가 엄마와 잔 줄 알았기에 그나마 더 좋았다. 엄마가 그렇게도 못했다는 사실이 더 원망스러웠다.

“내가 거지도 아니고.”

뻔뻔하게 사피로에게 받기만 하고 준 게 없다. 늘 속이고 거짓말만 했다.

성곡은 자기가 정말 원했던 것은 로펌의 대표가 되는 것도 부자나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것은 자기에게 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 성곡이 바랐던 것은 사피로와 엄마와 한 가족으로 사는 것이었다.

성곡은 남은 와인을 밀봉마개로 막아 와인 냉장고에 넣으며 작은 소리로 내뱉었다.

“코크 인생 참 X 같다.”


날이 어슴푸레했다.

성곡은 사피로를 만났던 것이 꿈인가 싶으면서도 왼손에 가운데 손가락에 느껴지는 이질감에 속이 쓰렸다. 블랙벨이다. 손가락에 낀 채 보려하니 자기한테 퍽(fuck you)를 날리는 꼴이 되었다.

“퍽!”

하며 성곡은 손을 치웠다.

침대를 정리하고 목욕 가운을 들고 들어가 씻었다.

다림질 된 속옷을 입고 잠옷은 잘 접어서 옷장에 넣었다.

성곡에게는 속옷과 정장 외에 다른 기성복이 없다.

사피로가 그러했고 성곡은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남자 어른이 사피로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사피로만큼 가깝지 않았기에 여자 어른까지 합쳐도 사피로뿐이었다.

인생은 사춘기에 등을 받쳐주는 어른이 누군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실 밖으로 나오니 여자 울음 소리가 들렸다. 허둥거리며 달래는 소리도 들렸다.

복제인간들이 사용하는 작은 거실에는 새벽인데도 넷이 모두 나와있었다.

텔레비전은 카툰 채널에 고정되어 있고, 금발 머리 두 바보 처녀가 스폰지밥이 무섭다고 우는 중이었다.

성곡이 첫째라고 이름 붙인 3퍼센트짜리 녀석은 보고 있던 계약법 책을 옆에 내려놓고 우유병을 쥐어주며 그 둘을 달래려고 애를 쓰고, 레즈니코프의 찌꺼기 정도를 입력시킨 둘째는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의 앞에도 우유병이 있었다.

“바보들이라 말을 안 들어. 내니(nanny, 아기 돌보는 사람, 유모)를 구해야 할까봐. 혼자서 옷도 못입어서 입혀줘야돼.”

첫째가 성곡을 보고 구세주를 만난듯이 떠들었다.

덩치만 말만한 두 계집애는 머리도 빚지 않아 지저분했다. 그 때문에 하얀 얼굴과 파란눈이 천진하면서도 퇴폐적으로 보였다.

“인터넷 보고 배워. 네가 내니야.”

“기저귀도 내가 갈아야 한단 말이야!”

하며 첫째가 화를 냈다. 그리고 둘째를 가리키며

“저 자식은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말도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고.”

첫째의 고함에 셋째와 넷째가 놀라 딸꾹질을 했다.

성곡은 셋째와 넷째를 구분하지 못했고 아직 구분할 필요도 못 느꼈기 때문에 그 둘을 묶어서 셋째와 넷째로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입으로 웅얼거리며 따라해보는 모습을 보이지만 울음소리 외에는 그냥 '갸', '갸', '그', '그' 소리를 내거나 '히힉', '헤에' 같은 바보 웃음만 짓는다.

성곡은 속으로 '저놈 성미 못됐네' 하면서 말했다.

“알았어. 내니 구하자.”

첫째가 성난 표정으로 한 번 노려보고 셋째와 넷째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었다.

복제인간의 육아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정보를 다 입력했거나 첫째처럼 3퍼센트라도 입력이 되었다면 조금 허술한 데는 있어도 쓸 수 있겠지만 델모어의 복제인간인 셋째와 넷째처럼 머리가 백지 상태면 곤란했다.

성곡도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얘들은 속이 단련되지 않아서 햄버거를 먹으면 토하고, 신체 통제가 잘 안되서 서다가 넘어지고, 손도 잘 사용하지 못했다. 어제도 첫째가 그들을 씻겼다.

“얘들 함부로 건드리지마.”

하고 성곡이 말하자 첫째는 또 둘째 쪽으로 눈을 돌리며,

“저 음침한 놈한테나 조심시켜. 변호사인 내가 바보들 건드려 준강간할리 없잖아. 그냥 좀 만지는 건 몰라도.”

저놈은 지가 변호사 성곡인줄 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만큼 자기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화도 잘 내고 까칠하다.

성곡의 몸을 복제하고 기억의 일부를 주입받았지만 첫째는 성곡과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자기가 복제되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성곡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제부터 성곡의 크레딧카드를 사용해서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매하거나 음식을 주문하기도 했다.

성곡이 첫째에게 말했다.

“셋째는 청소하고 집안일 하는 거 가르쳐. 넷째는 요리하는 거 가르치고.”

“내니 구한다며. 파출부나 메이드도 구하면 되잖아. 얘들이 무슨 일을 해. 바본데.”

하고 첫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밥값은 해야지.”

하고 성곡이 말하자 첫째가 입을 다물었다.

지당한 말이기도 하고 엄마한테 부담이 되지 않게 어릴 때부터 밥값은 하려 했던 성곡에게는 가슴이 무거워지는 말이기도 했다.

“둘째도 구박하지 말고.”

첫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곡은 그가 아직은 자기 같은 거짓말장이가 되지는 않았다는 걸 느꼈다.

이후에도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 자기도 놀랐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자기 없을 때도 알아서 잘 하라고 한 후에 집을 나서려는데 첫째가 말했다.

“엄마 부르면 안 돼? 엄마는 다 할 줄 알잖아.”

성곡은

“절대. 다시는 '엄'자도 꺼내지마.”

하고 집을 나왔다.

걸어서 회사로 가는 중에 델모어한테 전화를 받았다.

“보스, 오늘 출근합니까?'

“거의 다 왔어.”

“올라오세요.'

델모어는 먼저 와있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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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3. 시인의 이름 - 두 명의 신을 죽인자 21.04.06 15 0 10쪽
36 23. 시인의 이름 - 더 야해 21.04.05 13 0 8쪽
35 22. 우주의 철옹성 21.04.05 16 0 11쪽
34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사랑 혹은 혼란 21.04.04 14 0 9쪽
33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5 0 10쪽
32 20. 헤드 헌팅 21.04.02 18 0 14쪽
31 19. Some woman Oscar Crane. 어떤 여자 오스카 크레인 21.04.02 16 0 17쪽
30 18. 천천히 폭주하다 - 수영장 21.04.02 18 0 7쪽
29 18. 천천히 폭주하다 - 테이블 밑에서 21.04.02 14 0 7쪽
28 17. 시험의 종소리 - 델모어의 수작 21.04.01 21 0 7쪽
27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21.04.01 17 0 8쪽
» 16. 블랙벨과 초상화 21.03.31 18 0 12쪽
25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21.03.30 20 0 9쪽
24 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21.03.30 18 0 9쪽
23 14. 반신의 거동 21.03.29 20 0 13쪽
22 13. 생명 창조의 화요일 밤 - 탐색 21.03.28 23 0 15쪽
21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동행하는 적 21.03.27 18 0 9쪽
20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21.03.27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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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 너 내꺼 - 캐캐묵은 소리 21.03.26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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