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람들은 각성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윤윤BY
작품등록일 :
2021.04.04 11:37
최근연재일 :
2021.04.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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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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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프롤로그.


다채로운 색상의 타원형 포탈이 열려 있었다.

어스름한 안개는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고 주변에선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괴성들이 들린다.

그 와중에 한 소년이 포탈 앞에서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그는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 처럼, 주변의 위험은 신경쓰지 않고 신기한듯 포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색이 일렁이기도 하고, 보라색이 일렁이기도 하더니 형형색색 빛이 변하며 소년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주변은 싸움 중인지 이것저것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끝 없는 슬픔의 울음소리와 비극에 빠진 처절한 외침까지.


하지만 그 소란함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어김없이 포탈을 향해 있었다.

그저 바로 뒤에 서 있는 여성만이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뿐.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차악. 툭


어디선가 나타난 검객. 언제 꺼낸지 모를 검이 차가운 소리를 내며 호선을 그린다. 검은색 액체가 볼에 튀었고 안절부절 못하던 여자가 투욱 힘없이 쓰러졌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여자의 눈에 한이라도 남는지 여전히 소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 그저 볼에 튄 액체를 쓱 닦더니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포탈만을 보고 있었다.


스윽. 휙


다채롭게 빛나던 포탈이 꿀렁이더니 검은 실루엣의 사람이 나왔다. 그는 포탈에서 나오자 마자 번쩍이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고 여성을 죽인 검객은 그대로 쭉 밀려나더니 그대로 도망쳐 사라져 버렸다.

소년은 그제서야 관심이 생긴듯 시선을 그에게로 향했다.

포탈에서 나온 남자는 검객을 쫓지 않았다. 그저 눈안에 들어온 소년을 쳐다볼 뿐. 그리고는 아무런 전조 없이 반짝이는 물체를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소년은 쓰러졌고 포탈에서 나온 인영은 무표정하게 소년을 응시했다. 그리고 소년에게서 떨어져 나온 반짝이는 물체를 주워 만지작 거린다.


그리고 이내 결심 했는지 반짝이는 물체를 한번 움켜 잡더니 무심하게 툭. 소년에게 던지곤 비명 소리가 들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형형색색 빛나던 포탈이 힘을 다한듯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제 끝이라는 듯 서서히 입구를 조여오다 끝내 사라졌다.

아무것에도 반응하지 않던 소년은 사라진 포탈에 격하게 반응했다. 어린 아이가 친구에게 애정하던 장난감을 뺏기기라도 한것처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분노에 찬 몸짓으로 부르르 떨며 비척인다.

열망. 갈망. 욕망.

그 뒤틀린 감정들이 하나만을 희망하며 손을 뻗었다.


파삭. 위이잉.


소년 위에 있던 물체가 사라지며 불현듯 녹색의 포탈이 소년의 손 끝에서 다시 열린다.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손 끝이 포탈에 닿자 그대로 포탈로 빨려 들어 갔다.



1화.


황혼이 내리는 저녁, 모두가 아름다워지는 그 시간.

나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강남역 2번 출구.

퇴근할 때 마다 막차에 늦지 않기 위해 매일 허겁지겁 뛰어가던 곳이었다.


사람이 가장 붐비는 시간에 이렇게 여유 있게 걸어 가는건 참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힘이 없었고, 처박은 고개는 그 흔한 핸드폰도 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 손엔 심하게 구겨진 한장의 서류가 너덜너덜해 진체 나풀나풀 날리고 있었다.


해고 통지서.


"하루씨는 다 좋은데 사람을 불편하게하는 능력이 있어. 아니 하루씨는 그렇게 잘났어? 대학도 안나 왔으면서 뭐가 그렇게 잘났어? 하아.. 길게 말 안할게. 이번달 까지만 일해."

같이 일하던 김 과장이 손수 인쇄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던 통지서였다. 마지막까지 열등감에 쩔어 있었다.

대학 안나와도 잘하는게 내 탓인가? 코딩에 대학이 어디 있어? 그냥 하는거지. 지가 못하는걸 나 보고 어쩌라는건지. 세상이 바뀐지가 언젠데 이런 부당 해고질이야? 이건 신고각이다.


나는 아까의 상황을 회상하고 짜증이 올라와 종이를 북북 찢어 버렸다. 그리고 탈탈 손을 털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무의식적으로 목걸이를 매만진다.

"인생이 쉬운게 없군."

툭툭...

'아귀 바이러스. 즉각 도살하라!

각성자 특별법. 즉각 재정하라!'


아줌마가 눈치 없이 내등을 두드리곤 휘황찬란한 전단지를 건내며 말했다.


“총각! 이거 하나 받아. 아!! 자네 였구먼. 오늘은 평일인데도 왔네?”


“네. 제 전단지는 안드려도 되죠?”


“아이구. 말해 뭐해. 총각도 이제는 포기할만 하지 않아? 십여년이 지났어. 살아 있어도 거기 자네 전단지랑은 많이 다를거라고.”


“그냥. 이젠 일상이에요. 시간 될때 안나오면 허전한... 그럼 수고하시고 돈 많이버세요!"


"그려~ 하루 자네도 희망을 잃지 말고! 꼭 찾을 수 있을겨!"

주말이면 항상 와서 돌리던 전단지. 이젠 평일에도 돌릴 수 있어 좋다고 해야되나. 나는 기계적으로 가방에서 종이 한뭉치를 꺼내 들었다. 전단지에는 내가 14살 때 찍었던 가족 사진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고, 내 양쪽으로 여자 동생과 형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저때 사춘기 였던터라 혼자 울상이었고 나 빼고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각성자와 아귀가 나타났다는 그 날. 우리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사라졌다. 경찰이고 뭐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고 아무 소식도 알아 내지 못한 채로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직도 우리 가족을 찾고 있다.


아줌마가 들고 있던 전단지에는 아귀와 각성자가 싸우고 있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등장한 각성자.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발생되는지 모르는 이상 현상은 재앙 그 자체였다. 괴물들을 봤다는 목격담이 하나 둘 씩 늘어 났고, 특히 그 중에서도 아귀라고 불리는 괴물은 다른 괴물보다 자주 출몰했다.

아귀는 흔한 영화의 소재인 좀비처럼 머리나 심장이 터지지 않는 한 죽지 않았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괴력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공포 그 자체의 괴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귀 자체는 소수였고, 아직까지 아귀에게 전염되어 세상이 뒤집혔다는 보고는 없었다. 단지 사람처럼 생긴 괴물이었고, 나타나면 주변이 참혹하게 피로 물들어 버릴 뿐.

즉 전염성이 없었다.

또한 아귀의 등장과 동시에 나타난 각성자들. 그들의 존재는 원래 있었던건지 아니면 평범한 사람에서 새로 각성한 건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총 몇이나 있는지 몰랐고 그들만의 공간이 있는 듯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자제했다. 결국 정부 주도로 십여년간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인명은 관리 되었지만 아직 특별법을 만들거나 제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수는 일반인 백에 각성자 하나 정도로 유지 됐다. 그래서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컸고, 특이하게도 그 비율은 계속 유지 되었다.

나는 멀뚱이 아줌마가 들고 있는 전단지를 쳐다 봤다. 온갖 미사어구와 화려한 그림으로 사람의 눈을 사로 잡는 전단지었지만 내게는 그저 흑백의 우울한 종이로만 보였다.

흑백. 나는 그야말로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전생맹이었다. 가족이 실종되면서 뭔가가 머릿속에서 뚝 끊긴 이후로 세상은 그저 흑백의 조화로만 눈에 들어왔고, 의사들도 심리적인 이유 같다는 모호한 말로 대처할뿐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뭐··· 덕분에 군대는 안갔다.

"하아.. 지친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줬다.

하지만 내가 돌리는 그 흔한 ‘사람을 찾습니다.’ 가 적혀진 전단지보다 각성자와 아귀가 싸우고 있는 자극적인 전단지가 인기가 더 많았다.

각성자들은 10년이 넘도록 지났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요즘 분위기는 긍정적이지 않다. 지금 붐비는 이 강남역 거리에서도 100명 중 한 명은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당연하게도 그 한 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했다.

다들 능력자를 부러워하고 자신도 능력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러면서도 능력자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시기의 대상이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다.

각성자와 아귀. 현재 뉴스에서 가장 크게 화두되는 이슈였다. 결국 각성자만큼 아귀가 생겨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지만 상대적으로 각성자보다 아귀가 적었다.

나는 각성자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다. 하지만 요즘 그들은 쓸데없는 정치적 쇼를 시작했다. 다수인 능력이 없는 사람이 소수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장악하고 제어하기 위한 뻔한 정치적인 행동.

규제를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나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뭘 하든 상관없는 그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즉 이런 전단지는 내게는 쓸데 없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도 각성자가 되고 싶긴 하다.


꼬르르륵

"후.. 나참 쓸데 없이 활동적이라니까."

오랜만에 잡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빨리 공복감이 올라왔다.

평소대로 편의점을 들어가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려고 했다. 그래서 평소처럼 고개를 떨구고 지하로 내려와 편의점 앞에 섰다.

하지만 그곳은 평소처럼 이용하던 편의점이 아니었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가게의 대문이 보였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허리를 펴고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아무래도.. 처음 보는 가게인 것 같은데?"


문 위에는 팔각형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고, 열려 있던 반쪽 문은 들어오라는 듯 갑자기 자연스럽게 활짝 열렸다.

빛나는 문양을 바라보고 이상하게도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향긋하면서도 찐득한 냄새가 문 안에서 퍼져왔다. 향초인건가.

대문을 넘자 왕족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길때 사용하던 발이 보였고, 그 뒤로 의문의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리로."

매력적인 목소리가 하루를 이끌었다.

치리링

발을 걷고 넘어가자 풍경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귓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마주친 두 눈.

찰나의 시간에 보인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웃음 짓는 썩소.

왠지 가식적이고 어찌 보면 재수 없게 웃음 짓는 그 여자.


그녀의 칠흑 같은 검은 생머리와 돋보이는 이목구비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부정적인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나를 압도했다.


그렇게 내 시선은 나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한없이 끌려갔다.

"훗"

짧게 비웃는 소리에 머리를 휙휙 흔들고는 찹찹 하고 양쪽 볼을 때렸다. 따뜻해지는 볼을 무시하고 여자에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편의점인줄 알았어요··· 당황하셨죠? 하핫. 저도 참 당황스럽네요."

여자는 잠깐 인상을 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의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방긋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발 앞에서 볼때와는 다르게 너무도 친절하고 배려심이 가득해보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열망하는 듯한 그녀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었다.

그리고 난데 없이 상체를 숙이며 다가왔다.


집중되는 여자의 시선.

불타오르는 얼굴.

쿵쾅대며 한없이 나대는 심장까지.


저렇게 매혹적인 여자의 시선을 받아 본 적 없는 나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험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젠장 눈도 못 마주치겠고 시선을 올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록 민망한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땅을보며 원망했다.

그리곤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 번뜩 정신이 들어 지척까지 다가온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뭐하는 곳인건가요?"

그제서야 가게 안을 크게 둘러보았다.

가운데에는 수백 년은 된 것 같은 커다란 고목이 밑둥만 잘려져 만든 테이블이 있었고, 그 옆에 놓여진 깔끔한 원목 의자는 고급스러움을 자아냈다.

그런 고고한 장소에서, 그녀는 다른 시선은 상관 없다는 듯한 굴곡진 상반신이 잘 드러난 오피스 룩을 입고 있었다.

"일단 그쪽부터 천천히 둘러보시죠."

사방에 놓여진 깔끔한 선반에는 수백개는 되보이는 방울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방울은 손바닥 만한게 안에는 우주를 담은 것도 있었고, 오행의 기운을 담은 것도,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기하학적인 문양을 담은 것들이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번개치던 방울 하나가 챠르릉하며 울었다.

그리고 왼쪽 선반에는 아담한 테이블과 함께 정장을 입은 남성이 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얼굴을 찡그린 채 한숨을 짧게 쉬더니 뭔가 불만인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뭐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왜 저렇게 보는거지.'

남자를 스쳐 지나가며 여러가지 의미로 현재 상황을 파악 하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리자 미모의 여성이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듯 말문을 열었다.

"하루씨 잘오셨습니다. 이곳은 각성의 성소입니다.”

내가 벙쪄서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신이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각성자로 선택되셨습니다."


***


여자는 담담하지만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리고 엄청난 행운에 당첨된 사람에게 말하듯 축하했고, 하루가 사태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자 여자는 뒤에 말을 덧붙였다.


"이 방울 안에 이하루 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성은 양손을 들어 그녀 주위로 배치된 방울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방울들은 합창하듯 한번에 다양한 방울 소리가 울렸고 방울 안에 흐르는 기묘한 흐름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성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각성을 하는 것이었다니. 신기하지만 약간 얼떨떨했다. 그런데 왠지 챠릉거리는 방울 소리가 거슬렸다. 마치 고양이 목에 거는 종소리 같다랄까.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데?


"자 그럼 골라보시죠. 이하루 님의 마음에 드신 방울을 선택하고 흔시면 됩니다. 그러면 능력이 흡수되어 각성자. 아니 우리와 같은 마고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빤히 쳐다보는 여자의 얼굴과 마주친 고개가 부자연스럽게 조금씩 돌아갔다.

뭔가 믿을 수 없게. 너무 갑작스러운거 아냐? 뜬금없이 방울을 선택하라니. 그리고 흔들라니. 분위기도 이상했고 왠지 미덥지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멀뚱히 서 있자 여자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적으로 살짝 한쪽 눈썹에 경련이 일어나고는 다시 웃으며 내게 말을 건냈다.

“그쪽에 있는 붉은 방울은 어떠신가요? 정렬적인게 하루님과 참 잘어울릴 것 같군요. 아니면 뒤에 있는 노란색 방울은 어때요? 짜릿한 능력이 될 것 같군요. 아니면 특이하게 이런건 어때요? 자 골라보시죠. 마음에 준비는 하셨나요?"

마치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직접 상품 홍보를 하듯 내게 미소를 유지한 채 주변 방울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역시 내 눈에는 그저 흑백의 방울들이 즐비할 뿐이었다. 선반 앞에 다가가니 방울들이 마치 자기를 골라달라는 듯 빛을 내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아무거나 상관 없는건가요?"


"그럼요~ 골라보시죠? 어느 것이 마음에 드십니까?"


"음.. 글쎄요."

망설이자 아까 번개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던 방울 하나가 다시 한번 띠링 하고 울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하늘을 나는 능력은 물론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는 능력. 그리고 텔레포트를 하는 능력까지··· 그 중 하나가 당신의 현실이 되는 겁니다. 선택만 잘하면 최강의 마고인이 되실도 수 있습니다."

여자의 미소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없이 수상했다. 연예인 뺨치는 얼굴로 다그치니 10개라도 골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너무 수상했다.

마고인이라니. 아니 저런 미인이 나에게 말을 걸다니.

분명 저 여잔 사기꾼일테지. 그리고 방울을 잡으면 변상하라고 협박을하며 소송도 불사할거고. 쥐꼬리 같은 퇴직금도 탈탈 털릴거다..

불안한 느낌. 선택의 시간 따위가 내게 주어졌을리가 없다.

"고르지 않아도 되는 거죠?"


여자의 매혹적인 얼굴이 살며시 찌그러졌고,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고르시지요. 능력을 각성하면 삶이 바뀔 겁니다."


내 인생의 모토가 '평범' 이었다. 모나지 않은 삶.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발 물러선 삶. 3인칭의 객관적인 삶.

이런 개 같이 길들진 삶이 내 것이었다. 평범한 것 말이다. 가뜩이나 내 눈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평범함을 고집했다.

하지만 나는 가방 안에 있던 전단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침에 반강제로 제출했던 사직서까지.

방울을 보며 기이한 욕망이 끓어올라 선반 가까이로 손이 움직이고 있었던 그때.

다시 한번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

그리곤 정신이 돌아와 냉정하게 한번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에 내게 썩소를 짓던 여자의 모습과,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젖던 남자의 모습.

분명 날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좋은 능력을 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이 여자. 선택하지 않는 내게 강제하지 않는다.


"고르지 않아도 되나 보네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근데 혹시 여기 알바도 뽑으시나요?"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는지 여자는 이마에 핏대가 서더니 남자에게 턱짓했다. 처리하라는 건가.


“아닌가 보네요. 그럼 전 이만.”

나는 험한짓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바로 성소를 나섰다.

치리링.

“자..잠깐만요!”


맑고 청아한 종소리가 다시 들리며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채 각성의 성소에서 나왔다.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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