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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망겜 생활 [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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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학도C
작품등록일 :
2021.04.06 10:37
최근연재일 :
2021.06.08 10: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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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9,834

작성
21.04.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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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소녀, 랩글 3 (1)

DUMMY

······.


가슴 속에 터져버린 그 무언가가 로버트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별 관계도 없는 나의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남은 건 그 무언가가 여기서 터져버린 다음, 생긴 흉측한 자국뿐이었다.


[어브 타운으로 가는 동안 다들 몸 조심하게. 자네들이 그쪽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자네들은 우리의 동료일세.

우리 걱정은 말고, 어브 타운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내게나. 우리는 자네들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네.]


타운의 장로님이 전 프리즘 타운 주민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건네고, 프리즘 타운 주민들이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배웅하는 동안도, 케일리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조차 비추지 않는 검은 눈동자.

떠나가는 로버트도, 그 눈에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케일리.]

[······응···?]

[손은 흔들어야지···.]

[······.]


힘없이 늘어지는 르네의 말소리를 듣고, 케일리는 할 수 없이 손을 흔들었다. 검은 후드 원피스의 소매에 달린 그 손이 마른 나무의 가지처럼 앙상해 보였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두 개의 선택지.


[손을 흔든다] [손을 흔들지 않는다]


나는, 내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로버트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네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어. 괜찮아, 로버트. 괜찮아.


나는 틀리지 않아.


나는 지금, 이 순간 가상현실 게임 ‘모노크롬 패밀리’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로서, 내 나름대로 인지하고, 판단하고 곱씹은 다음, 반투명 창을 눌렀다.


[손을 흔들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로버트의 부모님 곁으로 직행했다.

돌아보지 않았다.


······.

이런 상황일수록 저 뒤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은 되도록 보지 않는 게 좋다.

아마 상대방 얼굴 보면, 둘 다 무너진다.


로버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셔츠 소매로 그 주위를 너무 많이 문질러서, 뻘게질 때로 뻘게진 로버트의 눈을 보고는 그저 로버트를 안아주었다.


[잘했어, 로버트.]

[···로버트. 빨리 어브 타운으로 가자. 거기 가면, 여기보다도 더 좋은 학교도 있고, 더 좋은 책방도 있으니까. 가자.]


[엄마, 아빠.]


[어?] [왜?]


[······어브 타운에 가면 저랑 같은 친구들도 많겠죠?]

[············.]


[저랑 같이 그림에 관심 있는 친구들도 학교에서 만날 수 있죠?]


로버트의 아버지는 남은 힘을 필사로 쥐어 짜낸 듯한 로버트(나)의 목소리에, 다시 로버트(나)를 꼭 안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로버트. 다 괜찮아질 거야. 어브 타운에 가면, 다 괜찮을 거야.]


로버트(나)는 등을 천천히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아버지의 다정한 온기를 기억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엔 약간 물기가 섞여 있었다.


아버지도 사실 여기 프리즘 타운을 떠나기는 싫은 걸까. 로버트는 빳빳하게 굳은 몸을 적시는 서늘한 안개를 느끼며 생각했다.


프리즘 타운을 등지고,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간판을 등지고, 우리는 그렇게 걸어갔다.


[워프 기계가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옅은 하늘색이 하얀색으로 변하는 시점에, 우리가 미쳐보지 못했던 워프 기계가 서 있었고, 로버트와 나는 그 워프 기계에 순순히 올라섰다.

워프기가 발하는 붉은 기운이 우리를 하얀 공간에 다시 되돌려 놓았다.



*



······.

다시 하얀 미로.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던 로버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내 뒤에 없다.


언젠가부터 내가 입고 있었던 갈색 베스트와 흰색 셔츠도, 본래 내가 입고 있었던 바이오 리본 달린 후드로 변해 있었다.

나를 인형으로 삼고 있었던 로버트의 영혼도, 내 몸을 빠져나간 듯했다.


미로 벽 속에는 두 개의 그림자.

나를 둘러싼 오른쪽 벽에는 거친 펜 터치로 완성된 로버트의 그림.

왼쪽 벽에는 점점 선이 얇아지는 케일리의 그림.


어브 타운의 고층 빌딩이 눈에 띄는 로버트의 그림 곁에는 항상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어브 타운의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에 처음 들어와 만났던 그 선생님도 로버트를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

이따금, 케일리를 못 잊은 슬픔에 휩싸여 검은 오오라를 품은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뒤에서 친구들과 부모님, 선생님이 치어 풀을 흔든 덕분에 길에서 넘어질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다.


왼쪽 케일리의 그림에도 친구들이 있었다,

케일리의 뒤쪽에 서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르네와, 에이미. 그리고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어머니와 아버지. 케일리를 옆에서 돌봐주는 프리즘타운 주변 사람들.

케일리도 이러한 친구들과, 주변의 사랑 속에서 그 길을 잘 걸어가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그 둘의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하얀 미로를 헤쳐 나갔다.

미로의 직진 코스가 계속되는 동안, 나와 케일리, 로버트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내 입에서 때에 맞지도 않을 휘파람이 나올 때까지.

미로의 다음 행선지로 보이는 하얀 빛무리가 있는 곳에 더욱 가까워질 때.


사건은 일어났다.


[어이~ player.go~ 잘 지냈어?]


갑자기 오드아이 유령이 나타난 것이다.

케일리가 그려진 벽에.


나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붉은색과 푸른색 눈에 숨을 멈출 뻔했다.


[너! ···네가 왜 여기에!]

[왜? 오면 안 돼? 내가 여기서 나올 때가 됐으니까 나온 거야. 응?

아까도 봤으면서 그러네~ 놀라는 척 하지 마~ ]


오드아이 유령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검은색에, 빨간색 테두리가 둘러져있는 코인이었다.


어.

저, 저건···!


[···블랙코인?]


[블랙코인? 난 그런 건 몰라. 이 코인은 랩글코인이야.]

[내 친구들을 만들 때 쓰는 거지.]


오드아이 유령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 검은 코인에 입을 맞췄다.


[어서 와. 우리의 세계에. 널 기다리고 있었어.]


케일리가 그려진 벽엔 어느새 케일리를 지켜주던 친구들과 어머니, 아버지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오직 르네만이 케일리에게 에이미에게 잡힌 채로 손을 뻗고 있었다.


보고 있던 내가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처절하게 손을 뻗는 르네.


[케일리! 케일리? 케일리! 내 말 들려? 야. 이 녀석아! 바보! 멍청이! 더러운 녀석! 불알친구 거들떠보지도 않는 매정한 녀석! 어서 눈을 뜨지 못해?]

[안 돼. 르네 언니. 안 돼, 이미 늦었어!]


에이미가 르네를 뜯어말리며 말했다.

르네를 말리는 에이미의 표정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묘했다.


···그 표정은 매우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매우 기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늦긴 뭐가 늦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쟤에게서 저 오라만 벗기면 될 문제 아니야? 친구들이 다 어브타운으로 갔다고 해서 저렇게 될 필요까지 있어?

···이건 뭔가의 계략이야! 응?]


르네는 에이미의 속박을 뿌리치고 검은 오라로 둘러싸인 케일리에게 달려갔다.

힘 있게 한 발을 내디딘 르네는 머지않아 케일리를 둘러싼 랩글에 의해 가로막히고, 르네는 랩글의 손찌검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아악!]

[언니!]


랩글들의 두목처럼 보이는 랩글이 저 멀리 날아간 르네의 앞에 다시 나타나서는, 촉수로 르네의 배를 뚫으려고 했다.

르네는 아까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는지 지금도 쓰러져 기절 상태였다.


안 돼!

나는 순간적으로 오른손에 에너지탄을 장전하여, 르네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그 랩글을 향하여 쐈다.


이 에너지탄이 맞지는 않더라도, 눈을 잠깐이나마 끌 수는 있겠지!


[[유언 획득 – 17 : 영원은 없어]]

[[player.go, 현재까지 누적 랩글 경험치는 2,410입니다]]


···어, 어라?

되네?


하얀 에너지탄은 정확히, 르네를 해치려는 랩글이 그려진 벽 쪽으로 빨려 들어가 랩글을 쓰러뜨렸다.

아무래도, 이 미로 속에서 랩글들은 공격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좋아!


나는 이 기세를 몰아서, 오른손에 작은 에너지탄을 만든 다음, 미로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수하랩글 다섯 명을 향해 날렸다.


에너지탄을 맞은 수하 랩글들은 하얀 벽 속에서도, 검은 연기를 휘날리며 사라져갔다.


[[player.go, 현재까지 누적 랩글 경험치는 2,510입니다]]


[너. 그만둬? 응? 그 녀석에게 이 이상 손대기만 해봐. 딱 그만 둬······.]


르네가 벽 속에서, 그 오드아이 유령에게 말했다. 그녀는 두목 랩글에게 당한 그 기억이 강렬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드아이 유령은 그런 모습이 꽤 재밌는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서 르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꼬마 아가씨. 이건 숙명이야. 어쩔 수 없어. 이건 그녀가 정한 거기도 해.]

[···케일리가?]


[그래. 모든 것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버틸 수도 없다는 거지. 이제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친했던 친구도 잃은 그녀는 빈 껍데기에 불과해. 그 정신은 이미 붕괴된지 오래야.]


오드아이 유령은 약간 얼굴을 찡그린 채로, 르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잖아? 이대로라면 그녀가 언젠가는 진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그 때가 지금이야.]


[···난 지금도 포기하지 않았어! 난 지금도··· 지금도 그 애를 포기하지 않았어!]


오드아이 유령은 그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미 늦었어. 친구.]


[뭐?]


유령은 그 검은 오라가 흘러넘치는 코인을 들고, 케일리의 허리에 붙어 앉아서 코인을 넣을 준비를 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쪽으로 넘어와도. 이젠 너희들 모두, 참지 않아도 돼.]

[너희들 모두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돼. 이미 배터리 방전된 주제에.]


[편해져도 돼.]


[미안, 르네. 에이미······. 이제는 더 못 참겠어.]


케일리의 허리에 코인이 들어간 순간.

케일리의 몸속에서 검은빛이 불꽃처럼 터지더니 이내 케일리를 뒤덮고,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이계의 존재가 현실에 강림한 것처럼.


[랩글 3.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환영해.]


검은 후드.

건들거리는 두 다리. 르네와 나를 보고는 씩 웃는 듯한 그 얼굴.


그것은 우리가 계속 열심히 잡아 왔던 자들의 생김새였다.


[케일리! 케일리! 케일리!!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빨리 그 녀석을 돌려줘, 이 괴상한 유령!]


[너도 유령이라 부르는 거냐···. 뭐 어떻게 보면 유령이 맞지만.]


벽에 들어가 케일리를 배회하던 날개 달린 붓이 새로 탄생한 랩글 3··· 케일리의 곁을 빙빙 돌았다.

그녀는 자기 주위를 돌던 그 붓을 잡아서 원을 그린 다음 르네를 향하여 날렸다.


벽에 있는 르네는 몸을 움직여 도망치려고 했지만, 랩글 3···이 던진 원은 르네를 앞질러 그녀의 팔을 묶었다.


[케일리! 그러지 마···! 케일리.]

[케일리? 그 사람이 누군데?]


오드아이 유령은 그녀의 어깨에 하얀 후드 소매를 올리며 말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어.]


작가의말


 * 현재 플레이어의 랩글 경험치 & 모은 유언


player.go 랩글 경험치 2,410


player.po 랩글 경험치 1,590  


4 :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 걸까

5 : 해치고 싶지 않았어

6 :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9 : 이렇게 끝내긴 싫어!

17 : 영원은 없어

20 : 너만 힘든 건 아냐. 다들 힘들어. 그러니 넌 참아야 돼. 계속

21 :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전해

22 : 용서받고 싶었어.

25 : 난 여기에 있어.

29 :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30 :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31 : 너만 슬픈 줄 알아?


기억 랩글 40 :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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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gopo 형제의 스테이터스&현재까지 모은 유언들 21.05.24 17 0 -
81 전하는 말 21.06.08 2 0 15쪽
80 찰나 21.06.07 3 0 7쪽
79 SOS (2) 21.06.06 6 0 12쪽
78 SOS (1) 21.06.05 6 0 12쪽
77 파장 21.06.04 6 0 7쪽
76 YOUR BEST FRIEND 21.06.03 5 0 11쪽
75 your best friend 21.06.02 5 0 13쪽
74 스크린 속의 그 녀석 21.06.01 5 0 7쪽
73 가능성의 세계 21.05.31 7 0 14쪽
72 나와 함께, 영원히. 21.05.28 8 0 5쪽
71 ETERNAL (2) 21.05.27 10 0 15쪽
70 ETERNAL (1) 21.05.26 19 0 14쪽
69 주사위 게임 (3) 21.05.25 7 0 14쪽
68 주사위 게임 (2) 21.05.24 6 0 13쪽
67 주사위 게임 (1) 21.05.23 11 0 12쪽
66 Endless 21.05.22 9 0 15쪽
65 슈퍼 셰이킹 울트라 디럭스 봄버 (2) 21.05.21 9 0 13쪽
64 슈퍼 셰이킹 울트라 디럭스 봄버 (1) 21.05.20 9 0 13쪽
63 윤지오는 죽지 못해 살았다. 21.05.19 8 0 7쪽
62 어차피 게임 스토리...? (5) 21.05.18 12 0 11쪽
61 어차피 게임 스토리...? (4) 21.05.17 12 0 13쪽
60 어차피 게임 스토리...? (3) 21.05.16 12 0 13쪽
59 어차피 게임 스토리...? (2) 21.05.15 11 0 11쪽
58 어차피 게임 스토리...? (1) 21.05.14 14 0 14쪽
57 버그? (2) 21.05.13 13 0 12쪽
56 버그? (1) 21.05.12 15 0 12쪽
55 스케치북 21.05.11 13 0 9쪽
54 유토피아 (2) 21.05.11 12 0 12쪽
53 유토피아 (1) 21.05.10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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