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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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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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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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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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위즈?”


계속되는 추궁과 입을 열지 않는 위즈.

그렇다고 정말 말할 수도 없어 물 한 잔 가져와 리나 앞에 앉고는,


“자, 봐봐, 리나.”


말이라도 돌려보려고 빨래에 물을 붓는다.


“······뭐 하는 거야?”

“신기한 거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빨래에 묻는 물기를 손으로 쓸자

언제 젖었냐는 듯 뽀송뽀송해졌다.


“어때, 신기하지?”


그 모습을 보던 리나가 말한다.


“옷에 묻은 더러운 것도 없앨 수 있어?”

“응. 얼룩만 없앨 수도 있어.”


옷이랑 같이 없애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왜 일일이 빨래를 하는 거야? 마법으로 해도 되잖아?”

“칼을 잘 쓰는 사람도 요리할 때 요리용 칼을 쓰지, 싸움용 칼을 쓰지는 않아.”


보통 길을 떠나도 요리용 칼을 따로 챙긴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호라 군에서는 그런 짓을 하면 아예 징계를 내린다.


“창을 잘 쓰는 사람도 고기를 구울 때 자기 창에 고기를 꿰지는 않고.”

“꽤? 꽤지는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꿰다. 그러니까 고기를 막대기에 꽂는다는 거야.”


위즈가 손으로 꼬치를 만드는 시늉을 한다.

물론 이 역시 호라 군에서는 징계감이다.


“아무튼, 총을 잘 쏘는 사람도 벽에 구멍을 뚫을 때는 그에 맞는 도구를 사용하고, 말을 잘 타는 사람도 가까운 곳을 갈 때는 자기 발로 걸어.”


활을 잘 쏘는 사람도 그 활로 악기를 켜지는 않고,

방패병들도 자기 방패를 요람으로 쓰지 않는다.


“물론 아예 안 쓰는 건 아니야. 최후의 수단? 그런 식으로 정 방법이 없을 땐 무기를 써먹지. 나도 마찬가지야.”


리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위즈는 싸우기 위해 마법을 배웠다.


“그럼 그 마법도 원래 다른 용도가 있는 거야?”

“응. 날아오는 공격을 없애는 마법이야. 나름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바꾼 거지.”


공중에서 정확히 공격만 없애듯, 옷에서 정확히 수분만 찾아 없앤다.


“정확히 원하는 것만 없애는 거 어렵지 않아?”

“어렵지. 나도 연습하다가 없애버린 옷도 많고.”


옷이 부족해서 본가에 천 좀 더 보내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문 같은 것도 안 외우고 하는구나.”

“익숙해지면 머릿속에 쉽게 각인이 되니까.”

“그러면 주문을 외우는 마법이 아예 없는 거야?”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위즈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수를 센다.


“대충 다섯 개 정도는 주문을 외워야 해. 아니, 여섯 개인가?”

“정말? 그 마법들은 왜 주문을 외우는데?”

“나름 뭐, 각오도 필요하고, 꽤 큰 마법이라서.”


손을 툭 내린다.


“얼마나 큰 마법인데?”

“비밀.”


검지를 입에 대고 살짝 웃는다.


“맨날 비밀이야.”

“그래도 하나는 알려줄게.”


리나가 토라지는 시늉을 하자 위즈가 몸을 숙여 조용히 말한다.


“주문도 사실 짧아. 마법 이름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그게 비밀이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많은 마법사가 최대한 완벽하게 마법을 쓰려고 주문을 길게 하는 것과 달리, 난 짧게 말해도 마법이 나간다고.”

“그건 그냥 자랑이잖아. 그러지 말고, 다른 비밀도 알려줘.”

“다른 비밀? 무슨 비밀?”

“숲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잘 돌렸다 싶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오히려 리나가 장단을 맞춰준 모양이다.


“그······, 내가······,”

“난 위즈가 내 말 피하고 대답 안 하는 그런 짓 안 했으면 좋겠어.”


실제로 그런 일을 많이 겪어 이 말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고개라도 끄덕여줘. 위즈, 지금까지 숲에서 약초를 캐면서,”


심호흡하고 이어 말한다.


“적이랑 싸웠지?”


아니라고 했으면 좋겠다.

이미 그렇다는 걸 눈치챘으면서 계속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리나를 핑계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신 뒤 고개를 끄덕인다.

리나는 리나대로 심장이 내려앉는다.


“······진짜?”

“응. 싸웠어.”

“얼마나? 아니, 언제부터?”


빨래를 내려놓고 팔짱을 낀다.


“전에 옷이 다 찢어진 채로 돌아온 적 있었지?”


프레그와 싸웠던 날.

그 전에 늑대 부리미와 싸웠던 건 무의식적으로 함구한다.


“응. 꽤 전이잖아.”

“그거, 적과 싸워서 그래.”

“정말? 얼마나 힘든 상대였기에 옷이 누더기가 된 거야?”

“어? 아, 그게 아니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위즈 소매를 붙잡는 리나.

독이 옷을 녹이기는 했지만, 위즈에게는 별다른 상처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몸에 닿은 독도 있을 거 아니야. 그 독은?”

“그 정도 독은 나한테는 해를 못 끼쳐.”

“정말로?”

“응. 정말로.”


그제야 소매를 놓고 물러나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그럼 그때부터 계속 싸운 거야? 매일?”

“매일은 아니고. 그래도 조금 됐지.”

“적은 나를 쫓던 그 적들이 맞아?”

“응. 그런데 늑대 부리미들만 있는 건 아니더라. 칼을 든 놈들도 있고 총을 든 놈들도······.”

“아사르군더니움.”


리나가 나지막이 말한다.


그 말에 위즈는 입을 다물고 커다래진 눈으로 리나를 본다.


“맞지?”

“······어떻게 알았어? 내가 말한 적 있었나?”


고개를 끄덕인다.


“위즈, 잠꼬대 심한 거 알아? 가끔 ‘아사르군더니움’이라고 외치던데.”


‘자면서 모든 걸 얘기했나?’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혹시, 뭐라고 소리 지르는지 확실히 알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보통 괴성을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해. ‘안 돼!’라고 외치기도 하고.”


이 숲으로 도망친 직후, 위즈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잠이 들려고 하면 언제나 피 묻은 손과 피투성이 시체들이 보였으니까.


- 마법을 배우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 거야?

- 못 자는 거야.

-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어?


어둠마저도 안쓰럽게 볼 정도로 위즈는 상태가 심각했다.


“사실 위즈가 자다가 우는 것도 봤어.”

“어쩐지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흥건하던데, 그게 침이 아니었구나.”


우는 걸 들켰다니까 괜히 부끄럽네, 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나

리나는 여전히 표정이 심각하다.


‘그나저나 리나가 눈치챌 정도로 악몽을 심하게 꿨다니.’


시간이 꽤 흐르자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은 적어졌고

악몽 자체도 버틸 만한 정도로 변했다.

그랬는데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놈들을 죽인 게 독이 된 걸까.’


손에 묻힌 피가 늘어날수록, 악몽에 나오는 시체 수도 늘어난다.


“아사르군더니움에 대해 들어봤어?”

“응. 크레센타에 있을 때.”


위즈는 들켰을 때 동요한 걸 빼면 딱히 힘들어하는 것 같진 않다.

기우였을까.


“그래도 그 아사르군더니움에게 쫓길 줄은 몰랐어.”

“아사르군더니움에 대해 얼마나 알아?”

“호라 북쪽 산맥 너머에 있는 테러단체? 그런 것만 알아. 역사가 꽤 오래됐다는 거랑.”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 정도구나.”


위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그, 정보도 있어? 위즈가 아는 거?”

“응. 호라는 직접 맞닿아있으니까 이래저래 알려진 게 더 많거든.”

“예를 들면?”

“황제 폐하가 아사르군더니움 출신이신 것 정도?”


리나가 위즈를 한 3초 정도 쳐다보다 다시 입을 연다.


“어? 뭐라고?”

“뭐가?”

“호라 황제가 아사르군더니움 출신이라고?”

“그냥 거기 출신일 뿐이야. 도망쳐서 호라를 위해 싸우셨어.”


상상도 못 한 이야기다.


“호라 사람들은 지금 황제가 아사르군더니움 출신인 거에 불안해하거나 하지는 않아?”

“딱히. 나름 공도 많이 세웠고, 즉위 후에도 선정을 베푸시니까. 오히려 아사르군더니움을 상대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도 하고.”

“크레센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네.”



고개를 끄덕이다가 묻는다.


“그럼 여기에 온 적들이 아사르군더니움인 건 확실해?”

“응. 확실해. 적의 무기에 놈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어.”

“하지만 자신들을 아사르군더니움이라고 칭한 가짜일 수도 있잖아. 외국에서 용병을 부른다든지 해서.”

“용병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놈들이 아사르군더니움이라는 건 확실해.”


프레그는 분명 원로들이 아사르군더니움에 부역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호라 정부가 그 사실을 알렸다면 누구나 알 수 있었겠지만,


“아사르군더니움이 아니면 어때. 적이라는 건 변함없는데.”

“그건······, 그렇지.”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한다.


“바깥소식도 들었어.”

“어?”


정확히는 들은 게 아니라 부대 하나를 습격해서 정보를 억지로 캐냈다.

확실히 제대로 된 부대는 순찰대보다 더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


“리나 네가 이 숲으로 도망친 이유. 엘렌 성이 공격받았다면서?”


솔직히 처음에 그 내용을 들었을 때는 암호를 잘못 해독한 줄 알았다.

엘렌 지역이 얼마나 넓은데 그 전체를 군단 하나로 점령하고 지배하며

황군의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건지.


그래도 숲에 눌러앉은 적, 엘렌 성에서 돌아오지 않는 매,

밤마다 붉게 물든 엘렌 성 쪽 하늘.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하고, 정말 적이 엘렌 성을 포위했을 가능성도 크다.


거기에 앞뒤 사정은 모르겠으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위가 높아 보이는 옷을 입었던 리나.


만약 크레센타에서 온 사절단에 속해 있다가

숲 부근에서 적의 습격이라도 받았다고 한다면 이상할 건 없다.


“맞아?”

“아, 어. 말하려고 했는데.”


위즈가 살짝 잘못 알고 있는 이 상황에 편승해 그렇게 굳힌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굳이 정체를 안 밝혔어?”


이대로 전부 말할까, 그러면 더 편해질까 생각하나 그만둔다.

왠지 위즈라면 리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리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크레센타로 돌려보낼 것 같다.


“그냥,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


그래서 적당히 뭉뚱그려 말한다.


“그래도 그냥 사절단 소속이었다가 공격받았다는 것 정도는 밝혀도 됐을 텐데.”

“미안해.”

“아니, 아니. 나무라는 건 아니야.”


위즈가 세게 손을 내젓는다.


“뭐, 어쨌든 거기까지만 말해준다는 건 더 자세히 말해줄 생각은 없다는 거지?”

“어?”

“크레센타 사절단 소속이라고만 했지, 그 외의 건 아무것도 얘기 안 했잖아.


갑자기 숨이 탁 막힌다.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내 정체, 들었어?”

“어? 아니. 리나 네 얘기는 그냥 동선 파악하는 정도뿐이던데.”


그리고 덧붙인다.


“물론 알 수 있었어도 네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모른 척했을 거야.”

“왜?”

“리나 너도 이렇게 안 묻고 있잖아.”


물론 리나는 위즈의 정체를 알고, 위즈도 리나가 눈치챘다는 걸 안다.

그래도 당장 캐낼 생각은 전혀 없다.

리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위즈.”

“응?”

“만약에 내가 여기서 더 물어본다면, 화내지 않고 답해줄 수 있어?”

“아니. 장담은 못 하겠어.”

“그렇지?”


리나가 살짝 웃는다.


“왜? 그냥 계속 물어보려던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위즈도 일관되게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든 피하고 있다.

적을 정말로 ‘죽이고 다녔는가.’

그리고 피하는 걸 아는 이상, 계속 묻기도 조금 그렇다.


“위즈, 잠깐만.”


그래서 대신에 손짓으로 위즈의 머리를 가까이 대게 했다.

위즈가 리나 손을 보다가 시키는 대로 머리를 살짝 숙이며 말한다.


“왜?”

“잠깐만 이대로 있어.”


그대로 손을 얹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려하던 대로 위즈는 정말 적과 싸우고,

이렇게 위즈와 학살을 일으킨 그 마법사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지만 그걸 모두 알고 나니 위즈에 대한 두려움보다,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었다는 미안함보다,


위즈가 속에 품었던 것들이 다시금 떠올라 동정심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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