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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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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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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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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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조용.”


위즈가 리나를 껴안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다.

나무 그늘에서 눈이 찬란히 빛난다.


“요정이 자고 있잖아.”


사슬에 달린 창끝에 피와 뇌수가 방울져 떨어지고, 다시 사슬을 당기자

징그러운 소리와 함께 병사가 풀밭으로 무너진다.


“전체 전투 준······!”


다른 조 조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주위를 보며 소리치다

말도 끝맺지 못한 채 똑같이 머리를 꿰뚫린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 내가.”


병사 몇이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래도 그 병사의 희생으로 다들 말없이 전투태세를 갖춘다.

위즈가 손을 휘젓자 사슬에 매달린 시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방패벽을 때린다.


‘기절시킨 걸 알면 나중에 한 소리 듣겠지?’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깨지 않을 것처럼 조용히 잠들어있다.


“이런 아이를 희생 제물로 삼겠다니,”


잠자는 리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일어나 테르막시아를 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이해해주지 않는 거야?”


테르막시아가 그렇게 묻는데, 다행히 다른 병사들처럼 머리를 꿰뚫지는 않는다.


“이건 이해할 거리가 안 되잖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인데?”

“너희를 위한 무고한 이의 희생이지. 그리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면,”


테르막시아를 가리킨다.


“아줌마도 아사르군더니움에 들어간 이유가 부정당해 버리는걸.”

“무슨 소리야?”

“크레센타가 고향을 습격했는데 무시당했다며. 기존에 맺은 동맹 때문에.”


크레센타 제국이 정말로 와이바누스 왕국을 침략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여러 이유로 무시당했다고 치자.

그 이유로는 동맹을 주도한 호라와의 관계,

복수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 잃을 수많은 생명,

그해에 수확하지 못할 식량 등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전쟁을 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다니, 그야말로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아니야?”


나라를, 세상을 위해 작은 마을 하나는 포기한다.


“다물어!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겠다는 생각 따위······.”

“리나도!”


테르막시아가 악을 지르자 위즈도 똑같이 악을 지른다.


“리나도 너희의 말도 안 되는 이상을 위해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어.”

“이, 이,”

“세상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차 있어. 너희 말대로 핍박받는 이들도 있고, 핍박하는 이들도 있지.”


위즈도 알고 있다.

직접 당해봤으니까.


“그런데 핍박받는 이들을 위한다면서 계속 고통을 주고 있잖아.”


위대한 희생.

테르막시아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너희가 주는 고통을 너희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한 시점부터 너희는 이미 글러 먹었어.”


그 사실이 어찌나 역겹던지 돌팔찌가 주던 고통마저 덮을 정도였다.

결국 그 차고 넘치는 마력으로 돌팔찌 속의 마 엘구룬을 깨뜨리고

테르막시아가 반응하기 전에 직접 팔찌도 깼다.


“깨끗한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겠지. 여기서 손을 더럽혀도 되는 건 나 혼자야.”


양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시킨다.

그러자 위즈 말을 들으며 혼란스러워하던 테르막시아가 정신을 차린다.


“멈춰!”


달려들어 손목을 움켜쥔다.

희생이니 뭐니 하는 건 나중이다.

당장은 놈을 처치하고 살아 돌아가야 한다.


“놔.”

“아까 요정이 이렇게 마법을 쓰더라?”


말이 아니라 동작으로 마법을 쓰던 요정.

그리고 그 요정에게 마법을 가르친 변수.


“솔직히 놀랐어. 동작으로 마법을 쓰다니, 나도 생각만 했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거든.”

“나도 아줌마 논문 보고 연습한 거야.”


처음에는 팔을 크게 휘두르는 식으로 마법을 써야 했지만,

점차 손가락만 까딱해도 웬만한 마법은 다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데에 연습하는 건 너무 마력 낭비 아니야?”

“괜찮아. 마력이야 차고 넘치니.”


입으로는 평범하게 말하면서 서로 팔에는 잔뜩 힘을 준다.


“그래도 동작으로 마법을 쓰다니, 약점이 너무 훤하잖아?”


이를 악물고 팔을 빼내려고 애쓴다.


“자, 어때? 이렇게 하면 마법을 못 쓰겠지?”

“놓으라고 했을 텐데?”

“어디 우리 병사들 머리를 꿰뚫던 기세로 뭐라도 해보지 그래?”


똑같이 훈련을 받았어도, 상대는 현역 군인 마법사.

마법 실력은 몰라도 완력은 확실히 차이 난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마법을 쓸 건데?”


그 말에 갑자기 위즈가 힘을 뺀다.


“어떻게 쓰긴,”


테르막시아의 시야 바깥, 옆쪽 바닥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검은 사슬이 빠르게 솟아난다.

사슬 끝에 달린 창날이 위즈의 키만큼 솟아오르고,

이어서 테르막시아의 팔에서 피가 튄다.


“이렇게 쓰지.”

“끄아아아······.”


아슬아슬하게 팔 전체가 뜯겨나가는 건 피했지만,

오른팔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상처를 입는다.


“아무 짓도 안 해도 이 정도 마법은 쓸 수 있어.”


솟아난 사슬을 휘두르는데 한발 먼저 도끼병 하나가 달려와

손에 든 도끼로 사슬을 쳐낸다.

이어 방패병 둘이 테르막시아를 방패 뒤에 숨기고, 다른 병사 몇은 붕대를 꺼낸다.

나머지는 시선이라도 돌리려는 듯 진영을 제대로 갖추고 위즈에게 다가온다.


“모두 앞으로!”


사방에서 압박해오는 모습에 위즈는 동요하지 않고

손을 천천히 허리 높이까지 올린다.


“내가 굳이 방패를 때렸을 때,”


맨 앞줄 방패벽이 점점 다가오다가 일제히 멈추고 방패가 힘없이 넘어진다.

죽은 방패병들이 사슬에 꿰여 발끝을 땅에 댄 채 서 있다.


“으아아아!”


그 뒤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 몇이 비명을 지르며 한 발자국 물러난다.


“그럴 때 도망쳐야 했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


경험 많은 병사 몇이 주위를 다독인다.

사슬이 사라지자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와 함께 방패병들이 무너지고 그것을 신호로 다른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한다.


“네 목만 챙겨 돌아가겠다!”


테르막시아도 의무병들을 뿌리치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외친다.

사슬이 온 사방에서 나타나 이리저리 적을 공격하지만,

테르막시아의 부하들처럼 다들 잘 피한다.

그래도 좁은 곳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 서로 부딪히는 병사들이 보인다.


“죽여라!”

“나의 이름으로 명하니······.”

“그쪽으로 나무 넘어간다!”


병사들이 나무를 박차며 다가오자 위즈가 오른손을 얼굴 높이로 올린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지휘하듯 부드럽게 휘두르며 주문을 외운다.


“박멸.”


펑, 하는 소리가 일제히 울리더니, 이어 풀밭에 방금까지 살아있던 시신들이 떨어진다.

시신들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일그러진 무기들도 같이 떨어진다.


“아니, 일그러진 게 아니라······.”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병사 하나가 떨어진 무기를 집어 든다.

큰 원의 일부 같은 모습으로 칼의 일부가 사라졌다.

그리고 칼 너머로 보인 시신도,


“우읍!”


똑같은 모양으로 몸 일부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신출내기 병사 몇이 헛구역질을 한다.


“찢긴 게 아니라 사라졌다는 게······.”

“맞아. 이런 거야.”


위즈가 무릎을 살짝 꿇고 옆에 있는 시신에 손을 살짝 올린다.

그리고 다시 손을 떼자 피부가 사라지고 근육이 드러난다.


“당신 팔도 조금 허전하지?”


그 말에 테르막시아가 붕대로 묶은 팔에 손을 살짝 갖다 댄다.

정말로 아까부터 계속 위화감이 들었다.

다쳤다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


“대체 뭐야, 그 마법은?”

“죽이기 전에는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며 테르막시아를 공격하려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무슨 마법인지 확실히는 몰라도, 나한테 마법은······.”


통했다.

테르막시아가 똑같이 마력을 흡수하려고 손을 뻗어도

사슬은 아무 이상 없이 튀어나와 테르막시아를 쳐서 날린다.


“그것도 다 생각했어.”


뒤에서 칼을 들고 덮치려는 병사의 배에 구멍을 뚫어주며 중얼거린다.

이어 창을 든 이가 위즈의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들지만,


“대체 왜 이런 빽빽한 숲에 창을 들고 오는 거야?”


위즈가 몸을 살짝 틀어 창을 피한 뒤, 가는 사슬을 창끝에 묶고는

옆에 있는 나무에 걸어 창대를 부러뜨린다.


“생각보다 무겁네.”


사슬에 끌려온 창끝 부분을 쥐고 무게를 가늠하듯 팔을 움직여본다.

그리고 부러진 창을 보며 아연실색한 창 주인에게 다시 던져 돌려준다.


“어떻게, 어떻게,”


머리를 자기 창끝에 꿰뚫려 넘어가는 병사 뒤로 테르막시아가 비틀거리며 오자

위즈는 일부러 다가오도록 사슬을 테르막시아 주위에서 치워준다.


“어떻게 마법이 통한 거지? 방심한 것도 아닌데?”

“간단해. 네 특징을 역이용했어.”


위즈가 먼저 테르막시아에게 다가간다.


“너,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데, 그 장갑은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마력을 마음껏 흡수시켜준다고 했지? 왜 한 짝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나를 보호하던 검은 기운 때문에 한쪽만 남았으나 그래도 마력을 흡수하는 데는 충분하다.

시간만 조금 더 걸릴 뿐이다.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내가 마력을 뿌리기만 해도 그 장갑은 네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흡수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데?”

“어쨌긴, 그거 하나면 끝나잖아.”


마력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흡수한다면, 흡수하지 못할 때까지 흡수시키면 된다.


- 사람마다 이 마력을 담는 그릇에 차이가 있어.


마법 수업 첫 시간 때 리나에게 알려줬던 말이지만

사실 이건 수업 첫 부분에 나오지 않는다.

보통 마법을 처음 배울 때는 이론부터 하다 보니

마력이 부족하거나 할 일은 없으니까.


- 사람마다 최대치가 정해졌다고 할까?


그런데도 가장 먼저 가르친 이유는 혹여나 실습도 같이하지 않아서일까도 있지만,

여러 마법 이론 중 위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가슴에 새긴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흡수하지 못할 때까지 마력을 뿌렸어. 이곳에 도착한 이후부터, 쓸 수 있는 동안에는 계속.”

“어?”

“일부러 네가 마법을 잘 쓰지 않도록 해서 마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유도했다고. 그러면 당연히 네 몸속의 마력이 꽉 찰 거 아니야.”


마력을 담는 그릇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마력을 흡수하는 마법사는 마력을 빼앗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상황이 낫다.


“하지만 이미 마력이 꽉 찬 상태에서는 마력을 흡수하지 않지. 오히려 몸에 무리가 갈 테니까.”

“그래서, 설마 마력을 계속 뿌렸다고? 내가 흡수 못 할 때까지?”

“그 장갑에 의존하느라 눈치 못 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안의 마력은 줄어들지 않았어.”

“이 안?”

“응. 돌팔찌를 깨자마자 주위에 막 같은 걸 씌워놓았거든. 내가 뿌린 마력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아.”


그리고 마력은 계속 뿌리고 있다.


“하늘의 불꽃을 이 땅에 내려······, 어?”

“대지의 영광이······, 잠깐만. 왜 마법이 안 써지지?”

“왜 총이 계속 걸리는 거야?”


무기로 직접 공격하는 이들은 줄기차게 사슬을 피해가며 위즈를 공격하지만,

마법병이나 총병 등 공격하려면 마력이 필요한 병사들은

들고 있는 무기나 손만 보고 있다.


“설마 너, 이 안의 마력 농도를 짙게 해서 마력을 내보내지 못하게 한 거야?”

“맞아. 마법사가 상대하기 짜증난다는 건 마법사가 가장 잘 아니까. 이제 너희는 절대로 날 죽일 수 없어.”


테르막시아가 손을 뻗어 마법을 쓰려고 하지만, 정말 마법이 나가지 않는다.


“거짓말. 마력을 계속 내뿜는다니,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돼, 나는.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의 후계자니까.”


위즈가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로 불리는 건 직계 혈통이기 때문도,

오두막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도 아닌 오직 단 하나,

시조가 물려준 체질 때문이다.


메르타시아키나.

먼 옛날,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이 시간에게 하사받았다는 성물.


“자, 지금부터,”


위즈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난다.


“살충제로 가득한 이 안에서 사람과 해충,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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