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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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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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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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필로그 2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저들에게는 이 나라보다 더 우선해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까요.”


누군가 일어서려고 해도 손발이 맞지 않으면 소중한 것들까지 함께 잃는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일어날 방아쇠가 필요했다.


“북쪽으로 간 병사들은 다들 돌아왔어요?”

“네.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위즈는요? 위즈는 어떻게 됐대요?”

“형님은 포위망을 뚫고 지나가도록 돕고는, 포위망 북쪽 부근에서 사라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위즈도 순간이동 같은 마법 쓸 줄 알았으니까.

자기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몸을 숨겼으리라.


“적장이 죽고 나서 이 성은 어땠나요? 케마에르 부대가 없으면······.”

“케마에르는 분명 우수한 부대이지만, 사실 방어할 때는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진을 휩쓸 때 좋다고 해도 성벽 사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가벼운 갑옷을 입고 다른 이들과 함께 돌을 던지는 게 나을 정도니.


“그래서 케마에르를 보낸 것도 있습니다.”

“그래도 적이 계속 공격했죠?”

“네. 오히려 더 필사적이었습니다. 성을 점령하면 황군 상대로 농성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비록 식량이나 무기는 없지만,


“어마마마가 계시니까.”

“맞습니다. 황후 마마를 인질로 삼으면 살아남은 이들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테니 악착같이 공격하더군요.”


하지만 적장의 죽음과 포위망을 뚫은 케마에르 부대로 사기가 오른 백성들이

적보다 더 처절하게 싸웠다.


“적이 엘렌 성을 포위해서 싸운 그 오랜 시간보다, 황군이 도착할 때까지 걸린 일주일이 더 잔혹했습니다.”


그 말을 하며 라스가 몸을 살짝 떤다.


“성주님도 전쟁이 싫나요?”

“네. 물론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저는 아닙니다.”

“위즈랑 같네요.”

“저나 형님이나 사람이니까요.”


칼자루 끝의 고리를 만지작거리는 라스를 보며 리나가 조심히 묻는다.


“성주님은 위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형님입니다.”


짧게 답한다.

혹시 별로 좋은 감정은 아닌 걸까 싶어 다시 물어본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형님이고, 제 가족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나를 향해 웃는다.

위즈와 조금 다른 외모지만, 웃는 모습만큼은 똑같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숲에서 리나도 위즈와 가족으로 지내자고 얘기했다.

위즈는 리나를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까지 건드려가며 적과 싸웠고

리나도 위즈를 구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혔다.


라스에게 가족이란 말 역시 마찬가지겠지.


“마마는 제 형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요? 그······, 저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가족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 조금 그렇지만.”

“진짜 가족이 어디 있고 가짜 가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서로 가족이라 여기면 충분하지.”


피가 섞여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자기 혈연도 죽이려 드는 자까지 있는데.


“그래도 조금 놀랐습니다.”

“왜요?”

“형님이 어느 정도 마마를 대접했을 줄은 알았지만, 마마께서도 가족이라고 여길 정도로 친근히 얘기하시지 않습니까.”

“위즈가 절 대접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황녀인 걸 알든 모르든 똑같이 대해줬는걸요.”

“정말입니까?”


라스 반응에 위즈와 지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준다.

그러자 라스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닌데. 그럴 양반이 절대 아닌데.”

“밖에서는 어땠는데요?”

“그······.”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남의 과거지만,

이미 위즈의 정체를 안다고 했으니 적당히 말해준다.


“일단 제가 아는 형은 안 웃습니다. 아니, 웃기는 하는데 얼굴만 웃고 속으로는 안 웃는 게 티가 나지요.”

“웃는 척한다는 거예요?”

“네. 바로 그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살갑게 굴지도 않고요.”


라스나 토운사나스, 그 외에 대학에서 만난 이들과는 가까이 지냈어도

살가운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솔직히 형님 이름을 갖다 쓰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어? 그, 그럼 혹시 제가 만난 게······.”

“가짜일 리 있습니까. 마마를 건네받으며 형님과 만났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님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닙니다.”


그 말에 안도한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군요. 그 양반이 마마를 가족으로 여기고 그렇게나 잘 대해줬다는 게.”


물론 위즈나 리나는 답을 알고 있다.

루미.

루미가 자신의 계획을 위해 위즈와 리나에게 손을 댔던 게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만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득 고개를 들어 성주를 본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위즈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얼굴.

두 얼굴을 비교하다보니 뭔가 기억나려고 한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네? 아니요, 그, 많이 닮아서······.”

“친형제니까요. 마마께서도 제가 과거에 뵈었던 크레센타의 황태자 전하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으니 더 닮았다.

위즈가 아니라,


- 위즈 곁에는 아무도 없었어.

- 지금부터라도 곁에 있어 줘.


꿈에 나타난 테르막시아 때문에 가위에 눌렸을 때 나타났던 루미의 모습.

위즈와 유난히 닮았다고 생각했던 여인의 모습이 라스의 얼굴에도 담겨있다.


‘혹시 루미가 그때······.’


“형님은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네?”

“보고 싶으시잖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고.”

“아······.”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만나기로 했어요.”


품에서 위즈의 편지를 꺼낸다.

같이 가자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에레도르에 들렀다가 다시 항구로 갈 때 숲 앞을 지나가 달라는 말.


“혹시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겠죠?”

“안 나오려고 하면 제가 붙잡아서 숲 앞에 묶어두겠습니다.”

“위즈는 그, 찾기 힘들 텐데······.”


오두막에 들어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위즈와 리나뿐이라는 말이 생각나

말을 조금 흐렸지만,


“오두막에 들어가는 법은 저도 압니다. 널린 게 자료인걸요.”


이쯤 되니 정말로 체포해서라도 데려올 것 같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만족 못 하시잖습니까.”

“성주님이 위즈 빼돌리려고요?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폐하께 사면을 청할 생각입니다.”


학살을 저질렀으나 피해자들은 모두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고,

동맹의 황족을 보호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폐하께서 형님을 사하신다면 형님도 아무런 제약 없이 마마를 따라 크레센타로 갈 수 있습니다.”

“같이 크레센타로······.”


리나는 왜 위즈가 숲 바깥에 나오려 하지 않는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같이 돌아가고 싶어서,


“부탁드릴게요.”

“마마도 우리 폐하께 말해보시지요.”


리나를 성에 데려다줄 때처럼 숲에서 나오길 바라며 말을 아낀다.


“아, 저기 옵니다.”

“네?”

“포로들을 엘렌 동부에 수감하고 돌아오는 호라 황군 총사령관입니다.”


붉게 물든 지평선에서 먼지가 일며 군대가 엘렌 성으로 다가온다.

수없이 세워진 호라의 깃발.


해가 거의 졌을 무렵 군대가 성으로 들어오고,

라스는 리나와 에르나스트라 황후를 알현실로 안내한다.


“호라 황군부 부장 겸 엘렌 수복 작전 총사령관 무르니수스 본 에레체인이 크레센타의 황후 마마와 황녀 마마를 뵙사옵니다.”

“크레센타의 황후 에르나스트라 스케루드가 그대를 환영합니다.”

“적의 공격과 동시에 곧바로 두 분을 구해야 했으나 소장의 무능함으로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례적인 말이 오가는 동안 리나는 총사령관을 보며 뭔가를 계속 생각한다.


‘+무르니수스, 무르니수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 단어를 내뱉는다.


“······정원.”

“예?”

“아, 그······.”


그러자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기억났다.


“그게, 위즈한테 가문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한 사람 이름도 무르니수스라고 들어서······. 죄송합니다.”


황후 눈치를 보며 사과하는데 라스가 대신 말한다.


“맞습니다. 저분이 저희에게 부탁하셨던 바로 그분입니다.”

“제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부탁했던 장소가 정원이었지요.”


그 얘기를 시작으로 모두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방에서 구호품이 들어와 사람들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갔고,

연회에 나온 음식 역시 호화스러웠지만,


위즈와 먹었던 것보다는 별로였다.


“황녀 마마.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면 모레 출발해도 괜찮겠습니까?”

“일찍 출발해야 하나요?”

“전쟁 때문에 수습해야 할 문제가 많아졌습니다. 잘못하면 크레센타와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 일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두 분이 이곳에 오래 체류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렇습니다.”


얼마나 지냈다고 엘렌 지역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걸까.

솔직히 떠나고 싶진 않으나 리나는 크레센타의 황녀다.


“알겠습니다.”


밤에는 처음으로 황후 품에서 잠들었다.

어렸을 때는 숨어 지냈던 만큼 황후가 재워준 적이 거의 없어

이번에도 혼자 자려고 했지만,


“리나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이 어미 마음을 이해할 겁니다.”


라고 하면서 리나를 품에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 인형이 마법사가 만들어줬다는 인형입니까?”

“네. 악몽을 안 꾸게 하는 마법을 걸어줬다고 했사옵니다.”


테르막시아가 죽는 모습만 보고도 힘들었는데 프레그를 제 손으로 죽였으니

이 인형이 없으면 도저히 못 버틸 것 같다.

인형에 미약하게나마 담긴 오두막 냄새를 느끼며 잠에 빠진다.



******



엘렌 지역 동부 해안.

살아남은 아사르군더니움 병사들이 황군의 감시를 받으며 모여 있다.


“영주가 왔습니다.”

“벌써?”


감시하는 이는 엘렌 지역 수복 1군사령관인 참장 파하누르투스 에체르니온.

부관에게 자리를 맡기고 라스를 만나러 간다.


“수고하십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소. 드디어 쉴 수 있겠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뻔하지 않소. 도망치려는 놈들에 헤엄치려는 놈들에 난동 피우는 놈들에.”


사령관이 몸을 떨며 말하고는 라스 뒤쪽을 본다.


“저기 뒤따라오는 게 다 목재요?”

“절반 이상은 식량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잘 먹고 지냈을 텐데 굳이 뭐하러 가져왔소. 설마 놈들한테 주려는 거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웃지도 않고 말한다.


“우리가 그 정도로 자비로운 군대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저 1군에는 감사를 직접 표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다행이오. 설마 쓸데없이 자비롭나 했소.”

“혹시 예전에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까?”

“차라리 포로한테 자비를 베풀자고 하면 낫지. 무기도 안 갖고 있는데 밥은 줄 수 있잖소. 그런데 전투 중에 적이 불쌍하다며 인도적인 방법을 쓰자니 어쩌자니.”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뻔하지 않나. 자기 부하들 목숨만 헌납하고 혼자 살아서 도망쳤지. 내 손으로 죽여 버렸소, 그놈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라스 뒤쪽을 본다.


“저 중 절반이라고 해도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포로 수가 많으니 일부러 목재를 많이 가져온 겁니다. 그래야 따르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목재가 아까우니 절반도 안 쓰겠소. 어차피 엘렌 성 수복에도 필요한 자재 아니오.”

“그렇게 하시지요.”


라스가 곁에 있던 이에게 사령관의 명령을 하달하고,

둘은 포로들이 보이는 언덕 위 단상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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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0화 21.07.26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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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8화 21.07.24 36 2 11쪽
108 107화 21.07.23 36 2 12쪽
107 106화 21.07.22 32 2 12쪽
106 105화 21.07.21 33 2 11쪽
105 104화 21.07.20 35 2 12쪽
104 103화 21.07.19 3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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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1.07.10 35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3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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