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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운
작품등록일 :
2021.04.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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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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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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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나날이 지난 후(2)

DUMMY

#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천상도는 계절이 바뀔 때쯤 그 계절에 맞게 하늘에서 눈이나 비가 내린다.


지금은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겨울을 알리는 신호였다.


하늘이 닿을 듯 말 듯 하게 높게 솟아 있는 산 정상에서 애환과 검황은 검을 쥔 채 서로를 응시하고 서 있었다.


그들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군데군데 검에 베어 찢어진 곳을 꿰맨 자국들이 상당했다.


밖으로 드러난 맨살도 그에 못지않게 흉터와 상처들이 엿보였다.


특히 애환의 광대부터 시작해 눈을 지나 이마까지 난 검상을 보고 있으면 몇 개월 전 아찔한 순간이 머릿속을 빠르게 헤집고 지나갔다.


검황은 애환의 눈에 난 검상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수련의 마지막 날인데 용케도 공포를 극복했구나?”


애환은 왼쪽 눈을 어루만지고 입을 열었다.


“진작 극복하신 거 아시잖아요?”


“훗, 그랬지. 자~, 그럼 이 대련을 끝으로 단둘이 하는 수련은 마치 잤구나, 애환!”


“네!”


이 이상의 설명을 생략하듯 두 사람은 발자국도 없는 새하얀 눈밭을 조심스럽게 밟듯 서로에게 다가가 검을 마주치듯 힘껏 휘둘렀다.


챙!


몸에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검은 똑같이 서로의 목을 향해 있었다.


“제법이구나.”


“염화 대검!”


애환은 검을 맞댄 채 염화 대검을 만들어 양손으로 쥐고 검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그러나 염화 대검은 검황이 검에 영을 불어넣자 무 썰듯 잘려나갔다.


애환은 대검이 잘려나갈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빙검!”

칼날에 설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검황의 검에도 한기가 전해지듯 칼날을 타고 설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


이대로는 당한다는 생각에 검황은 영을 폭발시켰다.


파아악!


발목까지 쌓여 있던 눈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넓게 방사형으로 퍼져 맨땅이 드러났다.


애환은 거리를 벌리고 검황을 눈에 담았다.


그의 등 뒤에는 커다란 날개 현상이 나타나 주위에 무자비하게 깃털을 날리듯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걱정이 됐는지 금강이 옆으로 나왔다.


“애환님!”


“알고 있어.”


방금까지는 검황이 검으로만 상대했다면 지금은 혼신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내 날개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무분별하게 흩뿌려진 깃털들이 검으로 변했다.


“간다, 애환!”


애환은 지금까지 검황의 혼신의 힘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마시며 3초 정도 멈췄다.


‘집중하자....’


이내 숨을 크게 내뱉듯 기합을 내지르고 총알처럼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우아아아아아!”


검황은 빈손을 허공에 뻗어 검을 쥐듯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가까이에 있는 검이 빛에 속도로 날아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챙!

양손에 쥔 검을 엑스자로 교차해 애환의 공격을 막았다.


“빙 대검!”


빙결로 이루어진 대검이 만들어져 검황을 짓눌렀다.


콰지직!


딛고 있는 땅이 파였다.


“큭....”


검황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세어 나왔다.


“하아아압!”

기합과 함께 영을 더 주입해 빙결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아직 멀었다!”


검황도 쌍검에 영을 주입했다.


화아악!


칼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빙 대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챙그랑!


“?!”


“끝이다!”


애환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검황은 왼손에 쥐고 있는 검을 역수로 바꿔 잡았다. 두 눈은 무방비한 애환의 급소들을 노렸다.


“무참!”


찰나의 순간에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의 참격이 애환을 덮쳤다.


“빙 염화 검!”


셀 수조차 없는 검의 잔상들을 눈으로 좇지 않고 오직 살기로만 감지했다.


빈손에 빙결로 검의 형태를 만들고 안에 염화가 깃든 영검을 만들어 검황의 참격들을 막았다.


채채채채챙!


막았지만 검황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들이 애환의 빙 염화 검을 가격하고 또 가격했다.


“크윽....”


애환의 손바닥이 찢어졌다.


“그 힘은 아직 미완성일 텐데!”


공존할 수 없는 염화와 빙결을 한 곳에 공존시키기란 힘의 주인으로서도 한계가 있었다.


얼마 못 버티고 빙결이 녹기 시작했고, 염화가 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당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끝이다!”


검황은 왼손에 쥐고 있는 검을 버리듯 손을 펴서 뒤로 던지고 검 한 자루에 영을 불어넣었다.


검을 버리는 동작과 나머지 검에 힘을 주입하는 움직임에 잠깐 아니,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어진 시간이 애환에게 쥐어졌다.


애환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빙 방천극 파!”


지면에 영을 주입해 십여 개의 빙 방천극을 치솟게 했다.


푹! 푹! 푹! 푹!


“?!”


검황은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날렸다.


“놓치지 않아!”


빙 방천극을 시작으로 염화 방천극이 땅에서 불기둥처럼 치솟아 검황을 집요하게 쫓았다.


“하아아아압!”


“잔재주는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


분명 눈으로 검황을 쫓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는 애환의 바로 등 뒤로 다가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챙!


황급히 몸을 틀어 검황의 공격을 막았다. 자세가 불안정해 상체가 꺾여 등이 지면에 닿았다.


“제법이구나?”


“자세가 무너지면 상대의 공격 수단과 자신의 공격 수단을 묶어서 내 쪽으로 끌어오면 그만이죠!”


자신의 검과 검황의 검을 빙결로 얼려 연결시켰다.


챙그랑!


검황은 완력만으로 빙결을 깨부쉈다.


“검술과 자신의 힘에 대한 응용력은 좋다만 너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곤란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거다, 애환.”


“그 부분은....”


대화하는 도중 검에 염화를 둘러 검황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상호보완적이게 메꾸면 그만이죠!”


“어딜!”


검황은 허공에 손을 뻗어 근처에 있는 검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손에 쥐고 애환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염화는 훼이크였는지 찰나의 순간에 힘을 거두고, 빈손에 빙 검을 만들어 검황의 복부를 찔렀다.


멈칫!


애환의 검은 검황의 옷을 뚫고 살 표피에 닿아서야 멈췄고, 검황의 검도 애환의 뺨 표피에 닿아서야 멈췄다.


조그마한 미동이라도 있으면 바로 상처가 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아무런 감정도 미동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스스스스슥.....


두 사람의 싸움에 여파로 근처에 있는 절벽에 쌓인 눈이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


“응?”


두 사람은 눈이 쏟아져 눈사태가 나고 있음을 알고 검을 거두어 황급히 피할 준비를 했다.


애환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아쉽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참 물올랐는데?!”


“그러게 말이다.”


“대련은 이쯤 할까요?”


“그래야겠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애환.”


“스승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러둘 것이 있다.”


“네? 어떤....?”


“이제는 내가 너에게 알려줄 것은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스스로 경험이나 명상을 통해 천천히 쌓아가거라.”


두 사람은 눈사태가 일어나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덮칠지 모르는 일촉즉발에 상황 속에서도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애환이 먼저 워프 게이트를 열자 검황이 물었다.


“좌표는 어디로 맞췄니?”

“성결로 맞췄죠.”


“성결이라....”

그는 말끝을 흘리며 애환과 똑같은 곳으로 좌표를 맞춰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함께 가자꾸나.”



#

한편 성결에서는 천공 콜로세움이라는 하늘을 나는 무투장을 띄어 어느덧 찾아온 비무 대회의 마지막 시합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간 사대 가문의 제자 중 100인 이상이 반년 이상이란 시간 동안 힘을 겨뤘다.


그들의 대결이 끝난 후 최후의 2인이 살아남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금 막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살아남은 2인은 무황의 수제자 백록과 검황의 애제자 허영이었다.


백록과 허영은 사대가문을 포함한 천옥의 사자들까지 모두 이긴 명실상부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백록과 허영은 한창 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쾅! 쾅! 쾅!


허영의 이도류를 백록은 건틀렛을 끼운 주먹으로 쳐내고 막고 있었다.


쾅! 쾅! 쾅!


공방이 오갈 때마다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는데?!’


백록은 각오를 다지듯 흉터들을 검게 물들여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백호처럼 얼룩이 지는 그의 몸을 보고 허영은 거리를 벌렸다.


“뭐야, 그건?”


“보면 모르겠냐?”


“고양이 흉낸가?”


백록은 비아냥거리는 허영의 말에 발끈하여 이마에 십자 힘줄이 돋아났다.


“고양이가 아니라....”


왼발을 앞으로 내디뎌 고정시키듯 지면에 박고 오른발을 힘차게 굴렸다.


“광호다!”


백광을 띠는 거대한 백호가 공간을 찢고 나오듯 매서운 기세로 허영에게 달려갔다.


“크아아앙!”


“풋, 광호였구나?”


허영도 그의 공격에 맞서듯 쌍검을 역수로 바꿔 잡고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사자의 무기를 발동시켰다.


스스스스슥.


검은 안개가 그의 몸을 훑듯 피어올랐다.


“크아아앙!”


이내 광호가 입을 벌려 허영을 집어삼켰다. 집어삼킨 채로 물어뜯듯 사납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그런데 아무런 느낌이 없자 광호는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의 입을 내려다보았다.


허영이 입에 물려 있지 않았다.


“풋, 어딜 노리는 거지? 듣자 하니 천옥에서 왕 노릇을 했다지?”


“.....”


“그새 감을 잃었네?”


광호에게 잡아먹힌 줄 알았던 허영이 백록의 등 뒤로 다가와 역수로 쥔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


촤아악!


“크윽!”


백록의 등에 X 표시가 선명하게 났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무황이 백록이 걱정되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것이냐, 백록!”


걱정이 아니라 한심해서 호통을 치려고 일어난 거였다.


백록은 손톱을 세워 등 뒤에 있는 허영을 공격했다.


“이이익!”


그의 공격이 잔상을 공격하듯 투과했다.


“내 힘을 벌써 잊어버린 건가?”


허영의 사자의 무기의 힘은 환각이나 환술이 아닌 허상을 만든다.


눈속임으로 상대를 속이고, 급소를 찌른다. 무서운 점은 검술 또한 초일류였다.


허영은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백록과의 거리를 벌렸다.


“마무리를 지어볼까?!”


허영의 모습이 여러 개로 분산됐다. 분명 ‘분신’을 만들었고, 분명 저 중 한 명이 진짜 허영일 것이다.


백록은 잔상에 속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감고 그의 살기를 쫓기 시작했다.


“.....”


사회자가 갑작스러운 백록의 행동을 해설하듯 모두가 들리게 말했다.


-아~, 백록이 갑자기 눈을 감았습니다!


또 다른 해설자가 맞받아쳤다.


-시합을 포기한 걸까요?!


그들이 뭐라 떠들건 백록은 정신을 집중시켜 잔상 속에 숨어 있는 허영을 찾았다.


툭... 저벅....


스텝을 밟듯 매우 가벼운 발소리가 백록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씨이익.


백록의 입꼬리가 어두운 밤에 먹이를 찾은 호랑이처럼 올라갔다.


그의 미소를 보고 허영은 잔상 속에 교묘하게 섞여들어 일제히 백록을 공격했다.


“끝이다!”


백록은 눈을 부릅떠 진짜 허영과 눈을 맞춘 채 오른발을 번쩍 들어 올려 지면에 내리꽂았다.


콰지지지직!


“광호 각!”


지면에서 빛과 함께 광호가 튀어나와 허영의 잔상을 모두 없애고 본체를 드러냈다.


본체가 모습을 나타내자 백록은 빛 속에서 빠르게 움직여 그의 목에 손톱을 세워 공격해 들어갔다.


허영의 목이 백록의 손톱에 닿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이의 검이 그의 공격을 막았다. 검은 한 자루가 아닌 두 자루였다.


챙! 챙!


빛이 사라지고 검의 주인의 모습이 이곳에 모여 있는 모두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백록과 허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애환?”

“스승님?”

갑자기 난입한 애환과 검황을 그리 달갑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작 그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애환이 검을 거두고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 좌표를 잘 못 맞췄네....”

검황도 허영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나도 애환이 만든 워프 게이트를 연결해서 타고 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너희의....”


얼마 전에 듣기로는 천상도에서 비무대회를 열었다고 들었다.


분위기로 보아 결승전으로 보였다.


“.... 싸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구나.”


백록이 인상을 찌푸리고 애환에게 따지듯 삿대질을 했다.


“뭐야, 갑자기 나타나서?”


“미안, 미안. 오랜만에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서 좌표를 잘 못 맞췄지 뭐야.”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지금인데?!”

“왜 뭐 있었어?”

“그래. 내가 저놈을 묵사발 만들어버리는 순간이었는데!”


“뭐? 잠깐 백록, 그 말은 어째 내가 너한테 졌다는 말로 들린다?”


허영이 검황을 지나 백록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은 ‘누가 이겼네, 졌네.’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런 두 사람을 지나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판단한 애환과 검황은 한숨을 내쉬고 VIP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수영과 천녀와 무황과 봉황과 궁신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두 사람이 그곳으로 가려는 순간 그들 모두가 시합장으로 내려왔다.


애환은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천녀는 고개를 드는 그에게 다가가 눈가에 난 검상을 어루만졌다.


“하하, 괜찮아요. 근데 왜 내려오셨어요? 저희가 올라가려 했는데.”


천녀는 함께 내려온 수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는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수영아....’


한동안 보지 않아 다시 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가슴이 욱신거리고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저, 저기...”


말을 꺼내려는 그를 지나쳐 손에 들린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오늘로써 비무대회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수영의 말에 모두가 아쉬운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쉬움을 날릴만한 폭탄선언을 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이곳에서 새로운 천상도의 수문장이 될 이를 소개하려 합니다!”


“?!”


사대가문의 당주와 천녀를 제외한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을 대표하듯 허영과 실랑이를 벌이던 백록이 수영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가 새로운 천상도의 수문장이 되는데?”


수영은 중얼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옆에 있잖아.”


“뭐?”


백록은 애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자 애환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안 한다고 했을 텐데?”


천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란다.”


“전 하지 않아요, 어머니.”


“왜 하지 않으려는 거니? 난 아니, 우리는 네가 천상도의 수문장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한단다.”


“힘만 강하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무황이 수염을 어루만지며 애환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의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힘뿐만 아니라, 저번에 보여준 자네의 덕목이면 우리 모두가 충분하다고 판단을 내렸네.”

어깨에 얹어진 천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말했다.


“그래도 전 싫어요! 꼭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는 거 같단 말이에요!”

“애환....”

수영이 화를 내는 애환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싫어도 해. 지금 우리가 예환님을 무시하고 너를 새로운 천상도의 수문장의 자리에 앉히려는 줄 알아?”


“그게 무슨 뜻이냐?”

“예환님이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어.”

“그게 뭔데?”


“나의 뒤를 이을 천상도의 수문장은 내 아들 애환뿐이다.”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소리는 아니지?”


“이 말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미쳤다고 예환님을 무시하고 너를 섬기겠다고 하겠어?”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애환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한 명씩 천천히 훑어보았다.


수영, 어머니, 무황, 봉황, 궁신, 백록, 마지막으로 검황을 바라보았다.


검황은 고개를 끄덕였고, 애환은 허리까지 숙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날 인간도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거구나, 수영아....?’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전에는 자신의 의사를 가장 존중한다던 수영이 이제는 직접 나서서 자신을 천상도의 수문장의 자리에 앉히려고 한다.


갑자기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숨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수영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생각하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지금 든 생각과 마음은 애환의 진심이었다.


애환이 허리를 펴 수영의 손에 들려진 마이크를 뺏다시피 받아들고 입에 대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전....”

귀에 선명하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잠깐 멍해졌다가 관중석에 있는 저번에 구해준 가족들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는 천상도의 수문장이 되겠습니다.”


“....”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른 이도 아닌 예환의 아들, 심지어 아귀들이 천상도를 4분에 1을 점령하고 성결에 대피해 있는 자신들을 사흘 밤낮 동안 천군들과 함께 지켜준 이가 다름 아닌 애환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힘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목숨도 구한 그의 고운 마음은 어느덧 천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는 상태였다.


애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단, 저의 아버지이신 예환님이 돌아오는 대로 수문장의 자리를 반납하겠습니다.”


뒤에 있는 수영이 나서려 하자 천녀가 그녀를 막았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임시로 천상도의 수문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앉아 모두를 지키겠습니다!”


3초 정도 침묵이 돌았다가 이내, 한가운데를 시작으로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애환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애환! 애환! 애환! 애환!”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애환은 자신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석이었던 천상도의 수문장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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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제55화 돌아온 육도, 그리고 시작되는 비극(3) 22.05.03 14 0 15쪽
202 제55화 돌아온 육도, 그리고 시작되는 비극(2) 22.04.27 12 0 15쪽
201 제55화 돌아온 육도, 그리고 시작되는 비극(1) 22.04.26 14 0 16쪽
200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9) 22.04.25 18 0 15쪽
199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8) 22.04.22 15 0 15쪽
198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7) 22.04.21 14 0 15쪽
197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6) 22.04.20 13 0 14쪽
196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5) 22.04.19 15 0 14쪽
195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3) 22.04.14 15 0 15쪽
194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2) 22.04.13 15 0 15쪽
193 제54화 엘라, 밝혀지는 진실들(1) 22.04.12 21 0 14쪽
192 제53화 피흘려 부르는 희망(5) 22.04.11 14 0 15쪽
191 제53화 피흘려 부르는 희망(4) 22.04.08 19 0 15쪽
190 제53화 피흘려 부르는 희망(3) 22.04.07 21 0 15쪽
189 제53화 피흘려 부르는 희망(2) 22.04.06 17 0 14쪽
188 제53화 피흘려 부르는 희망(1) 22.04.05 17 0 14쪽
187 제52화 핏빛 숲(3) 22.04.04 12 0 15쪽
186 제52화 핏빛 숲(2) 22.04.01 14 0 15쪽
185 제52화 핏빛 숲(1) 22.03.31 17 0 15쪽
184 제51화 애환의 새로운 사자의 무기(5) 22.03.30 30 0 14쪽
183 제51화 애환의 새로운 사자의 무기(4) 22.03.29 12 0 14쪽
182 제51화 애환의 새로운 사자의 무기(3) 22.03.28 16 0 15쪽
181 제51화 애환의 새로운 사자의 무기(2) 22.03.25 15 0 15쪽
180 제51화 애환의 새로운 사자의 무기(1) 22.03.24 19 0 15쪽
179 제50화 애환과 수향(4) 22.03.23 1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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