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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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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les
작품등록일 :
2021.04.17 17:12
최근연재일 :
2021.07.0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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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979

작성
21.04.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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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1-웨이브 디펜스(3)

DUMMY

"이러한 이자율은, 단기금융시장에서 공급곡선의 이동에 따라..."


지루한 목소리가 헤드폰을 타고 내 귀로 흘러들었다.

으으... 죽을 것 같다. 전혀 모르는 내용을 재미없는 만드는 것도 능력인데.

나는 취업 때문에 매일 인강과 모의고사를 푼다. 아, 5일 전엔 군에 끌려가서 빼고.


"..."

"하지만 간접금융시장에서는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새로운 요소가 개입..."

"뭘 이리 분류를 해대?"


오늘은 특히 지루해서, 해먹을 생각이 안 든다.

레이드 방어라는 말도 안 되는 임무 때문일까. 집중이 안 되네.

사실... 이 일이 생기기 전에도 그리 열심히 하진 않았다. 여러분과 나만의 비밀이지만.

어쨌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람실 밖을 나갔다. 폐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와 백색 소음, 이제 좀 살겠다.


"후우..."

"야!"

"뭐. 임마."

"오늘 늦게 왔으면 더 빡시게 돌려야 될 거 아냐."

"재미가 없잖아! 재미가! 승우 니는 공부가 재밌을 진 몰라도 난 아냐!"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야외 휴게실에서 쉬고 있자니, 이승우가 따라왔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성격은 나쁘지 않지만... 인간적으로 좀 이상한 놈이었다.

타고난 천재형이라고 할까. 재능도 있지만, 그 재능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미친놈은 꽂힌 건 평생 안 놓는다는 점이었다.


"조금 외울게 많긴 하지만... 직접 배운 걸 실습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나도 미친놈이지만 너도 참 미친놈인거 같다."

"미친놈이라니,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 다른 거지."

"그래... 그렇다 쳐."

"너도 경제가 좋아서 지원한 거 아니야?"

"좋고 나쁘고... 그냥 딴 사람들 다 하니까 나도 한 거지."

"..."


굳이 따지자면, 나는 항상 승우가 부러웠다.

저렇게 힘들게 살고 싶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으니까.

경제의 길을 선택한 것도, 그저 취업이 그나마 낫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사람 있잖아."

"누구?"

"저기, 포니테일 머리. 아까부터 널 계속 보는 것 같은데."

"아, 뭐. 신경 쓰지 마."


승우가 가리킨 방향엔 이서윤 중령이 있었다.

나름 일반인들에 섞인다고 섞인 모양인데, 직접 보면 되게 티가 난다.

저 인간 권총을 가지고 있어요! 자유대한민국에서 권총 소지를 하고 있다고요!


"혹시... 널 좋아하는 건 아닐까?"


ㅡ푸우우우웁!


"야! 니 망상병은 대체 언제 낫냐! 니가 그러고도 의대생이야!"

"아니, 망상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충분한 정황증거를..."

"됐어. 임마. 쓰잘데기 없는 소린 좀 집어치워."

"그러니까 네가 솔로지."

"너도 솔로잖아! 멍청아!"

"공부를 하느라 바쁘시다! 이 말씀."


이 미친놈은 대체 뭔 소리를 해대는 거야!

아주 못하는 말이 없어. 이 자식도 한번 계엄사에 끌려가 봐야...

흠흠, 사정을 모를 테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너무 시끄러워서, 폰을 켜서 뉴스를 찾아보았다.


[군이 광화문 앞에 배치된 지 6일, 정부는 아직도 묵묵무답입니다.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 또한, 군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로 당론이...]


[시민단체는 계엄령 해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난리네..."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그래. 많은 사람이 죽었지."


뉴스에서는 아직도 테러로 시끄러운 세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승우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는 극히 적었다.

너무도 어이없는 사태에, 외계인의 침공이라고 여론이 형성될 정도였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 의료계에서도 말이 많아. 완전히 새로운 생물이니까. 이번 피해자들도."

"어떤 학계든 다 난리겠지. 현 세대가 본 유일한 기적이라고 난리니."

"재원이 너, 이 일에는 꽤나 관심이 많네."

"뭐?"

"아니, 네가 뭘 찾아보고 그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서."

"..."


이 이상한 놈은 뭔 개소리를 또 하는 거야?

관심이 많다니. 그럼 목숨이 달렸는데 이것저것 찾아봐야 할 것 아니야?

나도 이 자식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다.


"먼저 들어가. 담배 좀 피게."

"뭐? 너 비흡연자잖아."

"너 때매 시작했다."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던 와중, 중령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양심 없는 여자는 아무래도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이 녀석을 빨리 내보내려고 피지도 않는 담배 핑계를 댔다.


"담배 연기는 싫어하시나보네요."

"어제도, 모래 전에도, 3일 전에도, 4일 전에도 말했잖아! 그만 따라다니라고!"

"제 임무엔 당신의 경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네가 그러는 게 내 신변에 더 안 좋아!!"

"이젠 반말이 자연스러워지셨네요."

"스토커한테 해줄 존댓말은 없다고!!!"


같은 경치를 마주보고 앉은 나와 그녀.

집에서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통에, 이젠 어색해질 관계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연을 맺었지만, 둘 다 목숨이 걸렸다는 공통점은 자석처럼 유대감을 맺어주었다.


"친구 분이 말이 많군요."

"당신이 참을성이 없는 거야."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요."

"이 시간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야."

"받아요."

"이건..."

"신분증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통행증도 겸하죠."


승우를 평한 이서윤 중령은 곧바로 카드 형식의 신분증을 건넸다.

이건... 재미있네. 3일 전쯤인가, 군과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나 했는데, 별도의 조직을 만들 생각인가 보다.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보니, 점점 더 현실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전에 말했던 새로운 조직 구성이 끝났나 보네."

"일단 안보지원사령부 산하에요. 국정원 쪽은 대외수집에 바쁘다고 하니까요."

"대외협력 3팀이라... 부산 북부엔 몇 명이지?"

"현재 파악된 인원은 5명이에요."

"부산 북부라고 해도 남부는 없잖아. 그런데 5명밖에 안된다고...?"


5명? 이게 뭔... 겨우 5명이라고?

6.25 당시 낙동강 방어전만 하더라도 9개 사단이 넘는 병력이 틀어막았는데...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군도 이 사실을 분명 알고 있겠지만, 별 수 없겠지.


"부산 북부... 7개구 3개읍을 5명이서 어떻게 틀어막겠다는 소리지?"

"그 괴물들은 흩어지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갈 뿐. 그건 게임과 같죠."

"한명 한명이 개별 루트를 막아서야한다는 소리인가."

"빠르게 섬멸하고 이동한다는 전개도 있겠지만, 그건... 힘들 거예요."

"협력 컨텐츠라더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이 게임은..."


군도 돕기야 하겠지만, 결국 혼자 괴물들을 상대해야했다.

이전에 일어난 사태처럼 몬스터들이 게임과 비슷하게 나온다면, 몬스터들은 무작위 장소로 튀어나와 무작위 장소로 돌아갈 터였다. 그 장소를 모르니, 방어할 인원도 분배될 수밖에 없었다.


"..."

"난 공부를 해야 해서. 너도 시간외근무 그만하고 좀 집에나 가."

"괜찮은 건가요?"

"뭐가?"


어쨌든, 그건 그거고, 공부는 공부였다.

나머지 강의를 듣기 위해 열람실로 돌아가려던 와중, 중령이 나를 불러 세웠다.

괜찮냐니. 당신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게임을 즐겨서 해본 적은 없지만... 괜찮은 건가요?"

"내가 알겠나. 괜찮은지."

"뭔가... 열심히 레벨업을 하고, 능력치를 올리는 그런 거 아닌가요?

"이게 평범한 게임이라면 그렇겠지."

"네?"

"행동 포인트, AP의 수급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이 빌어먹을 게임, 웨이브 디펜스는 AP, 행동 포인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얻고, 경험치를 쌓아 강화하는 데 쓰이는데, 안타깝게도 이 AP 수급방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채워지는 것에서, 현실을 침공하는 레이드를 막아내면 바뀌는 방식으로. 그 덕에 AP가 더럽게 줄어들어서, 광부 짓이니 노가다니 하는 것처럼 게임만 잡고 있지도 못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개편해놨어."

"개편되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날 이후로 고작 AP 포인트가 1 늘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

"별 수 없잖아. 내가 이 폰을 넘겨줘도 소용도 없었고."

"아직 찾지 못한 허점이 있을 수도 있어요! 계속 뭔가 하다 보면...!"

"어쩌라는 건데?"

"그러면... 그냥 지켜볼 생각 인가요! 당신은?"


빠른 컨텐츠 소모를 막기 위한 시스템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서윤 중령은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아무 것도 못 한다는 무력함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걸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되지도 않는 걸로 신경 쓰긴 싫었다.


"... 나라고 좋아서 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고."

"당신은... 당신 같은 사람한테 도대체 왜..."

"글쎄, 나도 모르겠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건지는."

"..."


중령은 나를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쩌라는 거야. 대체.

나에게는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도,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감도 없다.

내게 남은 건, 가면 갈수록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군에 다녀온다고 늘어든 나이, 토막난 일자리뿐이다.


"애초에 의미도 없잖아. 결국 폭탄 걸리기에 내가 맞은 것뿐인데."


세상을 구하는 영웅? 놀고 있네.

나는 어쩔 수 없이 잡혀온, 그저 일반인일 뿐이다.







"후우..."


오늘은 평소보다 빠르게 도서관을 나섰다.

조금 감정이 격해져서, 아무리 스토커라지만 심한 말을 했을지도.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앞일을 생각하면 불필요했을 뿐.


[계속 뭔가 하다 보면...!]


"남은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꼭 있단 말이지..."


복잡한 마음을 부여잡고, 나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나도 논건 아니다. 웨이브 디펜스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시스템을 뜯어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첫 번째 레이드에 나타난 몬스터, 그리고 현실과 이 게임과의 연관성. 남는 시간에 그 모든 것들을 연구했다.


[레티시아: 분류-근거리 딜러, Lv .1 소모 코스트 2, 저지 가능 몬스터: 3]


[전란에 고통받는 크리티아스 왕국의 기사.]


"뭘 어쩌라는 거야..."


심지어 내가 설정했던 캐릭터, 레티시아까지 다 살펴봤었다.

그러나 마땅한 수는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채워진 경험치 뿐.

그렇게 달라진 것 없는 스테이터스와 시스템을 확인하려고 종료하려는 순간...


[대기 상태 전환]


"음? 이게 뭐야?"


새로운 UI 버튼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빌어먹을 게임은 대체 언제 업데이트 된 거야?

이런 버튼은 누르면 꼭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데... 젠장! 누를 수밖에 없잖아! 그 멍청이가 말한 무언가라도 하려면 말이야!


"...?"


버튼을 누르자, 그날 온천천에서 보았던 빛이 솟구쳤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급히 도망치려고 했지만, 한 목소리가 내 발끝을 잡았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뭐... 뭐야?!"

"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설마 벌써 레이드가 시작된 건가?!"

"아닙니다. 마스터가 부르셨을 뿐이에요."

"내가 불렀다니, 설마...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

"..."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은 바로 레티시아였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뜬금없는 레이드가 시작됐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기 상태라는 것은... 그런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레티시아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 보다.


"돌겠네. 돌겠어...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그렇습니까."


별 일도 없는데 이렇게 만나니 너무 어색한데.

실수로 사람을 불렀다고 하기도 뭐하고, 갑자기 튀어나오니 할 말도 없네.

그렇다고 다시 돌려보내긴 뭐한데... 그래. 이럴 기회도 많진 않겠지.


"마스터?"

"어디서부터 이상해진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앉아봐."

"네?"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은 내가,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디서 잘못되어, 이렇게 흘러왔는지,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검을 찬 기사와 공부를 끝나고 돌아가는 학생.

이 부자연스러운 조합에,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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