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니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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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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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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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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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 (3)

DUMMY

퉁퉁-,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작은 공방 안에 울린다. 박자에 맞춰 흥얼거리는 그럴듯한 콧소리. 아직 까마득히 주문이 밀려있는데도 최경아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의 작업대 한편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에선 커넥츠의 ‘박수 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노래를 따라 그리는 무대는 커넥츠의 것이 아니었다.


데님 재질의 워크 웨어와 그 안에 받쳐입은 새하얀 반소매. 반쯤 깐 잘생긴 이마에서부터 똑- 떨어지는 진하고 날렵한 콧날과 반짝이던 두 눈동자.


방청을 갔다 온 지 며칠이나 지났건만. 그녀의 눈앞에는 아직도 그때의 무대가, 정확히는 그때의 도윤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흐흠~.”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던 그녀의 망치가 멈춘 것은, 창으로 밝은 햇볕이 들 즈음이었다. 오전 내내 푸슬푸슬 내리던 비가 그치는 것과 함께 그녀의 오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핸드폰으로 확인한 오후 일정은 예약 손님 한 팀을 제외하곤 특별한 것이 없는 상황. 최경아는 출근하는 길에 사 온 샌드위치를 꺼내 가게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그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린다. 샌드위치가 맛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청 후기만 종류별로 100번 넘게 읽은 후기.

ㄴ 아 ㅋㅋ 뭔 후기의 후기임?

ㄴ 응, 도윤이 신발 검은색 아니었어. 100번 읽지도 않고 폰 후기 쓰네, 양심 ㅇㄷ?


-오늘 6화 편집 예상 .jpg

ㄴ ㅋㅋㅋ 이거 진짜 방송 이대로 나올 듯.

ㄴ 큐넷 ㄹㅇ 방송 날먹하네. 시청자가 편집까지 다 해주고.


3차 경연의 내용을 담은 <빗더돌> 6화 방영일이 오늘인 만큼, 아이돌 커뮤니티는 여느 때처럼 화력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게시글은.


-장문 주의) <비트 더 아이돌> 시즌 2, 3차 경연 방청 후기. (Hot!!)


그녀와 함께 3차 경연을 방청했던 유지나가 올린 게시글이었다. 최경아 역시 몇 번이고 읽었던 글이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또 한 번 그 글의 제목을 누르고 있었다. 거의 습관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다시 봐도 진짜 대단하다···.”


필기도구 하나 없이 어떻게 이 많은 정보를 눈에 담았던 것일까. 최경아는 유지나가 올린 글의 섬세함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오래전 커넥츠의 팬으로 활동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정말 그 경험만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지.”


이내 잡념을 지운 최경아가 온전히 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발을 만들 때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한 문장씩 따라 나아가며 그날의 기억을 되새긴다. 최경아에겐 잊고 싶지도,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이었다.


핸드폰을 쥔 투박한 손이 움찔거린다. 손에서 팔로, 팔에서 목으로, 목에서 양 볼로. 짜릿짜릿한 전기가 타고 올랐다. 오전 내내 양팔에 쌓여있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


도윤은 이제 최경아에게 단순한 활력소를 넘어선 치유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가 유지나의 방청 후기를 탐독하고 있는 때.


따르릉-!


그녀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최경아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네···.”


게시글의 진짜 하이라이트인 댓글을 앞두고 끝나버린 점심시간. 오늘 아침 그녀가 가게로 나오던 때에도 실시간으로 댓글이 갱신되고 있었다.


매일매일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하나의 게시글에 며칠씩이나 활발히 댓글이 달리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은 아니었다.


최경아는 결국 남은 샌드위치를 빠르게 먹어 치우곤 몸을 일으켰다. 진짜 행복은 저녁으로 미루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으음-”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느라 뻐근해진 몸을 기지개로 풀고. 다시 한번 오후 일정을 확인한다.


-Dyk96, 2시 30분.


“곧 오겠네. 얼른 작업실 좀 치워놔야겠다.”


그녀는 성큼성큼 작업실로 걸음을 옮겨 너무 너저분해 보이는 것들만 적당히 치웠다. 어차피 작업을 하다 보면 금세 어지럽혀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딸랑-


산뜻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최경아가 작업실 밖으로 빼꼼- 고개를 꺼냈을 때.


“어서 오···세······?”


그녀는 자신의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최···경아 씨라고 하셨었죠? 잘 지내셨나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그가 바로 도윤이었기 때문이었다.


깊게 볼캡을 눌러쓰고 마스크를 눈 밑까지 철저히 끌어올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도윤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최경아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자, 들어와.”


도윤이 문 옆으로 비켜서자 비트원의 멤버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지원을 제외한 멤버들은 각자 흩어져 가게 내부를 훑어보며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오, 여기가 도윤 형 운동화를 만든 곳이구나.”

“가게에 전시된 것들도 진짜 예쁜데?”

“어! 이거 도윤 형 신발이랑 비슷하다!”

“나도 보여줘!”


순식간에 복작복작해진 작은 가게. 도윤은 머쓱하게 웃으며 최경아를 향해 말했다.


“하하하···, 죄송해요. 저희 멤버들이 좀 시끄럽죠?”

“나는 조용하잖아, 도윤 형!”

“아, 아니···. 저, 그···. 벼, 별로··· 안···.”


최경아의 목소리는 바닥을 기는 듯 꾸물거렸다. 푹- 숙인 고개에 보이는 것은 빨갛게 달아오른 두 귀뿐.


도윤과 지원은 하는 수 없이 재빠르게 멤버들을 진정시키곤 최경아의 앞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인사해. 이분이 여기 ‘Oh My Shoes’의 최경아 사장님이야.”

“안녕하세요, 사장님!”

“와! 이렇게 젊은 분일 줄 몰랐어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는 멤버들. 최경아는 그런 멤버들을 앞에 두곤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순간에 뒤엉켜버린 그녀의 머릿속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Dyk96···, Dyk96···. 도···도윤, 킴96?’


뻥-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대체 왜 자신은 도윤의 이름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심지어 ‘96’은 도윤의 생년이기까지 했다.


너무나도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상황. 샌드위치나 우물거리며 허망하게 흘려보낸 점심시간이 사무치도록 아까웠다. 어쩐지, 자극적인 머스타드 소스의 향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자,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는 화장실을 향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아···, 네. 천천히 다녀오세요···”


깜짝 놀란 도윤의 대답은 이미 떠난 그녀의 빈자리 위로 흩어질 뿐이었다.



**



“네 개 모두 제 거랑 같은 디자인으로 해주실 수 있나요?”


도윤이 지원의 발 치수를 모두 재고 몸을 일으킨 최경아에게 물었다. 연이어 네 사람의 치수를 아주 신중하게 잰 그녀의 이마에선 또르르-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손등으로 땀을 닦아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당연히 가능해요.”

“그럼, 그렇게 좀 부탁드릴게요.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까요?”

“······.”


이어지는 도윤의 질문에 최경아는 깊은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심각하게 찌푸려진 미간은 마치 일생일대의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도윤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의문의 표정을 지을 때 즈음.


마침내 최경아가 차분히 내리 앉은 목소리가 되어 입을 열었다.


“···저, 그 이전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음에도, 도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경아의 부탁이 무엇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재수 없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만한 부탁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 싸인이 필요하-”

“신발의 디자인을 조금 바꿔봐도 될까요!?”


순간, 자그마한 공방 안으로 내리 앉은 침묵. 도윤과 최경아는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멤버들에게선 억눌린 웃음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크흠, 흠. 저, 어떻게 디자인을 바꾸고 싶다고 하시는 거죠?”

“푸흐흡-!”

“크크큽-.”


도윤의 재빠른 대처에도 멈추지 않는 웃음. 심지어 믿었던 지원마저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에. 도윤의 부끄러움은 끝을 모르고 올라, 곧 귀를 발갛게 물들였다.


‘귀, 귀여워.’


물론, 최경아는 그런 도윤을 팬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끄러움에 귀를 붉게 물들인 도윤이라니! 그녀는 이 귀하디 귀한 장면을 기록해 둘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흠흠. 저, 최경아··· 사장님?”

“···아, 네!”


멍하니 도윤을 바라보던 최경아. 그녀는 재차 자신을 부르는 도윤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들리기 시작한 작은 웃음소리에 최경아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저, 크게 디자인을 바꾸려는 건 아니고. 발목 부근에 있는 하얀 다이아몬드를 펄 블루 코랄 색으로 바꾸면 어떨까 해서요.”

“···펄 블루 코랄요?”


갑자기 튀어나온 뜬금없는 색상. 하지만, 그 색은 비트원에게 있어서 아주 익숙한 색일 수밖에 없었다.


배경음악처럼 이어지던 멤버들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고. 도윤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최경아에게 모였다. 이내 다시 한번 이어지는 최경아의 단단한 목소리.


“네. 그 색이 비트원 상징색이잖아요.”


이번에는 모든 비트원 멤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최경아를 바라보았다. 최경아는 그런 멤버들의 반응을 한 번 살피고는 조금 자신 없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근데. 꼭 바꿔야겠단 이야긴 아니에요. 아무래도 블랙&화이트가 깔끔하니 이쁘긴 하죠. 그냥 말씀해 주신대로 이전하고 똑같은 색으로-.”

“아뇨. 제 생각에는 펄 블루 코랄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요.”


답지 않게 최경아의 이야기를 단호하게 끊어버린 도윤. 그가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 생각은 어때, 얘들아?”

“당연히 좋지!”

“난 무조건 펄블코!! 펄블코 아니면 안 신을래!”


활기차게 돌아오는 대답에 미소를 짓는 도윤.


“아무래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신 것 같은데요, 사장님?”


도윤의 칭찬에 최경아 역시 함박웃음을 그렸다.


“그럼 도윤 씨 것도 맡겨주시고 가시겠어요!?”

“···그럼 저는 뭘 신고 돌아가죠?”

“···아. 저기 밖에 있는 거 아무거나 하나 빌려드릴게요.”

“와, 정말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자, 여기 슬리퍼 신고 가셔서 맘에 드는 걸로 고르세요!”


도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신발을 갈아신고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나머지 멤버들도 그 뒤를 따라나서니, 작은 공방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최경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고 따뜻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


그녀는 가만히 도윤의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겨우 한 달 정도 신었을 그 운동화는 이미 밑창이 다 닳아있었다. 하얗던 다이아몬드에도 거뭇거뭇한 때가 묻어있었다.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좀 더 내구성에 신경을 써야겠네.”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던 최경아. 그녀는 이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다급히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도윤과 비트원 멤버들은 최경아의 다급한 등장에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 싸인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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