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천재 제작자는 탑을 오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연재 주기
씨케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22 19:33
최근연재일 :
2021.05.04 19:0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850
추천수 :
168
글자수 :
75,395

작성
21.04.22 21:45
조회
297
추천
18
글자
13쪽

메이커의 길 (1)

DUMMY

검과 마법.

그리고 모험과 꿈이 있는 세계.

어렸을 적부터 줄곧 그것을 동경했던 나는 일요일 밤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 뭐 했다고 벌써 월요일이냐? 출근이고 뭐고······. 눈뜨면 확 이세계로 가버렸으면 좋겠네.’


하지만 현실은 지겹도록 냉혹한 법이라.

흔히 말하는 환생 트럭 찬스라도 오지 않는 이상은 그 꿈을 이룰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나만의 가상 세계를 꿈꾸게 되었다.

밥벌이로 게임 개발자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판타지 속 영웅은 될 순 없어도, 적어도 게임을 만드는 동안에 나는 그 세계의 신과도 같았으니까.

그러니 내가 처음으로 개발에 뛰어든 <아스테리아 사가>에 큰 애착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윗선으로부터 라이브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고 초상집 분위기인 회식 자리에서 착잡한 마음에 꾸역꾸역 술을 퍼붓다 정신을 잃은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걸 바란 건, 허억, 아니었다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허공에 메시지가 뜨자마자 토끼의 사체가 나뒹구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벅찬 숨을 골랐다.

나는 하루아침에 내가 만들던 게임 속에 빙의하고 만 것이다.


누군가 이런 사정을 알게 된다면 그토록 바라던 세상에 왔으니 좋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메인] 튜토리얼 - 불길한 징조


[조건] 수도 앞 평원에서 탑의 존재 확인 (1/1)

수도 앞 평원에서 “변종 발광 토끼”를 토벌하고 핵 수집 (10/10)


[보상] EXP 5000, AP 1000, 하급 HP포션 5개, 하급 MP포션 5개, 모험가 길드 회원증


[개요] 수도 앞 평원에서 멸망의 단서를 조사하고 변종 몬스터를 토벌하여 모험가로서의 실력을 증명하라.


내가 떨어진 세계는 당장 몇 년 안에 멸망할 것이 확정된 개막장 상태니까.


“아니, 게임 망하는 게 아쉽다고 했지 직접 구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대체······. 며칠째 이게 무슨 고생이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나에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몰라도, 빙의 후 처음 며칠간은 황당함을 넘어 억울할 지경이었다.

이미 망한 프로젝트에 갑자기 날 데려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차라리 빙의가 아니라 회귀를 했더라면 게임을 살리건 회사를 때려치우고 코인을 존버하던 뭐라도 했을 텐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저절로 옅어졌다.


가만히 앉아서 다가올 멸망을 직관하기엔 내가 빙의한 몸에 달린 책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집도 절도 없는 고아에, 가진 기술이라고는 평범한 활 솜씨밖에 없어서 제 몸 하나 지키기 빠듯한 놈인데.”


그런 와중에 세계를 구할 영웅들에 대한 신탁의 선택을 받아, 멸망을 막기 위한 여정에 강제 징집되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놈이 바로 이 요슈아라는 캐릭터였다.


“기획팀은 대체 왜 이런 설정을 넣어서 일을 이렇게 꼬아버리냐. 젠장, 디X몬도 아니고.. 선택받은 아이인지 뭔지 때문에 사지로 몰리게 생겼잖아.”


나는 울컥 올라오려는 욕지기를 눌러 삼킨 채 바닥에 내려놓은 조잡한 나무 활을 주워들고 몸을 일으켰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신탁의 주인공에 대한 소문이 세간에 퍼지기 시작하면, 도중에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탑 안으로 들여보내지 게 될 터.

그때까지 제대로 살아남을 대책을 마련하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후우. 이제 보고만 하면 튜토리얼 퀘스트도 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후로는 메인 퀘스트와 전직 퀘스트를 병행하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때를 이용해서 튜토리얼을 깨는 동안 줄곧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생존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지평선에 걸려 어렴풋이 형체만 보이는 멸망의 상징을 잠시 바라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


아스테리아 대륙의 하나뿐인 제국.

그곳의 수도인 루아잔의 중심을 가르는 대로에 모험가 길드가 있었다.


“토끼의 핵, 총 열 개 확인되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모험가 길드에서 신입들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원이 작은 주머니 안에 핵을 쏟아내더니 보상으로 포션 몇 개와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건 모험가 길드 회원증이에요. 이제 요슈아님은 대륙의 도시를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하실 수 있고, 잡화점을 비롯한 여러 편의시설에서 혜택을 받으실 수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길었던 튜토리얼이 끝났다!

현실에서라면 눈감고도 클리어했을 단순한 난이도였지만, 게임 속에 들어오니 물건 가져다주는 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된 게 하나하나가 죄다 시간이 걸리는 것들 뿐이었다.


자그마치 일주일 동안 의미 없는 뺑뺑이 퀘스트만 돌리느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곧장 회원증을 펼쳐보니, 안쪽에 길드의 모험가 과정을 등록하면서 찍은 사진이 붙어있었다.


‘이게 바로 그 루카스 섀넌의 발명품이라는 거지. 화질도 그렇고 현실이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네.’


세계관 최고의 제작자가 마도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사진기.

그것으로 찍어낸 사진 속에 요슈아···아니 이젠 내가 된 소년이 있다.


갈색 머리칼에 단정한 인상.

거기다 제국에선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초보 모험가의 옷을 걸치고 있으니 딱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뾰족한 귀 끝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받은 보상을 가방 안에 챙겨 넣고 있으려니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요슈아님. 얼마 전에 초보자용 토벌의뢰를 거절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직원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하긴, 아무리 토벌의뢰의 수락이 개인의 자유이지만 대부분은 초반 성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코스다.

그걸 거절하는 내가 이상해 보일 법도 하지.


“전투 평가 성적도 나쁘지 않으신데······. 빠른 성장을 위해서 의뢰를 받으시는 걸 추천드려요. 마침 얼마 전의 이상 현상 이후로 토벌의뢰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냥 의뢰를 받을 생각은 없어서요.”


신입 모험가에게 앞으로의 성장 방향을 알려주는 것을 업무로 맡은 그녀는 이 상황이 꽤 난감한 듯 했다.


“걸려있는 보상이 적지 않아서 관심 있으시다면 바로 주선해드렸을 텐데 아쉽네요. 그렇다면 다른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 아!”


신청서와 기초 교육 평가지가 섞인 서류를 한 장씩 다시 훑어 내려가던 그녀가 나와 눈을 맞추었다.


“혹시 지망하시는 분야가 전투계가 아니신가요?”


[전직] 메이커의 길

[조건] 모험가 길드의 기초 제작 과정 등록 (0/1)

기초 제작 과정을 완료하고 수료증 습득 (0/1)

.

.


마침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긴 퀘스트 창을 가볍게 훑고 있던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저는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요. 길드의 기초 제작 과정에 등록하고 싶습니다.”

“제, 제작? 기초 제작 과정이요?”

“네. 따로 말씀드리면 접수할 수 있다고 들었는ㄷ······.”


미처 하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잔뜩 상기된 표정의 직원이 빠르게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세상에, 제작 과정에 등록하시려는 분은 너무 오랜만이라 그쪽을 지망하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그게.. 접수증이 어디 있더라······. 하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데스크 옆에 놓인 서류 탑을 한참 뒤적거리던 그녀는 접수증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과정의 담당 교관님은 한때 서부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제작자세요. 요즘 모험가분들은 전투계를 희망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신청자가 적긴 하지만, 분명 요슈아님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거예요.”


기회라······.

그녀는 앞으로의 일을 전혀 모르고 던진 말이겠지만, 내게는 꽤 무게가 있는 말로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서 제작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 그 자체니까.


이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대륙에 나타난 5개의 재해의 탑과 그곳을 오르는 선택받은 용사들을 중심으로 한 멸망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이미 첫 번째 탑이 나타났으니 다음 탑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야.’


마지막 5번째 탑이 나타날 때까지 앞선 탑의 공략이 진행되지 않으면, 이 세계는 완성된 탑의 에너지로부터 완전히 잠식당해 순식간에 모든 생명체가 소멸하고 만다.


‘그걸 막으려면 누군가는 탑을 등반해야 하는데······. 한 층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게 문제지.’


무기뿐만 아니라 포션을 포함한 소모성 아이템까지.

탑을 오르는 동안 끊임없이 사용되는 아이템을 감당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것들을 제작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빙의한 요슈아라는 인물은 바로 그 역할을 맡기 위해 만들어진 제작계 캐릭터.

원래 스토리에서 그는 오직 제작에 능통한 고대 엘프의 혈통을 반쪽 물려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신탁의 대상이 되었고, 그 길로 용사로 발탁되어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탑에 들어가게 된다.


‘검 한 자루도 만들어 본 적 없는 놈이 탑에 들어가서 뭘 할 수 있겠어. 지금 생각해도 초반의 이 녀석 성능은 진짜 쓰레기나 다름없다고.’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부족한 무력과 기초적인 제작밖에 할 수 없도록 설계된 클래스의 애매한 초반 성능.

그러니 파티에서 요슈아의 포지션은 신탁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쫓겨나왔을 퇴출 위기 캐릭터 그 자체였다.


개고생 끝에 스토리가 중반쯤 지났을 무렵부터는 여러 번의 전직을 거친 후라 조금씩 공략에 기여 하기 시작하긴 하지만······.

그전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일행들 사이에서 자격지심에 찌들어 겉돌다가 몬스터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툭하면 기절해버리는 등,

용사 파티원이 아니었다면 진작 요단강을 건넜을 것이 분명한 사망 플래그를 수도 없이 꼽고 다닌다.


‘그런데 그런 골 때리는 놈이 이젠 나란 말이지.’


현실에서의 나, 윤대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인물이건만······. 하필이면 빙의를 해도 이런 놈 몸에 들어왔다.

빙의 후 한동안은 이 빌어먹을 운명을 피하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별짓을 다 해봤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결국 긴 현실 부정을 마친 나는 한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대로 넋 놓고 원래 스토리 진행을 따라갔다간 큰일 나겠는데. 최대한 빨리 방법을 찾아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수밖에 없겠어.’


여기서 한번 죽으면 영원히 죽은 목숨이 될지도 모른다.

탑에 들어가기 전 확실히 살아남을 방법을 구해놓고 들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펼쳐질 끊임없는 사망 플래그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개죽음 당하며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거다.


‘······아, 됐다. 그만두자.’


답 없는 일만 생각해봤자 기분만 나빠지지, 정작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겠지.


빠르게 고개를 저어 몰려드는 생각을 떨쳐낸 뒤, 곧장 전직 퀘스트가 진행되는 길드 지하의 제작 작업장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란 말이지.’


넓은 공간의 벽 하나를 홀로 차지하고 있는 시계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작업대.

나는 그 줄의 맨 뒤에 자리를 잡고 내 몫으로 놓여 있는 목재 더미와 여러 종류의 제작 장비들을 구경했다.


“과제는 뭐가 나올까?”

“기초 과정이니 아주 쉬운 걸 주지 않을까? 어려워 봤자 이 목재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물건 정도겠지.”

“그거라면 눈감고도 할 수 있겠는데.”


작업장 안에 울려 퍼지는 말소리를 듣자 하니 나를 제외한 이들은 대부분 공방 운영이 가업인 제작자의 자제들인 것 같았다.


‘전직 퀘스트 조건엔 수료만 하면 된다고 나와 있지만······. 뒷일을 생각하면 그걸로는 부족한데. 보아하니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꽤 까다롭겠는걸.’


끼익!


그때,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교관이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제작자는 탑을 오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1 21.05.04 48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21.05.03 32 0 -
14 제 1 재해의 탑 (2) 21.05.04 45 5 11쪽
13 제 1 재해의 탑 (1) +2 21.05.03 71 11 12쪽
12 오염 지대 (3) +1 21.05.02 89 9 12쪽
11 오염 지대 (2) 21.05.01 89 9 12쪽
10 오염 지대 (1) 21.04.30 95 9 12쪽
9 징조 21.04.29 103 10 12쪽
8 포션 제작 21.04.28 117 12 13쪽
7 채집 (2) +2 21.04.27 113 14 12쪽
6 채집 (1) 21.04.26 120 12 11쪽
5 증명 (2) 21.04.25 168 14 12쪽
4 증명 (1) +1 21.04.24 166 15 12쪽
3 아이템 공방 21.04.23 179 14 12쪽
2 메이커의 길 (2) +1 21.04.22 193 16 13쪽
» 메이커의 길 (1) +2 21.04.22 298 1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씨케인'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