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자베스 상회의 휘장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 집무실.
본래라면 주인을 잃어 텅 비어 있어야할 그곳에 한 사내가 마치 본래 주인마냥 앉아 있었다.
한참을 깃펜에 잉크를 묻혀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던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온 흰 털빛 묘랑족에게 인사를 건넸다.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우리의 영웅께서 부탁하신 일인데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죠. 일단 보고부터 받으시죠."
소소의 아버지이자 설백 묘랑족 촌장인 '이랑'.
이랑은 가져온 종이에 적힌 내역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동안 탄광에서 채굴한 철광석의 수확량은 총···."
그렇게 베히문트는 이랑이 불러주는 철광석 수확량을 따라적으며 여러 수식을 이용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콧잔등에는 안경이 올려져 있었다.
'역시 그때 병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 정답이었어.'
한 때 베히문트는 병사들을 모두 죽여 배틀 포인트와 능력을 수거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패전병인 병사들을 죽이는 대신, 탄광에 몰아넣어 채굴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확된 철광석은 모두 베히문트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정도 철광석이라면 꼭 무기를 만들지 않더라도 훗날 꽤나 도움이 될 거야.'
현재 적재되어 있는 철광석의 양은 묘랑족 모두에게 무기를 만들어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계산을 끝낸 베히문트는 깃펜을 잉크통에 꽂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과연 자베스 상회쪽에서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련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한 베히문트의 계획이란, 바로 적재한 철광석만 가져가기보다는 마치 채굴장에 아무런 이변이 없던 것처럼 꾸며 주기적으로 철광석을 빼돌리는 것이었다.
계산 상으로 6개월 정도면 현재 적재량을 뛰어넘는 철광석이 생기는 바.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야말로 벼락 부자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처리해야하는 일이 한 가지 존재했다.
"으아아아. 살려줘!"
다시 한 번 문이 열리며 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비쟌의 부관이었던 이였다.
"다시 한 번 소리를 치면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지."
베히문트의 냉담한 목소리에 부관은 단숨에 비명을 멈추었다.
"또한 내가 말한 물음에 제대로 답을 못해도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는 것만 상기하록."
"······."
"그럼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를 물어보지. 일단··· 자베스 상회, 아니 4왕자가 광산에서 무엇을 채굴하려고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아무리 철광석의 이윤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 인력을 투입하면 크게 이득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따로 노리리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베히문트는 그 사실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건넨 것이었다.
"저기··· 그게 철광석을. 켁!"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던 부관의 목덜미를 베히문트는 단숨에 낚아챘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발버둥을 치지 못했다.
바로 그를 노려보는 베히문트의 무심한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마치 네 생사 따위는 관심 없다는 표정에 그는 오금이 떨려왔다.
"뭐, 대답을 하지 않겠다면 그걸로 좋아."
베히문트는 쓸모 없는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전에 습득했던 금술인 '강제계약'을 사용하였다.
다행히 금술은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베히문트가 사용하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끄어어어어억!"
부관의 얼굴이 터질듯 붉어졌다.
이내 베히문트가 그를 땅바닥에 내팽겨치니 그는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거렸다.
이윽고 그의 목에는 이전 펜릴르에게 있던 문양처럼 붉은 선이 목둘레에 세겨져 있었다.
"다시 묻지. 4왕자가 이 광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끄어억."
부관은 저항하려고 했지만 강제계약으로 인한 구속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4왕자님은··· 이곳에서 어떤··· 봉인을···."
"봉인?"
"3000년 전에··· 봉인된 고대의 마신···을 불러내는···."
"고대의 악마라고?"
베히문트는 부관의 의외의 대답에 잠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강한 마신인가?
"저기 베히문트 님?"
베히문트의 엉뚱한 대답에 뒤에 있던 이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베히문트는 헛기침을 했다.
"아니, 방금 건 못들은 걸로 하게."
베히문트는 입맛을 다셨다.
이제 강해보이는 상대만 보여도 투쟁심이 절로 끌어올랐다.
"고대의 악마는 왜 찾는 거지?"
"거기까지는··· 저도···."
"하긴. 그런 사실까지 말해줄리가 없지."
베히문트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목적까지 알아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중요한 사실을 부하들에게 얘기해줄리가 없었다.
무엇을 찾는지만 알아냈어도 큰 수확이었다.
'헌데 좀 아쉽긴하네. 4왕자가 이런 큰 수를 두면서까지 노리고 있는 봉인. 내가 채가면 좋겠지만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을 수는 없으니깐.'
베히문트는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셨다.
최대 몇 년이나 걸릴 수 있는 채굴에 기대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커다랬다.
그렇게 베히문트는 다른 질문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베히문트님."
"?"
"그 봉인이라는 거. 아마 저희가 이미 찾아낸거 같습니다."
"네?"
"저희가 그 고대의 봉인을 이미 찾아냈다고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베히문트는 이랑에게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동일했다.
베히문트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일단 저희가 그 봉인을 찾아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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