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불허합니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인 백발의 노인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는 벨트라 지부의 용병 길드 마스터로 한 때 '뇌전의 볼트'라고 불렸던 전직 A랭크 용병이었다.
그가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세에 밀려 마지 못해 수긍을 하고 넘어가곤 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꼭 그곳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소녀는 길드 마스터의 단호한 어조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색과도 같은 청명한 푸른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딴 소녀는 그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길드 마스터를 바라볼 뿐.
"후···."
이에 길드 마스터는 골치 아프다는듯 미간을 문지르며 들고 있던 파이프 담배를 내려놓았다.
"로젠양. 당신이 천재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열화의 전녀(戰女)'의 유일한 제자이자, 차기 마탑주가 될 당신을 누가 무시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금지의 숲, 그것도 최북단으로 가는 것은 결코 허락해줄 수 없습니다. 그곳은 '바르이안'의 영토로 그들의 집요함은 베테랑 용병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바르이안은 금지의 숲 최북단에 기거하는, 흡사 원숭이를 닮은듯한 반인반수의 종족이었다.
그들은 어둠의 신을 주신으로 모시며, 자신의 영토의 침입하는 이들은 끝까지 쫒아 찢어 죽이기로 유명했다.
"로젠양께서 실종된 스승을 생각하여 그곳까지 간다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열화의 전녀께서 좋아할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로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 마스터께서는 제게 금지의 숲의 통행권을 내줄 생각이 없으시다는 거군요."
"그러니···."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스승님은 제게 곧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혹여 스승님께서 그곳에서 돌아가셨을지라도 저는 그분의 유해를 모셔와야 합니다."
로젠은 길드 마스터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입구로 나서려는 찰나.
"후··· 좋습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나봐야 엘리샤 왕녀님께 가시겠지요. 그 바쁘신 분을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는 바."
"그럼?"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제가 지명한 길잡이꾼 한 명을 대동할 것. 그 외에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곤 길드 마스터는 입구를 향해 나즈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대락적인 이야기는 밖에서 들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 안으로 들어오시죠. '알렌'님."
"······."
이윽고 문이 열리며 베히문트가 등장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한 가득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초대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베히문트의 손에는 신입 경비병에게 받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 종이의 정체는 바로 '강제 소집장'.
용병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부름에 응해야만 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깐요."
길드 마스터는 파이프 담배의 연기를 쭉 들이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슬레이어(slayer) 아렌님."
"······."
이에 베히문트는 눈가에 힘을 주어 길드 마스터를 노려 보았다.
'이거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 왕실의 영감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야.'
베히문트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을 테스트해보기 위한 시험 무대라고.
아무리 <거짓말>과 <교란>으로 고블린 프린스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해도, 애초에 용병 길드는 이상함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곳의 모든 고블린 시체를 흔적도 없이 녹여버렸으니 그들은 의심만 하고 있을 뿐.
이 기회에 그 모든 것을 알아보려는 속셈일 터였다.
'하지만 그 수에 꼭 어울려줄 필요는 없지.'
베히문트는 길드 마스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여러 귀찮은 일이 따라오겠지만, 저 능글맞은 길드 마스터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이 꼭 보고싶었다.
그렇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는 순간이었다.
"할게요!"
베히문트가 말을 꺼네기 전에 로젠이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쪽에서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베히문트가 입술을 떼려는 찰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길드 마스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허리를 숙여 베히문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흠? 차기 마탑주 정도라면 분명 어디서든 준 귀족 대우를 받을 텐데. 신분도 확실치 않은 용병 나부랭이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다니···.'
왕국은 신분의 상하에 따른 대우가 극심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로젠의 이런 태도가 베히문트에게 생소하게 다가왔다.
'뭐, 금지의 숲에 들어가는 것은 나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니깐. 일단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까?'
슬슬 벨트라 주변 몬스터들의 씨가 말라 붙어가는 상황.
새로운 지역으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생각하는 베히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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