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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천재 암살자는 암살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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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47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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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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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프롤로그

DUMMY

“골라라. 두 팔 없이 조용히 살겠느냐. 죽겠느냐.”

“그럼 죽지.”


사지는 이미 제압되었다. 제압되지 않았다 해도 저항할 여력은 없다. 노면에 눌린 탓에 얼굴에는 진흙이 엉켰지만, 엑사 바페르는 킬킬 웃었다.


“하나만 잘라주면 살고.”

“한쪽 팔로는 부족하다.”

“그럼 죽여.”


쯧. 엑사는 혀를 찼다. 팔이, 그것도 두 짝이 다 없으면 무슨 의미로 살아갈까.


“그건 곤란하다. 너는 파멸종의 왕과의 전투로 인해 양팔을 잃어야 한다.”


엑사 바페르는 고개를 들어 놈을 보았다.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자신을 내친 양부를 똑 닮았다.


“그럴 바엔 뒤진다니까?”

“그것이 마지막 자비다.”

“아니. 죽이라고.”

“너에겐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살아남아 사기를 돋워야 한다. 게레크 멕테라는 그렇게 말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인간 측이 여전히 열세임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죽이고 싶다. 게레크 멕테라는 그 욕구를 억눌렀다. 그래서는 대계가 어긋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제압되어 목숨이 간당한 엑사 바페르는 인류의 희망이자 영웅이었으니.


“파멸종 왕의 목은 네가 보고해야 한다.”


엑사 바페르.

전장에서 만개한 꽃, 입지전적 영웅.


그가 전쟁에 합류한 것은 8년 전. 전쟁 발발 2년 뒤의 일이었다.


고작 24살의 평민 검사.

병사부터 시작하여 1년 만에 ‘바페르’라는 성을 하사받았으며, 26살의 첫날에 대장군의 자리를 발탁 받은 희망.


죽인다면 인류는 파멸종과 같은 상태가 될 터다. 그들은 왕의 죽음에, 인류는 엑사 바페르의 죽음에 사기를 잃겠지.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진다.


···상대는 이제 왕을 잃은 잔당이지만, 그럼에도 벅차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엑사 바페르는,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왕?”


엑사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웃는 것 같기도, 기가 차 내뱉어지는 헛웃음 같기도 했다.


“무엇이 우습나.”


게레크 멕테라의 안색이 한층 더 굳어진다. 비웃음.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언젠가 왕을 조우했을 때, 그는 왕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으니까.


“너네가 끝이야? 더 없어?”


파멸종의 왕을 죽인 이곳에는, 게레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엑사는 고개를 들어 시야를 넓혔다. 다섯 명. 배신자의 숫자다.


“생각보다 별로 없네. 아니지. 너네 가문들도 다 알고 있나? 그러면 좀 많아지긴 하네.”

“···.”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엑사는 더 크게 웃었다. 대답 없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 많다.


“아. 멕테라는 아니겠다. 걔넨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잖아.”


퇴출당했을 때라면 모를까, 현 멕테라의 검사들은 게레크보다는 엑사를 더 좋아한다.

그들이 환장하는 것은 혈통이 아닌 검이었으니.


“멕테라는 비밀일 거고. 너네는? 다 알지? 너네가 능력이 부족해서 내 뒤통수치는 거.”


배신자들은.

모두가 대가문의 혈족이며 전쟁의 영웅이라 추앙받는 이들이다. 단독으로 움직이기 힘든 위치. 핵심 가신들은 이 현실을 인지하고 있겠지.


“엑사 바페르는 파멸종의 왕에게 밀렸고, 지원 투입된 우리가 왕을 죽였다. 전투 중 엑사 바페르는 양팔을 잃음. 보고서 한 편 나왔네. 고맙지?”

“계속 듣고만 있을 건가. 얼른 끝내도록 하지. 시간이 아까워.”


엑사가 비아냥거리자, 드디어 침묵하던 이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연상케하는 머리카락. 표독한 인상. 그··· 쓰레기.


“아카르 바하브. 너만 여기서 후작가인 거 아냐? 넌 덜 창피하겠다. 좋아죽겠지? 나한테 밀릴까 봐 존나 쫄아있었잖아.”

“엑사 바페르. 너는 내 조언을 새겼어야···.”

“지랄. 조언은.”

“그만. 의미 없는 논쟁이다.”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아카르를 제지한다.


“네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탑이 멕테라의 편을 드는 날이 올 줄이야.”


누하만 바소르.

엑사의 예상에는 없던 인물이다. 당금의 상황은 열등감 덩어리인 게레크의 작품일진대.


“너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 이번 일로 멕테라와 바소르는 지난 악연을 끊고 서장을 새로 쓸 것이다.”

“그 조건이 나야? 아니지. 화해해줄 테니까 나 같이 조지자고 한 거구나?”


아마 게레크가 제안했겠지.


“황제가 아주 좋아죽겠어.”


황제는 제국의 안정을 원한다. 아마 멕테라와 바소르가 화합하는 것을 크게 반길 테지. 그리고, 그것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더 좋아할 것이고.


“···.”


누하만 바소르가 다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엑사의 입끝을 더욱 올라가게 만들었다. 예상대로다. 황제가 숟가락을 안 올릴 리가 없다.

인류의 관심이 제국의 주인인 자신이 아닌 한낱 검사에게 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으니.


“미안···.”


입을 연 이는, 누하만의 옆에 있는 여자다. 아히나 바소르. 방계임에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직계의 성을 허락받은 바소르의 마녀.


“미안하면 쭉 닥치고 있어. 네 죄책감을 나에게서 해소하려고 하지 말고.”

“···.”


아히나 바소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엑사가 보기에는 정말이지 역한 자태였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하는 꼴이라니.


“그만. 엑사, 너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랄. 이해하면 너도 양팔 자르고 평생 살아. 그러면 생각해볼게.”


엑사는 그 남자를 더러운 오물 보는 듯이 보았다.


아마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게레크겠지. 그는 황제와 바하브와 바소르를 포섭했을 것이다.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을 것이고.


저 면면들. 전쟁 속에서 수없이 부딪혔던 인물들이다. 언젠가 뒤통수를 맞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시기가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우리 애들은?”


···하다 하다, 이 새끼까지. 엑사는 바로 어제까지 자신의 부관이자 친구였던 자에게 물었다.


“···건들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엑사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그래도 그리 나쁘게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저 네 명은 그렇다 쳐도, 친구라 여겼던 이에게도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거기서 넌 빼라. 양심 있으면. 아. 없겠네. 그러니까 여기 있지.”

“···.”

“그런데 걔네가 안 보인다? 데그라트는 참가 안 했어?”


이곳에 있는 것은 다섯 명이다. 자신을 포함해서 여섯. 한 명이 빈다. 그 영감. 그 암살과 환상의 왕이 이런 자리에 끼지 않을 리가 없는데.


“···.”


엑사의 질문에 모두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데그라트는 제국 소속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 집단. 저들이 침묵으로 감싸줄 의리는 없다는 소리다.


“뭐야. 진짜 없어? 무슨 일이래.”


이런 자리가 있다면 1등으로 달려올, 살인이라면 환장하는 놈들인데.


“어떻게 그 새끼들이 제일 낫냐.”


이 순간, 엑사는 데그라트를 다시 봤다. 그 음습한 것들이 제일 의리 있을 줄은 몰랐다.


“됐다. 이제 죽여. 그리고 너희들이 얼굴마담 해. 그런 거 환장하잖아?”


용무는 끝났다는 듯, 엑사 바페르는 집을 나서는 거북이마냥 목을 쭉 내밀었다.

지금에 와서야 건드리는 이유는 뻔했다. 가장 큰 위협인 파멸종의 왕이 죽었으니까.


게레크의 옆에 수급 하나가 떨어져 있다. 방금 전의 엑사가 베어온 목이다.


“아니. 죽이지는 않는다.”

“후회할 텐데.”


멸망을 원하는 아둔한 놈들.

그들은 자신이 벤, 저 머리통이 진정으로 왕의 것인 줄 안다. 엑사는 그들의 발상이 더없이 역겹고 한심해서, 끊임없이 웃었다.


당장 적진이 무서워 강습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다 끝날 때쯤 와서, 진실도 모르면서.


“베라.”


그 말에 제압된 사지가 해방됐다. 팔과 다리를 속박하고 있었던 마법이 해제된 것이다.


“천한 놈다운 결말이구나. 근본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겠지.”


이윽고 검을 뽑아 다가온 이는 아카르였다.


‘웬일이래.’


사실, 게레크가 나설 줄 알았다. 그 새끼는 자신에게 더없이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사지가 풀렸음에도 엑사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닌 힘은 종전까지 이어졌던 전투에서 이미, 모두 소모해버렸으니.


그래, 파멸종의 왕이 아닌 그의 자식에게.


‘7번째라고 했지.’


그것도 자식 중의 막내.

엑사는 그 사실을 전투 도중에 알았다. 파멸종의 왕은 아직 차원을 넘어오지 않았다.


10년 간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었던, 인류에게 멸망을 상정하게 만들었던 침략자들이.

인류를 멸망에 몰아넣은 그 군세들이, 겨우 막내의 사단이자, 선발대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너다. 평생을 후회하는 것은.”


엑사 바페르는 진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사투 끝에 돌아와 얻은 것이 배신인데, 말해 무엇하랴.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지.’


죄 없는 이들이 걱정되었으나, 그뿐이었다. 여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으니. 그만큼 공헌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 새끼들은 죽이고 가고 싶은데···.’


다만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팔이 한쪽이라도 남는다면 검은 잡을 수 있을 텐데. 파멸종과도 계속 싸울 수 있을 텐데.

막내가 그 정도라면. 자식들은, 그들의 왕은 어떠할까. 얼마나 강할까.


촤악. 아카르가 휘두른 검이 왼쪽 어깨를 잘랐다. 평생을 함께 했던 팔이 노면에 떨어진다.


‘어떻게 안 되나.’


절단된 단면에서 느껴지는 격한 통증을 느끼면도 엑사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너무나 아쉬워서. 고통과 달리 미련에는 익숙하지 않다.

팔 없는 남은 생은 고문과 같겠지. 배신자들이 눈앞에서 설치고 다닐 것이고, 파멸종의 왕의 자식들이, 왕이 모습을 드러낼 터인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검도 잡지 못한다.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팔이 잘리면 그냥 몰래 뒤져버려야지.’


그렇게 다짐한 순간.


-기회를 주겠다.


머릿속에 음성이 울렸다. 엑사 바페르는 주위를 둘러봤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마력은 한 줌도 남지 않아 탐지 또한 불가능했다.


-너는 더없이 유쾌한 자이니.


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음이나 마법 또한 아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겪었다. 전쟁터에서 8년을 굴렀다. 엑사 바페르는 그러한 것들을 헷갈릴 자신이 없었다.


음성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었고 어딘가 익숙한 힘이기도 했다.


“누구···.”

“이제 와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냐.”


황급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아카르가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그 엑사 바페르가 드디어 꺾였다. 고고한 검성이 자신의 발밑에 있다. 그 사실이 아카르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덤덤한 척하더니, 한쪽 팔이 잘린 후에야 현실을 자각했다는 듯 자비를 바라는 비참한 모습을 보라.


“역시 그 천함은 변하지 않는···.”

“아이, 시발. 넌 닥쳐봐. 어디서 인간 말하는데 인형이 껴.”


여전히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웃음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부정 타면 어쩌려고. 엑사는 지금의 상황이, 이 목소리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장 죽거라. 그리하면 너는 다시 태어날지어다.


언젠가 성녀를 만난 적이 있다. 주기적으로 신의 음성을 듣고는 한다고. 그때 그 목소리가 어떠한 특색을 지녔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지. 악마면 어때.’


의미없는 후회다. 설사 음성의 주인이 파멸종의 신이어도 상관없다.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냥 지금 죽자.’


결심을 내렸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다. 자살을 이미 결심했다. 양팔을 잃고 죽으나 지금 죽으나 그게 그거겠지.


‘정말 다시 태어나면 제일 좋고.’


분노한 아카르가 검을 번쩍 들었다. 바하브 특유의 마력이 푸른 열기를 뿜는다. 불길처럼 타올라서, 주변을 아른거리게 만든다.


“의수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쐐액! 아카르의 검이 오른쪽 어깨를 내려치려는 순간.


엑사는 상체를 틀고는 목을 길게 뻗었다. 놀란 아카르의 얼굴이 시야에 얼핏 잡힌다. 마주 보면서, 엑사는 히죽 웃었다. 목에 차가운 날붙이가 닿은 순간이었다.


살을 파고 들고, 이내 뼈를. 감각이 선명하다. 엑사는 그 흉기가 제 숨구멍에 닿기 전에 말했다.


“꼭 기다려라.”


목소리가 주겠다는 기회가 어떤 기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반드시.


데그라트의 가주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건네야지. 알고 보니 너네가 사람이었다고.

지금까지 음습한 찐따 가문이라고 놀려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너네도 배신자라면 같이 죽일 것이라고.


심심한 사과의 말을 생각하던 차, 시야가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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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복귀(1) (5-24 / 오후 10:58 수정 완료..) +4 21.05.24 394 19 18쪽
28 북서의 쪽잠(4) +1 21.05.24 404 22 15쪽
27 북서의 쪽잠(3) +1 21.05.23 388 22 18쪽
26 북서의 쪽잠(2) +1 21.05.23 405 23 14쪽
25 북서의 쪽잠(1) 21.05.22 438 2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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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참관 의뢰(2) +1 21.05.21 487 26 15쪽
21 참관 의뢰(1) +1 21.05.20 538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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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고식(2) 21.05.19 561 27 17쪽
18 신고식(1) 21.05.19 618 2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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