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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천재 암살자는 암살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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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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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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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

DUMMY

문득 전생의 시절이 떠오른다.

멕테라 공작가에서 퇴출당한 순간. 입양되었던 엑사는 후계 대결에 참가할 자격도 얻지 못했다.


“뭐가 문제입니까?”


물론 그때와는 속이 전혀 다르다. 능력이 있고, 후계자가 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본가에는 머물러야겠다.


“어울리지 않다. 알지 않느냐.”

“전 압니다. 하지만 전대 가주께서는 모르시지 않습니까?”

“뭐라?”


카라드의 얼굴에 노기가 깃든다. 분명 아까운 인재다. 하지만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면 먹지 않는 게 옳다. 핏줄임을 생각해 지원을 약속했거늘. 이런 방자한 태도라니.


“첫 시험을 제외하고는 만점을 받았습니다.”

“데그라트의 방식이 아니었다.”

“데그라트의 방식이 무엇입니까.”


다분히 도전적인 말에 카라드는 시무르트를 바라봤다.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차분하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진심으로 몰라 묻고 있는 줄 착각할 터다.


“그래. 경호는 그럴 수 있다. 데그라트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경호는 능히 가능하니까.”


시무르트의 재능을 높이 사,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것뿐이었다면 재능의 가치를 생각해서라도 내치지 않았을 터다.


“허나 데그라트는 경호를 위한 가문이 아니다. 암살자였던 초대 가주께서는 동류를 위한 터전을 가꾸고 보존을 원하셨다. 네가 그 동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

“속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네가 암살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기척을 숨길 수가 있을까? 아니. 그것이 가능했다면 두 번째 시험에 그리 응하지 않았겠지.”


카라드는 말을 이어나갔다.


“세 번째 시험도 마찬가지였느니라. 만점을 받았으나 본가의 것이 아니었다. 가장 기본인 기척조차 숨기지 못하는 네가, 진정 암살자라 생각하느냐?”

“물론입니다. 두 번째 시험도, 직전의 시험도. 저는 만점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그게 암살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네가···.”

“데그라트의 방식으로 달성해야만 암살입니까? 그러면 시험에서 제가 했던 것들을 뭐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시무르트가 카라드의 말을 끊었다.


“목격자나 생존자가 있었습니까? 경호자와 대상을 모두 죽였습니다. 성에 흔적을 남겼습니까?”

“넌 태생부터 암살에 어울리지 않는다. 너 스스로도 깨닫고 있지 않느냐.”

“제가 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암살이 아닙니까?”


흔적. 시무르트가 흔적을 입에 담았다. 그 말을 듣은 카라드가 눈을 빛냈다.


“흔적. 흔적이라. 네가 진정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 같더냐?”

“물론입니다. 설마 자상을 입에 담을 생각은 아니겠지요? 사인이라면 능히 꾸며낼 수 있는 것임에도?”

“···.”

“당장 전대 가주께서도 과거에 일을 그르쳐 성 하나를 홀랑 태운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어찌···.”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시무르트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할 때다.


“실전을 걱정하겠지요. 의뢰와 시험은 다르니까. 성에 그 흔한 경비 없이 요인만 살고 있을 리가 없음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의뢰는 피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의뢰를 하지 못해 피하는 암살자가 무슨 암살자란 말이냐.”

“전대 가주께서는 의뢰를 피한 적이 없으십니까?”

“···.”


카라드는 엑사의 암살을 포기한 전적이 있다. 이번에도 고비가 찾아왔다. 시무르트는 혀를 한 번 세게 깨물었다.


“평생 가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의뢰를 하면서 성장할 겁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인내하겠습니다. 의뢰를 성공할 때까지 표적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


카라드는 무심코 턱을 쓰다듬었다. 시무르트는 데그라트의 전례를 통해 모든 것에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례는, 고약하게도 카라드를 겨냥하고 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암살. 몰래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목격자나 생존자가 없다면 암살이 맞다.


표적이 성에 있다고? 성을 몰살시키면 된다. 당장 자신이 전례가 아니던가. 카라드는 몇 개의 성을 단독으로 전멸시킨 바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구성원들은 서로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없다면, 기다리면 된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있다고 해도, 그 성의 경비병들은 그렇지 않다.


흔적? 여유가 있다면 지울 수 있다. 모든 암살자가 그렇게 한다. 의뢰에 한해서도 마땅히 반론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못할 것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말을 할까. 당장 뱀들의 역할이 구분되어있는 것도 같은 맥락인데.

암살 전문인 흑사에게 경호 의뢰를 넣지는 않는다. 경호 전문인 백사는 그 역할에 충실한다. 본가의 뱀에게는 저마다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이 완성된 인재만을 뽑는 시험입니까? 그렇다면 자하르와 아엘은 물론 모든 참가자가 탈락해야 합니다.”


당장의 부족함과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타당한 논리다. 나중에도 부족하다면 그때 쫓아내는 게 맞다. 성의 구성원을 모두 죽인다? 그런 의뢰는 어지간한 특급 뱀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인 지금에서는 더더욱.

신입을 뽑는 자리지, 경력자를 뽑는 자리가 아니다. 가능성을 무시하고 떨어트릴 것이라면, 참가자 모두가 떨어져야 한다.


“네 말이 틀리지 않다. 허나 허락할 수 없다.”

“또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기까지 오자, 슬슬 답답해졌다. 시무르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힘들게 깔았던 철판이 깨졌다.


“솔직히 말할까. 무서워서 그렇다.”


이내 카라드의 말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옆에 있는 게겐은 더했다. 제 주인의 입에서 약한 소리를 생전 들은 적이 없었는데.


“너의 말은 옳다. 그래. 일단 두면 되겠지. 더욱 강해질 터이고, 더욱 능숙해질 게야. 언젠가는 모든 의뢰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응당 품는 것이 맞다. 뱀마다 주어진 역할이 다르니.”


암살 대상이 요새에 숨어있어도, 그 요새를 지우면 암살이 맞다. 그 규모는 커질지언정, 언어의 의미는 다르지 않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데그라트의 흔적을 지우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애초에 시무르트의 검에서는 데그라트를 발견할 수 없다.


···시무르트의 재능이라면 어떻게든 암살을 가능케 할 가능성이 있다. 카라드는 그 미래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 된다.’


카라드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다.


“암살의 정의도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데그라트에게는 데그라트의 방식이 있다. 나는 그 전통을 지키고 싶다.”


시무르트는.

카라드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같은 결과를 유발해도 과정이 다르다. 카라드는 그 데그라트의 과정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겨우 한 명입니다. 그 한 명에 의해 전통이 깨질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무르트는 데그라트의 그 무엇도 훼손시킬 생각이 없다. ···알고 보니 배신자였다. 뭐 그런 경우만 아니면.


“있다. 인간은 약해지고, 죽는다. 나도, 네 아비도 그러하지. 강대한 마력이 그를 막아주고 있지만, 끝은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

‘갑자기?’


이해 못 할 말이다. 시무르트는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 끝이 가깝다. 모를 수가 없지. 그래서 무섭다. 네가 데그라트의 재앙이 될 것 같아서.”

‘시발. 뭐라는 거야.’

“후에 성장한다면···. 자하르와 아엘, 오르드가 힘을 합쳐도 너를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순간 아엘은 귀를 한 번 후볐다. 자기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아버지까지 낀다고? 저 동생이 그 정도라고?


“네가 다음 가주가 될까 두렵다. 그리하여 본가의 전통이 훼손될까 봐.”

“고작···.”

“한 명에 의해 전통이 깨질 일이 있냐고? 마땅히 있다. 그 한 명이 위에 군림한다면 무슨 일을 못 할까.”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 온다. 시무르트가 가주가 된다면, 결국 본가는 변할 것이다. 카라드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무르트가 본가에 어울릴 만한 인간이 될 수는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안 될 것 같기는 하다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때의 시무르트가 여전히 본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면?

그럼에도 가주직을 탐낸다면?


‘막지 못할 것이야.’


그때의 카라드는 분명 약해져 있을 터다. 아니면 죽었거나.


뱀들은 중립을 지킨다. 이번에 예외가 벌어졌다지만 이미 청소를 마쳤다.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데그라트의 규율에 맞게, 뱀들은 다시 중립에서 똬리를 틀 것이다.

그리고 그 중립 속에서, 아들이나 다른 손주들이 저 미래의 괴물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심계가 뛰어난 놈이다. 성취를 숨기고, 기회를 기다리겠지. 확신이 들었을 때 움직일 거다.

저놈은, 그때까지 들키지 않을 놈이다. 저 멍청한 아들 오르드가 알아챌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가주의 역할이다. 아주 미미할지라도, 그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대비해야 한다.


“확실히 말하십시오.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입니까. 수명입니까.”


시무르트는 카라드의 두려움을 알아차렸다. 지닌 부상. 마력회로의 오염. 그리고 그 정도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카라드는 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둘 다다.”


카라드는 게겐을 보았다. 게겐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한다. 부상 사실을 시무르트에게 전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엘릭서를 섭취하십시오. 본가에 열 개도 넘게 있지 않습니까.”

“···.”

“오래 살아서 오래 보십시오. 나중에 불온하다 싶으면, 제가 가주직을 노리는 것 같다면, 그때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


카라드의 고민은, 정말 쉬운 문제다. 억제기 하나만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아니. 그건 후계의 것이다. 너를 쫓아내면, 쓸 일도 없지.”

‘근데 저 지랄맞은 똥고집이 문제지.’


시무르트는 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자하르와 아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계가 엘릭서를 그리 많이 처먹기를 바랍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자하르와 아엘이 임무를 나갔을 때, 저는 저 둘을 찾아가겠습니다.”


갑자기?

남매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들의 양팔을 베고, 그 팔을 선물하겠습니다. 아. 교단의 신관이 있군요. 마력 회로를 망가트려 놓겠습니다. 고이 아껴둔 엘릭서가 가치 있게 쓰이길 바라면서요.”

“감히···.”


시무르트가 협박을 입에 담았다. 다음 가주 될 손주들을 인질로 잡았다.


카라드의 기운이 사방에 퍼졌다. 섬세한 마력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번진다. 주변 공간이 살살 흔들린다. 시무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데그라트의 비기가 전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너를 죽이겠다.”


압력을 견딜 만하다. 마력이 부담스럽지 않다. 꿈틀거리는 데그라트의 비기이자 권능은··· 분명 위협적이긴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약해지긴 했네.’


카라드의 마력회로 심히 오염되었다는 방증. 시무르트는 검을 뽑았다.


“그렇다면 저도 지금 자하르와 아엘을 죽이겠습니다.”


아껴두었던 마력이 신체를 회전한다. 검에서 하얀 것이 넘실거리다가, 이내 모양을 굳힌다.


흔히들 검기를 기체나 액체에 비유한다.

아직 서투르다면 기체의 모습과 가깝고, 능숙하다면 액체처럼 보인다고.


“허어···.”

“그럴 수가.”

“어찌 검강을···.”


헌데 시무르트의 검에 형성된 것은 고체에 가깝다. 액체의 성질이 옅다. 상당히 능숙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어떻게···.”

“지금의 전대 가주시라면 제가 둘 모두를 데려갈 수 있겠습니다. 죽일 수는 없어도 치명상은 입힐 수 있겠군요.”


시무르트는 카라드의 말을 끊고는, 검을 남매에게 겨눴다. 남매의 시선이 검에 꽂혔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엘릭서를 쓸 일이 생기겠습니다.”


협박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당금의 현실을 믿지 못했다.

그로 그럴 것이, 검강이다. 아득한 강자의 상징. 데그라트의 특급. 소드마스터의 전유물.


“가주와 게겐이 붙어도 한 명 정도는 어찌어찌 가능하겠습니다.”


아직도 막말을 싸지르는 저 당돌한 막냇동생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은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 아닌가.


거기다가 우리를 죽이겠다고?

자하르와 아엘이 동시에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동그래진 두 눈이 서로에게 향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저를 죽이고 손주들에게 엘릭서를 쓰시렵니까? 아니면 그냥 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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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복귀(1) (5-24 / 오후 10:58 수정 완료..) +4 21.05.24 392 19 18쪽
28 북서의 쪽잠(4) +1 21.05.24 403 22 15쪽
27 북서의 쪽잠(3) +1 21.05.23 386 22 18쪽
26 북서의 쪽잠(2) +1 21.05.23 405 23 14쪽
25 북서의 쪽잠(1) 21.05.22 436 2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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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참관 의뢰(2) +1 21.05.21 486 26 15쪽
21 참관 의뢰(1) +1 21.05.20 538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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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고식(2) 21.05.19 559 2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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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박 +6 21.05.17 710 30 13쪽
13 세 번째 시험(2) 21.05.16 686 25 13쪽
12 세 번째 시험(1) +3 21.05.16 716 30 13쪽
11 두 번째 시험(3) 21.05.15 732 29 14쪽
10 두 번째 시험(2) 21.05.15 759 31 13쪽
9 두 번째 시험(1) +3 21.05.14 786 37 17쪽
8 자격의 시험, 첫 번째(2) 21.05.14 806 37 14쪽
7 자격의 시험, 첫 번째(1) +2 21.05.13 853 37 12쪽
6 데그라트(3) 21.05.13 847 37 14쪽
5 데그라트(2) 21.05.12 873 3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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