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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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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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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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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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이었던 것

DUMMY

"음~ 오빠 요리 잘한다."


의외라는 눈빛. 김밥을 오물거리는 송채린이 한참을 칭찬해 줬다.

소풍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송채린은 유독 신이 나 보였다.


"오빠도 먹어 봐."


송채린이 한 손으로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김밥을 집은 나무젓가락을 내밀었다.


"됐어."


구태여 입까지 다가온 젓가락을 피하며, 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치."


송채린이 들고 있는 김밥이 무색해졌다. 옆으로 돌아가는 시선. 그와 함께 안진태와 눈이 마주친다.

'오랜만이네.'라며 살며시 입을 벌리는 안진태. 하지만 김밥은 그대로 쏙 송채린의 입으로 들어갔다.


"짱 맛있어."


환하게 웃는 송채린과 반대로 겸연쩍어진 안진태. 괜스레 입을 다시는 그를 보며 장은미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최준성은 그녀가 웃는 걸 처음 봤다. 차갑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기대했지? 크큭."


"웃지 마."


어쩌면 조금 취한 걸지도.

안진태와 잔을 부딪치는 장은미는 옅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술에 취하면 텐션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울적해 하거나, 삶은 무엇인가 철학을 탐구하거나, 정치 얘기까지 들먹이기도 한다.

던전테크에서는 딱 고차장님이 그랬다. 막 웃다가도 술 취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유형.


이것도 옮는 건지, 고차장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준성은 술에 취하면 차분해지는 편이었다. 때때로 참아왔던 불만 사항을 터트리곤 했지만.


반면, 장은미는 술에 취하면 텐션이 올라가는 사람 같았다.

전에는 술을 입에도 안 대더니. 막상 마시기 시작하니 말수가 많아지고 친근하게 굴었다.


"오빠아아~!!"


얘는 어느 쪽일까?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송채린은 자꾸만 최준성의 등이나 팔뚝 따위를 때려 댔다. 꺄르르 꺄르르 좋아서 그런다는데 쥐어박을 수도 없고.


"마실래?"


말해놓고 문득 '안진태 나쁜 놈'을 소리치던 알콜 송채린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건 쌓였던 분노를 터트린 거니까. 송채린도 취하면 텐션이 다운되는 스타일이 아닐까?

이미 와인글라스의 반을 채운 상황이었기에, 기도만이 답이었다.


"향긋해."


송채린은 금세 잔을 비워버렸다. 그녀에게 따라준 건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이었으니까. 음료수 같다고 생각하고 들이켠 모양이다.


"딱 좋다."


그리곤 김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스파클링 와인에 김밥이라. 별로 어울려 보이진 않는다.

간이 테이블에는 여러 안주가 올라가 있었다. 그럼에도 송채린은 김밥만을 고집했다.


말이 소풍이지, 차려진 것만 보면 그냥 바베큐 파티다.


이렇게 큰 것도 돗자리라고 부르나 싶을 만한 너비였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해오는 걸까?

그 위로 놓인 몇 개의 테이블 위에는 푸짐한 안주와 술이 채워져 있었다.


뭐라도 부족한가 싶으면, 장은미가 누군가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정확히는 위치를 전이해서 왔다 갔다 하는 거겠지. 퍽 신나 보이는 그녀의 손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들려왔다.


김밥보다 나은 안주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음식에 김밥을 견주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럼에도 누가 가져갈까, 송채린은 최준성이 싼 김밥만을 앞에 두고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기분이 묘했다.


"다른 것도 좀 먹어."


"난 오빠가 만든 게 제일 맛있어."


왤까? 그럴 때 있지 않나. 그냥 일상생활하다가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 딱 그런 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놔두고 자신이 만든 음식만 먹는 모습.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다닐 때니까. 수성이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을 때. 수성이의 초등학교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당시, 어머니는 건강이 위태로워 도와주실 수 없었다.

그냥 김밥 집에서 몇 줄 사다 보낼 수도 있었지만, 당시 최준성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그냥 사다가 보냈어도 신경 쓰는 사람은 딱히 없었을 텐데. 최준성은 그게 참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어쭙잖게 김밥을 쌌다. 와중에도 무시당하지 말라며, 안에는 참치나 스팸 같은 것들을 집어넣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볼품없었을 것이다.

제 딴에는 나름 잘했다고 동생에게 쥐여줬었지.


그날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도시락은 깨끗했다. 그래서 굉장히 뿌듯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충격이 더 컸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성이의 친구들이 싸왔다는 도시락을 알게 되었다. 김밥 따위로는 비빌 수 없는 퀄리티. 게다가 친구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그날 참관까지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쪽팔렸을까? 수성이는 어떤 기분으로 김밥을 먹었을까?

지금까지 기억나는 걸 보니, 그때는 참 그 사실이 괴로웠나 보다.


굉장히 상심했었다. 근데 수성이가 눈치챘는지 그러더라.


'형이 만들어 준 게 제일 맛있어.'


그날은 혼자 무진장 울었었다.


'그랬었지.'


이젠 그것도 추억이 돼버려서. 지금은 떠올려도 웃음만 나온다.


"크흡."


옛날 생각에서 벗어나자, 꾸역꾸역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송채린이 보였다.


"야, 천천히 좀 먹어라."


"···."


"안 뺏어 먹어. 그거 너밖에 먹는 사람도 없어. 뭘 그렇게 급하게 먹어? 체하겠어."


송채린은 대답 없이 머리를 처박고 김밥을 먹어댔다. 낌새가 이상할 정도다.


"야! 뭐해?"


김밥에 마약이라도 뿌려 먹나 싶었다. 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애니까.

어깨를 잡아당기자, 보랏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너, 무슨···."


송채린의 눈가가 시뻘겋다. 눈물이라도 흘린 것처럼. 아니, 실시간으로 흘리고 있었다.


"뭐야, 너 울어? 그렇게 맛있냐? 진짜 어이가···"


까지 말하다, 문득 그녀의 기프트가 떠올랐다. 맞다. 얘 생각 읽을 수 있지.

수성이 도시락 이야기를 본 모양이다.


"이루부뤄 본 크흥, 궈 아니와."


취기 오른 얼굴에, 입에 쑤셔 넣은 김밥에, 훌쩍거리는 눈동자에. 너도 참···


"일부러 본 거 아니야?"


맞게 해석한 모양이다. 송채린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뒤에도 뭐라 뭐라 하는데, '갑자기 심각한 표정 하고 있길래, 술에 취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같은 변명 따위였다.


"근데 니가 울긴 왜 울어?"


송채린을 보며 키득댔다. 그러자 녀석이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얘도 딱 내 과다. 술 마시면 텐션 떨어지는 과.


괜히 웃음이 나왔다.


"뭐 별거라고."


최준성도 채워놨던 와인잔을 기울였다. 참 달콤하다.

시선을 넓히자, 어김없이 대량의 술을 쌓아놓고 있는 벨라가 보였다. 그 옆으로는 곰이 결과가 뻔한 대결을 이번에도 벌였다.


"우엑."

그 모습을 지켜보는 너구리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난번에 처음 경험한 숙취가 강렬했는지. 술엔 얼씬도 안 했다.


'작전 시작 전에는 꼭 파티를 해요.' 안진태가 했던 말이다.

분명 세 번째 목표까지 파티는 미루기로 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이게 파티지, 뭐 따로 있겠나?


'다음 작전은 성공률이 30%나 높겠네.'


심드렁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송채린을 바라보니 남아 있던 김밥이 모두 사라져 있다.


'결국 다 먹네.'


사라진 김밥만큼이나, 와인 병도 비워져 있었다. 나름 꼴깍꼴깍 잘 마신 모양이다.


"하아-"


얼굴이 새빨갛다. 정말 텐션이 다운되는 편인 건지 송채린은 평소에 비해 얌전했다.

울기는 이미 울었고. 정치나 철학에 관심 있어 보이진 않으니. 이쯤에서 잠들려나?


'불만을 마음속에 쌓아놓는 스타일은 아닐 테니까.'


크큭. 웃음을 흘리는데, 갑자기 송채린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왜 그래?"


'내 생각 읽고 화난 건 아니겠지?' 싶어 최준성이 송채린을 흘겼으나. 그녀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터벅, 터벅. 그녀의 몸이 불도저처럼 전진한다. 앞에 뭐가 있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음?"


그런 그녀를 안진태가 돌아봤다.

'아직 남아있는 앙금이 있나?' 최준성도 그녀가 안진태에게로 향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덥썩. 그녀가 멱살을 쥔 건, 안진태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장은미였다.


"너 뭐야? 진짜로."


자기가 멱살 잡아놓고는 다짜고짜 따지고 든다. 곤혹스러워지는 안진태의 얼굴과 달리, 장은미의 표정은 평온했다.

술에 취한 탓에 기분이 좋은지, 여유까지 느껴진다.


"넌 대체 뭐야?!"


조금 더 날 서는 목소리.

반면 장은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글쎄. 언니?"


"야, 야."


단연코 술이 빚어낸 상황이었다.

뭐든 가볍게 흘려내던 송채린의 얼굴에는 답지 않게 진지함이 서려 있었고.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던 장은미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평소엔 술에 관심도 없던 것들이, 왜 오늘은 둘 다 난리야?"


안진태의 시선이 주위를 흘긴다.


"대체 누가 맥인 거야?!"


그의 시선이 그대로 최준성에게 쏘아졌고. 최준성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잔을 기울였다.

'장은미는 지가 먹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태여 대꾸하진 않았다.


"그러게.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갑자기 이야기가 좀 하고 싶네."


기분 좋은 것치고 과격했으며,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치곤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나도 오늘따라 동생이 신나 보여서, 기분이 좋더라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감정은 긍정과 거리가 멀었다.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척해?"


"척이라니. 정말 잘해줬는걸."


송채린은 장은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장은미가 받았던 실험은 총 두 종류였으며. 그중 하나는 몸 전체를 암호화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등급이 높은 기프터라 할지라도, 그녀에게서 정보를 캐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왜라니? 넌 내 동생이잖아."


장은미의 목소리엔 능글맞음이 묻어있었다. 평소 송채린의 것과 똑같은.


"겨우 그딴 이유로? 그게 아니잖아."


반대로 송채린에게선 평소 장은미와 같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나한테 미안한 거지?"


이번 질문엔 장은미의 표정도 조금 굳어졌다. 그럼 그렇지. 송채린은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입 다물고 있던 것을 청산할 생각이었다.


"미안하겠지. 그때 의사 선생님을 죽인 건···."


피식, 장은미의 얼굴에 다시금 비릿한 미소가 꽃핀다. 중얼거리듯 그녀가 송채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까짓 여자가 뭐라고."


"뭐?"


장은미의 발언은 송채린에게 퍽 충격적이었다. 송채린이 장은미에게 거리를 뒀던 이유. 그건 일종의 이기적인 원망이었다. 의사 선생님을 죽인 건 그녀고, 그렇기에 그녀만을 원망하는 게 편했다.


그래서 장은미가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이유도. 단지, 자신이 의지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주하는 눈빛에선 그런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몰라서 그래? 그녀는 사기꾼일 뿐이었어."


송채린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기프트로 들여다보았던 의사 선생님의 속내. 그녀가 자신을 실험체쯤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그것은 항상 송채린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소녀가 그 추억들을 여전히 껴안고 있다. 어린 송채린에게는 자신을 손찌검하던 친엄마보다야, 의사 선생님이 훨씬 나았으니까.


장은미의 말에 송채린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럼 왜 병신처럼 아직까지도 내 옆에 있는데?"


죄책감도 아니면, 장은미는 왜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일까?


언젠가는 최준성의 전류에 따라 잡힐 것을 알면서도. 장은미에게 위치를 바꿀 것을 요청했던 적도 있었다. 오토바이가 박살 나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럴 줄 알면서도 장은미는 송채린의 말을 따랐다.


그런 부당함은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거의 일상이었다.

그토록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말들을 모두 들어줬던 이유가 뭘까?


송채린으로서는 도저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번만큼은 그 이유를 꼭 들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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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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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완벽한 오답 21.07.29 50 2 13쪽
66 기류 +2 21.07.28 58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 소풍이었던 것 21.07.24 51 4 12쪽
63 소풍 21.07.23 48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6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5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6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1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5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3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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