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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80일간의 세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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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0
최근연재일 :
2021.06.23 13:4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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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
추천수 :
166
글자수 :
140,076

작성
21.05.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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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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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1일차 - 명문가 (2)

DUMMY

5.


헤르츠 가문의 예배당. 수많은 명문가 자제‘놈’들이 수학여행 가기 전날의 초등학생들마냥, 내게 질문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저격수에게 [ 비전 체크 ] 스킬은 가산점 여부가 있습니까?”


“있으면 써라. 없어도 상관은 없다.”


“아이템!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적어도 됩니까?”


“쓰지 마.”


나는 수많은 질문공세에 일일이 답해주고 난 뒤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 이제 질문 더 없지?”


“정우 님! 저는 저격수에 지원하고 싶은데 치유 스킬도 좀 쓸 줄 아는데 가산점 있습니까?”


“스킬, 스탯에서 쓸 수 있는 건 다 써라! 이상 질문 마감! 앞으로 지원서 쓸 시간 30분 준다!”


“예... 옙!”


안 그래도 시간 없어 죽겠는데, 지원서 작성 요령 알려주다가 또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후우.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목이 타는걸.


“수고하셨어요. 정우 님. 여기 물...”


“오. 고마워.”


마리가 눈치 좋게 물 한 잔을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아든 뒤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근데 마리. 넌 뭐 하냐?”


“네? 뭐 하냐고 하신다면... 물 떠왔는데요...?”


“그게 아니라, 너도 지원서 써야지.”


“네? 저도요? 저도 지원해야 하는 거였나요?”


“뭐? 마리 너가 뭐라도 돼?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


“죄송해요! 죄송해요! 당장 지원서 써 올게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마리는 종이와 펜을 들고 예배당 한 구석으로 달려갔다.


“히잉...”


서러워 보이는 표정 지어도 어쩔 수 없다. 심사는 공정해야 하니까.


꿀꺽- 꼴깍-


“푸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마리가 떠온 물로 목을 좀 축이고 나니까 주위를 살필 여력이 생겼다.


자리에 앉은 대다수가 종이에다가 얼굴을 처박은 상태로 신음을 흘렸다.


“으... 대체 어디 지원해야 하는 거야...”


“아무래도... 치유사가 비겠지? 아니. 헤르츠 가문이 있는데 치유사는 무리인가...”


아니. 내가 지원동기나 비전처럼 거창한 거 쓰라한 것도 아니고 이름, 스킬, 스탯,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


단답형으로 딱 떨어지는 것들뿐인데 그거 쓰는 게 그리 힘든가?


하긴 여태껏 ‘명문가의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걸 누리며 살았으니, 실속 없는 녀석들이 태반 이상이겠지.


실력 있는 놈이라면 벌써-


“다 썼으면 제출해도 됩니까?”


... 제출했을 건데 말이야.


“그래. 가져와라.”


“잘 부탁드립니다. 전설의 용사님.”


콧수염이 인상적인 근육질의 남성이, 단상까지 나와 공손하게 지원서를 건넸다.


내 위인전을 1000번 읽었다는 녀석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


[ 이름 : 라메일 볼티지 ]

지원 분야 : 탱커 ]

성장 과정 : 저는 유서 깊은 볼티지 가문의 출신입니다. 볼티지 가문은 1300년 전 디지털 세계에 거대한 위협이 도래했을 때... ]


부욱-!


나는 ‘지원서였던’ 종이쪼가리를 흩뿌리며 말했다.


“다시 써 와.”


“아악! 정우 님! 제 지원서를 찢으시다니!”


“쓰지 말란 걸 왜 써? 이름, 지원 분야, 스킬, 스탯만 쓰라고.”


그렇게 작은 소동이 한 번 있긴 했지만, 그 이후론 별 일 없이 30분이 지났다.


나는 단상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자. 시간 됐다. 다들 이제 제출해.”


“옙!”


“네에...”


대다수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인 반면, 몇몇은 거의 울상으로 지원서를 냈다. 마리도 그 중 하나였다.


“흐음...”


팔랑- 팔랑-


명문가 자제놈들이 긴장해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들으며, 지원서를 읽기를 10분 정도.


“자. 이제 합격자 발표가 있겠다.”


바로 다시 한 번 단상에 섰다.


“버... 벌써 발표합니까?”


“그래. 한번만 말할 테니까, 자기 이름 호명하면 곧바로 튀어나와.”


“그... 그래도 이런 건 보통 며칠 걸리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물어왔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내겐 고작 80일밖에 시간이 없는데 고작 지원서 확인 따위에 며칠을 쓸 리가 있나.


아무튼 시간이 없으니, 나는 빨리빨리 합격자 발표를 진행했다.


“자. 일단 치유사 계열 합격자는... 마리 헤르츠.”


“훌쩍. 이젠 더 이상 정우 님을 모실 수... 저요?”


예배당 한구석에서 비관하던 마리가, 눈이 똥그래진 채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네. 너요. 빨리 나오기나 하세요.”


“저... 정말 제가 붙은 거예요? 만세! 당연히 떨어질 줄 알-”


“그래. 치유사 계열 지원자가 한 명뿐이더라.”


“...... 그래도 좋아요! 만세!”


마리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달려나오자, 몇몇 좌중들이 웅성였다.


“쳇. 치유사 계열 지원자가 한 명 뿐이라니. 운도 좋네. 아니. 그 헤르츠 가의 천재 영애라면 당연한 건가...”


“... 아냐. 안 쓰길 잘 했어. 어차피 헤르츠 가랑은 경쟁 자체가 안 돼.”


에휴. 그놈의 가문, 가문!


권력 다툼 하다가 내 아바타까지 날려 놓고, 디지털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려 놓고도 아직까지 가문 타령이라니.


아무튼, 가문 타령 하는 녀석들이 아직까지 있다는 건 마음에 안 드는 일이지만 놈들이 웅성인 내용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누가 지원했어도 마리를 이기진 못했을 것이다.


사적인 감정 없이, 마리의 지원서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 지원서 ]

이름 : 마리 헤르츠

지원 분야 : 치유사

스탯 : [ 자가복구(체력) : 51 ] [ 호환성(마력) : 322 ] [ 용량(힘) : 45 ] [ 전송속도(민첩) : 31 ] [ 연산속도(지력) : 315 ]


일단 스탯부터 얘기하자면, 마리의 스탯 평균은 150정도.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평균이 130정도이니, 아주 높은 편이라 볼순 없지만 스탯의 분배가 나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훈련시키지도 않았는데, 호환성과 연산속도가 300이 넘는다니.


이 정도면 5000년 전 함께했던 치유사, [복구의 마녀] ‘안나 헤르츠’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안나는 시작시점에서 350/350이었으니까.


일단 이걸로 스탯은 넘어가고, 다음은 스킬. 스킬이야말로 마리가 갖는 진짜 강점이다.


스킬 : [ 바로가기 lv.2 ] [ 초급 자료구조 복구 lv.Max ] [ 중급 자료구조 복구 lv.Max ] [ 고급 자료구조 복구 lv.1 ] ... [ 새로고침 lv. 3 ]


[자료구조 복구]도 고급 단계인데다가, [바로가기]까지. 이 정도면 스킬 풀도 넓고 전체적인 숙련도도 꽤나 괜찮은 편이다.


게다가 [ 새로고침 lv.3 ].


[새로고침]은 대상에 걸린 상태이상을 회복시키는 스킬인데, 안나는 이 스킬이 없었다.


그래서 [웜]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아예 감염된 부위를 잘라버리고 [고급 자료구조 복구]로 다시 재생시켰지. 끔찍한 기억이다.


결국 [새로고침] 스킬의 존재만으로도, 마리는 어엿한 ‘1인분’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마리. 너 뭐 거짓으로 쓴 건 없지? 스킬이라던가, 스탯이라던가.”


“네? 스탯이요? 네...”


말끝을 흐리는 마리.


수상하긴 하지만, 호환성 레벨 50이 되면 [ 자세히 lv.1 ]을 배울 수 있다.


어차피 그때 가서 조사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일단은 마리에 대한 의심은 보류.


일단 발표나 마저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럼 다음으로 탱커 계열 합격자는... 로빈 옴.”


“말도 안 됩니다!”


내가 합격자 발표를 하자마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을 확인하니, 합격자인 로빈 옴은 아닌 듯했다.


“넌 누구냐?”


“저는 패러데이 가의 니스 패러데이라고 합니다! 정우 님께,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아니. 하지 마라.”


“...”


“로빈 옴. 앞으로 나와.”


“옙!”


철컥!


그제야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단상으로 나왔다.


로빈은 자신의 키와 거의 비슷한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다음으로 저격수 분야와 기술자 분야. 안타깝게도 두 분야의 합격자는 없...”


“옴 가는 배신자의 가문입니다!”


“하...”


탁.


오른손이 절로 이마를 때렸다. 분명 하지 말라고 했건만.


“옴 가는 이 자리에 있는 35개의 가문 중, 5000년 전 유일하게 [오메가] 편에 붙었던 가문!”


“...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마검] 크레이그 옴이 이끄는 ‘검은 거미들’이 디지털 세계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알지. 그 ‘검은 거미들’을 내가 처리했는데.”


“... 아무튼 옴 가문은 절대 안 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배신자의 후예를 선발하시다니,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니스 패러데이에 의견에, 명문가 자제놈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조했다.


... 이 녀석들은 5000년 전의 사건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오지랖인걸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가운데, 또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너희들 다 미친 건가? 어떻게 감히,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웅이신 정우 님께 큰소리칠 수 있는 거지?”


다행히 이번엔 내 편이었다. 그의 이름은 라메일 볼티지. 내 위인전을 1000번 읽었다는 놈이었다.


지원서에 엉뚱한 항목을 적어 넣었다가 종이쪼가리가 된 놈이기도 하고.


“옴 가문이 선발된 걸 보고도 너는 그 소리가 나오나? 라메일!”


“이 녀석들! 오메가가 데이터베이스 성소를 공격할 동안 자기 영지들만 지키려 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큰소리냐!”


“그... 그건 반반 확률이었다!”


“반반 같은 소리 하네! 겁쟁이 녀석들!”


어느새 예배당이 두 진영으로 갈라져 대판 싸우기 시작했다.


왜 디지털 세계가 지금 위기에 빠졌는지, 오메가가 내 아바타를 날릴 동안 이 ‘쓰레기들’이 뭘 했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머리는 아파오고, 혜지는 보고 싶고, 시간은 없고.


일단 빨리 상황부터 정리하려던 찰나.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선발’에서 시작된 거 아닌가?”


예배당 맨 뒷줄에 조용히 앉아 있던, 장발로 한쪽 눈을 가린 남자가 한 마디 던졌다.


지원서 낼 때 본 녀석의 이름은... 아. ‘자말 암페어’로군.


“자말 암페어!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라메일. 너도 알고 있잖아? 현재의 정우 님은 아바타에 [롤백]을 맞고 모든 스킬과 스탯을 잃으신 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약하신 상태다.”


“그... 그래서?”


“그리고 우리는 그런 정우 님을 ‘보호하기’ 위해 모였지.”


“...”


“그런데 지금 정우 님께서 그 중 몇몇을 고르려 하시니까, 이 사단이 난 거라는 거다. 처음부터 전부를 포용하셨다면, 이런 소동이 없었을 거란 말이지.”


그리 말한 자말 암페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전설 속 용사 이정우. 저는 당신을 항상 존경해 왔지만...”


단상 앞까지 나온 자말 암페어.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의 당신은 너무 나약하십니다.”


한껏 분위기를 잡는 자말.


아. 몰라. 시간 없다. 제일 빠른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몇몇만 선별할 것 없이, 여기 있는 모두가 당신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니 당신께선 그저 감사히 보호받으시면 됩-.”


“야. 헛소리 말고 덤벼.”


“예? 잘못들었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자말.


난 단상 위에서 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덤비라고. 니가 누굴 보호한다는 건지, 깨닫게 해 줄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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