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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80일간의 세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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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0
최근연재일 :
2021.06.23 13:4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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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
추천수 :
166
글자수 :
14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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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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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 2일차 - 엔지니어링 베이

DUMMY

9.


헤르츠 가문의 가장 좋은 손님용 방.


나는 퀭한 눈으로 퀸사이즈 2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젠장. 한숨도 못 잤네...”


잠을 설친 이유는 5000년 전 나의 동료, 안나 헤르츠가 남긴 ‘안나의 일기’ 때문.


다른 것 다 떼 놓고, 722일차와 723일차의 일기. 이게 너무 수상했다.


[ 722일 차 : 이럴 줄 알았으면 오메가 토벌 천천히 할 걸. 대체 뭐가 그리 급했다고 열심히 한 거야. 오메가 녀석들이 없으니까... 잠깐.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 했지? ]


[ 723일 차 :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인 것 같아.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몰라.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


수능 국어 100점인 내가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 헤르츠 이게 오메가한테 달라붙은 게 확실하다.


문제는...


“왜 5000년이 지나서 문제가 터진 거지? 안나는 이미 죽었을 거 아냐.”


디지털 세계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다 다르지만, 그래도 길어 봐야 보통 100년.


5000년이 넘게 사는 건 [유우키 대도서관]의 주인인 [유우키 가문]이나 ‘게이밍 아일랜드’의 몇몇 부족 정도가 유일하다.


“혹시 안나가 모종의 이유로 여태껏 살아 있는 거라면...”


똑똑!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한 가운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저에요. 아침 식사를 가져왔어요!”


마리 목소리다.


끼이-


문 앞에는, 두툼한 베이컨과 계란프라이가 담긴 접시를 든 마리가 서 있었다.


“맛있겠죠? 제가 직접...”


“흠흠... 마리 네가 먹어. 나는 아침은 거르는 편이라.”


“히잉...”


헤르츠 가문의 요리는 믿을 수 없다.


달그락달그락-


내가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마리는 테이블에 앉아 나이프질을 하며 말했다.


“아참. 정우 님. 이른 새벽에 자말 암페어를 비롯한 10명 정도가 저희 영지를 떠났어요. 냠냠.”


자말 암페어라면, 어제 나한테 연무장에서 나한테 탈탈 털린 녀석이잖아.


창피해서 도망간 건지,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도망간 건지.


뭐. 지금으로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장 내가 해야 할 건 ‘엔지니어링 베이’로 가는 것이니까.


똑똑-!


“또 누구야?”


“로빈입니다!”


로빈. 로빈 옴. 우리 파티의 탱커.


마침 잘 됐다. 찾아갈 수고를 덜었으니까.


“들어와라.”


“옙!”


끼이-


문을 열고 들어온 로빈은 방을 한 번 둘러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두 분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네! 전 잘 잤어요.”


“난 한숨도 못 잤어.”


“네? 안 피곤하세요? 어젯밤에 그렇게 땀을 흘리셨는데...”


“그럭저럭. 뭐 5000년 전엔 자주 그랬으니까.”


순간 로빈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5000년 전에도! 역시 전설의 영웅! 주군께선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체 뭐가...? 아무튼 로빈. 이리로 와라.”


“옙!”


로빈이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는 동안, 난 과거에 쓰던 아이템들이 담긴 ‘추억상자’를 뒤졌다.


“분명 있었을 텐... 아. 찾았다.”


추억상자에서 내가 꺼낸 건, 파란색 글자가 새겨진 초록색 돌이었다.


식사를 하던 마리는 이 돌의 정체를 아는 눈치였다.


“그건... [링크] 인가요?”


“맞아. ‘엔지니어링 베이’로 가는 [링크]지.”


[링크]는 1회용 소모품으로, 부수면 원하는 장소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돌멩이다.


[ 바로가기 ] 스킬은 한 번 방문하고, 등록까지 한 위치로만 날아갈 수 있었기에 지금 엔지니어링 베이로 가려면 [링크]가 꼭 필요했다.


걸어가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까.


“주군! 그래서 저는 뭘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 로빈 넌 이걸 들어라.”


나는 ‘추억상자’를 가리켰다.


용량 레벨(힘)이 올라가며 인벤토리에다가 물건들을 몇 개 담을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추억상자에는 많은 아이템이 남아 있었다.


“... 옙!”


“굳. 마리 너도 이제 그만 먹... 벌써 다 먹었네.”


“에헤헤. 정우 님도 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 출발이나 하자.”


“네!”


우직-!


[링크]를 부수자, 파란 글자들이 돌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오며 시공간의 균열이 생겼다.


그나저나 ‘엔지니어링 베이’라... 5000년 전 일은 이제 괜찮겠지?


---


슈우우-


[링크]의 효과로, 우리 셋은 눈 깜짝할 새 ‘엔지니어링 베이’에 와 있었다.


‘엔지니어링 베이’의 베이(Bay)는 곧 벵골 만, 혹은 진주만 할 때의 만(灣)이라는 의미.


그리고 앞에 붙은 엔지니어링(Engineering)은 곧...


“와! 이곳이 기술자들이 모여 산다는 엔지니어링 베이군요!”


“... 그래.”


마리 말대로, ‘엔지니어링 베이’는 기술자들의 도시다.


그런 ‘엔지니어링 베이’에 온 이유는 역시, ‘기술자’를 영입하기 위해서다.


‘저격수’ 자리는 공석이어도 상관없지만, ‘기술자’는 공석이면 안 되니까.


띠링-!


[ 업적 달성! ]

[ 업적명 : 녹색 옷이 젤다죠? ]

[ 조건 : ‘링크’를 사용하십시오. ]

[ 보상으로 전송속도 레벨(민첩)이 10 올랐습니다. ]


맞아. 링크 사용도 업적을 주지.


너무 쉬운 조건의 업적이라 까먹고 있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탁 트인 ‘WWW의 바다’를 바라보며 마리에게 일렀다.


“마리. 이곳 ‘엔지니어링 베이’엔 자주 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바로 가기]에 등록해 놓으라고.”


“네! 안 그래도 하고 있어요!”


마리의 [바로 가기] 등록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도시 안쪽으로 이동했다.


거리를 걷는 도중, 기술자들의 도시답게 전문적인 대화가 들려왔다.


“이것 봐! 어제 내가 만든 신종 바이러스인데, 피부에 살짝 닿기만 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아주 치명적인 녀석이라고!”


“흥. 내가 만든 백신이면 1초컷일 것 같은데?”


“뭐. 임마? 어디 한 번 해 볼래?”


디지털 세계의 ‘기술자’는 RPG게임이나 판타지로 치면 마법사에 가까운 존재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하는 일이 많다.


광역 공격 스킬은 기본이고, 보안, 보안 해제, 바이러스 제조, 바이러스 퇴치 등등.


기술자가 맡는 역할이 워낙 많기에, 기술자 없는 파티는 절대 굴러갈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5000년 전 우리 파티에서 가장 많은 일을 했던 것도, 기술자였던 [바이러스 마스터] ‘메이 패킷’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다행인 건. 이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


“이정우다앗-!”


... 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한 번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뭐? 이정우라고?”


“그래! 저... 저 남자! 분명 이정우다! 5000년 전의 그 이정우 말이야! 얼굴이 좀 변하고 키도 커졌지만 확실해!”


“[기술의 재앙]! 야만인 이정우가 나타났다아!”


왜애애애애앵-!


순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커피와 도넛을 팔고 있던 카페도 셔터를 내렸고.


“이정우의 눈에 띄어선 안 돼!”


체크무늬 셔츠만을 고집하는 옷가게도 마네킹을 가게 안으로 들였다.


어디선가 방송도 들려왔다.


띵↘ 딩→ 딩↗ 딩↑


- 아아. 스택 오버플로 타워에서 전파합니다. 현재 D-8 구역에 이정우가 나타났습니다. 해당 구역의 거주민께서는 지금 당장! 이정우를 피해 방공호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D-8 구역에...


그렇게 요란한 소동 이후, 거리가 텅텅 비는 데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우 님... 대체 5000년 전에 이곳에서 뭘 하셨던 건가요?”


“내 위인전에 안 적혀 있어? 내가 엔지니어링 베이에서 한 일.”


“그... 그냥 ‘위대한 용사 이정우는 엔지니어링 베이의 기술자들 중, 오메가에 협력했던 존재들을 벌하였다.’ 정도로만 적혀 있는데...”


“... 거짓말은 아니네.”


말 그대로 거짓말만 아니었다.


다만 그 ‘오메가에 협력했던 존재’가 이 도시에 있던 기술자 전부였다는 것.


그리고 내가 준 ‘벌’로 인해 도시 자체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사소한 사실들이 누락된 것 같지만 말이다.


뭐. 사소한 일인 만큼 무시해도 되는 사항이지만, 마리는 그렇지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이러면... 기술자를 구할 수 없는 거 아녜요?”


“아니. 이 정도는 예상했지. 둘 다 따라와.”


“예에엡!”


“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어딘가로 향했다.


[ 스택 오버플로 타워 ]


나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스택 오버플로 타워’라는 거대한 탑 앞이었다.


판타지 속 마법사들에게 마탑이 있다면, 디지털 세계의 기술자들에겐 스택 오버플로 타워지.


사실상 이 디지털 세계의 모든 첨단 기술이 모이는 곳이기에, 5000년 전 내가 이곳 엔지니어링 베이를 싹 다 날려버릴 때도 이곳만큼은 남겨 두었다.


“정우 님! 저기 문에 뭔가 붙어 있는데요?”


‘스택 오버플로 타워’는 원래 항상 오픈되어 있는 기술 공유의 헌장이지만...


[ 기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무지렁이들 출입엄금 ]


“...”


... 지금은 왠지 굳게 닫힌 철문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종이쪼가리가 하나 붙어 있을 뿐이다.


뭐. 늘 환영만 받을 순 없지.


나는 추억상자를 들고 뒤따르던, 로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로빈.”


“예에엡! 부르셨습니까! 주구운!”


“네 힘이 필요하다.”


“명령만 내리십쇼! [데이탈로스]에 가라면 갈 것이고, [딜리트]를 맞으라면 맞겠습-”


“저 문을 박살내라.”


“예? 잘못들었슴다?”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저 철문을, 네가 몸통박치기로 박살내라고.”


“...... 예엡!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순간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로빈은 추억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자세를 취하고. 숨을 골랐다.


“후우-”


헤르츠 가문에서 파티 선발 때 저격수 지원자들이 하나같이 무능했다면, 탱커 지원자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았다.


애초에 탱커가 위험에 빠지기 쉬운 포지션인 만큼, 준비된 녀석들이 지원한 거겠지.


하지만 그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서도 내가 로빈을 고른 이유는 역시.


“흐으으읍!”


지금 로빈이 시전하려는 스킬, [ 오버히트 lv. 4 ] 때문이다.


[오버히트]는 순간적으로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스킬.


“하아아아압-!”


화르르륵!


그 레벨이 3을 넘어서면 순간적으로 몸에서 불꽃이 일기도 하는데, 지금의 로빈이 딱 그랬다.


“주군의 명을 받들어!!!”


화염에 감싸진 로빈의 다리근육이 부풀어 올랐고.


“가로막는 것들을 박살낸다!!!”


쿠콰콰쾅!


눈 깜짝할 새, 철문에는 중학생 한 명 사이즈의 구멍이 생겼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주... 주군! 제... 제가 해냈습니다!”


철문 반대편에서, 새까맣게 탄 로빈이 만신창이가 된 채 기어나왔다.


“마리. 빨리 쟤 치료해 줘.”


“넵!”


마리가 후다다닥 로빈에게 달려가 치유 스킬을 사용하려던 찰나.


“고... 고맙습니다! 마리 씨우웨에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악!”


굳이 묘사하지 않아도 되는 헤프닝이 잠시 벌어졌다.


뭐. 마리도 [오버히트]엔 ‘메스꺼움’이라는 패널티가 붙는다는 사실을 하나 깨달았을 테니, 좋은 경험이 되었겠지.


나는 ‘스택 오버플로 타워’를 향해 한 발 내딛었다.


“그럼 뭐. 이제 이 탑의 늙은이들을 만날 차례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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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4일차 - 재회(4) 21.06.22 16 3 13쪽
24 23. 3일차 - 재회 (3) 21.06.21 14 3 11쪽
23 22. 3일차 - 재회 (2) +1 21.06.03 50 7 11쪽
22 21. 3일차 - 재회 (1) +1 21.06.02 36 6 11쪽
21 20. 3일차 - 감금 (3) 21.06.01 27 7 14쪽
20 19. 3일차 - 감금 (2) +1 21.05.31 32 5 12쪽
19 18. 3일차 - 감금 (1) +1 21.05.28 38 6 12쪽
18 17. 2일차 - 백업술사 (3) +2 21.05.27 35 6 18쪽
17 16. 2일차 - 백업술사 (2) +1 21.05.26 35 7 14쪽
16 15. 2일차 - 백업술사 (1) +1 21.05.25 37 6 12쪽
15 14. 2일차 - 유우키 대도서관 +1 21.05.24 39 7 12쪽
14 13. 2일차 - 크랙 +2 21.05.23 45 5 12쪽
13 12. 2일차 - 철벽 21.05.22 35 5 12쪽
12 11. 2일차 - 재회 21.05.21 33 5 12쪽
11 10. 2일차 - 원로원 21.05.20 37 6 13쪽
» 9. 2일차 - 엔지니어링 베이 21.05.19 47 7 12쪽
9 8. 1일차 - 안나의 일기(2) 21.05.18 43 7 14쪽
8 7. 1일차 - 안나의 일기(1) +1 21.05.17 48 5 13쪽
7 6. 1일차 - 불릿 타임 21.05.17 46 5 14쪽
6 5. 1일차 - 명문가 (2) 21.05.15 53 6 12쪽
5 4. 1일차 - 명문가 (1) 21.05.14 63 6 12쪽
4 3. 1일차 - 누구나 헤매는 숲 21.05.14 87 6 12쪽
3 2. 1일차 - 버스 안에서 +1 21.05.13 111 6 12쪽
2 1. 0일차 - 운수 좋은 날 +2 21.05.12 150 13 9쪽
1 프롤로그 +3 21.05.12 180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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