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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80일간의 세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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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0
최근연재일 :
2021.06.23 13:4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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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
추천수 :
166
글자수 :
14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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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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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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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18. 3일차 - 감금 (1)

DUMMY

18.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왠지 춥군요.”


동굴 벽 너머에 숨겨져 있던 비밀 연구실은 정말 깨끗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이곳저곳 비치되어 있는 실린더, 유리관, 금속 케이블, 그리고 갖가지 실험 기구들마저도 전부 깔끔한 상태.


그 말은 즉슨-


“최근까지 쓰였던 연구실이네.”


“형님. 안에 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일단 조심해야겠...”


“주군. 캐비닛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꽈직!


나와 리그베의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로빈이 캐비닛 하나를 거의 잡아뜯듯 열었다.


경첩이 달랑거리는 가운데, 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낸 로빈이 신난 표정으로 달려왔다. 녀석의 손에는 혓바닥처럼 생긴 무언가가 담긴 약병이 들려져 있었다.


“주군! 인공 영약입니다!”


“... 굿.”


“굿!”


[ 러브 젤리 ]

[ 누군가의 혓바닥을 상상하며 만든 인공 영약. 먹으면 달콤한 키스를 하는 느낌에 불끈불끈해진다.


복용 시 효과 : 영구적으로 용량 레벨(힘) + 3 ]


인공 영약답게 엄청 대단한 효과는 없지만, 그래도 영약은 영약.


순간 이 비밀 연구실의 주인이 아직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됐지만 그것도 잠시.


“그 때 일은 그 때 생각하지 뭐. 냠.”


나는 혓바닥처럼 생긴 젤리를 입 안에 넣었다. 이것저것 따지기엔 스탯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한 상황이니까.


“형님. 맛은 어떠십니까?”


“...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약간 본능적으로 역하네. 이게... 입 안에서 자꾸 꿈틀대. 우욱...”


“... 거기까지만 듣겠습니다.”


내가 [러브 젤리]와 혓바닥 사투를 벌이는 반면, 로빈은 연구실을 거의 해체할 기세로 뒤지고 있었다.


“하압!”


꽈지지직!


로빈은 잠겨 있는 캐비넷들은 다 경첩채로 뜯어냈고,


쿵!


열리지 않는 서랍들은 그냥 옆면을 부숴버려서 그 안을 살폈다.


이 소동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뭐 연구실의 주인은 지금 부재중인 모양이다. 아니면 로빈이 무서워서 숨었거나.


그렇게 로빈은 압수수색하듯 연구실을 뒤지고, 나는 혓바닥 사투를 벌이길 약 3분.


띠링-!


[ 용량 레벨(힘)이 3 올랐습니다. ]


절대 삼켜질 수 없다는 듯 입 안에서 자꾸만 도망치던 [러브 젤리]가 결국 목구멍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기분 좋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겨... 겨우 삼켰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주군! 저도 대충 다 뒤졌습니다!”


순간 고개를 돌리자, 깔끔하던 연구실은 이미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다 박살이 나 있었다.


그리고 폭격의 주역, 로빈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오더니.


“아무래도, 연구실에 남은 건 아까의 인공 영약과 이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라 말하며 무언가를 건넸다.


연구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펄럭-


두루마리를 받아들자마자 펼쳐 보았지만, 그 안은 아무것도 적혀 있은 깔끔한 백지.


이런 이질감 넘치는 물건을 그냥 연구실에 뒀을 리는 없으니, 무슨 특이한 장치라도 있나... 하고 살펴보려던 찰나.


띠링-!


창이 떠오를 거라는 알림음이 울렸다.


[ 대상엔 보안 스킬 ‘1일 1공개 lv.Max’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


“1일 1공개?”


“흐음. 처음 들어보는 스킬이군요.”


나도 모르고, 몇 천 년을 산 존재인 리그베도 모르는 보안 스킬이라.


아무래도 이 연구실의 주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스킬인가 보군. 허나 이름이 워낙 직관적이라, 스킬의 효과는 대충 유추각 가능했다.


띠링-!


[ ‘1일 1공개 lv.Max’의 효과에 따라, 24시간마다 다음 내용이 공개됩니다. ]

[ 현재 열람 가능한 기록 ( 1/70 ) ]

[ 1번 기록을 열람하시겠습니까? ]


‘열람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창이 떠오르자마자, 순간 리그베와 로빈의 시선이 나로 향했다.


난 사실 내용이 별로 안 궁금했지만, 로빈과 리그베가 말만 안 했을 뿐 엄청 궁금하다고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 열람한다.”


[ 열람 요청 승인! ]

[ 1번 기록을 로딩합니다. ]


스으으-


순간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던 양피지에서, 점차 글자들이 떠올랐다.


- 나는 이곳에 표류했다. 그것도 홀로.


뭔가 분위기는 괜찮게 시작하는 글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창이 떠올랐다.


[ 1번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

[ 2번 기록 열람을 원하신다면, 24시간 후에 다시 펼치십시오. ]


“...”


그 순간, 이 두루마리의 행보가 결정됐다.


[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보관했습니다. ]


---


슈우우-


리그베의 [바로가기]를 타고 다시 유우키 가의 영지로 돌아왔을 땐, 이미 보름달이 중천이었다.


허나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바로가기] 포탈이 열린 위치에선 한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우 님! 대체 어딜 갔다 오신 거예요...”


그 정체는 마리. 이곳 유우키 가의 영지에 놓고 갔던 두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잠시 누구 좀 보고 왔어.”


“... 누구요? 아니. 그보다 왜 혼자 갔다 오신 거예요?”


“혼자 가긴 무슨. 로빈이랑 리그베랑 같이 갔다 왔는데?”


“그... 그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 계속 방문 두들겼는데 아무 반응도 없으셔서... 어어? 정우 님!”


나는 마리를 무시하고 나미유의 방으로 향했다. 뭐. 마리가 징징대는 건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으니-


“정우 님. 이... 이번엔 또 어디 가세요?”


“... 나미유 만나러.”


“이... 이 밤중에 나미유 씨를 만나러 가신다고요? 왜... 왜요?”


“그야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니.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구... 궁금할 수도 있죠!”


갑자기 급발진해서 소리를 빼액 지르는 마리.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마리를 노려봤다.


“야. 마리 너 미쳤냐?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서 구르고 있는 건데?”


“아... 아니... 그게... 죄송해요...”


나의 갈굼에 고개를 푹 숙이는 마리.


흐음. 당장은 다시 고분고분해졌지만, 앞으로도 마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곤란한데.


나의 계획은 80일 안에 이곳 디지털 세계를 정복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말 잘 듣는’ 녀석들이 필요한데, 말 잘 듣던 마리가 대들기 시작하면 계획이 초장부터 틀어진다.


그나저나 분명 이곳 웹 대륙으로 넘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멀쩡했는데, 얘가 왜 갑자기 이러지? 설마...


“너 혹시 오늘...”


“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그보다. 빨리 얘기해 주세요. 나... 나미유 씨랑 무슨 얘기 하시려고요?”


“... 안나 이야기.”


“아... 안나 님이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마리. 나는 나미유의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 너도 안나의 일기 봤잖아.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나 걔가 오메가한테 붙은 것 같거든.”


“아... 안나 님이 오메가한테 붙었다고요? 안나 님은 그러실 분이 아닌...”


“야. 마리 니가 나보다 안나 잘 알아?”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나 님은 5000년 전에 정우 님과 함께 오메가를 토벌한 주역이신데...”


“뭐.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은 흔하지. 그보다, 줄리는?”


“... 아까까지만 해도 저랑 같이 기다리시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하시면서 방에 들어가셨어요.”


... 왜 머리가 아프겠어. 숙취지.


리그베의 바에서 줄리가 술을 마신 게 불과 8시간 전의 일이다.


역시 술을 못 먹게 해야 한다. 내일은 꼭 일러 둬야지.


아무튼 마리와 투닥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미유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마리. 근데 넌 왜 여기까지 따라오냐?”


아주 ‘무거운’ 혹을 하나 단 채로 말이다.


“저... 저도 정우 님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안나의 일기’때도 그렇고, 마리는 안나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뭐. 둘 다 같은 가문에, 같은 치유사. 또 안나가 그쪽 분야에선 전설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으니 이해할 수 있다.


“난 상관없지만, 나미유가 싫다면 나가야 할 걸.”


“... 네!”


마리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나미유의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그러나 방 안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그러나 역시, 방 안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설마... 자나?”


“시... 시간이 시간이니 주무시고 계실 지도...”


“아니. 몇 시나 됐다고 벌써 잔단 말이-”


[ 열두 시! ]


순간 마리의 가슴 근처에서 떠오르는 팝업창. 지정된 시간마다 알림을 울려주는 [알람 브로치]의 효과였다.


“여... 열두 시라네요...”


마리가 가슴팍의 브로치를 떼며 중얼거리는 와중에, 나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아야만 했다.


“12시라면... 벌써 3일차...”


아무리 생각해도 80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빠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어딘가로 향해 손을 뻗었다.


“어어? 정우 님. 뭐... 뭐 하시는 거예요?”


“뭐 하긴. 자면 깨워야지. 나는 시간이 없다고.”


문고리를 향해 말이다.


끼이-


나미유는 정말 자고 있던 것인지, 방 안은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저... 정우 님. 아무리 정우 님이 나미유 씨와 특별한 사이시라고는 하지만, 여자 방에 멋대로 들어가는 건...”


마리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하는 말투로 운을 띄웠지만, 그녀의 말이 맺어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불을 키는 것과 동시에.


“조금... 아닌... 것... 같은데...”


온통 내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나미유의 방을 보고 말문이 턱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뭐죠...? 심지어 대부분이... 5000년 정우 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사진인데...”


뭐긴 뭐야. 정보상인 유우키 가문의 비전 스킬, [백도어]로 찍은 사진이겠지.


내가 괜히 나미유를 ‘오메가 따위보다’ 훨씬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두렵더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은 1초라도 빨리 안나의 행방에 대해 듣는 것.


입을 다물지 못하는 마리를 뒤로한 채, 나는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지 나미유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꿈틀대고 있었는데, 이불 안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나미유는 내 여자다.

- 그리고 내 여자를 건드린 죄로, 넌 죽을 것이다.

- 나미유는 내 여자다.

- 그리고 내 여자를 건드린 죄로, 넌 죽을 것이다.


... 소리의 정체는 계속 반복되는 내 목소리. 이건 또 언제 녹음한 거야.


아무튼 착한 어린이는 일어나야할 때였다. 난 이불을 확 젖히며 말했다.


“야. 나미유 그만 자고 일어-”


빠악-


털썩-


순간 턱에 직격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 과도한 충격으로 곧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

[ 혼수상태까지 - 00 : 00 : 09 ]


원래는 ‘보여야’할 알람도 ‘들리는’ 모드로 전환된 가운데, 나미유가 침대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이건 다 오라버니 잘못이에요. 사진만 찍으려 했는데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녀의 중얼거림에, 저 멀리서 마리가 덜덜 떠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 나미유 씨. 이러시면 안 돼요...”


“미안해요. 마리 씨.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하지만, 역사적인 순간의 ‘증인’이 돼줘야겠어요.”


저벅- 저벅-


[ 과도한 충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


나미유가 마리를 향해 다가가는 발소리와 함께, 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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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4일차 - 재회(4) 21.06.22 16 3 13쪽
24 23. 3일차 - 재회 (3) 21.06.21 14 3 11쪽
23 22. 3일차 - 재회 (2) +1 21.06.03 50 7 11쪽
22 21. 3일차 - 재회 (1) +1 21.06.02 36 6 11쪽
21 20. 3일차 - 감금 (3) 21.06.01 27 7 14쪽
20 19. 3일차 - 감금 (2) +1 21.05.31 32 5 12쪽
» 18. 3일차 - 감금 (1) +1 21.05.28 38 6 12쪽
18 17. 2일차 - 백업술사 (3) +2 21.05.27 35 6 18쪽
17 16. 2일차 - 백업술사 (2) +1 21.05.26 35 7 14쪽
16 15. 2일차 - 백업술사 (1) +1 21.05.25 37 6 12쪽
15 14. 2일차 - 유우키 대도서관 +1 21.05.24 39 7 12쪽
14 13. 2일차 - 크랙 +2 21.05.23 45 5 12쪽
13 12. 2일차 - 철벽 21.05.22 35 5 12쪽
12 11. 2일차 - 재회 21.05.21 33 5 12쪽
11 10. 2일차 - 원로원 21.05.20 37 6 13쪽
10 9. 2일차 - 엔지니어링 베이 21.05.19 46 7 12쪽
9 8. 1일차 - 안나의 일기(2) 21.05.18 42 7 14쪽
8 7. 1일차 - 안나의 일기(1) +1 21.05.17 47 5 13쪽
7 6. 1일차 - 불릿 타임 21.05.17 46 5 14쪽
6 5. 1일차 - 명문가 (2) 21.05.15 53 6 12쪽
5 4. 1일차 - 명문가 (1) 21.05.14 63 6 12쪽
4 3. 1일차 - 누구나 헤매는 숲 21.05.14 86 6 12쪽
3 2. 1일차 - 버스 안에서 +1 21.05.13 111 6 12쪽
2 1. 0일차 - 운수 좋은 날 +2 21.05.12 150 13 9쪽
1 프롤로그 +3 21.05.12 180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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