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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80일간의 세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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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0
최근연재일 :
2021.06.23 13:4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355
추천수 :
166
글자수 :
140,076

작성
21.06.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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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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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1. 3일차 - 재회 (1)

DUMMY

21.


새벽녘에 유우키 대도서관을 떠난 우리는, 정오나 돼서야 제국 국경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크롬 카펫] 위에서 기지개를 쭉 폈다.


“하아. 쓸데없이 날씨는 좋네.”


“... 그러게요...”


이 디지털 세계의 신적 존재이자 태양인 [파이썬]이 적당히 쨍쨍한 것이, 이런 날에 혜지랑 딱 한강 가서 자전거 타면 딱 좋-


“저... 정우 님...”


좋은 생각을 하려 하면 꼭 방해를 하는 마리.


“뭐.”


“저... 블로거스 타운이라는 곳이 원래 이런 곳인가요...?”


마리의 손가락 끝은 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이 머저리들아! 빨리 움직여! 너희들이 노예라는 걸 인지하란 말이다!”


짜악! 짝-!


채찍을 맞으며 돌덩이들을 옮기고 있는 노역자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일하지 않는 자! [데이탈로스]에 처박힐지어니!”


“하루의 할당량을 채우지 않는 자는! 참회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짜악-! 짝!


경쾌한 채찍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돌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픽픽 쓰러졌다.


나는 다시금 마리 쪽으로 시선을 돌려, 퉁명스레 대답했다.


“블로거스 타운이 원래 이런 곳이냐고? 나야 모르지.”


“... 정우 님은 그래도 포털 제국에 대해서 좀 아시잖아요.”


“알지. 5000년 전 기준으로.”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5000년 만에 돌아온 내가 여기가 원래 이런 곳인지 어떻게 알아.”


“... 네...”


마리는 다시 고개를 푹 숙여, 지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측은지심이 담겨 있는 눈빛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자. 마리야. 혹시 저기 아래서 채찍 맞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니? 막 도와주고 싶고?”


“... 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마리야. 난 저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네? 왜요?”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마리.


난 해맑은 웃음과 함께,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편안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누가 갑자기 디지털 세계로 불러오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하고 있잖아?”


“...”


“그러니까 저기 있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쓸데없는 동정심 발휘할 거면, 차라리 그 마음을 나를 위해 써줘. 날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알겠지?”


“... 네.”


마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자, 대화를 듣고 있던 줄리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이정우 마리 잘 멕이네. 이거 전설의 용사가 아니라 쓰레기 용사-


쾅!


[ 크롬 카펫이 과도한 충격으로 인해, 다운되었습니다. ]

[ 비상 착륙! ]


---


띠링-!


[ 업적 달성! ]

[ 업적명 : 날개가 없어 ]

[ 조건 : ‘추락’을 경험하십시오. ]

[ 보상으로 용량 레벨(힘)이 10 올랐습니다. ]


추락하자마자 떠오른 업적 알림창. 아는 업적이다.


아마 5년, 아니 5000년 전에는 이걸... 워닝 산맥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얻었었지?


그래. 성인사이트롤과 만화사이트롤 무리 속에 홀로 떨어지는 바람에, 업적을 얻자마자 보상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로 싸워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크흐흐... 이게 누군가 했더니 아바타를 잃고 머저리가 된 영웅 이정우 아니야.”


“후후... 이거 3계급 특진은 따 놓은 당상이군.”


... 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긴 하다.


우리가 탄 [크롬 카펫]이 추락한 곳은 블로거스 타운의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밟기가 무섭게, 여덟 명 정도의 괴한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녀석들의 옷차림에 새겨진 ‘Ω’마크. 오메가였다.


“후후... 블로거스 타운이 우리에 오메가의 손에 들어온 건 몰랐나 보지?”


“이정우 네놈도 여기서 끝이다. 킬킬.”


흐음. 블로거스 타운이 오메가의 손에 들어왔다라...


사실 아까 건설현장에서 채찍질하던 녀석들이 오메가의 ‘교리’를 읊고 있던 것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렇다면 강제 노역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블로거스 타운의 시민들이었나 보군.


아니. 그보다 도시 하나가 먹혔는데 대체 포털 제국 기사단은 뭘 하고 있-


“흐흐... 다들 알고 있지? 여자들은 죽이던가 노예로 만들고, 이정우는 군단장님께 상납하는 거다!”


“...”


“이 자식들!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로빈이 칼을 빼들고 놈들과 대치하는 동안, 나는 줄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탱커, 치유사, 아바타 초기화된 쓰레기 용사.


지나치게 수비적인 우리 파티의 화력을 보강해 줄 수 있는 건 줄리의 [고급 바이러스 제조]스킬로 만든 바이러스뿐이니까.


허나 줄리는.


“...?”


멀뚱멀뚱 내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가위를 내며 내 얼굴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 뭐 하냐?”


“아니. 이 손의 의미를 모르겠어서.”


“... 싸워야 하니까 바이러스 달라고.”


“바이러스? 지금 없는데?”


“뭐?”


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줄리는 당당하게 가위를 흔들며 대답했다.


“술 먹으러 가는데 누가 바이러스를 들고 다니냐? 시제품이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빼곤 다 엔지니어링 베이에 있는 연구실에 두고 왔어. 새로 만들어야 해.”


“... 그렇다면...”


나는 다시 시선을 오메가 쪽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이미 한쪽 팔에다가 주사기를 꽂은 상태였다.


“전원! 크랙 투여 준비!”


“준비!”


“전원 준비됐으면! 크랙 투여 실시!


“실시이!”


쭈우욱!


주사액이 녀석들의 팔뚝에 들어감에 따라, 녀석들의 신체가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크랙]의 약점 중 하나인, ‘무방비한 변이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지금이 기회.


“주군!”


순간 소리치며 뒤돌아보는 로빈. 나는 녀석에게 최선의 판단을 전했다.


“로빈. 튀자!”


“... 옙!”


지금의 우리 파티는, 바이러스 없으면 못 이긴다.


“로빈! 네가 줄리를 챙겨! 마리! 넌 나한테 업혀!”


“네? 네!”


“줄리 씨! 업히세요!”


“이거 용사 파티 맞아? 맨날 도망만 다니고...”


우리 파티의 가장 큰 문제는, 치유사와 기술자의 육체능력이 아주 시궁창 수준이라는 것이다.


줄리와 마리의 전송속도 레벨(민첩)은 각각 55, 31.


두 사람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줬다간 100% 변이가 끝난 오메가한테 잡힌다.


“줄리 씨! 업히세요!”


두 사람이 말없이 우리의 등에 업혔을 때, 나는 슬쩍 오메가 쪽을 살폈다.


구루루룩-


그르륵-


‘무방비한 변이 상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허억- 허억-”


“...”


“허억! 허억! 허억!”


“... 정우 님. 그만 하세요.”


“그럴까?”


3일간 꾸준히 업적들을 달성해 온 결과, 현재 내 용량 레벨(힘)은 200을 조금 넘은 상태.


아무리 마리가 묵직-하다지만, 지금은 어린애보다도 가볍게 느껴질 뿐이다.


아무튼 마리를 업고 달리려니까, 줄리를 업은 로빈이 물어왔다.


“그런데 주군! 저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중앙 광장!”


아까 추락하면서 블로거스 타운의 정경을 얼추 살폈는데,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중앙 광장만큼은 확실히 5000년 전의 형태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분명 ‘그곳’도 멀쩡하게 보존돼 있을 터.


숨기에는 ‘그곳’만한 게 없다.


“크어어어!”


“멈춰라! 이정우!”


“제 2군단장님께서 네 몸을 원하신다!”


어느새 변이를 마친 채 쫓아오는 오메가들.


[크랙]으로 신체능력을 끌어올려서인지, 아니면 나와 로빈이 누구를 업고 뛰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격은 분명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면 붙잡히는데...


“오. 인벤토리에 이런 게 있었네.”


순간, 줄리가 쫓아오는 오메가들을 향해 체스판처럼 생긴 격자무늬 판을 던졌다.


손수건 사이즈의 격자무늬 판은 날아가며 점점 커지더니, 길목을 딱 틀어막았다. 정가운데의 칸에는 ‘8’이라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소대장님?”


“잠깐! 건드리지 마라! 그건 지뢰-”


툭.


[ 땡! 지뢰입니다. ]


콰쾅!


무의식적으로 오메가 병사의 손이 8 주변의 칸에 닿자마자, 격자판에서 폭발이 일었다.


[지뢰 찾기]였다. 나는 계속해서 달리며 물었다.


“... 고급?”


“노노. 초급.”


“... 젠장!”


쿵쿵쿵!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금 오메가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도시를 울리기 시작했다.


위력도, 묶어둘 수 있는 시간도 한참 모자란 [지뢰 찾기] - ‘초급’ 다운 당연한 결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이미 목적지, 그러니까 블로거스 타운의 중앙 광장에 도착한 상태였으니까.


딱히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로빈이 줄리를 내렸고, 마리도 알아서 내렸다.


“주군! 이제 어떻게 할까요?”


“따라와!”


난 그리 말하며 분수대를 향해 달려갔다. 셋이 말없이 뒤따랐다.


철퍽! 철퍽!


난 분수에 고여 있는 물들을 헤치며, 분수대의 중앙에 있는 나는 오줌 누는 소년 동상까지 다가갔다. 그리고는.


물이 나오는 부분을 잡았다.


“정우 님...”


“엄마. 남사스러워라.”


줄리가 음흉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 대상에는 ‘숨김 파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 ‘숨김 파일’을 실행하고 싶으시면 보안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


“어둠이 뒤덮인 거리에서 우리는 함께 걸었다!”


중2병 시절에 설정한 보안 코드였기에 그 의미도 모를 문장을, 나는 부끄러울 새도 없이 소리쳤다.


그러자 내 말에 반응하며, 다시 한 번 창이 떠올랐다.


띠링-!


[ 보안 코드 인증 완료! ]

[ ‘숨김 파일’ - ‘포탈_하수구’가 열립니다. ]


“저기 있다!”


“놈을 잡아!”


어느새 중앙 광장까지 다다른 오메가가,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파티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얘들아. 조심해라.”


“네? 그게 무슨 소리세- 꺄아아악!”


마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이 고여 있던 바닥이 꺼지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지하로 추락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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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 4일차 - 재회(5) +1 21.06.23 14 4 11쪽
25 24. 4일차 - 재회(4) 21.06.22 16 3 13쪽
24 23. 3일차 - 재회 (3) 21.06.21 14 3 11쪽
23 22. 3일차 - 재회 (2) +1 21.06.03 50 7 11쪽
» 21. 3일차 - 재회 (1) +1 21.06.02 37 6 11쪽
21 20. 3일차 - 감금 (3) 21.06.01 27 7 14쪽
20 19. 3일차 - 감금 (2) +1 21.05.31 32 5 12쪽
19 18. 3일차 - 감금 (1) +1 21.05.28 38 6 12쪽
18 17. 2일차 - 백업술사 (3) +2 21.05.27 35 6 18쪽
17 16. 2일차 - 백업술사 (2) +1 21.05.26 35 7 14쪽
16 15. 2일차 - 백업술사 (1) +1 21.05.25 37 6 12쪽
15 14. 2일차 - 유우키 대도서관 +1 21.05.24 39 7 12쪽
14 13. 2일차 - 크랙 +2 21.05.23 45 5 12쪽
13 12. 2일차 - 철벽 21.05.22 35 5 12쪽
12 11. 2일차 - 재회 21.05.21 33 5 12쪽
11 10. 2일차 - 원로원 21.05.20 37 6 13쪽
10 9. 2일차 - 엔지니어링 베이 21.05.19 47 7 12쪽
9 8. 1일차 - 안나의 일기(2) 21.05.18 43 7 14쪽
8 7. 1일차 - 안나의 일기(1) +1 21.05.17 48 5 13쪽
7 6. 1일차 - 불릿 타임 21.05.17 46 5 14쪽
6 5. 1일차 - 명문가 (2) 21.05.15 53 6 12쪽
5 4. 1일차 - 명문가 (1) 21.05.14 63 6 12쪽
4 3. 1일차 - 누구나 헤매는 숲 21.05.14 88 6 12쪽
3 2. 1일차 - 버스 안에서 +1 21.05.13 111 6 12쪽
2 1. 0일차 - 운수 좋은 날 +2 21.05.12 151 13 9쪽
1 프롤로그 +3 21.05.12 181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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