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인연(2)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추석 끝나면 중간고사 시작되는 거 알지?”
“괜히 추석이라고 농땡이 부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네!!!”
담임선생님의 훈화를 마치고 나가시자 학생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9월 25일 금요일 그리고 내일부터는 추석 연휴다.
“야야야! 특선영화 뭐 하는지 좀 줘봐”
“용돈 받으면 나이O 에어 신상 살 거야.”
“울 집에 마지막 날 비어, 그러니 그 날 뭉치자.”
저마다 흥분과 설렘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연휴의 계획을 만드느라 종례 후의 시간은 더욱 왁자한 장터가 되어 있었다.
조용히 가방을 정리하던 도일은 뒷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인상을 구겼다.
‘드르륵~ 쾅’
‘도기훈 일당이 여기엔 왜?’
일순간 정적이 교실을 집어삼켰다.
50여 명의 고삐리 학생들이 왕왕대던 교실의 소란이 한순간 멈춘 것을 상상해 보라.
정적,
그것은 차라리 공포였다.
도기훈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박춘식이 맨 앞으로 나서며
“한도일이, 일어나라. 같이 가자.”
“어...디로?”
도일이 주뼛거리며 주저하자
녀석은 도일의 목을 어깨동무하듯 둘러치며 걸음을 옮겼다.
“자슥이, 가자면 가는 거지 뭔 말이 많아”
그런데 신기했다.
방학 동안 현수형과 미친 듯이 운동을 했기 때문인지
박춘식이 목을 둘러 끌고 가는 힘과 강도가 왠지 예전보다 약하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만만하게 느껴졌다.
‘그래, 가보자. 가보면 무슨 일인지 알겠지.’
도일은 섣부른 추측보단 조심스러운 확인을 하기로 했다.
***
삼진고에는 일진들만의 전용 장소가 있다.
‘소각장’과 체육관 비품보관 ‘창고’ 이다.
그 중 ‘창고’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교실정도 크기인데 가운데에 철제 비품 거치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뒤편은 그야말로 천혜의 아지트였다.
철제 거치대 아래편으로 도구함을 밀어내자 꽤 큼지막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웬만한 아파트의 거실처럼 꾸며져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벽쪽에 3인용 소파가 디귿 모양으로 배치된 가운데에 도기훈이 앉아 있었다.
“도일아! 이리와”
평소답지 않은 친근한 음성에 도일은 살짝 움찔 거렸다.
“부탁 하나 하자.”
“뭐...언데.”
“다른 것이 아니고, 추석 다음날 니 동생 좀 소개해줘.”
‘이게 무슨 말인가? 저 자식이 지금 겨우 중2인 내 동생을 소개해 달란다.’
“주변에 여상, 여고 고삐리들은 전부 발랑 까져서 재미도 없고, 사귀자니 모양도 빠지고···.”
“니 동생, 공부도 인물도 그렇게 좋다며”
“자랑만 하지 말고 소개해주라. 내가 잘 함 사귀어볼게”
“그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냐? 크크크”
‘퍼~억’
순간 박춘식의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
“이 새끼가 대답이 없어.”
“야! 기훈이가 너 동생땜에 볼륨 조절해서 말해주니 수신이 잘 안돼?”
안면을 감싸자 다시 왼손을 들어 뒤통수를 가격한다.
‘철~썩’
“내가 니 동생 잡아먹냐?”
“새끼가 중호한테는 잘도 소개시켜 줬더만.”
“왜? 난 안 되겠냐?”
주변을 둘러싼 일진 패거리들이 낄낄거리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야! 그래도 내가 중호보단 인물도 훨 잘생기지 않았냐?”
“근데, 중호시키 니 동생 데려오라고 하니까 끝까지 게기는 바람에 골로 간 거잖아.”
“너한테는 그러기 싫으니 알아서 잘하자.”
‘저 말은 결국 중호가 도경이 지키려고 끝까지 맞섰고, 결국 저 녀석들 때문에 ···.’
결국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중호의 억울한 죽음을,
이 더러운 녀석들에게 확인하고 나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여기서 들이박고 끝낼까?’
‘아니야, 숫자도 불리하고 내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잖아.’
‘참자, 참고 준비해서 현수형에게 도움을 청해서 내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버티자 도기훈이 다가오며 말을 마쳤다.
“알았지 도일아 9월 28일 월요일 오후 3시 이곳으로 오면 된다.”
***
체육관 한 구석에 샌드백을 열심히 두드리던 사내.
어딘지 어설퍼 보였지만 독기만큼은 주먹에 서려 있어 타격음은 거의 음향 수준이었다.
‘팡, 파방’
“도일아! 샌드백하고 웬수졌냐?”
“현수형! 그렇지 않아도 형을 기다렸어요. 혹시 잠시 시간 되세요.”
“응, 시원한 음료 어때?”
“좋아요. 제가 살게요”
도일은 현수와 운동을 가벼이 마친 뒤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렀다.
음료를 마시며 도기훈과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야기했다.
“어차피 한번은 부딪히려고요.”
“이왕이면 철저히 준비해서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결착을 지을까 합니다.”
“그럼 형이 어찌 도와줄까?”
“형이 저와 함께 싸움에 나서는 건 반대에요.”
“·········”
“그냥 제가 도기훈과 남자대 남자로 한번 붙어 보면 어떨까 해요.”
“그 녀석이 그런 낭만이 있을까? 내가 듣기엔 그냥 양아치 같은데?”
도일은 현수형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래도 믿어보고 싶었다.
도기훈이 일진이라도 아직은 학생이고 학창시절의 낭만은 있을 거란 기대를···.
“형! 도와주실 거죠?”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그럼 이렇게 도와주시면 돼요.”
도일은 자신의 계획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2015년 9월 28일 오후 1시
도일은 부모님께 운동을 다녀온다고 인사드리고 집을 나섰다.
그전에 동생에게 추석 용돈을 나눠주며 당부를 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집 밖을 나가면 안 된다고, 오빠 부탁이니 꼭 들어달라고 말이다.’
동생에게 맹세를 받고 나서야 맘이 편해짐을 느꼈다.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각오를 다진 그의 주먹이 더욱 다부져 보였다.
‘띠리리’
‘띠리리’
“여보세요”
‘나다 도기환!’
“어, 그래”
‘오늘 3시 알지?’
“어, 어”
‘늦지마라. 늦으면 내가 많이 화낼거 같거든. 이따 보자’
“······”
도일은 잠시 전화를 쳐다보다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기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저에요. 저······ 지금 움직이는 중입니다.”
“어디에서 만날까요?”
“네, 네, 어딘지 압니다. 그리 가겠습니다.”
어딘지 공손한 투의 전화였다.
그러나 걸어가는 발걸음은 왠지 비장해 보였다.
***
학교 정문앞.
추석 연휴를 맞아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수위실은 점심식사의 식곤증을 견디지 못한 나이든 경비의 수면으로 추석 특선영화만이 티브이를 통해 왕왕 되고 있었다.
어느 학교에나 개구멍은 있다.
도일은 개구멍을 통해 조심히 담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2: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체육관을 바라보니 체육관의 측면을 돌아가는 코너 구석에 서너 명 정도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도일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심호흡했다.
‘이제, 매듭을 짓자.’
그런 생각에 미간이 좁혀지며 굳은 의지가 얼굴에 나타나는 관상을 만들어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발을 내디딜 때마다 중호의 얼굴이 보였다.
‘친구야! 지켜봐.’
‘내가 너를 대신에 저 녀석을 응징할 테니···.’
체육관 뒤편에는 창고로 들어가는 다른 출입문이 있었다.
문 앞에 당도하자 박춘식이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열어준다.
“근데 동생이랑 같이 오는 거 아니냐?”
“으, 으응. 시간 맞춰서 올 거야.”
창고 안은 햇살을 받아 어둡지는 않았으나 형광등을 켜지 않아 햇살이 드리운 그림자로 묘한 음영이 만들어졌다.
아마도 당직 선생님이 올까 봐 전기는 아예 사용을 하지 않나 보다.
디귿자 형태의 소파에 걸터앉은 도기훈 패거리들은 5명,
그리고 반대쪽 원탁과 간이의자에 앉은 똘마니들은 6명,
바깥의 3명을 합치니 도합 14명이다.
‘꿀꺽, 침이 잘 넘어가질 않네.’
‘너무 쪽수가 많은 것 아냐?’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야! 뭔 생각을 그리해?”
“이리와 술 한잔해라.”
명절이라고 여기저기 명절 음식과 술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술 마실 곳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그렇다고 학교에서······.’
도기훈과 가장 먼 자리에 앉자 바로 옆의 덩치가 소주를 한잔 부어준다.
“그거 알아? 술은 친구랑 배워야 한다는 거?”
도기훈이 자신 있는 어투로 크게 말했다.
그러자 창고 안이 울렸다. 마치 농구공이 바닥에 튀기면 공명하는 체육관의 공기처럼 선명한 울림이 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지, 이 XX놈들아.’
홀로 그런 생각을 하자 도일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
괜히 도기훈에게 웃는 모습을 들킬까 봐 억지로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
통증이 몰려오며 웃음기도 쓸려갔다.
그때 갑자기 도기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띵 디리링, 띵 디리링···.’
***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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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완결까지 달리겠습니다.코로나에 몸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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