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적(敵)은 누구?(2)
장태산은 프리메이슨이라는 말에, 조금의 지체도 없이 권팀장에게 생각을 전했다.
“그럼 이번 기회에 죽은 거로 해서 모조리 끌어내 볼까요?”
“마스터?”
“아무리 그래도······.”
“속지 ······ 않을 것 같습니다.”
“오케이! 한발 양보해서 심각한 부상을 한 것으로 페이크 어때요?”
“오! 그게 차라리 좋을 듯합니다.”
둘은 서로 바라보며 억지로 참았지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리커버 캡슐(부상회복 보조 운송장비)로 이송된다는 비상송신 시행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과연 누가 적의(敵意)를 드러낼까? 한번 지켜봅시다.”
장태산과 권팀장을 포함한 작전 인원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현장에는 소방대원과 구조대원, 그리고 경찰들만이 분주히 통제와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홍콩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
2011년 7월 10일 AM 12:00
707특임대와의 합동훈련이 모두 끝나고 내일이면 국정원 특작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최근 들어 유일한 휴식을 맞이한 일요일 점심시간.
대부분은 일요일에 나오는 특식을 즐기기 위해 무조건 챙겨 먹겠지만 태산은 웬만해선 안 먹어도 괜찮았기에 내무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데 이게 화근이었다.
명색이 707이다. 특전사 중에서도 정예대원들을 추려 놓은 군인들이라 자존감, 자존심, 우월의식이 무지하게 높았다. 그중에서도 같은 내무반을 사용하는 윤형빈중사는 장태산에게 아주 특별한 악감정을 가진 놈이었다.
장태산은 계급도 없으면서 단지 훈련병이라는 꼬리표만 달고 자신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대대장님, 아니 연대장님이 와서 어떤 간섭도 말라 하니 더 화나는 거다.
“하~ 새끼! 밥 처먹으라니, 째고 내무반에서 누워 자고 지랄이네.”
“야! 장태산이!”
태산은 상종하기 싫어 몸을 돌려 누었다.
“이 새끼 봐라? 못 들은 체, 한단 말이지?”
“내일 전출 간다고 인연 끝나는 줄 알지, 일어서!”
계속 무시하려니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특히 자신 때문에 중사 이하의 병들이 고통받을 것을 생각하니 결단을, 아니 정리가 필요했다.
“윤중사님! 뭐 때문에 이리 골이 나셨습니까?”
장태산이 능청을 떨자 윤중사는 더욱 기가 차고 코가 막힌다는 심정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너! 이 새끼야! 그동안 참고 봐줬더니 니가 잘난 줄 알지?”
“백 믿고, 줄 믿고 다니니 내가 우습지 씨발아!”
소대원들이 한둘씩 내무반으로 들어오자 더더욱 기고만장해진다.
더는 내버려 뒀다간 지가 아주 사령관 하겠다.
“인제 그만하지? 무슨 심통이 나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안 참으려니까. 아시겠어요?”
“니······ 까짓게 뭔···데, 참니 마니 하는 거야!”
그때 내무반 입구에 국정원 과장과 소대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윤중사님! 모르셨구나? 내가 누구냐고?”
“나! 졸~~~~라 특별한 사람!”
소대장과 국정원의 이창수과장이 곤란한 상황을 알아채고 인상을 구기며 들어왔다.
태산은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대장님! 과장님! 일요일 맞이 전투 축구나 족구 한번 하시죠?”
“원하시는 내기 조건, 다 받아 주겠습니다.”
윤중사는 때는 이때다 싶어서인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다.
“축구 전후반 30분과 족구 단판 21점 합산해서 점수 높은 쪽이 이기기.”
“그런데 싸가지 너네는 하사 이하, 우리 팀은 중사 이상, 됐지?”
뭔가 숫자가 안 맞다. 태산은 자신을 포함해 이 소대에는 하사 이하라고는 7명이다.
특히나 일반병, 그것도 취사병이 섞여 있었다.
기형적이긴 해도 중사 이상이 스무 명이 넘는다.
태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콜을 외쳤다.
“그러면 내기는 뭐로 할까요?”
부대원들이 동참하기는 하지만 피해를 보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태산과 윤중사, 둘 중 진 사람의 제대 전까지 급여를 회식비로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긴 사람의 소원, 아니 너무 거창하니 그냥 부탁하나를 이행하기로 했다.
연병장은 어느새 이 내기의 소문을 듣고 부대원들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또 다른 내기를 해댔다. 역시 사내들이란·········.
축구경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
7 VS 11.
그래도 7 VS 20이 아닌게 어딘가?
경기 시작 전, 작전지시를 했다.
“황하사가 여기 제일 고참이죠? 나, 부탁 하나 합시다.”
“여러분께 조금의 피해도 안 가게 할 테니, 공 잡으면 무조건 전방으로 차요. 그게 안 되면 걍 걷어내요. 아셨죠?”
태산의 진영은 그야말로 단촐하다 골키퍼를 제외한 3-2-1 전술이다.
전반전 킥 오프
고참진영은 4-3-3의 전형적인 포메이션이었다.
예상대로 센터포워드에 윤형빈중사가 위치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고참팀이 치고 나왔다. 태산은 윤중사를 따라가면서 패스를 살폈다.
군대스리가를 경험한 고참들이라 그런지 제법 요령들이 있었다.
단 세 번의 패스만으로 패널티 라인 안으로 파고 들었다. 황하사와 조이병이 막으려 하자 윤중사의 전투화가 사정없이 공대신 조이병의 조인트를 까고 말았다.
심판은 휘슬을 부르지 않았다.
연이어 막아선 황하사의 정강이도 워커슛의 희생양이 되었다.
연속된 발차기에 이은 슛을 그나마 골키퍼를 보는 심이병이 막아냈다.
자신의 슛이 막히자 아까운 탄식과 함께 십원짜리 욕을 해대는 윤중사이었다.
윤중사는 심이병에게 다가가 조용히 한마디를 던지며 자기 진영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째 심이병의 표정이 매우 드라마틱하며 다이나믹해 보였다.
짐작, 아니 무슨 말인지 안 들어도 충분히 알고도 남겠다.
‘이거 머뭇거리다간 낭패 나겠는걸······.’
‘좋아! 해보자.’
“심이병! 길게 차버려!”
장태산의 고함에 화들짝 놀란 골키퍼가 하프라인 너머로 공을 차 보냈다.
그 아래 공의 방향과 동일한 선상에서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
엄청난 속도였다. 공보다 빨랐다.
여유있게 몸을 돌려 바디 트래핑으로 공을 받아내며 발가락 끝으로 살짝 방향을 바꿔 전방을 막고 있던 수비를 뚫었다.
툭, 툭 가볍게 두 번을 드리블하는 사이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은 공을 왼발에 이은 오른발, 환상의 마르세이유 턴으로 순식간에 돌파했다.
페널티 박스 근처에 다다르자 다시 두 명이 압박을 해오며 태클을, 아니 대놓고 전투화로 발 걷어차기가 시전 되었다.
‘빡!!!’
‘뿌각’
태산을 노리고 공 대신 발을 찬 두 명의 선임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장태산은 멀쩡했다.
발아래 놓인 공을 되감듯 발등으로 살짝 걷어 올리며 시저스 킥을 멋들어지게 날렸다.
공은 엄청난 궤적을 그리며 우측 상단 구석의 그물을 찢고 날아갔다.
“골인!”
“우와아~!”
우리 팀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 팀보다 어째 연병장에 있는 군인들이 더 좋아한다.
스코어 1 : 0
고참팀의 부상자들이 교체되었다.
공격권을 가진 고참팀은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침투 패스로 주고받기를 두 번 한 사이 벌써 골 에리어 지역이다.
골키퍼를 보는 심이병이 작정하고 윤중사의 슛을 피한다.
골······ 이 안 들어갔다.
태산이 골을 막아서며 비어 있는 공간으로 공을 치고 나갔다.
약 70여 미터 지역 정도로 보인다.
그냥 냅다 차 버리자 공은 일직선의 궤도로 날아갔다.
‘저런 미······친···슛을 봤나?’
운동장의 모든 사람이 그 생각을 했다.
한 사람만 빼고,
‘골이다!’
공이 날아가는 중이지만 태산은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골키퍼는 놀란 눈으로 날아오는 공을 응시하며 몸을 움직였다.
공이 골대 근처로 날아오자 갑자기 흔들리며 방향이 꺾였다.
골대 구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 팔을 쭉 뻗었다.
손바닥에 공이 닿는 느낌을 보니 제대로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골키퍼의 손목이 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젖혀졌다.
그것도 완전히!
“골인!”
“우와아~~~!”
양 사방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태산의 팀원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고참 때문에 손발이 묶이고 경기하는 자체가 죽을 맛이었지만, 저 남자 장태산이라는 사내는 불합리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아까 마지막 파이팅 구호를 외치기 전에 한 말이 지금 머릿속에 왕왕되고 있었다.
“선수 부족하다고 걱정 맙시다. 골 먹는 거 쫄지 맙시다. 한 골 먹으면 두 골 넣으면 됩니다.”
“해보지도 않고 질 거란 패배의식에 우리의 소중한 청춘을 낭비하지 맙시다.”
“내가 재밌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해 봅시다.”
‘그래, 어차피 저나 나나 시간이 지나면 전역하기 마련인걸, 왜 겁먹었을까?’
‘까짓거 갈구면 갈굼 당하지 뭐.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장태산 팀원들의 표정이 재미있겠다는 얼굴들로 바뀌었다.
전반전의 막바지에 선임 팀에게서 상사들의 역습이 벌어졌다.
헤딩과 팩차기 기술로 다져진 패스 실력으로 무장한 상사들이 나섰다.
공을 한 번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패널티 진영까지 이어온 상사들이 주고받은 끝에 한 골을 뽑아냈다.
“골!”
“우와아!”
어떤 팀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골이 들어가는 그 자체가 신나고 재미있기에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병들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스코어 2 : 1 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후반전은 좀 더 치열했다.
태산의 팀원 중 태산과 골키퍼를 제외하곤 전부 부상이었다.
그 와중에 윤 중사가 어거지로 한 골을 넣었다.
연이어 상사들이 합작해 한 골을 더 성공시켰다.
역전되었다. 저놈이 기세등등한 꼴을 보는 게, 왜 이리 열 받는지 모르겠다.
스코어 2 : 3
하프라인에 공을 놓는 황하사에게 대각선으로 차라고 말해두었다.
심판의 경기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황하사는 상대진영을 향해 힘껏 차 버렸다.
그것도 자기편이 모두 하프라인 아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진영의 대각선쪽으로 길게 차버렸다.
태산의 몸이 달리기 시작했다.
연병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을 차지하기 위해 이동하던 고참팀 임상사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달려오는 태산의 속도도 무서웠지만, 그 기세가 임상사의 살갗을 얼리듯 두렵게 만들었다.
공보다 먼저 도착한 태산이 임상사을 마주 보고 달리는 탄성을 줄이지도 않고 디딤발의 반대발 뒤축 면을 이용해 살짝 튕겨 올리며 자신의 머리를 넘기는 포물선을 통해 수비를 통과해 버렸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포였다.
포물선의 끝에서 바운드와 함께 장태산의 발등에 정확히 임팩트 된 축구공이 무시무시한 대포알로 변하여 순식간에 골망을 갈랐다.
골키퍼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사실 너무 무서웠다.
“딸꾹!”
골키퍼의 딸꾹질 소리와 함께 연병장에서 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악!”
“이야하!”
“우야호!”
스코어 3 : 3
남은 시간 1분 50초.
윤중사는 이를 갈며 태산에게 들러붙어 집중마크를 했다.
공중 볼을 다투던 태산의 눈과 코 사이를 정확히 파고든 팔꿈치는 윤중사이었다.
‘퍽~’
하프라인 부근이었다
저 자식은 정말이지 얄밉고 비열한 자식이다.
태산은 그냥 동점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부상자가 속출한 전투 축구였지만 추억으로 남기려 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도 힘을 쓰지 않았다.
하프라인에서 프리킥 찬스였다.
장태산은 공을 천천히 굴리며 위치를 잡았다.
뒷걸음질로 세 걸음을 옮긴 후 오른발의 발끝 스터드에 전한 힘의 반탄력으로 뛰어가 찼다.
공은 엄청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를 향했다.
그러다 점점 골대를 벗어나 휘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그 공이 한 번 더 반대 방향으로 꺾어지며 골대의 구석을 향했다.
골키퍼가 황급히 방향을 수정하여 전신을 펼쳐서 막아보려 했다.
공의 궤적은 이미 방어할 수 있는 범주에서 두 배는 벗어나 있는 완벽한 골이었다.
소위 말하는 ‘유에프오 슛’이었다.
그것도 거의 50여 미터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골이었다.
아깝다. ‘푸스카스상’
“우와아~~!”
“골인!”
***
- 작가의말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절대 안 하려고 했는데······에잇, 다해 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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