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적(敵)의 적(敵)은 동지(同志)!(1)
시핑진은 크고 화사한 웃음으로 태산을 안아왔다. 끌어안은 덩치는 남자의 호방한 대륙 기질을 보여 주려는 듯 듬직했다.
악수를 통해 손을 잡아 오는 그의 두툼한 손이 얼마나 인덕과 인복이 많은 줄 관상, 아니 수상학(手相學적) 관점에서도 느껴졌다.
강미현과도 가벼운 포옹과 악수를 했다. 차세대 중국을 이끌 지도자와 만남이어서인지 그녀는 약간 상기 된 듯 보였다.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조만간 주석이 되실 영웅을 만나 영광입니다.”
장태산이 시핑진을 주석이 될 지도자라 인사하자 함께 온 여섯 명의 사내들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저들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방주이거나 최측근 핵심리더일 것이다.
“한국과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장대인을 만나 영광입니다.”
시핑진은 장태산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대인이라 칭하였다.
물론 강미현을 높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식사에 앞서 본격적인 대화가 오갔다.
오늘의 자리는 양국의 Say, Hello! 하는 인사 자리가 아니었다.
양국 간의 긴밀한 협조와 미래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중차대한 정치·외교적 협상의 자리였다.
이리도 중요한 자리에 고작 이십 대 초반의 청년과 국정원 요원 한 명만 달랑 내보는 것은 조금 오버 아닌가? 그러나 이런 기회를 만든 것은 전적으로 장태산의 공이었고 이 자리 역시 태산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리였기에 국정원 내에서 누구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공청단의 무리한 행보와 그 결과가 태산에게 이런 멋진 기회가 되었다.
“보내드린 자료는 잘 받아 보셨습니까?”
“네, 덕분에 저희가 아주 간단하게 정적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7월 23일의 열차 충돌사고로 무려 43명의 사망자와 211명의 부상자를 만들어 낸 대참사였다.
태산은 공청단의 실세들과 소속 해결사 및 조직원들에 대해 그날의 증거와 자료들을 모조리 시핑진 측근에 전했으며, 꽌시를 만들기 위해 특별 제안을 해서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특히 공청단 실세와 통화한 내용의 녹음본과 열차 추돌직전의 사진 등이 그들을 압박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제가 오늘 의논 드릴 내용은 양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태산의 제안은 간단했다. 중국 공청단이 빼돌리려 했던 두 가지 설계도면 중 배터리 생산 설비에 관련하여 양 정부의 합작 사업으로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설비를 중국에 완성하여 아시아, 아니 세계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자는 것이었다.
“자본은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중국과 한국의 양 정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시도록 돕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장태산이 중국에 배터리공장을 만들면 중국, 한국, 장태산이 각각 삼분지 일씩 권리를 가지고 수익을 나누자는 것이었다.
스파이전을 벌여 설계도면을 훔쳐 어렵게 산업 전쟁을 해가며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만족할 경이로운 해법이었다.
시핑진의 입장에서는 공청단을 확실히 제압하고 물러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게다가 중국 인민들에게 배터리 공장과 차세대 기술을 앞서 선점할 기회 또한 제공하게 되어 자신의 입지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공적을 만들고 홍보할 수단이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한국 역시 중국과의 외교적, 산업적, 국방적 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 우호적인 아군의 자격과 빚을 지워두는 쾌거가 됨과 동시에 시핑진이라는 차세대 지도자의 강력한 동반자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장태산은 자신의 넘치는 재력으로 중국 진출의 발판이 만들어지며 앞으로 한국정부와 중국정부 모두에 합법적이며 우호적인 경제 커넥션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덧붙여 여기의 책임자로 권영훈연구원을 지정하여 그가 당면한 문제 역시 일거에 해소 시켜 주었다.
한중합작의 배터리공장 책임자에다 시핑진이 보장하는 핵심 국가 인재가 되었기에 한국과 성삼과 중국에서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고 그의 안전과 그 가족에 대한 안전보장과 보상까지 해결 된 것이었다.
권영훈은 장태산에게 은인이라 불렀고 죽을 때 까지 자신은 태산을 위해 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음, 사실 태산은 자신의 무위(武威)를 봐서 그런지 살려고 하는 말인지 잘 분간이 안 된다고 했다.
아무튼, 장태산의 활약으로 한국과 중국은 그렇게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었다.
***
2011년 7월 26일 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장태산과 강미현은 국정원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3팀장이 직접 마중을 나와 두 사람과 함께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청와대였다. 정확히는 ‘상춘재(常春齋)’라는 전통 한식 건물로서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대통령께서 직접 노고를 위로하신다고 보고 가란다.
차려진 음식은 보쌈과 김치찌개가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곧이어 이박명대통령이 별관에 나타났다.
“정말 큰일 했어요.”
“국가와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을 뿐입니다.”
강미현은 지극히 정석적인 FM 답변을 했다. 역시 사회생활을 잘 한다.
황팀장 역시 동조의 답변과 이런 결과를 만들기까지 국정원과 자신의 팀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강조하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태산군! 국가가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대통령님!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님께서 큰 빚을 졌지요.’
태산은 생각을 내비치지 않고 그냥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준비된 야식과 약주를 나눠 마셨다. 근데 보쌈인데 와인을 준비했다. 아무래도 대통령의 취향인 모양이다. 태산은 소주가 당겼다. 그냥 마셨다. 벌컥벌컥······.
모두가 쳐다본다. 음, 부끄러움은 저들 몫이다.
이박명대통령이 장태산에게 단둘이 차 한잔하자고 했다.
상춘재의 휴게실에서 독대 미팅을 했다.
힘겹게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복무기간이 올해 말까지인가요?”
“네,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특별한 능력으로 국가에 봉사하는데 그 정도는 되야죠.”
특수작전 수행 댓가로 단축 군복무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군복무야 그렇다고 하지만 금감원에서 태산군의 계좌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금의 출처가 ······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염려해서.”
“법무법인태산과 세무법인티에스에서 공식적인 답변이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세금과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은 그 나라의 세법에 근거해 지급되었고, 제 계좌에서 국내로 합법적 이체가 된 것입니다.”
“그거야 금감원장이 문제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 내가 신경 써 주려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은근한 압력이다.
근거가 없으면 만들 기세다.
태산은 생각했다. 힘을 더 키워야겠다고·········.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1원짜리 하나도 법에 저촉되지 않게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참, 나야 잘 알지. 그러나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과 재계 사람들이 말 만들기를 좀 좋아해야지 말일세.”
저말은 결국 자기가 보호해 줄테니 콩고물 달라는 말이다.
관상이 맘에 안 들더니 하는 행동도 ‘프로불편러’다.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이번 중국에 진행하는 배터리 생산 프로젝트 말일세. 거기 자네 지분에 내 차명으로 한 5%정도 배분해 주게.”
허 참, 이 날강도 보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안된다는 건가?”
“국가 간에 약속이 포함된 프로젝트에서 합의하지 않은 변경사항을 일방적으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5%라는 지분으로 말미암아 대통령님께서 큰 곤란을 겪으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장태산이 워낙 단호하게 반대하며 자신을 생각해주는 발언을 하니, 그것을 가지려는 명분 자체가 약했다. 아니, 거의 없었다.
“이미 보고받고, 검토해 보셨겠지만, 한중 배터리 프로젝트는 어떤 흑막도, 술수도 없는 순수한 미래 성장형 공동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
“여기에 대통령님께서 숟가락, 아니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만들어지면 그땐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박명대통령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태산이 말을 이어갔다.
“차라리 지금 진행하고 계시는 자원외교 쪽의 일부 자금을 제가 국채와 장기매매채권으로 구입대금을 교환 처리하면 어떨까 합니다.”
“오! 그것도 좋은 방법이구먼.”
그러면서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공짜로 주지는 않을 것이다.’
뭐, 안 준다고 그냥 있을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갖은 수를 다 써서 돌려돌려 받으려고 할 거다.
청와대를 나서는 차 안에서 강미현은 피곤함도 잊은 체 연신 재잘거렸다. 이번 작전이 자신의 첫 번째 해외 작전이었는데 성공리에 마치고 대통령에게 공로를 치하받았다. 일계급 특진도 할 거란다. 그러니 기분이 미치도록 좋았다. 황팀장도 그녀의 말에 맞장구치며 칭찬 분위기로 고생한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장태산 저놈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에 키며 덩치며 거기다 전투 능력은 얼마나 탁월한지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중국 호텔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그의 바디의 탄력감과 체지방 제로에 가까워 보이는 근육하며, 무엇보다 샤워가운과 수건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남성 상징의 흔적이 수건 위로 도드라져 형체를 드러내 보이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와인으론 아쉬운데, 소주 한 잔 어때요?”
“한 잔 가지고 되겠어요? 죽을 고비를 넘긴 동지인데. 갑시다.”
황팀장은 장태산의 주량을 안다.
‘저 자식은 소주 한 잔이 아니라 소주 한 짝을 마셔도 끄떡도 없는 괴물이다. 강미현 너는 오늘 진정한 주님을 만난 거야. 그러니 부디 살아만 있어 다오.’
두 사람을 강남에 내려주고 바로 튀어 버렸다.
강미현은 관악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태산의 배려로 집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본인이 잘 아는 곱창집에서 마시자고 한다. 둘은 본격적인 술자리를 가졌다. 격식을 갖춰야 할 상관도, 예를 차려야 할 어른도 없었기에 그야말로 전우애로 똘똘 뭉쳐 편하게 한잔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강미현은 자신의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전했다.
“나,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니가 그때 달려와서, 막 붕 하고 날아다니고······.”
“하하, 알았어.”
“알긴 뭘 알아? 멍충이 같은게······.”
‘아씨~ 누구더러 멍청이래?’
“내가 그···때 뭔 생갂으ㄹ 했눈 듈 알아?”
눈물을 찔끔거리며 술에 취해 혀가 꼬이고 있었다.
“처녀귀싱 되는 줄, 히힝, 난 듁기전에 하고픈거 만앙. 니가 됴와줭.”
‘하아~ 지친다.’
새벽에 곱창집에 사람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려 3 테이블, 10명의 사람이 장태산과 강미현을 쳐다보았다. 마치 징그러운 한 쌍의 바퀴벌레를 보는 눈빛이다.
강미현이 태산에게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볼이며 입술이며 가리지 않고 뽀뽀를 해댄다. 태산은 말리다, 말리다 포기해 버렸다. 아마 남자였으면 무쟈게 패 버렸을 것 같다.
동이 터올라야 할 시간이지만 밖은 계속해서 엄청난 폭우가 오고 있었다. 곯아떨어진 강미현을 들쳐 엎고 우산을 들고 택시를 잡으러 큰길가로 나섰다.
서울의 아침, 아침의 5분은 어마무시한 격정적 삶을 일깨워주는 체험현장이며 장엄한 다큐멘터리의 프롤로그 같은 위대함이 엿보이는 생동감이 있었다.
한마디로 쪽팔린다는 말이다.
남들은 출근한다고 바쁜 시국에 술에 취한 여자를 들쳐 엎고 차를 잡고 있다.
더군다나 폭우가 쏟아지니 택시 잡기가 더 힘들다.
힘겹게 택시를 한 대 잡아탔다.
“관악 아파트 부탁드립니다.”
기사님이 빙긋이 웃으신다.
아놔~ 그런거 아닌데. 미치겠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채널에서 7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폭우에 대한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택시는 굵디 굵은 빗줄기를 뚫고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 사당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택시기사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으아악!”
태산이 고개를 드는 그 순간!
- 작가의말
여러분 술은 적당히,
그리고 사고는 항상 조심하세요.어떤 사고일지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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