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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불멸자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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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5.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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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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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물(1)

DUMMY

우리는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카쿠스 산맥에서 가까운 도시 외곽으로 이동했다. 이리스는 압도적인 광경에 탄성을 흘렀다.


“여기가 토리누스 맞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도시 위용은 어마어마했다. 험준한 산맥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지만, 물줄기가 많고 땅이 비옥하여 대륙의 곡창지대로 유명한 도시였다.

과거 많은 명사는 토리누스를 보며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나와 인연이 있었던 정복 군주, 칼츠헤르크는 토리누스를 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도 많은 군주에게 사랑을 받아온 명언이다.


「토리누스를 차지한 자, 어찌 대륙을 품지 못하리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토리누스를 차지했던 군주들은 대륙을 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자멸했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토리누스를 독이든 성배로 부르기도 했다.


“에드! 내가 잘못 온 거 아니지?”

“토리누스가 맞다.”


이리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토리누스의 위용을 눈에 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리누스는 동북부 끝자락에 있는 레테보다 오십 배는 큰 규모였다.

여기에 10m가 넘는 새하얀 성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성벽 앞에는 넓은 해자가 존재했으며 동쪽과 서쪽 성문은 넓은 수로로 이어져 있어 배를 타야만 도시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동쪽의 카쿠스 산맥 제외한 서, 남, 북에 드넓은 평야가 크고 작은 물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니 대륙의 곡창지대로 손색이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토리누스의 명물인 거대한 운하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가득했다. 한몫 챙겨보고자 몰려든 것이다. 이리스는 토리누스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80년 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네. 수로도 잘 정비하고 운하도 새로 파고 성벽도 저 정도 높이까진 아니었는데 말이야.”

“운하는 49년 전에 수로 정비를 거치면서 완공되었고 성벽은 27년 전 겨울에 시작하여 15년 만에 완공했지. 덕분에 데라무스의 군단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도시였다. 이곳 사람들은 저 성벽을 신의 장막이라 부르더군.”


내 말에 이리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에는 저걸 부숴버리고 싶다는 광기가 가득했지만, 용케 참아낸다. 예전이었다면 자신의 길을 막고 있다며 다짜고짜 운석 충돌부터 날렸을지도.

이리스는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성벽에 펼쳐진 마법진을 살폈다. 성벽 조사가 끝나자 살짝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강도 경화 마법 9단계, 안티 매직 7단계, 원상 복구 마법 6단계...인간이 만든 성벽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에우리스가 참여했다더군.”

“뭐, 그 아이라면 가능했겠네.”


이리스는 에우리스의 마법 실력을 순순히 인정했지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본래는 용족이 했어야 일을 인간이 해냈으니 질투하는 것이리라.

내가 말하는 일은 성벽이 아닌 마왕 데라무스다. 첫 번째로 맞이하는 수면기였던 터라 나서지 못하고 에우리스가 처치한 후에야 깨어났다. 이것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리스는 나직이 이를 갈며 말했다.


“부숴버리고 싶다.”

“이리스.”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이리스는 툴툴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조용히 잠재웠다. 나는 이리스와 함께 가까운 나루터로 향했다. 도시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지만, 예전에 에우리스가 준 프리패스 카드를 보여주자 줄을 서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우와! 정말 멋진데?”

“확실히 장관이긴 하군.”


수많은 배가 넓게 펼쳐진 운하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재미있게도 수송선보다는 상선이 대부분이었는데 전부 하류에서 토리누스까지 올라온 배들이었다. 수확 시기에 맞춰 식량을 사러 온 상선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리라.

우리는 다음 배가 도착할 때까지 주변을 둘러보며 나루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리스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소리쳤다.


“이거 봐 봐! 물고기도 보여!”

“오오! 매다! 매가 사냥한다!”


이리스는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소매를 뒤적거렸다. 술병이 잡히지 않는다. 이리스가 치웠나 보다. 그렇게 잠시 평화가 찾아오나 싶던 찰나 이리스가 장난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옷을 붙잡았다.


“아빠! 나 심심해.”

“...”

“심심해! 심심해! 심심하다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부녀 사이로 합의를 봤지만, 막상 이리스의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니 목구멍에서 콱 막힌 기분이었다.


“아빠!”


이리스가 떼를 쓰자 아까부터 우리를 바라보던 나루터 여직원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놀아드려도 될까요?”


나는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이리스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매미처럼 내 다리에 착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난 아빠랑 놀 건데요?”

“까악! 귀여워!”

“저 금발 좀 봐! 딱 한 번 만지고 싶다. 얘, 쿠키 줄 테니까 만지게 해주면 안 되니?”


텔레포트를 펼치기 전에 이리스의 외형을 평범한 금발, 푸른 눈으로 바꿨던 터라 사람들의 눈에는 귀여운 아이로만 보일 거다. 나도 비슷하게 바꿨다. 부녀 사이로 보이도록 말이다. 그런데 그게 독으로 돌아올 줄이야. 이리스는 철저하게 딸 연기를 펼쳤다.


“안 돼요! 이리스는 아빠만 만질 수 있거든요! 아빠, 이리스 쓰담쓰담. 빨리이이.”

“하아.”


이건 이리스의 장난이다. 말려들면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시선이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 시선이 매우 불편했다. 차라리 부녀 관계를 의심하면 좋을 텐데. 내가 가만히 있자 못된 아빠라는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리스, 눈에 띄는 행동은 그만해라.”

“쳇. 알겠어.”


이리스가 쓸데없는 행동을 저지르지 않으면 좋을 텐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쯤, 이리스의 입이 점점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저건 좋은 신호가 아니다. 누군가를 골탕 먹이고 싶어 하는 미소다. 나는 이리스가 사고 치기 전에 한 손으로 안아 올렸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


이리스는 마음에 든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이리스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애정 결핍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때마침 우리가 탈 배가 도착하자 직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토리누스 동문으로 가실 분들은 서둘러 탑승해주세요!”

“밀지 마시고 천천히요!”


상반된 말이었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다. 우리는 안전하게 로열층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로열층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리스는 히죽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제 우리 둘뿐이네?”

“쓸데없는 짓은 그만둬라.”

“뭘 그만둬?”


어린애로 변하더니 하는 행동도 애처럼 바뀌었다. 여기서 더 어울려주면 기고만장해질 터.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침묵을 유지했다. 다행히 이리스는 김이 샜다며 조용히 내게 안겼다. 이리스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으니 새끼고양이처럼 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있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이리스를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먼저 새하얀 성벽이 눈에 들어왔고 벽돌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구조가 독특하군.”


강 옆에 자리 잡은 집들은 전부 3층 이상의 건물들이다. 이건 외적의 침입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한 계획적인 방어구조였다.

적들이 배를 타고 침입해오면 민가를 무너뜨려 수로를 막고 적들이 배를 포기하고 육로를 이용하려 한다면 무너진 민가를 방패로 삼아 미니 공성전을 펼쳐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고 빠르게 후퇴한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카쿠스 산맥 상류 지점에서 둑을 터트려 적들을 쓸어버린 후 기마대로 적들을 처리한다. 데라무스의 군단이 쳐들어왔을 때보다 진화한 방어 전략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누구의 설계인지 몰라도 훌륭하군.”

“토리누스의 진가를 알아보신 분의 안목도 참 훌륭하군요.”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을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기에 딱히 놀라워하지 않았다. 대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시원한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는 안경을 쓴 금발 청년이 홀로 앉아 있었다. 금발 청년은 선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아, 제가 소개가 늦었군요. 아벨 라스벤더라고 합니다. 제국 아카데미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죠.”

‘라스벤더. 라스벤더 가문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경계 단계를 높였다. 라스벤더 가문은 제국을 지탱하는 4대 가문 중 하나. 게다가 젊은 나이에 제국 아카데미의 교수라면 이 자의 재능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무리 4대 가문의 일원이라 해도 제국 아카데미 교수는 아무나 달 수 있는 직함이 아니었으니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방계 사람이거든요.”


그럼 더욱 경계해야 한다. 방계 출신 아카데미 교수는 재능이 특출나지 않으면 임명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괜히 의심 살 필요는 없지. 나는 그의 의도를 맞춰주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입니다. 대륙을 방랑하는 중입니다.”

“에드라...모험가셨군요! 하하하! 범상치 않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제 눈은 아직 죽지 않았나 봅니다. 그럼, 귀여운 아이는 따님이겠군요?”

“헤헤. 아저씨 합격!”


이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어댔다. 아벨은 이리스의 미소를 받으며 내게 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응! 해도 돼!”

“이리스.”

“히히.”


내가 엄히 말했음에도 이리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방긋 웃어댔다. 아벨은 이리스의 이름을 듣고도 놀라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토리누스에서 이리스란 이름이 흔했기 때문이다. 모두 이 녀석 덕분이었다.


“어른에게 반말하면 못 쓴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은걸요. 편하게 아벨이라 부르렴.”

“응! 아벨!”

“죄송합니다.”

“어릴 때는 다 그런 거죠.”

“맞아! 다 그런 거지! 아빠가 너무 엄한 거야!”


그걸 또 넙죽 받는 이리스. 떼어내도 모자랄 판에 찰싹 달라붙게 만들다니 골치가 아파진다. 아벨은 내 안색을 살피며 은근슬쩍 한 칸을 비워두고 앉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사람의 여정도 궁금하긴 하지만, 제 본래 목적은 연구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기억하며 물었다.


“역사 연구입니까?”

“네, 며칠 전에 토리누스에서 전국시대의 유물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연락 왔던 터라 부랴부랴 가는 중이었습니다. 강의도 전부 제치고 말이죠. 하하하!”

“전국시대 유물은 귀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벨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대부분의 유물이 파괴된 채로 발굴되어 온전한 상태인 유물은 흔하지 않죠. 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유물이 귀한 겁니다!”


원인을 알고 있던 나는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전국시대 유물이 파괴된 원흉이 여기에 있었으니까. 이리스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왜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번 유물은 뭔데?”


이리스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묻자 아벨은 흡족한 미소로 안경을 고쳐 올리며 말했다.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학자들의 말로는 정복 군주, 칼츠헤르크 대왕의 오른팔이라 불렀던 무패의 검사, 에드워드 경의 검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아벨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검은 내가 250년 전에 사용하다 잃어버린 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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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초대 성녀(2) +2 21.06.04 36 7 11쪽
24 초대 성녀(1) 21.06.03 33 7 12쪽
23 방랑의 이유 +4 21.06.01 39 4 12쪽
22 엔딩(2) +2 21.05.31 49 7 16쪽
21 엔딩(1) +2 21.05.30 49 7 15쪽
20 진리의 탑으로(2) +3 21.05.29 50 7 12쪽
19 진리의 탑으로(1) +2 21.05.28 59 6 10쪽
18 뜻밖의 인물 +2 21.05.27 58 6 13쪽
17 알면 다쳐 +4 21.05.26 58 8 13쪽
16 유물(2) 21.05.25 58 7 13쪽
» 유물(1) +6 21.05.24 70 10 12쪽
14 지상 최후의 용(2) +4 21.05.23 79 10 14쪽
13 지상 최후의 용(1) +4 21.05.22 85 10 15쪽
12 비극적인 이야기(2) 21.05.21 81 9 13쪽
11 비극적인 이야기(1) +4 21.05.20 101 13 13쪽
10 끝맺음 +4 21.05.19 109 11 13쪽
9 축제(2) +2 21.05.18 102 12 14쪽
8 축제(1) +2 21.05.17 111 11 11쪽
7 운명론 +1 21.05.16 127 12 11쪽
6 야외수업 +6 21.05.15 138 14 11쪽
5 대접 +4 21.05.14 149 13 13쪽
4 과거 인연 +2 21.05.13 162 16 14쪽
3 수업(2) +1 21.05.12 174 14 11쪽
2 수업(1) +2 21.05.12 232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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