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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불멸자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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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5.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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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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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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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물(2)

DUMMY

“무패의 검사, 에드워드의 검!”


이리스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워낙 찰나였던 터라 아벨은 이리스의 검은 속내를 모른 채 계속해서 정보를 토해냈다. 이리스는 주는 족족 받아먹으며 아벨의 말에 맞장구쳐줬다.


“응! 응! 맞아! 그러취!”


아벨에게는 아주 훌륭한 청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검이 발견된 건 우연인가.’


어쩌면 신의 농간일 수도 있다. 그들은 종종 유희라는 명목하에 나를 툭툭 건드려왔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신들의 변덕은 바다와 같았으니까.


“아빠!”


이리스가 내 옷깃을 붙잡으며 방긋 웃었다. 그러자 아벨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따님이 참 똑똑하네요. 제 아들놈들이 따님의 총명함을 반만 닮았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이리스 똑똑해! 엄청! 나 아벨이 모르는 것도 다 알아!”

“호오. 그러니? 이번 발견만 아니라면 내가 가르쳐봤을 텐데. 조금 아쉽구나.”

“난 아빠랑 떨어질 생각 없어!”


이리스가 내게 찰싹 달라붙어 경계 어린 눈빛으로 아벨을 노려보았다. 아벨은 크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한번 해 본 소리란다.”

“난 쭈욱! 아빠랑 같이 살 거야!”

“내 딸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지. 하아. 요즘에는 가까이 오질 말아 달라고 하더구나.”


나는 씁쓸히 말하는 아벨에게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리스도 여기에 동참했다.


“언제든지 말해. 내가 혼내줄게!”

“말은 고맙지만, 다 큰 딸의 엉덩이를 때릴 수도 없잖니. 아무튼 신경 써줘서 고맙구나.”

“엥? 다 컸다구?”

“아, 막내딸이 올해 16살이란다.”


아까부터 느꼈던 위화감이 이거였나. 아벨은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이리스에게 윙크하며 말했다.


“큰아들은 27살이고 작은아들은 25살이지.”

“그럼 아벨는?”

“올해 쉰이 되었구나.”


경악하는 이리스와 푸근한 미소를 짓는 아벨.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우리 중에서 자신이 가장 어리다는 사실을.


‘그래도 조금 놀랍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벨은 이십 대 청년처럼 보였다. 자식들과 나란히 걸으면 친구로 봐도 될 정도로 무척 동안이다. 혹시 저주가 아닐까 유심히 살펴봤지만, 저주의 흔적은 없었다. 관찰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아벨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푹 썩었답니다.”


그러면서 툭툭 무릎을 쳤다. 노인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으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먼저 그의 출신도 걸렸고 사라졌던 검이 등장한 시기가 공교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감시가 필요하겠군.’


나는 그의 눈이 미치지 않은 소매에서 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무릎에 좋은 약을 꺼낸 후 추적 마법을 걸었다. 이리스가 흥미롭게 바라봤지만, 무시하며 말했다.


“제가 만든 약입니다. 무릎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으니 한번 사용해보시길 바랍니다.”


한번은 거절할 거라 생각했던 아벨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가죽 주머니를 넙죽 받았다.


“감사합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선물을 마다하지 않거든요. 절대로 거절하는 법이 없죠!”

“우리 아빠가 만든 약은 효과가 좋아! 하나도 안 아프게 해줘!”


옆에서 이리스가 바람을 잡아주자 아벨은 가죽 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단 말이지.”

“하루에 한 번 꾸준히 드시면 효과가 금세 나타날 겁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귀한 선물까지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우리는 영양가 없는 말을 몇 번 주고받은 후 다시 유물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리스의 붉은 눈동자가 별처럼 밝게 빛나다가 사라졌다. 아벨은 제법 값이 나가는 가죽 가방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펼쳤다.


“전국 시대는 대략 120년 정도를 잡습니다. 인류 최초의 제국, 벨리스 제국이 무너지고 수십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었을 때부터 위대한 정복 군주, 칼츠헤르크 대왕 사후 40년이 그 기준이죠.”


이리스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칼츠헤르크는 남부를 앞에 두고 죽었어! 그래서 에드워드도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지!”

“호오! 꽤 자세히 알고 있구나.”

“응! 아빠가 많이 알려줬어! 아빠! 나 잘했지?”

“그래.”

“아빠한테 칭찬받았다. 히히.”


아벨은 부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선한 눈빛이 참 부담스러운 자다. 슬슬 거리를 두고 감시해야 하는데 놓아줄 기색이 아니다. 아벨은 다시 말을 이었다.


“칼츠헤르크 대왕도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36전 36승을 거둔 에드워드 경이 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황이 유리하든 불리하든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칼츠헤르크 대왕이 정복 군주라는 위명을 얻을 수 있었죠.”

“역시 에드워드는 최고야!”


아벨은 이리스와 시선을 맞추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에드워드 경과 관련된 유물들은 전국시대 유물들 중 가치가 높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단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에드워드 경의 검은 데로토로스 무기 시리즈 중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히지. 당대 최고의 명인인 데로토로스는 지인들에게 말하길, 에드워드 경의 검을 뛰어넘는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단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에드워드 경의 검은 전장에 빛을 발휘했지.”


그러자 이리스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얼마 나올 거 같아?”

“으음, 유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만약 경매장에 내놓는다면 도시 한 채 값은 나오지 않을까 싶구나.”

“역시 비싸네.”

“하하하!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경매장에 나올 일은 없을 거란다. 토리누스 가문에서 에드워드 경의 검을 광장에 전시하기로 공표했거든.”


이리스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아벨에게 물었다.


“정말로?”

“에드워드 경의 검을 파는 것보다 자신의 도시에 전시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 생각한 거겠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기분이 묘했다. 50살 먹은 청년과 500살 먹은 아이가 아무런 장애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수준이 맞는 건가.’


도저히 모르겠다. 내 눈에는 두 사람이 연기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


우리가 탄 배가 토리누스에 가까워지자 단단한 강철로 만든 거대한 수문이 보였고, 크고 작은 상선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우리가 탄 배도 멈췄다 섰다를 반복하며 느릿하게 나아갔다.


‘평화롭군.’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토리누스는 파괴된 고대 도시를 재건하는 광경이었다. 토리누스 가문은 매년 겨울마다 찾아오는 대규모 마수 침입을 막고자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지금의 성벽을 만들고 수로의 너비를 두 배로 넓히는 대공사를 펼쳤다.

15년 동안 이어진 공사에 가문의 성세가 기울어지기도 했지만, 완공되자 그 효과는 빛을 발휘했다. 바로 마왕 데라무스의 군단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에우리스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토리누스는 최초로 막아낸 도시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지.’


그 후로 유랑민들이 토리누스로 몰려들었고 대륙에 평화가 찾아오자 그들은 그대로 정착했다. 폭발적인 인구수, 식량 생산, 상업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자 토리누스는 동부의 중심지를 넘어서 대륙에서 제일가는 도시로 발돋움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잠시 오른쪽을 바라봐주시길 바랍니다. 저 거대한 동상의 주인공은 에우리스 헤라이온님이십니다. 높이 43m로 동부에서 가장 높은 동상이죠. 몇 년 전에는 성녀 라미엘님께서 토리누스에 방문하여 신의 은총을 내려주시기도 하셨지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안내 음성의 말에 이리스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리스는 전과 달리 딱딱한 연기 톤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와! 나.보.다 크.겠.는.걸!”


이리스의 괴상한 말투에 아벨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크지 않겠니?”

“그럴까나.”


다행히 이리스는 짜증을 내 거나 귀찮게 굴지 않는데 아마 아벨이라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아벨도 이리스를 귀찮아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야, 저기 보이는 동문에 새겨진 주인공이 누군지 아니?”

“응! 카쿠스 산맥의 주인이자 우아한 폭군, 창공의 지배자! 이리스님이잖아! 그리고 내 이름이랑 똑같아!”

“하하하! 정답이란다. 토리누스 가문은 마도 가문이 아님에도 지상 마지막 용족인 이리스님을 섬기는 가문이지.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은 이리스님이 자신과 이름이 같은 토리누스 가문의 소녀와 친구가 되었다는 설이란다. 이리스처럼 말이지.”

“우와! 정말 멋지신 분이다!”


본인을 칭찬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용족이란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종족이었으니까. 아벨은 동문에 새겨진 이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이리스님을 우아한 폭군이라며 숭배하면서도 무서워하지만, 나는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단다.”

“왜? 아벨은 무섭지 않아?”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이리스의 얼굴을 보며 아벨은 그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용족을 문헌으로밖에 접할 수 없지만, 벨리스 제국 시대에는 용족이 인간 세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많은 걸 베풀어주었다고 하더구나.”

“정말?”

“인간이 남긴 문헌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용족이 우리와 교류하고 싶었다는 것이란다. 나는 왜 신의 종족이라 불린 그들이 인간과 교류하고 싶었는지 알고 싶었기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지. 그리고 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도. 그걸 밝히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단다.”

“오! 아벨 대단해!”


무척 긴말이었음에도 이리스가 지루해하지 않고 호응해주자 아벨은 신이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 발굴은 무척 중요한 단서가 될 거란다.”

“중요한 단서?”

“에드워드의 검이 이리스님의 비늘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있단다. 만약 사실이라면 인간과 용족의 관계를 보여주는...잠시만 여기 보렴.”


아벨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더니 내 이름이 적힌 인물 열전에서 멈췄다. 그리고 중간 문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륙공통어는 읽을 수 있니?”

“당연하지! 잘 봐. 흠흠! 에드워드의 검은 데로토로스 무기 시리즈 중 가장 아름다운 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시리즈와 달리 미스릴, 오리하르콘, 아다만티움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용족인 이리스의 비늘을 사용하여 역대 최강의 검을 만들어냈다.”


이리스는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진실이냐고 묻는 얼굴이다. 나는 감출 이유를 못 느꼈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리스가 음흉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에드으으?’

‘...’


굳이 변명해보자면 이리스의 허물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들로 만든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갈 비늘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사용했던 거지 불순한 의도는 없다.


“역시 회수해야겠는걸.”

“응? 무슨 말이니?”

“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새 배는 검문소를 지나 도시로 입성하고 있었다. 이리스가 새겨진 문이 보였지만, 감흥은 없다. 그녀의 본래 모습은 인간들의 상상 속에 있는 용족보다 훨씬 아름답고 우아했으니까. 제 모습을 자세히 살피던 이리스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노력한 흔적이 보이니 봐줄게.”


그녀의 한 마디에 토리누스의 멸망이 뒤로 미뤄졌다. 동굴을 지나 드디어 도시 안으로 입성하자 이리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거대한 수로 양옆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즐비했고 수로 바깥에는 가로수를 비롯하여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벤치에는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 주변으로 길거리 음식을 파는 점포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더욱 장관인 건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마치 새하얀 눈이 내린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다. 아벨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이리스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 건물이 바로 토리누스 가문의 저택이란다. 이곳 주민들은 이리스의 날개로 부르더구나.”

“이리스의 날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토리누스와 인연이 깊은 용족, 이리스님의 이름을 따온 것이지.”

“오오! 확인해보고 싶다.”

“관광 구역에 지어진 전망대에 가면 내려다 볼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아빠랑 같이 가보거라.”


이리스는 고개를 돌리며 내게 소리쳤다.


“아빠! 들었지?”

“숙소부터 잡고.”


내 말을 들은 아벨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아직 숙소를 안 잡으셨나요?”

“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그게 말이죠. 토리누스의 모든 숙박시설은 모두 예약제로 운영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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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초대 성녀(2) +2 21.06.04 34 7 11쪽
24 초대 성녀(1) 21.06.03 33 7 12쪽
23 방랑의 이유 +4 21.06.01 39 4 12쪽
22 엔딩(2) +2 21.05.31 49 7 16쪽
21 엔딩(1) +2 21.05.30 47 7 15쪽
20 진리의 탑으로(2) +3 21.05.29 49 7 12쪽
19 진리의 탑으로(1) +2 21.05.28 56 6 10쪽
18 뜻밖의 인물 +2 21.05.27 57 6 13쪽
17 알면 다쳐 +4 21.05.26 57 8 13쪽
» 유물(2) 21.05.25 58 7 13쪽
15 유물(1) +6 21.05.24 68 10 12쪽
14 지상 최후의 용(2) +4 21.05.23 79 10 14쪽
13 지상 최후의 용(1) +4 21.05.22 85 10 15쪽
12 비극적인 이야기(2) 21.05.21 81 9 13쪽
11 비극적인 이야기(1) +4 21.05.20 99 13 13쪽
10 끝맺음 +4 21.05.19 109 11 13쪽
9 축제(2) +2 21.05.18 102 12 14쪽
8 축제(1) +2 21.05.17 111 11 11쪽
7 운명론 +1 21.05.16 127 12 11쪽
6 야외수업 +6 21.05.15 138 14 11쪽
5 대접 +4 21.05.14 148 13 13쪽
4 과거 인연 +2 21.05.13 160 16 14쪽
3 수업(2) +1 21.05.12 173 14 11쪽
2 수업(1) +2 21.05.12 228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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