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만의 미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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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66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6.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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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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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7쪽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DUMMY

푸르른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밝은 빛의 입자가 숲속에 퍼져나가면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켰다.


한밤 중 어둠 속에서 잔뜩 웅크려 있던 작은 식물은 빛을 받으려 한껏 몸을 펼쳤다. 펼쳐진 잎끝에 이슬이 맺혔다. 작은 곤충이 이슬로 다가와 목을 축였다.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새들도 바빠졌다.


‘짹짹! 짹짹!’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둥지 안의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 먹여야 했다.


‘푸드덕! 푸드드.’


이름 모를 산새들의 바쁜 날갯짓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다.


산새의 움직임에 상수리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던 도토리가 툭하니 땅으로 떨어졌다. 재빠른 다람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얼른 나무 아래로 내려가 먹이를 줍는다. 양 볼 가득히 먹이를 쟁여 놓는 다람쥐 뒤로 멧돼지가 나타났다. 다람쥐 만큼이나 도토리를 좋아하는 멧돼지였다.


해가 중천에 뜨자 더운 기운이 숲속에 퍼져 나갔다. 수십, 아니 수백 년간 무성히 자란 나뭇잎들이 산속에 사는 동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었다.


나뭇잎에선 광합성이 일어나고 부지런히 산소를 만들어냈다. 나무가 뱉은 숨결을 들이마신 한 등산객이 미소를 지었다.


“공기 좋구만!”


등산객이 내뱉은 날숨을 초록 식물들이 다시 마셨다. 지구에 사는 생명들은 서로의 들숨과 날숨을 필요로 하는 한 덩어리의 유기체였다.





등산객은 산을 내려와 바닷가에 지은 아담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산에 오르는 걸 좋아했다.


그에게 산은 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우뚝 솟아 위엄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면 편안했다. 언제나 강직하게 모든 풍파를 막아내고 자신을 지켜줄 것만 같은 느낌. 사시사철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온갖 것을 키워 자신에게 내어주는 산은 아버지였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이른 저녁을 준비하려 채비를 했다. 산을 올라서 그런지 허기가 졌다. 그는 바다로 향했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잔잔한 바다. 산이 아버지였다면 바다는 어머니 같았다.


“문어라도 한 마리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는 해변가 바위 위에서 미끼를 넣은 통발을 힘껏 던졌다.


‘풍덩!’


통발이 바다 표면에 부딪히자 흰 공기 방울이 일었다.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놀라 바위 사이로 숨었다.


‘꼬로로로륵’


통발이 천천히 가라 앉았다. 그 안에 들어있던 미끼가 냄새를 풍기자 제일 먼저 작은 게들이 몰려 들었다.


게들은 통발 바깥에서 집게로 먹이를 잡아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자 구멍을 찾아 통발 안으로 들어갔다.


바위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놀래미 몇 마리가 통발 근처로 몰려들었다. 경계심이 많은 물고기들은 툭툭 그물을 몇 번 쳐 보더니 다시 해초가 우거진 바위 틈으로 쏙 도망쳐 벼렸다.


저 멀리 깊은 바다에서 헤엄쳐 오던 숭어 한 마리가 물고기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쓱 하니 헤엄쳐 왔다. 뭐 먹을 것이 있는지 살피던 숭어는 별게 없는 것을 확인하곤 다시금 깊은 바다로 유유히 헤엄쳐 갔다.


숭어가 헤엄치는 힘찬 꼬리 짓에 물결이 흔들렸다. 바위에 붙어있던 해조류가 살랑살랑 물결에 맞춰 춤을 추었다.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자연스러웠다.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럽거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네트워크가 바로 자연이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는 서로를 연결하는 균형 있는 시스템으로 유지되어 왔다. 인간이 모든 것을 망치기 전까지.




몇 시간 뒤, 그는 줄을 당겨 통발을 바다 밖으로 올렸다.


“에이. 게 몇 마리가 전부잖아.”


그는 통발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방금 잡은 꽃게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해물 향이 섞인 라면의 냄새가 집안을 채웠다.


‘후루룩. 후루룩. 와. 죽이네.’


그는 꽃게 몇 마리만으로도 행복했다.


저녁을 해결한 그는 일찍 자리에 누웠다. TV 하나 없는 집안에서는 해가 지면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고. 배부르고 등 따시니 여기가 천국이네.”


세상과 단절하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그는 모든 것을 벗어던진 홀가분함에 기분 좋게 취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그를 끝까지 품어주리라 철떡같이 믿었던 산과 바다가 일렁였다. 바닷속 깊은 곳이 입을 쩍하니 벌리듯 갈라졌다.


바다 한가운데 위치해 있던 세일 시추 기지들이 힘없이 무너졌다.


거대한 지층의 변화에 바닷물은 심해의 갈라진 곳으로 모여들었다. 해변의 물이 갑자기 썰물이 빠지듯 저 멀리 달아났다.


“멍! 멍!”


심상치 않은 바닷물의 움직임에 놀란 개가 짖어 댔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오늘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남자는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래전 바닷속 진흙이 굳어 만들어진 지층. 그 안의 갇힌 세일 오일을 얻으려 땅속을 깨부순 결과는 강도가 들이닥치듯 순식간에 예고 없이 찾아왔다.


‘쿠구구궁! 쿠왕!’


약해진 지층을 뚫고 잠자던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끓어 올랐다. 깨진 지층에선 붉은 마그마가 끓어 올랐고 모인 바닷물들을 한꺼번에 밀어냈다.


’솨아아아. 퍼엉!‘


큰 진동이 바닷속을 흔들었다. 지구의 성난 폭발은 큰 파동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점점 퍼져나갔다.


’퍼더덕. 퍼더더덕’

‘두구, 두구, 두구.’

‘빠지직 쩍! 우루루 쾅!’


새들이 날아 올랐고 산짐승들이 날뛰며 나무가 쓰러지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라 여기던 산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 안에 품고 있던 생명들을 집어삼키며 산은 쏟아져 내렸다. 저 멀리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바다는 높은 산처럼 몸집을 키워 허옇게 달려오고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잔잔히 그를 맞아주던 어머니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멍! 멍! 깽. 깨앵!“


”무슨 일이지? 왜 저렇게 개가 짖어?“


그제야 잠에서 깬 남자는 창밖을 풍경을 보고 눈을 비볐다. 그는 아직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말도 안돼. 아. 아니. 진짜인가?“


그는 정신을 미쳐 다 차리기도 전에 눈 앞에 다가온 큰 파도를 마주했다.


”아! 안 돼! 으악!“


해안을 덮친 커다란 쓰나미에 그의 집은 종잇장 찢겨 나가듯 부서지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먹이를 찾던 숭어도, 멧돼지도 ,어미 새를 기다리던 둥지 안의 새끼 새들도, 이슬을 마시던 작은 벌레도, 남자도.


모두 뒤집어진 세상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작가의말

하루 두 편씩 못 올려 죄송합니다. ㅠㅠ


여기까지 같이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완결까지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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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 80화. 외전 3(완결)> +3 21.07.04 128 10 8쪽
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4 7 7쪽
78 <제 78화. 외전 1> 21.06.29 106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4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4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8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99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6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1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7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99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2 10 7쪽
63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4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4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59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2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0 12 9쪽
57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4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8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5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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