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피지컬 괴물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종주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5
최근연재일 :
2021.06.25 22:41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4,114
추천수 :
495
글자수 :
130,231

작성
21.06.02 13:19
조회
360
추천
16
글자
12쪽

헤르비크(2)

DUMMY

길버트의 도발에도 호엔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주위를 돌며 빈틈을 찾는다.


아마 녀석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거다. 자신이 길버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게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련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껄렁대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길버트는 3학년 전체를 통틀어도 수위권에 드는 실력자다.

호엔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호엔은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녀석은 그저 이 전투 자체를 즐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다.


“합!”


순식간에 도약한 호엔이 길버트의 코앞에서 검을 내지른다.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매서운 공격.

그러나 길버트에겐 통하지 않았다. 제대로 자세도 잡지 않은 채 호엔의 공격을 튕겨냈다.


팅!


“오, 제법···.”


길버트가 의외라는 듯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호엔의 공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챙! 챙! 챙!


순식간에 이어진 수십 번의 공방.

기세를 잡은 호엔의 검은 물 흐르듯 길버트의 약점을 공략해 나갔다.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호엔의 검술에 길버트도 당황한 듯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하하하! 쟤 좀 봐! 방심하더니 그대로 밀리잖아?”


길버트의 얼빠진 표정을 바라보던 델라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동시에 길버트의 얼굴이 팍 일그러진다.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이다.


“으드득!”


길버트가 이를 악물며 검을 이리저리 뒤튼다. 기이한 궤적으로 들이닥치는 길버트의 검에 결국 호엔은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너 이름이 뭐지?”

“호엔 라이델트입니다!”

“라이델트? 쳇! 왠지 실력이 너무 좋다 했어. 더 할 필요도 없겠어. 합격이다!”


길버트는 라이델트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호엔의 비정상적인 실력이 이해되는 모양이었다.


“뭐야? 길버트 너 설마 질까 봐 빼는 거야?”

“뭐? 이게 확!”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다음 주자가 준비를 마쳤다. 이번에 루나와 로쉬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대련장에 마주 보고 선 둘의 모습이 영 불안해 보인다.


“어··· 정말 이대로 할래?”


과장 없이 덩치가 두 배는 차이가 났다. 안 그래도 작은 몸집의 루나와 일반인보다 훨씬 큰 체구의 로쉬.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전 괜찮아요! 열심히 해볼게요.”


하지만 루나는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결국 그대로 둘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시작!”


탓!

선공은 루나였다. 빠른 움직임이 특기인 그녀인 만큼 반응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로쉬에게 달려들었다.


“헛!”


로쉬도 루나가 저렇게까지 빠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한 눈치다. 서둘러 루나의 움직임을 쫓고 있지만 반응이 살짝 느리다.


결국 빈틈을 포착한 루나가 로쉬의 품 안에 파고들어 훤히 드러난 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흐읍!”


텅!

분명 정확히 복부를 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쇳덩이를 때린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뒤로 튕겨 나간 것은 오히려 공격에 성공한 루나였다.


“저게 무슨!”


호엔도 그 광경에 깜짝 놀란 표정이다. 그런 호엔이 반응이 웃긴 듯 델라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훗. 어지간한 공격은 로쉬에게 통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녀석이 익힌 연공법은 땅 계열 연공법 중에서도 가장 방어력이 높기로 유명하거든.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다고 보면 될 거야.”


저 말대로라면 루나에게 최악의 상성이나 다름없었다. 루나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약한 공격력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제 전투 양상 또한 루나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속도는 명백히 루나가 우위.

하지만 그녀는 속도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로쉬에게는 그 어떠한 공격도 통하질 않았으니까.


대부분의 공격이 로쉬의 간단한 움직임에 틀어 막혔으며 겨우겨우 비집고 성공한 공격도 유효타를 주질 못했다.


마치 벽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아···. 하아···. 졌어요.”


결국 체력이 고갈된 루나가 포기를 선언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로쉬를 뚫어내지 못했다.


상성이 좋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만큼 로쉬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대련이 끝났음에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효율적으로 싸우는 방법이 몸에 익었다는 뜻이다.


로쉬가 숨을 고르고 있는 루나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음···. 이상하게도 공격에 마력을 제대로 실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부분만 보완이 된다면 충분히 위력적일 것 같습니다만.”


로쉬가 언급한 건 루나가 훈련할 때마다 늘 고민하던 내용이었다.

아마 저건 네르프 가의 연공법 때문일 확률이 컸다. 언제 한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차례네?”


루나와 로쉬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델라가 나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안 봐줄 테니까. 제대로 해봐.”


저기 좀 봐주셔도 되는데요?

순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킨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델라는 아카데미 내에서 적수가 몇 없을 정도로 강하다.


3학년 3위, 폭렬의 델라.


그녀는 마법사임에도 육탄전을 이용한 특이한 전투방식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그녀 주위를 맴도는 폭약과 같은 마력은 알고있어도 막는 게 불가능하다 정평이 나 있다.


“빨리 와!”


먼저 무대에 올라간 델라가 붉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으며 재촉한다.


사실 그녀 정도의 실력자가 대련해주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참에 내 밑천을 파악해 놓는다면 앞으로 상당히 도움이 될 거다.


“흐읍.”


난 헤실헤실 웃는 표정의 그녀를 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퍼지는 번개의 마력. 투왕의 감각을 깨우는 일련의 과정은 이젠 너무 익숙했다.


‘저건?’


감각이 예민해지자 난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수십 개의 구체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저게 바로 그녀에게 폭렬이란 별명을 안겨준 그녀의 고유 마법.


「붉은 혜성」.


구체 하나하나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소형 폭탄. 함부로 다가가다간 폭발에 휩쓸려 단숨에 잿더미가 돼버릴 거다.


‘설마 터트리겠어?’


고작 대련하는데 그렇게 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의미심장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또 불안하다.


“먼저 공격해.”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 델라가 턱을 치켜든다. 분명 빈틈투성이의 자세건만 「투왕의 감각」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듯 경고를 보내왔다.


타앗.

그렇다고 계속 가만히 있을 순 없기에 난 애써 경고를 무시하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먼저 가볍게 탐색전을 해볼 생각이었다.


휘잉!

빈틈을 노리며 힘껏 검을 휘두른다.


“응? 실망인데?”


탕!

하지만 내 검은 그녀에게 닿지도 못한 채 가로막히고야 말았다.

그녀 주위를 돌고 있던 구체의 소행이었다. 단순히 공격수단일 뿐 아니라 방패 역할도 하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강도도 제법 단단했다. 나름대로 힘을 실었음에도 이리 쉽게 막혀버리다니.


“내 차례지?”


델라가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그녀의 근처에 있던 구체 하나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난 재빨리 몸을 옆으로 날렸다.


펑!

내가 있던 자리에 틀어박힌 구체가 곧장 폭발한다. 견제용 공격인 모양이었지만 위력이 마냥 약하진 않다.


“감은 좋구나?”


안 봐주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지 그녀는 대련에 대충 임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한번 실력 좀 볼까?”


이번엔 그녀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최대한 기사와 거리를 벌리려 들 테지만 그녀는 특이하게도 치고받는 싸움을 선호하는 괴짜.


난 나를 향해 달려오는 델라를 보며 천천히 눈을감았다.

사실 내가 그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녀 정도면 당장 아카데미를 나가서 마수 사냥꾼으로 활동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내빼는 건 자존심 상했다. 호엔도 그렇고 루나도 그렇고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나도 내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설프게나마 기억 속에 남아있는 투왕의 기술을 따라 하는 것.

단순히 겉모습만을 따라 하는 것뿐 아니라 호흡, 미세한 잔떨림은 물론 마력의 움직임까지 흉내 내는 거다.


물론 그렇다 해서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도 내겐 과분한 기술들이었다.


난 눈을 감은 채로 마력을 머리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활성화된 뇌가 맹렬하게 회전한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리를 후벼파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앞으로 환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시산혈해(屍山血海).

온통 붉은 빛이 가득한 전장 속에서 두 명의 사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 명의 얼굴은 익숙했다.


투왕 레이크.

지금 보고 있는 이 기억의 주인이었으니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투왕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과연 명불허전이군.”

“···.”

“특급 마수 셋의 목을 베었다는 소문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어. 내 여태껏 자네만큼 강한 사내를 본 적이 없네.”


사내의 찬사에 투왕이 말없이 씨익 웃음을 짓는다. 난 그제야 둘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다.


한껏 여유로운 모습의 투왕과는 달리 중년의 사내는 겉으로만 태연할 뿐 그리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검을 쥔 손은 세차게 경련하고 있었으며 입가엔 희미하게 피가 흐른 자국이 남겨져 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 천천히 검을 들여보냈다.


“마지막 공격이네. 한 번 받아보시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투왕을 향해 쏘아졌다. 감히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그모습을 바라보는 투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하지만 시선 만큼은 사내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서웠다.


파직! 파지직!


투왕의 마력을 일으키자 주위로 번갯불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력을 끌어올린 것뿐이것만 주위가 시꺼멓게 그을린다.


투왕은 검을 쭉 들어 올렸다.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샛노란 전류가 검을 타고 올라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중년의 사내. 사내가 투왕을 향해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검을 내지른다.

사내의 검에는 투왕에 못지않은 막대한 기운이 응축되어있었다.


콰아앙!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날아드는 사내의 검을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던 투왕이 그대로 검을 내리긋는다.


번쩍!

우르르 쾅쾅!


이윽고 사방으로 섬광이 점멸했고, 귀를 찢는듯한 우렛소리가 그 뒤를 따라왔다.



*



‘뭐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경악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델라의 모습이었다.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멍하니 있는 사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검이 그대로 델라를 향해 내리꽂혔다.

검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노란빛의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아차!

급속도로 정신이 돌아왔다.

델라의 「붉은 혜성」을 찢어발기며 나아가는 검을 보자마자 난 재빨리 검의 궤적을 틀려고 했다.


‘젠장’


하지만 너무 늦었다. 머리는 인지했지만 몸이 반응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그대로 델라의 정수리로 대검이 내리꽂히려는 순간.


덥석.

귀신같이 다가온 시온이 검날을 잡아챘다.


“대련 한번 살벌하게 하는군.”


치지지직!

시온에 손에 붙잡힌 검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속에 담겨있는 마력을 밖으로 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시온이 그대로 검을 들어 대련장 밖으로 던져버린다.


우르릉!

바닥에 처박힌 검은 그러고도 힘이 남았는지 한동안 울음을 토해낸 후에야 잠잠해졌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검을 지켜보던 시온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이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의 피지컬 괴물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입니다 +1 21.07.26 95 0 -
공지 제목변경 21.05.18 391 0 -
25 카포타르(2) 21.06.25 155 5 13쪽
24 카포타르(1) +1 21.06.23 196 7 11쪽
23 변화(4) 21.06.16 240 8 11쪽
22 변화(3) 21.06.15 260 7 10쪽
21 변화(2) +1 21.06.11 275 9 12쪽
20 변화(1) +1 21.06.08 280 10 12쪽
19 헤르비크(3) 21.06.05 347 12 11쪽
» 헤르비크(2) +3 21.06.02 361 16 12쪽
17 헤르비크(1) +1 21.05.31 382 13 11쪽
16 테오 로드메인(2) +3 21.05.29 445 14 11쪽
15 테오 로드메인(1) 21.05.28 449 14 11쪽
14 마수학 실습(4) +1 21.05.25 497 21 14쪽
13 마수학 실습(3) +1 21.05.22 564 25 13쪽
12 마수학 실습(2) +1 21.05.20 606 28 13쪽
11 마수학 실습(1) +1 21.05.18 631 27 13쪽
10 수업(3) +1 21.05.17 639 27 14쪽
9 수업(2) +1 21.05.16 662 24 14쪽
8 수업(1) +1 21.05.15 673 32 14쪽
7 입학(3) +2 21.05.14 705 25 11쪽
6 입학(2) 21.05.13 734 25 11쪽
5 입학(1) 21.05.12 757 29 12쪽
4 레인벨 아카데미(3) 21.05.12 858 25 13쪽
3 레인벨 아카데미(2) +3 21.05.12 1,020 29 11쪽
2 레인벨 아카데미(1) +2 21.05.12 1,112 33 11쪽
1 프롤로그 +2 21.05.12 1,264 30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