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버프 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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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트라이베카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3
최근연재일 :
2021.06.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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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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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트로이 목마

DUMMY

철옹성(鐵甕城)을 함락시키는 방법.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전략은 내부에서의 협공이다.


아무리 외피가 단단하다고 한들 안쪽에서 일어나는 침식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아카이아 연합군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 방법만 봐도 그렇다.


거짓 신탁을 가장해 목마를 트로이 성안으로 들인 연합군. 트로이 성의 견고함도 내부와 외부의 협공을 버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목마에 정예를 숨겨 성내로 들인다는 작전도 작전이지만, 연합군의 사전 작업 또한 작전 성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목마를 성으로 들여야지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는 거짓 신탁에 기반한 선동.

성문을 허물면서까지 목마를 들여오겠다는 트로이군의 조급함.

마지막으로 선별된 정예 침투조의 무위와 담력.


이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철옹성은 함락됐다.


그리고 현재, 신투에는 목마가 들어와 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신투가 커 봤자 마진 콜 나오면 게임 끝 아닙니까. 상황 발생하면 바로 인수 절차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만 해 주세요."


이상혁.


목소리의 주인.


"시스템 적용이요? 개발팀한테 들은 대로라면 몇 주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체결 들어가자마자 가격 조정하면 되고요."


시스템? 설마 시스템 개편 요청 올렸던 걸 말하는 건가?


"그 점은 염려하지 마세요. 어차피 티도 안 날 텐데요. 저는 그냥 옵션 자동 거래를 도입할 뿐 아니겠습니까. 여기 리스크관리팀 허술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네, 네. 그렇습니다. 크크,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 몰랐죠. 쌍팔년도도 아닌데 미국에서 들여온 신기술이라고 하니까 눈 뒤집혀서 사전 검수도 안 하더라고요."


이상혁의 들뜬 목소리.


"제가 제시하는 전략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이미 결정 났습니다. 눈속임으로 위험도 계산도 제출했죠. 당연히, 우리가 원하는 결괏값만 빼고요."


조금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문에 귀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네. 단기간에는 큰 수익이 생기겠죠. 공격적인 전략인 만큼 수익도 크니까요. 그래봤자 별수 있겠습니까? 제 실적이 높을수록 저에 대한 신뢰도 상승할 텐데요."


이상혁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믿을수록 전략을 적용하는 스케일도 커질 거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계획이 더 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준비만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상혁의 대화는 일단락됐다.


방 안에서 문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나는 황급히 코너를 돌아 몸을 숨겼다. 다행히 실내가 어두워서인지 이상혁은 인기척을 못 느낀 듯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마진 콜···? 인수 절차···?'


이상혁이 통화에서 언급한 키워드들.


'마진 콜이 나왔을 때 인수 절차 도입하라고?'


마진 콜은 옵션이나 선물 같은 파생 상품을 거래할 때 손실이 날 때 필요로 하는 추가 증거금을 뜻한다.


마진 콜이 나왔을 때, 추가 증거금을 제시할 수 없다면 옵션 매도자는 강제 반대매매를 당하며 큰 손실을 확정 짓게 된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혁은 신투의 마진 콜을 강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인수 절차에 도입하라고 하는 건.


'신투를 쓰러트리겠다?'


이상혁이 제시한 시스템 개선 사항은 옵션거래 시스템 자동화다. 만약 극도로 위험한 옵션 계약을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대량으로 체결시킬 수 있다면?


시장이 예상치 못하게 움직이는 순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마진 콜을 겪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신투라고 해도 쓰러질 수밖에 없는 규모의.


'쓰러트리고, 집어삼키겠다는 건가.'


물론 이런 시도는 리스크관리팀 선에서 제재를 당해야 마땅하지만···.


'리스크관리팀은 이런 거 사전 검수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최지민의 삼촌, 개발팀 최 과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상혁이 제의한 시스템 개선 요청을 조창훈 전무가 직접 우선순위에 넣으라고 지시했었지?'


설마 이렇게 허술할까 의심이 들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슈퍼 루키가 등장하고, 글로벌화를 꿈꾸는 기업은 안달이 난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금융 시장에서 한 발짝 더 나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필요한 사전 절차도 다 생략하고 '신세대' 전략을 도입.


그 과정에서 임원급의 내부 압력이 작용하며 그나마 존재했던 안전핀도 뽑아 던진 격이겠지.


'컬럼비아 대학교 금융공학 석사? 브랜드 따지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이야말로 트로이 성의 함락과 일맥상통한다.


유수 대학의 선진 교육을 받은 인재가 가져온 차세대 전략. 그 전략을 도입하면 금융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


그 거짓 믿음 때문에 생긴 자그마한 틈으로 침투한 정예. 이상혁.


견고하게 세워진 문을 손수 부수면서까지 외세의 침략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어리석음. 신투 수뇌부의 안일함.


톱니바퀴는 맞물렸다. 이상혁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니, 그전에 도대체 이상혁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일을 꾸미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이 계획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때마침 나는 지금 감사실로 가는 길.


'네 계획이 얼마나 대단한들 감사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저 저 앞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서, 회사를 좀먹기 위해 눈알을 번뜩이고 있는 기생충 이상혁을 고발하면 끝이니까.


'이래서 행운의 숫자였구나.'


이상혁의 흑막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혁이 신투에서 쫓겨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테니.


나는 감사실로 향하는 유리문을 열었다.


**


"시끄러워."


감사팀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사유서나 제출해라. 우리 바쁘다."

"팀장님, 확인만 해 보는 건 아무런 손해가 없지 않습니까?"

"야, 내가 너 같은 놈들 한두 번 보는 줄 알아?"

"저 같은 놈들이라뇨?"

"너 지금 이상혁 사원이랑 경쟁하고 있잖아. 페어플레이해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음해로 뭘 해 보겠다고?"


감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상혁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 보고했다. 하지만, 감사팀장을 비롯한 모두, 내 말을 제대로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한 걸까? 초엘리트 금수저 루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모를 꾸미는 걸 믿지 못하는 것이.


"리스크관리팀 쪽에 언급이라도 해 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 그렇지 않아도 거래 기록 총 감사 시즌이라서 리스크관리팀이나 우리나 죽어나고 있거든?"

"···."


팀장은 오히려 내게 성을 냈다.


"너 허가된 종목 이외 거래로 온 거잖아. 너같이 말도 안 되는 거래 일삼는 놈들 때문에 우리가 바쁜 거고."

"죄송합니다. 그건 제 명백한 실수였어요. 하지만, 제가 드린 말씀은···."

"아 그만! 너가 지금 내린 판단도 실수겠지. 그럴 정신 있으면 앞으로 고객사 거래 요청 있을 때 집중이나 잘해라? 우리 귀찮지 않게."

"···."

"알았으면 나가 봐."


내 판단 착오였다. 감사팀이 꼰대 천지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아마 저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겠지.


새파랗게 어린 신입 사원이, 실수 때문에 시말서나 다름없는 사유서 제출하러 왔다가 경쟁 중인 상대를 음해한다.


'못 믿는 게 당연한 건가···?'


트로이의 그 누구도 목마의 거짓 신탁을 간파한 카산드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 꼴도 별다를 게 없다.


차선책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아마 당장 이상혁의 계획을 막을 수는 있을 테지.'


박창섭 팀장 정도의 인사가 부실한 리스크 관리의 허점을 지적한다면? 이상혁이 발의한 거래 자동화에 대해 조금 더 체계적인 검수가 있을 거다.


'하지만 이상혁을 제거할 수 있을까?'


이 차선책을 따른다면, 단순히 시스템 자동화가 무산되는 선에서 그칠 확률이 높다.


'아까 분명 내부에서 회유하는 것도 끝났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상혁과 계획을 공모 중인 누군가가 회사 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신투의 재정 건전성에 흠집을 내고, 상처가 곪으면 회사를 장악할 생각으로.


'시스템 자동화 무산되어도 이상혁이 숨기고 있는 계획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을 텐데.'


그저 신입 사원으로써 거래 위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해프닝 정도로 치부되겠지. 신입 사원이면 충분히 실수할 법도 하고.


'같이 붙어먹은 놈들도 그대로 남을 테고.'


이상혁이 신투에 남아 있는 이상 내부에서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이상혁이 언급한 대로, 과하게 공격적인 전략을 도입하면 단기간 큰 수익이 생길 수 있다. 그로 인해 이상혁의 실적은 최소 몇 주 동안은 급상승할 거다.


'조별 과제···.'


가만히 있으면 신투가 위협받기 이전에 내 자리를 먼저 빼앗기게 생겼다.


-7층입니다.


뾰족한 수가 없을지 머리를 굴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하 대리가 잡아 세웠다.


"잘 해결한 것 맞아? 사유서 제출했고?"

"네 대리님. 실수해서 죄송합니다."

"그거 이틀 뒤에도 감사팀 DB에 상태 업데이트 안 되면 전화 넣든가 다시 찾아가든가 해야 하니까 꼭 확인 잘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하 대리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들어왔던 고객사 주문 내역을 넘겨주었다.


꼼꼼히 처리하라는 지시를 몇 번이고 반복한 하 대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몸을 돌려 다시 내게로 걸어왔다.


"아, 내 정신 좀 봐. 바빠서 깜빡할 뻔했네."

"네? 더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회의실 들어가 봐."

"회의실이요?"

"팀장님이 찾으신다."


박 팀장이? 최근 바빠서 얘기할 기회도 많지 않았는데. 무슨 일로 나를 찾는지 의아해하며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가볍게 노크한 뒤 문을 빼꼼히 열어 내 도착을 알렸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박창섭 팀장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어, 어서 들어와."


박창섭 팀장의 들어오라는 손짓. 그 손짓을 보고 회의실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안녕하세요, 민성 씨."

"네, 안녕하···."


박창섭 팀장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인사. 그 인사에 반자동적으로 답을 하다 얼굴을 쳐다보고 말을 멈췄다.


이상혁.


"지금 조별 과제로 경쟁 중인 건 알지만, 장기적으로 서로 협업해야 하는 프로젝트라서 너도 불렀다."

"프로···젝트요?"

"이번에 이상혁 씨가 신투 거래 시스템에 옵션거래 자동화 도입하려고 개발팀이랑 같이 일하고 있거든."


이상혁이나 박 팀장이나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를 거다. 최지민의 삼촌이 아니었다면 이상혁이 발의한 시스템 자동화 요청조차도 몰랐어야 하니까.


물론, 이상혁은 내가 그의 진짜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를 거다. 일단은 내가 가진 패를 숨겨야 한다.


그래서 마치 처음 듣는 소식인 양 행동하며, 박 팀장에게 되물었다.


"옵션거래 자동화요?"

"응. 이제 막 디테일에 대해 설명 들을 참이었는데 타이밍 좋게 잘 도착했네. 이상혁 씨. 직접 설명해 주는 게 어떻겠어요?"


박 팀장이 말을 끊고 이상혁을 쳐다봤다. 이상혁은 박 팀장을 향해 싱긋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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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입자 +1 21.06.05 1,074 46 14쪽
37 해결책 +1 21.06.04 1,106 59 13쪽
36 탐색전 +2 21.06.03 1,129 56 13쪽
35 선전 포고 +4 21.06.02 1,180 53 12쪽
34 1등? +7 21.06.01 1,188 6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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