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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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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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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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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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DUMMY

레시아랑 입구에서 멀뚱하게 서있자 무리 사람들이 데리고 강제로 합석시켰다.


“아는 사람들이야?”

“응, 어제.”


레시아도 당황했다. 어제 처음 왔었는데 날 아는 척, 친한 척 대했다.

레시아와 비슷한 덩치의 사람들이 둘러싸니까 내가 조오금 작아진 느낌?


“이 녀석들이 어제 마수를 봤다는데 부속물 하나 없이 왔다고 하잖아. 증거 없이 어떻게 믿겠냐고. 다 허세지.”


다시 보니 어제 사냥꾼 무리 중 몇 사람이 보였다. 어설프게 내게 인사했다.


“그러다가 이놈들이 지금 들어온 형씨가 잡았대. 진짜야?”


레시아와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자 불만스레 맥주만 마시던 사냥꾼 중 한명이 말했다.


“마수랑 마주치면 보통 뒈지거든. 근데 우리가 살아왔잖아. 마법사 양반이랑 같이 갔다고 했는데도 증거가 없다고 안 믿잖아! 근데 형씨가 딱 들어왔잖아!”


근데만 몇 번을 말하는 거냐.

나도 마수 사체가 사라진 현상은 처음이라 몰랐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육원 진화작업 끝난 직후 스승의 댁에 쳐들어가 물었다.


‘책의 마수가 온 걸 보니 이 근방에 있겠군.’

‘책의 마수가 뭔데요? 그걸 책의 마수라고 부르는 거예요?’

‘나중에 필요하면 알려주지. 미리 알아 봤자 좋을 거 없어. 특히 넌.’


스승은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은 끝에 다음에 날 쫒아냈다.

사냥꾼들에게는 적당하게 말해줘야겠다.


“마수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이제야 발견한 종류가 있을 수도 있죠.”

“죽고 사체 없이 사라진 마수라고 했지?”


갑자기 조용히 듣고 있던 레시아가 끼어들었다. 어딘가 께름칙한 표정이었다.


“너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아니, 없어.”


레시아의 마나가 요동쳤다.

요동 폭이 약했지만 평소의 마나가 잠잠한 녀석이라 이정도 움직임이면 스스로 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휴, 다들 피곤한 사람에게 뭐하는 거야. 이 분은 어제 저 뒤쪽 골목 보육원 은인이잖아. 자자, 이거 마셔요.”


여관 주인이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맥주와 훈제 고기, 스프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간단하게 먹고 가려했는데.


“애들 도와줬다니까 서비스. 안 그래도 어제 불났다는 이야기 듣고 도우러 갔는데 너무 큰 불이라 조금 밖에 못 도와줬어. 우리 대신 도와준 값이라 생각해.”

“차별이다! 우리도 줘!”

“매일 같이 서비스 맥주 처마시면서 뭘 또 달래!”

“어어 형씨 여기 스프 죽음이야 죽음.”


레시아는 맥주를 들고 난 죽음이라는 스프를 마셨다. 욱.

차마 여관 주인이 앞에 있어 뱉지는 못했다. 사냥꾼들이 낄낄 웃었다.


“거봐~ 죽음이라니까.”

“간보는데 왜 그러지. 맛있는 고기는 때려 넣는데.”

“어어 주인장은 고기는 굽기만 해. 다른 거는 신경 쓰지 마.”

“다른 손님이 원하니까 내놓지! 잠깐, 내가 다른 음식도 만들어 올 테니까 뭐가 문제 좀 봐줘.”


레시아랑 눈 마주쳤다.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어, 일단 잠깐 나갔다 와도 되나요?”

“어딜 가!”


사냥꾼 무리는 우리를 붙잡았다.

빛깔부터 좋아 보이는 통구이부터 향은 괜찮은 여러 스프 종류, 빵 그리고 여러 종류 술이 줄줄 나왔다.

나와 모르는 사람인 척 레시아가 다시 맥주만 들고 일어섰다.

주인장이 레시아를 잡아채 다시 내 맞은편에 놓았다. 하하. 쌤통이다.


“어때!”


이제야 통구이를 입에 넣었는데 주인장이 득달같이 물었다.

괜찮다는 뜻으로 끄덕이자 스프를 떠먹여줬다. 아까 스프보다 괜찮은데?

역시 끄덕이자 주인장이 찌푸렸다.


“다 맛있다고 하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고기는 진짜 맛있고요. 스프는 아까랑 달리 이상한 누린내가 막 섞인, 그런 맛은 안나요.”

“누린내?”


주인장은 내가 처음 먹은 스프를 킁킁 거렸다.

계속 맡고 있으니 익숙해져서 못 맡는 건가.

주인장은 그러다가 한 쪽 벽난로에 올라간 솥단지로 갔다.

건더기가 잔뜩 있는 스튜였다. 저렇게 건대기가 많은데 국물만 줬어?


“···그건 뭐예요?”

“뭐긴 스튜지. 다른 데도 다 이렇게 하잖아.”

“털은 벗겨야죠. 이거 씻고 넣긴 하죠?”


주인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냥꾼들도 시선을 회피했다. 나도 말을 잃었다.


“이어 어무 다다한데여”


레시아는 빵에 이가 박혀 웅얼거렸다. 레시아는 입에서 간신히 빼낸 빵으로 테이블을 두드리자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야~ 이걸로 곰 대가리 쳐도 한방에 잡겠다. 무기로 딱이네, 딱!”


그걸 굳이 말한 사냥꾼의 뒤통수를 갈긴 주인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축제 때 팔 건데 큰일이네.”


저걸요? 사냥꾼들은 주인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축제에 팔아도 이윤이 없다는 등 이야기를 했지만 주인장은 다 떨쳐냈다.


“아, 손님이라고는 용병에서 사냥꾼으로 전향한 당신네랑 가끔 들어온 손님 밖에 없잖아. 나도 더 먹고 살아야지!”

“맛집이라고 우리가 더 소문낼게.”

“대신에 우리가 고기 싸게 가져다주잖아. 응? 막내 제수씨가 고기 굽는 건 환상적이니까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잖아.”


다른 요리 실력은···.

아예 사냥꾼 무리는 다른 쪽으로 가서 주인장을 달랬다.

우리만 덩그러니 남은 테이블에는 음식으로 가득했다.


“이리 오길 잘했네.”

“그러게 음식도 공짜로 먹고.”


이 중에 통구이가 제일 맛있었다. 적당하게 구워 육즙과 고기가 쫄깃했다.

고기에 곁들인 소스를 살짝 찍어 먹으면 맥주 한잔 뚝딱이었다.

이건 이렇게 맛있는데 왜 다른 요리는 진짜.

레시아는 날 빤히 쳐다봤다.


“네 기분 나아졌잖아.”

“뭘. 여전히 피곤한데.”


그래도 어제 방화범이 날뛰던 게 꿈같고 그렇다.

사람 사는 게 이래야지.


“그래도 다음 주부터 축제라니 시간 빨리 간다.”

“응? 다음 주? 내일 휴관일 지나면 이잖아.”

“그게 다음 주지. 축제는 삼일 동안 열리고, 마지막 날에 제1왕자의 왕세자 임명식도 있어.”

“그렇구나.”


어차피 도서관에서는 따로 진행하는 행사나 프로그램 있지 않을까.

도서관은 정상 운영할 거 같은데.

심드렁한 반응에 레시아가 갸우뚱거렸다.


“우리 축제 때 도서관의 자료관 운영안하는 거 알지?”

“어? 아니. 뭐 견학 같은 거 한다고 그랬는데.”

“자료관 담당 선생님들은 자료관 운영안하고, 왕궁마법사로서 일해.”


요새 도서관 일보다 왕궁에서 부려먹는 빈도가 더 많다.

내 불만어린 표정을 보고 레시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우리가 왕궁마법사 소속으로 도서관에 파견 나온 거야.”

“그래서 뭐 해야 하는데.”

“첫날이랑 두 번째 날에는 대기. 바쁘면 부르고 아니면 도서관에서 일 해. 마지막 날에만 하루 종일 경비하러 나가면 돼.”

“자료관만 그러면. 너랑 나? 맞아, 아이리스 선생님도 계시지.”


이후로 실없는 소리만 잔뜩 하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곧 축제라 그런지 골목마다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 잠들기 싫다.


*


어제도 꾸역꾸역 일하다 안 잤는데 결국 한계였나 보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몸은 가벼웠다. 꿈속이었다.


‘이래서 자기 싫었는데.’


맑은 낮, 마을이었다. 악몽의 시작한 날이었다.

악몽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린 내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은 마을 외곽에 자리했다.

조금 떨어져있는 옆집 아이는 자주 우리 집에서 파이를 가져다 줬다.


“로소 형아. 엄마가 형아랑 같이 먹으래.”

“지금 다 먹으면 내일은 뭐 먹으려고. 오늘은 애플파이만 먹자.”


그 날은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너편 마을에 도움을 주러갔다.

나에게 과할 정도로 친절한 마을 어른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지만 나보다 훌쩍 큰 아이들.

병사들은 나를 잡기 위해 마을 모두를 잡았다.


“그 새끼들만 죽이면 되잖아요! 왜, 마을은 왜!”

“맞아! 우리가 밀고했잖아. 우리는 살려줘야지!”


무장한 병사는 최근에 마을로 이사 온 밀고자들을 힐끗 봤다.


“이단이다. 한 사람도 남기지 마라.”


살려달라는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아 죽였다. 죽인 시체는 불태웠다.

그들이 외곽에 다다르기 전에 어린 난 옆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옆집 아이를 찾아다녔다.

옆집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없이 마을 광장으로 돌아갔다.

풀숲담장 뒤에 있어 병사들은 아직 내 존재를 못 알아챘다.

병사는 살아남은 노인에게 물었다.


“치료를 하고 다닌다는 가짜 교주는 어디에 갔지.”

“모, 모릅니다. 진짜 모릅니다.”


불타는 광장 옆 주택 앞에 도망가다 잡은 자들을 모았다.

병사들은 어머니와 나를 찾고 있었다.

결국 여럿을 죽이고 옆 동네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병사는 멈췄다.

그 병사의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모두 불태워라. 이단에 물든 자는 마나 신께서 용서치 않는다.”

“이러면, 이러면 너희들이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모든 것은 데이지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멸망으로 이끌 이단자들을 모두 죽인다.”


사람들은 묶여 한 곳에서 불태워졌다.

비명소리를 배경 삼아 각 집마다 일일이 확인하며 숨어있는 자들을 끌어냈다.


“어딨어. □□.”


몰래 움직이며 옆집아이를 찾아다녔다.

이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악몽에서 조차 말에 비어있었다.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 있었다. 더는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타는 냄새가 역겹다.


“형!”


우리 집 창문에서 보고 있던 □□가 튀어나왔다. 내가 붙잡고 바로 산 쪽으로 뛰었다.


“저깄다! 잡아!”

“외향을 보니 저 꼬마가 마을 놈이 말하던 애 같은데?”


무장해 무겁다 한들 평지에서 말 타고 있는 어른을 아이는 따돌릴 수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산으로 가자. 말이 따라오기 힘든 길로 가자.”


아직 어린 □□의 팔을 억세게 잡아 끌었다.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붙잡혔다.


“교주 중 하나라기엔 너무 어린데. 죽이는 건 좀.”

“너, 지금 데이지님의 예언을 무시한 거냐? 곧 국교가 될 건데. 우리가 나라를 대표하게 되는데! 네가 뭔데!”


아이를 죽이는데 반대했던 병사의 목이 날아갔다. 상관의 노호가 울렸다.

상관은 검을 치켜든 채 □□를 봤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몸에서 불이 피어났다.

처음 마법을 쓴 날이자, 처음 내가 죽은 날이었다.


*


“!”

“잠깐 잠깐.”


퍼뜩 깨어났다. 내 어깨를 잡아채는 손길을 떨쳐냈다. 레시아였다.


“역시 악몽 때문에 잠 못 잔거 아냐? 어떻게 일하다 잠을 자.”


축제 첫날이었다. 지금은 왕궁마법사로서 별다른 명령이 없어 폐쇄한 2관에서 내일 올 견학자들 이름표 만들고 있었다.


“자자, 물 마셔.”


레시아가 부채질해주자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가 시원해졌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속은 울렁였다.


“큰 화재만 보면 악몽 꾸는 건 여전하네.”

“······.”

“산책이라도 다녀와. 도서관 안에 아직 견학하는 사람들 있으니까 온실 말고. 시장 한 바퀴 쭉 돌고 와. 좀 있으면 아이리스 선생님도 오실 테니까.”

“···고마워.”


이동 마법으로 도서관 울타리 밖에 나갔다. 더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잠에서 좀 깨자 조금씩 사고가 돌아갔다.

글래드에게 하급 수정구 깨진 거 다시 사주기로 했는데.

강도 사건도 시간이 꽤 지나 제 스승에게 새 수정구로 받았겠지. 다른 거 뭐 사줄까.

축제 마지막 날에 놀자고 해야지. 마석 시장을 지나 다른 곳을 향했다.


“안녕, 로소.”


익숙한 목소리에 가판대를 구경하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내 목소리를 잊지 않았구나. 기쁘네.”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내 대답은 듣지 않고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왜, 하필 악몽을 꾸고 이 자를 만나는가.

다시 식은땀이 흘렀다. 시원하기만 했던 바람도 차갑게 느껴졌다.

복잡한 골목을 한참 들어가서야 멈췄다. 머리끝까지 덮은 녹색 로브는 소매까지 장미로 화려하게 수가 놓여있었다.

시장에서는 상당히 눈에 띄는 복장이었지만 개의치 않아보였다.

한때 나라에서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자였다.


“왜 내 앞에 나타나신 거예요.”


로브를 벗은 자는 중년 여성과 닮은 모양의 괴물이었다.

내 말에 그 괴물은 씩 웃었다.


“어머니.”


그 괴물은 내 어머니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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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단자(1) 21.06.21 20 1 12쪽
48 반역자(3) 21.06.20 18 2 13쪽
47 반역자(2) 21.06.19 15 0 13쪽
46 반역자(1) 21.06.18 16 0 13쪽
45 스파이(2) 21.06.17 18 0 13쪽
44 스파이(1) 21.06.16 19 1 13쪽
43 연무 대회(3) 21.06.15 19 2 13쪽
42 연무 대회(2) 21.06.14 26 2 13쪽
41 연무 대회(1) 21.06.13 35 3 12쪽
40 연초 마나교 행사(3) 21.06.12 29 2 14쪽
39 연초 마나교 행사(2) 21.06.11 32 3 13쪽
38 연초 마나교 행사(1) 21.06.10 37 3 15쪽
37 왕립도서관 2주년 파티 21.06.09 45 5 13쪽
36 책의 마수(2) 21.06.08 42 4 14쪽
35 책의 마수(1) 21.06.07 43 5 14쪽
34 실습생(2) 21.06.06 39 4 13쪽
33 실습생(1) 21.06.05 41 4 12쪽
32 납품 계약 21.06.04 38 5 13쪽
31 종전 기념 축제 21.06.03 47 5 13쪽
» 악몽 21.06.02 39 4 13쪽
29 불타는 보육원(2) 21.06.01 29 4 13쪽
28 불타는 보육원(1) 21.05.31 30 4 13쪽
27 쥐구멍(3) 21.05.30 38 5 14쪽
26 쥐구멍(2) 21.05.29 30 4 14쪽
25 거대 마수(2), 쥐구멍(1) 21.05.28 3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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