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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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작품등록일 :
2021.05.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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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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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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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0계층과 쌍둥이(6)

DUMMY

"음. 내가 봐도 정말 멋져.."


아침 5시 30분. 평소와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깨, 거실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몸에 걸친 복장은, 쫙 빠진 검은색 레더 아머와 빛나는 은색 건틀렛. 그리고 마찬가지로 번쩍번쩍한 은색 그리브.


아아아. 요리 보고 저리 보고, 또 다시 돌아봐도..


"아.. 지금의 난 정말 멋져.."


라고 계속 자기도취에 빠지게 된다.


참고로 어제는 밀려있던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 길거리를 지나는 모험자들을 물색하느라 하루 스케쥴을 통째로 지상에서 소비해 버리고 말았었다. 이렇듯 어제는 던전의 그림자는 결국 구경도 하지 못한 하루였었다.


던전에 내려가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야 파티원을 구해야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소득은 무. 결과적으론 말 한 번 붙여 보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만 허무하게 소비해 버렸던 게 어제 내 하루 일과였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소득이 없었다고 해서, 어제 하루종일 아예 아무런 소득도 전혀 없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한 번 더 거울 앞에서 자뻑 포즈를 취해본 다음,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 액정을 내려봤다.


-------------------------------------------

동료를 구하신다고 하던데.

괜찮으시면 저희와 한 번 손발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내일 아침 6시. 남쪽 돔 앞에서 만나요.

저와 세실은 브론즈 랭크입니다.


루시 에블리스.

-------------------------------------------


어젯밤 열한시. 잠에 들기 직전, 내 휴대폰을 울렸던 메세지다.


이 메세지를 받았을 때는 너무 깜짝 놀라 침대에서 굴어떨어져 버렸었다.


발신인은 루시 에블리스. 어제 아침 우연히 뒷골목에서 도움을 줬던 쌍둥이 중 하얀쪽의 이름이었다.


검은쪽은 세실 에블리스. 어제 그 일이 있은 후, 나중에 꼭 사례를 하고 싶다며 내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묻고 그대로 훌쩍 사라졌던 쌍둥이. 그 쌍둥이가 이렇게 어젯밤 별안간 이 메세지를 보내왔던 것이었다.


물론, 이 메세지를 받은 후, 수차례 카톡과 전화를 걸어봤지만 쌍둥이는 계속 묵묵부답. 결국 그 이후로 다른 연락이 없이 이렇게 날이 밝고 말았다.


다만, 쌍둥이는 자신들이 브론즈 랭크임을 확실히 인증해 주었는데, 카톡으로 보내온 브론즈 랭크 인증 사진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 사진으로만 보자면, 쌍둥이는 이미 브론즈 랭크가 된지 벌써 1년째. 따지고 보면 나보다 훨씬 선배 위치에 서 있는 게 이 에블리스 자매였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훨씬 선배들을 앞에 두고, 어제는 그렇게 있는 힘껏 멋있는 척을 했었으니 말이다.


아으으,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어제일이 너무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주제 넘게 나섰던 덕분에 이렇게 인연이 생긴거니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슬러 봤다.


시간은 어느덧 5시 45분. 이제 슬슬 약속 장소로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이미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비워내고, 벽 한켠에 기대뒀던 화이트 팽을 호기롭게 집어들었다.


물론 아직은 고정 파티를 맺기로 완전히 확정이 된 것은 아니다. 손발을 한 번 맞춰보고 상성이 영 좋지 못하면 파티는 그 자리에서 해산. 매순간 순간이 목숨이 걸려있는 만큼 모험자들 사이에선 이러한 일등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유 없이 그냥 느낌이 좋았다.


"그 쌍둥이와는 왠지 척척 손발이 잘 맞을 것 같아..!"


이게 지금의 내 느낌이었다.


이렇게 득의양양하게 화이트 팽과 레더 아머. 그리고 건틀렛과 그리브를 점검한 뒤, 포션이 든 벨트 포켓을 확인. '쾅' 문을 열고 현관문을 나섰다.


"스읍. 하아~"


문을 나서자마자 맑은 공기를 원 없이 들이켜 봤다.


오늘 날씨는 아주 맑음. 하늘도 이렇게 밝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속 썩이던 파티원 문제도 이대로 술술 단번에 해결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다.


멋진 새 장비에, 하늘도 맑은 좋은 날씨. 오늘은 스타트가 정말 최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침을 만끽한 다음, 약속 장소까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뒷골목을 돌고 돌아, 메인 스트리트로 뛰어나갔고, 그대로 광장을 지나 아포코리조 돔으로. 매일 지나는 루트를 따라, 늦기 않게 딱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자, 그러면...."


그 쌍둥이는 어디에 있을까.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스윽 주변을 둘러봤다. 이때.


"여기에요.."


나를 부르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에블리스 자매. 쌍둥이가 어느덧 내 뒤에 얌전히 서 있었다.


머리색과 같은 하얀색 로브와, 검은색 원피스형 레더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에블리스 자매. 기타 무장은 어제와 같았다.


"오오.."


실례인 줄을 알면서도 절로 감탄사가 세어 나왔다.


어제도 그랬지만, 평온한 분위기에서 오늘 다시 보니 새삼 정말 귀엽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흑백의 완벽한 조화. 꼭 마치 방금 막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왜 그러세요?"


이렇게 잠시 멍때리고 있는 내게 세실이 뾰로통히 볼을 부풀렸다.


아차, 넋 놓고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사과부터 한 뒤, 다소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봤다.


"저기,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런 문자를 보냈던 거야?"


어제부터 궁금했던 점을 첫번째로 물었다.


에블리스 자매는 이미 브론즈 경력 1년차. 그런데 왜 새내기인 나와 굳이 파티를 맺으려 하는지 그게 살짝 궁금했다.


대답은 루시의 입에서 나왔다.


"그야, 루시들도 아직 고정 파티가 없으니까요."


생긋 웃으면서 루시가 대답했다.


1년차인데 아직도 고정 파티가 없다고?


으음. 어째서지..


쌍둥이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게 된다.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솔로 플레이를 특히 지향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고정 파티가 없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실력이 떨어진다거나, 장비가 다소 빈약하다거나, 뭐 그런 여러 이유들이 말이다.


'그런데..'


으음, 이 쌍둥이는 그런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어제 인증샷에 따르면, 이 쌍둥이의 최종 클리어 계층은 16계층. 고정파티가 없다고 하니, 그것은 단 둘이서 이뤄낸 성과라고 봐줘야겠지.


그렇다면 실력은 일류에 해당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대충 훑어본 장비들도 모두 레어 등급 이상의 상등품들이었다.


즉, 장비쪽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지껏 파티가 없는 이유는 뭘까?


"그러는 에스더님은 왜 파티가 없는데요?"


"에....?"


이 타이밍에 되려 질문을 받았다.


루시와 세실이 똘망똘망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세실이 질문을 하고, 루시는 나를 위아래를 훑어 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루시들도 오빠의 동영상을 봤어요."


"실력은 충분. 그리고 지금 보니까 장비도 정말 훌륭하시네요. 그런데 에스더님은 왜 파티가 없으신거죠?"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되려 반대로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건가?


이야. 요즘 애들은 정말 무섭구나.. 참 맹랑하기도 하지..


어쨌든 내 대답은.


"그게..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 일까?"


내 대답은 이랬다.


이 대답에 루시가 하얀 머리를 흔들며 키득 웃었다.


"루시들도 그래요, 오빠."


"맞아요. 저희도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에스더 님처럼 계속 파티를 찾고 있었던 거에요."


루시와 세실이 순서대로 나를 따라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같은 처지에.. 그것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짖는 것 같은 행동이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똥 묻은 개의 배역은 당연히 나였다.


루시와 세실은 그래도 둘이고, 나는 완전 혼자였으니 말이다.


외톨이..


'생각해 보니까, 완전 적반하장이었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루시와 세실은 이런 나를 보고 다시 귀엽게 키득거렸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됐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아이들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반대로 나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면접관과 면접자. 나는 내가 면접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반대로 면접자였던 것이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오빠?"


"윽.. 그래, 미안.."


"아니요, 그렇게 미안해 하실 건 없어요. 에스더 님."


한동안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가운데, 던전에 출근하는 모험자들의 행렬이 하나둘 광장에 차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빤히 신기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요즘 들어 매일 느끼고 있는 시선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뭇 뭔가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리고 시선들 중 상당수는 내가 아닌 쌍둥이를 보고 있었다.


"야,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에이. 괜히 나서지 마.."

"그래, 괜히 엮였다가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는 수가 있다고.."


이런 대화를 나누며 모험자들이 슬금슬금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려 했으나, 일행들이 그걸 말리고 있는 분위기다.


뭐야, 뭔데 저러는 거야.


어쩐지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최 저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귀여운 쌍둥이랑 같이 있으면, 오히려 나를 부러워 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왜 도대체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모험자들이 붐비기 시작한 아포코리조 돔의 앞 광장. 밝은 햇살이 우리를 내려보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에블리스 쌍둥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푹 고개를 숙였다.


"".........""


"?"


"아,아무튼. 일단 움직이기로 해요, 오빠..!"


"어,어 그래.."


루시가 애써 고개를 들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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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5.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사람들(10) 21.07.20 28 0 9쪽
67 64.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사람들(9) 21.07.17 26 0 10쪽
66 63.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사람들(8) 21.07.14 24 0 10쪽
65 62. 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사람들(7) 21.07.10 23 0 11쪽
64 61. 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시선들(6) 21.07.07 24 0 11쪽
63 60. 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시선들(5) 21.07.05 31 0 11쪽
62 59. 회색머리를 지켜보는 시선들(4) +1 21.07.01 2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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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49. 10계층과 쌍둥이(9) 21.06.13 37 1 13쪽
51 48. 10계층과 쌍둥이(8) 21.06.12 36 1 10쪽
50 47. 10계층과 쌍둥이(7) 21.06.11 4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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