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슬기로운 조폭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홍석
작품등록일 :
2021.05.12 12:22
최근연재일 :
2021.06.24 21:05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569,692
추천수 :
11,959
글자수 :
316,154

작성
21.06.02 21:05
조회
8,226
추천
199
글자
11쪽

37. 해결사도 아니고

DUMMY

“나도 며칠 전에 알게 되었어. 하나밖에 없는 우리 손녀 현주가 그······ 그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무슨 일인데요?”

“룸살롱이라는 데를 나가고 있었다는군. 무리도 아니야. 다 가난한 탓이지. 이제 스물한 살인데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겠나. 현주 애비가 술 먹고 홧김에 사람 때리지만 않았어도 대학도 보내주고 했을 텐데 합의금으로 그 돈 다 날렸지. 그럼 에미도 도망 안 갔을 테고.”


가난한 사람들은 왜 그리 서글픈 사연도 많은지. 민규네가 그렇듯이 달동네 한 집마다 가슴을 저미는 사연 하나씩 없는 집이 없다.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애인데 부모라는 것들이 그 모양이니. 게다가 할아비조차 세 들어 사는 여자한테 흑심을 품고 못된 짓을 하려 했으니 당해도 싸지. 전부 자업자득일세.”


이양수는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빼어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고 나 역시 담배를 피웠다.


“나야 지옥 가서 벌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애는 무슨 잘못인가. 마침 자네 덕분에 집값도 꽤 올라서 빼오려고 했지. 그런데 빚이 1억이라는 거야.”

“1억이요?”

“놀라서 현주한테 물어봤더니 원래는 작년에 300만 원 빌린 게 다였대. 거기에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1년 만에 1억이 넘게 된 거지. 아직 집을 판 것도 아니라서 천만 원도 어려운 형편에 어떻게 1억이나 내줄 수 있었겠나. 눈물을 뿌리면서 그냥 왔지.”


말도 안 되는 고금리의 사채를 미끼로 젊은 여성을 윤락업소에 옭아매는 수법은 2008년까지도 빈번한 사회 문제였다. 그런 놈들에게 한 번 잘못 엮이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이자를 갚는 게 고작이다. 절대 까이지 않는 원금을 갚기 위해 지옥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영원히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이양수의 주름진 얼굴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그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자네 조폭이지 않은가. 제발 이 문제 좀 해결해주면 안 되겠나.”

“글쎄요. 제가 해결사도 아니고······.”

“현주만 빼내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네. 제발 이 늙은이를 봐서라도, 아니 이 늙은이가 뭐가 예쁘다고 봐주겠나. 자네 여동생이다 생각하고 딱 한 번만 살려주게.”


나는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이양수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양반은 메르헨 마을의 실질적인 촌장이나 다름없지. 지금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다들 정신이 없어서 어리둥절하지만 정작 나한테 집값의 10프로를 바쳐야 할 때가 오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종특이거든.’


이양수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주라는 애가 영 신경이 쓰이는군. 이양수 말마따나 철없을 때 돈 300 빌릴 수도 있지. 까짓 그 정도 돈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농락하면서 자기 배만 불리는 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알아는 보겠습니다. 이쪽 선후배면 좋게 풀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업장 이름이랑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여기 있네. 저번에 현주 빼내려고 갔을 때 받아온 거야.”


이양수는 얼른 명함을 건넸다. 룸살롱 이름은 ‘물망초’였고 업장 위치는 영등포에 있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일단 돌아가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난 그저 자네만 믿네. 부디 우리 손녀를 구해주게.”

“들어가십시오.”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는 이양수가 물러가고 한숨 돌릴 때 은행 심부름을 다녀온 제비가 들어왔다.


“미안! 3시까지 오려고 했는데 월말이라 은행에 대기 손님이 많았어.”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었다. 원래는 서른 대였지만 애들 장난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제비에게 명함을 툭 던졌다.


“이게 뭐야?”

“아는 곳이냐?”

“처음 들어보는데.”

“네가 나보다 이 바닥에 먼저 들어왔잖아. 아는 조폭들도 훨씬 많고. 연락 좀 돌려서 여기 어떤 놈들이 운영하는지 좀 알아봐.”


지각에 따른 경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제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장 알아볼게. 참, 오다 보니까 굴다리 밑에서 민규가 싸우고 있더라.”

“뭐, 민규가?”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아픈 부모 대신에 배달일 하면서 주경야독하는 민규가 왜 쌈박질이나 하고 다닌단 말인가.


“응. 네가 하도 자주 시켜 먹어서 나도 여러 번 봤잖아. 틀림없이 민규였어.”


당장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보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물망초에 대해 파악해놔.”


***

굴다리는 사무실에서 3분 거리였다. 낮에도 컴컴한 굴다리 근처에 조심스레 접근했을 때였다.


“빨리 내놔.”

“이거 이번 달 남은 용돈 전부인데, 반만 주면 안 될까?”

“죽고 싶냐.”


목소리를 듣고 느낀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돈을 뺏기는 쪽이 아니라 뺏는 쪽이 민규였던 것이다.


“민규야, 너 전에는 안 그랬잖아. 작년에 나랑 같은 반일 때 내가 만화책도 빌려주고 집에도 같이 오고······.”

“새끼야, 그땐 내가 좆밥이었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지금은 어떻게 됐는데?”

“내 뒤에 조폭 형이 있어. 정준우라고 싸움 졸라 잘해. 너 계속 개기면 준우 형 불러서 죽여놓을 거야. 알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터벅터벅 굴다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 진 굴다리 안은 민규와 억울하게 돈을 뺏기기 직전인 학생 단 둘뿐이었다. 민규의 발치에 배달통이 놓여 있었다. 배달 도중에 먹잇감을 발견하고 갈취에 나선 듯했다.


“불러서 왔다, 김민규.”

“주, 준우 형······.”


민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꼴랑 조폭도 권력이라고 친분을 팔고 다니는 작자들은 예전에도 숱하게 봤다.


‘일반인들도 지인 중에 변호사나 판사 같은 법조인이 있으면 괜히 든든한 법이지. 그런 사회 지도층과 친분을 맺기 어려운 서민들은 조폭이랑 안면 트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설치게 마련이고. 죽기 전에는 딱 한 번 본 사람한테 전화 와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해결 좀 해달라느니, 친구가 100만 원을 안 갚는다고 돈 받아달라느니 별의별 청탁이 다 왔어. 이게 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 때문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열여섯 살짜리가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건 최초였다. 내 딴에는 민규가 대견해서 허물없이 군 것뿐인데, 아무래도 아직 철없는 민규에게는 그게 나쁜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어이, 민규. 조폭 되고 싶냐?”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사색이 된 민규는 대답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럼 조폭 만들어줘야지. 야, 넌 빨리 집에 가.”


민규에게 돈을 뺏기던 소년은 내 박력에 찍소리도 못하고 집을 향해 뛰었다.


“민규, 너는 배달통 갖다놓고 사무실로 와. 어차피 커서 조폭 될 놈이 뭐하러 시간 낭비하고 있어. 당장 오늘부터 나랑 조폭 하자.”

“혀, 형······ 잘못했어요. 동생 민주한테 피자 사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며칠 전부터 피자 한 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10분 준다.”


민규는 배달통을 챙겨서 후닥닥 굴다리를 벗어났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준구한테 속아서 조폭 노릇 10년 해보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더라. 민규 같은 착실한 아이가 나 같이 되는 걸 두 눈 뜨고 볼 수는 없지. 내가 반드시 생각을 돌려놓는다.’


따끔하게 혼을 내서 다신 조폭 같은 사회악을 동경하지 않게끔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부득이하게 칼춤 한 번 춰야 할 판이다.


***

사무실로 돌아오자 제비가 말했다.


“영등포 쪽 형님들한테 알아봤는데 서울 애들은 아냐. 청주에서 먹고 살 게 없어서 상경한 것들인데 내덕 7인조라고 그냥 양아치 새끼들 같아.”

“내덕 7인조?”

“응. 청주에 내덕동이라고 있나 봐.”

“무슨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이름이 왜 그 모양이야. 하여튼 족보는 없는 놈들이라 이거지?”

“응. 틀림없어.”


‘조선시대 선비도 아니면서 족보 하나는 엄청 따지는 게 조폭들이야. 일반인들 생각에 조폭은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가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족보를 따져보고 조금이라도 걸리는 항목이 있으면 대개 양쪽을 잘 아는 선배의 중재로 해결을 보곤 하지.’


“하도 가혹하게 보호비를 뜯어서 일대에 원성이 자자하대.”

“신세기파는? 영등포도 신세기파 나와바리잖아?”

“워낙 조무래기들이라 신경을 못 썼나 봐. 서울 전체가 신세기파 건데 그런 자잘한 애들까지 어떻게 다 관리하겠어.”

“수고했다.”


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물망초에 전화하자 마담으로 생각되는 중년 여자가 받았다.


“예약하시게요? 오늘 물 끝내줘요. 출근율 100프로라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사장도 출근했겠네요. 사장이랑 통화 좀 합시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죠?”

“알 거 없습니다.”


잠시 후, 굵은 남자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사장 바꿨소. 무슨 일인데 그러쇼?”

“구로 대호파 식구입니다.”

“대호파?”

“박대호 큰형님 모르십니까?”

“젠장, 박대호인지 박대룡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너 뭐하는 새끼야.”


역시나 조폭의 계보와는 상관없는 단순 양아치들이었다. 이 바닥에 호적을 판 놈들치고 적어도 박대호라는 이름을 모르는 놈들은 없으니까.


“대호 형님 모시는 정준우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관리하는 애들 중에 이현주라고 있죠? 그 아이 오늘 안으로 곱게 포장해서 돌려보내세요.”

“이거 미친 새끼네. 야, 계약서까지 쓰고 합법적으로 부리는 애를 내가 왜 풀어줘.”

“아, 계약이요? 300이 1년 만에 1억 되는 놀라운 계약. 1년 동안 본전은 고사하고 그 몇 배는 벌었을 텐데 아직도 성에 안 찹니까?”

“뭐 문제 있어? 법대로 하라고, 법대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입니다.”


일부러 존댓말을 써가며 살살 긁었더니 마침내 사장이라는 작자가 폭발했다.


“좆까는 소리 그만하고 끊어, 이 새끼야!”

“마지막 경고입니다. 청주 분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촌놈이 뭣 모르고 까불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미친 새끼. 우리가 누구인 줄 알아? 내덕 7인조 하면 청주에선 모르는 놈들이 없어. 청주 접수하고 서울도 먹으러 온 거다.”

“내덕 7인조 따위가 먹기에 서울은 너무도······.”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수화기를 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모처럼 서울 주먹 맛 좀 보여줘야겠군.”


막 나갈 채비를 하는데 제비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할 얘기가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슬기로운 조폭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합니다 +33 21.06.24 2,555 0 -
공지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21.06.16 218 0 -
공지 연재시간 매일 21시 5분으로 변경합니다 21.05.23 431 0 -
공지 제목 변경합니다 +1 21.05.14 804 0 -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9시와 21시입니다 21.05.14 17,215 0 -
59 59. 진압 +25 21.06.24 4,191 138 11쪽
58 58. 반란 +11 21.06.23 4,815 157 12쪽
57 57. 초대받지 않은 손님 +14 21.06.22 5,155 165 12쪽
56 56. 세 번째 사천왕 +4 21.06.21 5,388 153 12쪽
55 55. 금분세수 +4 21.06.20 5,625 162 12쪽
54 54. 로드롤러다!!! +6 21.06.19 5,888 168 12쪽
53 53. 전후 처리 +8 21.06.18 6,051 156 13쪽
52 52. 인천 정복 +10 21.06.17 6,126 180 13쪽
51 51. 대리전 +10 21.06.16 6,405 169 12쪽
50 50. 이에는 이, 투망에는 투망으로 +8 21.06.15 6,485 180 12쪽
49 49. 널 이용해 먹겠어 +4 21.06.14 6,548 173 12쪽
48 48. 마침내 형제 대면 +8 21.06.13 6,677 165 11쪽
47 47. 오빠, 잘못하면 죽어요! +10 21.06.12 6,949 180 13쪽
46 46. 마환 vs 주경백 +14 21.06.11 6,777 182 12쪽
45 45. 두 번째 사천왕 +10 21.06.10 6,954 185 12쪽
44 44. 신세기파 김종수를 만나다 +4 21.06.09 7,173 177 12쪽
43 43. 더 벌어야죠 +7 21.06.08 7,205 192 12쪽
42 42. 은혜 갚은 이양수 +8 21.06.07 7,354 198 12쪽
41 41. 김기호의 굴욕 +3 21.06.06 7,626 197 12쪽
40 40. 꿈을 쫓아가 +8 21.06.05 7,815 180 12쪽
39 39. 길거리 캐스팅 +4 21.06.04 7,954 198 13쪽
38 38. 내덕 7인조 격퇴 +4 21.06.03 7,937 206 12쪽
» 37. 해결사도 아니고 +4 21.06.02 8,227 199 11쪽
36 36. 엇갈리는 처지 +4 21.06.01 8,519 195 12쪽
35 35. 다행입니다 +5 21.05.31 8,682 20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홍석'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