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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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
작품등록일 :
2021.05.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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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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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빌런 번호 24601(3)

DUMMY

두 번째 살인,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했던 첫 번째 살인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설화에게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당할 때도, 콜로세움에서 이름도 모르는 범죄자와 싸울 때도, 좁은 방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도.


콜로세움은 두 죄수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지는 출구가 열리지 않는 전장. 지금 침대에 누워 천장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있는 그는 여태까지 다섯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나는 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터져 버린 그녀의 죽음이었다.


“24601. 밥 먹을 시간이다.”


문 밑의 구멍이 열리고 식판이 안으로 툭 던져졌다. 식판 위에는 식빵 몇 조각과 물이 담겨 있는 플라스틱병이 전부였다.


“생각보다 제법이더군.”


문의 위쪽 장치가 열리고 사람의 눈이 그를 쳐다봤다. 처음 설화에게 갔을 때 그를 안내해 주었던,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쳐다봤던 그 경비였다.


“내가 휘두르는 공격 따위는 피할 가치도 없었다는 거겠지? 이 빌어먹을 범죄자 새끼야.”


어김없이 욕설이 퍼부어졌다. 저 남자는 질리지도 않는 건지 그를 마주칠 때마다 경멸의 시선과 온갖 잡스러운 욕을 쏟아붓고 사라진다.


“인간을 죽인 기분이 어때, 24601?”


경비의 눈이 기분 나쁘게 휘었다. 저 장치가 좋은 점은 눈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도 똑같은 빌런이라 별 감흥이 없었나?”


매일 처음 죽인 여자의 마지막 눈빛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감흥이 없는 거라면, 당신의 맞겠지.


“아니면 또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잠을 설치고 있나?”


매일 죽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괴롭혀 주는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긴 하지.


“꼬박꼬박 밥을 처먹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살인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어.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수진이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억지로 먹는 거야.


“부디 다음 전투에서는 죽기를 바란다, 빌런.”

“미안하지만 난 살 거야.”


수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식판을 침대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 있는 경비와 눈을 맞췄다.


“반드시 살아서, 이곳을 탈출해서, 내 동생에게 돌아갈 거야.”

“꿈도 크군. 네가 이곳을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하는 거야.”


···기도?


“부디 인간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해 네 시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어.”


경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수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것보다 심한 눈빛은 이미 질리도록 봤다.


“그래야만 네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충고 감사합니다.”


덤덤한 그의 얼굴을 본 경비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장치를 닫았다.


수호는 침대 앞에 털썩 앉아 빵을 입에 넣었다. 식욕은 전혀 없었지만, 다음 전투를 위해 먹어야만 했다.

3분도 걸리지 않아 식사를 마친 그는 식판을 바깥에 두고 침대에 누웠다.


“수진아···.”


동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를 찾느라 온 동네를 뒤지고 있을까, 아니면 수업을 듣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울고 있을까.


잠깐 동생을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뺨을 쳤다. 그녀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약해진다. 그렇게 되면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한계 돌파.”


그가 특성에 대해 알아낸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대상’의 지정은 지금까지 그가 속으로 생각한 ‘모든 것’에 적용됐다는 것. 두 번째는 한계 돌파의 정도를 그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사기.

그가 자신의 특성을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의 특성은 사기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7대 레기온의 주인들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뛰어났다.


“···한 번 시험해 볼까.”


그는 검지에 차고 있는 반지, 모순을 바라봤다. 여태까지 겪은 바에 의하면 그의 특성은 이 방어구조차도 한계 돌파를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성공 확률은 그의 의지에 달려 있으니 실패할 확률은 무척 낮다고 보면 된다.


“모순의 한계를 돌파한다.”


- 특성이 당신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역시 이번에도 특성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 방어구 ‘모순’의 한계를 돌파합니다.


반지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떠오른 모순이 몸을 떨기 시작했고, 그는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모순에서 나오는 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밝아졌고, 진동의 세기 역시 강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모순에 금이 생겼다.


‘안 돼, 제발. 무조건 성공해야 해.’


그가 콜로세움과 설화의 실험을 버틸 수 있던 이유의 90%는 모순 덕분이다. 그런 모순이 실패로 인해 파괴라도 된다면, 당장 다음 전투에서 그는 죽는다.


‘고의로 실패한 적이 있으니, 그 반대도 성립할 거야.’


그는 몇 번이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한데 모으는 것으로 모자라 무릎까지 꿇었다.


쩍. 쩌적.


모순에 생기는 금이 점점 늘어났고, 벌어진 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전체가 금에 뒤덮인 모순은 폭발했다. 그 안에서 순식간에 터져 나온 빛은 수호의 몸에 스며들었다.


- 모순의 한계 돌파가 성공했습니다.


“좋아.”


크게 소리를 지르면 아까의 경비가 올 것 같아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기쁨의 표현을 대신했다.


- 방어구 ‘모순’의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특수 옵션 ‘모순’의 수치가 재설정되었습니다.

- 방어구 ‘모순’이 ‘자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 모순의 에고 설정을 시작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메시지를 확인한 수호는 손으로 입을 막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의 간절함이 통한 덕분일까,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 당신의 무의식을 통한 에고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그의 검지에 반지가 채워졌다. 원래 모순의 디자인과 완벽하게 똑같은 것이었다.


“아이템 정보 확인.”


<아이템 정보>


이름 : 모순

등급 : 유일

설명 : 무엇이든 뚫는 창 ‘모’와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 ‘순’이 부딪치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어느 상인의 일화에서 탄생한 단어, 모순을 모티브로 제작된 방어구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절대에 가까운 방어력과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옵션

- 소유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형태 변환 가능.

- 일정 시간 공격당하지 않으면 내구도 자동 회복

- 특수 옵션 ‘모순’ 사용 가능


설명은 한 줄 추가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한 줄이었다. 그는 다음으로 특수 옵션을 확인했다.


<특수 옵션 정보>


모순

- 한 달에 한 번, 최강의 공격 ‘모’ 설정 가능. 설정된 ‘모’보다 약한 모든 공격의 피해 100% 감소, ‘모’보다 강한 공격에 입는 피해 500% 증가.



설명에 적혀 있던 ‘절대에 가까운 방어력’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100% 피해 감소. 모보다 강한 공격에 입는 피해 500% 증가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지만, 왠지 그는 자꾸 100%에 눈이 갔다.


들뜬 마음을 다스린 그는 정보 창을 닫고 모순에게 생겼다는 에고를 확인하기로 했다.


“나오라고 하면 되나?”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길게 기른 머리카락으로 입을 제외한 머리의 모든 부위를 가린 상태였다. 복장은 검은색 정장에 흰 셔츠, 붉은 넥타이에 짙은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너, 너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스터.”


모순이 오른팔을 심장 부근에 가볍게 얹고, 오른발을 뒤로 빼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제 목숨을 바쳐 영원토록 당신을 지킬 유일한 방어구, 모순이라고 합니다.”

“···강유?”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유와 똑같이 생겼다. 입고 있는 복장이 세련되지만 않았어도 이 세상에 강유가 두 명 존재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제 모습을 만드는 데 그자의 외형을 참고하기는 했습니다.”

“왜?”


모순은 허리를 펴며 느긋한 말투로 대답했다.


“마스터께서 그러기를 원하셨으니까요.”

“내가?”

“예.”


모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자신을 설정할 때 무의식 속으로 바랐던 것들의 집합체가 바로 접니다.”

“···그렇구나.”


확실히 시스템 메시지에도 내 무의식을 통해 설정했다고 나왔었지.


시스템도 그렇고, 모순까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모순의 에고가 잘생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럼 그 존댓말을 쓰는 것도?”

“물론 마스터께서 원하셨던 겁니다.”

“그 정장도?”

“예.”


자신이 저런 모습을 원했다는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나는 수호라고 해. 지금까지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수호가 내민 손을 모순이 공손하게 두 손으로 잡았다. 그가 겪었던 강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말동무가 생긴 게 어디야.’


괴리감쯤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질 거고. 당장은 이 침묵만 흐르는 곳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네게도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데,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글쎄요.”


모순이 턱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마스터께서 정해 주시면 안 됩니까?”

“난 이름 같은 거 잘 짓는 편이 아닌데.”

“마스터께서 지어 주시는 거면 다 좋습니다, 저는.”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대충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수호는 괜찮은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


모순의 정보 창을 보던 그는 툭 이름을 던졌다. 모순의 등급인 ‘유일’을 외자로 바꾼 것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한 어때?”

“한, 한. 좋은 이름입니다, 마스터. 부르기도 쉽고, 멋을 넘어서 기품마저 느껴지는군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수호는 침대에 두 손을 얹으며 한숨을 쉬었다.


철컹.


문의 위에 달린 장치가 갑자기 열렸다. 당황한 수호는 재빨리 한을 반지로 돌아오게 하려 했지만, 경비의 눈이 방을 보는 게 더 빨랐다.


“24601. 나와라.”


···안 보이는 건가?


한이 그의 반대편에 떡하니 서 있는데 경비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는 에고라서 마스터에게만 보입니다. 물론, 굳이 육성으로 대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이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며 말했다.


‘그거 좋네.’

“저는 마스터에게 귀속되어 있어서요. 마스터가 원하지 않는 이상 제가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수호는 피식 웃었다.


“아직 웃을 여유가 있는 모양이지?”


그를 한껏 비웃은 경비가 고개를 까닥이며 앞장서라는 눈짓을 주었다. 수호는 이제는 익숙한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너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저는 정말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크기가 그의 검지만큼 줄어든 한이 어느새 그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2등신이 된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고개 돌리지 마라.”


경비가 총구로 그의 등을 찔렀다. 매번 당하는 일이었기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 한이 이를 갈며 주먹으로 뚜둑 소리를 냈다. 그리고 경비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일까요, 마스터?”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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