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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해방 전선의 에이스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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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잘생겼네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01
최근연재일 :
2021.06.0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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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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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귀환

DUMMY

침상에서 눈을 뜬 헬리오스는 공기의 냄새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의 짙은 풀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상아색 천막 안이었다. 군용 철제 램프 두 개가 천막의 철제 프레임에 매달린 채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어떻게 살았지?’


그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마른세수를 했는데, 문득 그 질감이 이질적이란 생각을 했다.


“오른손이··· 있어?”


헬리오스는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목까지 확인해 보았다. 절단 난 손목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흉터도 없었고, 심지어는 치료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다급히 온몸을 더듬으며 되짚어 보았다.

먹은 귀는 천막 바깥의 풀벌레 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완벽히 돌아왔고, 왼눈을 찌른 유리조각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성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온몸에 충만하게 들어찬 마나 역시 마찬가지.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수백금을 들여서 대주교급 성직자를 동원했다고 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가 알기론 불가능했다.

포션이나 다른 마법 역시 마찬가지.

귀 정도라면 납득할 수 있는 선이었지만 손과 눈은 아니었으니까.


“설마··· 그게 다 꿈이었다고? 그 개짓거리가 전부 다?”


헬리오스는 황급히 침상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낮은 채도의 천막 내부에서 그가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모든 일들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면, 그럼 어디서부터 꿈을 꾼 것인가. 어째서 이 공간이 낯설기 그지없을까. 이곳이 어디고 무얼 하다 잠들었는지가 왜 쉬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는 당장의 상황이 마치 술주정뱅이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처럼 생경했고 곤혹스러웠다.


시나브로 올라오는 당황스러움과 메스꺼움에 그는 자연스레 담배를 찾았다. 아마 평소처럼 한 대 피우고 나면 정리가 될 것이다. 머리가 좀 돌아갈 것이다. 그런 요량에서였다.

허나 입고 있던 잠옷이나 침상, 협탁까지. 잠자리 근처를 아무리 뒤져 봐도 담배는커녕 성냥조차 나오지 않았다.


헬리오스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천막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막 한쪽에 가지런히 배치된 경대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듯 거울 아래엔 여러 야생화가 한데 섞인 멋스러운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저건··· 왕궁에서 살 때나 받던 건데?’


그리고 그의 시선은 꽃다발에서 조금 위, 면도용 거울로 옮겨 갔고, 이내 그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 말았다.


거울 속엔 실크 잠옷을 입은, 그 어떤 고생도 해 보지 않은 듯 뽀얗고 말간 얼굴의 애송이 하나가 황당무계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 얼굴, 자신의 얼굴을 당황스러운 손길로 마구 매만지더니, 이내 몸을 돌려 천막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바깥은 숲속이었고 밤이었다.

몇 동의 천막이 있었고 몇 명의 병사들이 마도소총을 둘러멘 채 주위를 오가고 있었다.

황망스럽게 천막 바깥으로 빠져나온 헬리오스는 습관처럼 별자리를 살폈다. 황도북성이 지평선으로부터 40도가량 위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대강의 위치를 파악하던 헬리오스는 이내 자신에겐 지도도, 이곳을 특정할 만한 지리적 경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에 헬리오스는 지독한 흡연욕을 느꼈다.

마치 서른한 살의 자신이 젊을 무렵으로 돌아온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실크 잠옷의 틈새로 기분 좋게 불어오는 봄바람, 사방에서 올라오는 풋내 가득한 풀냄새, 근처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지친 목소리까지. 자신을 둘러싼 옅은 감각들은 이것이 절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짝!


혹시나 싶어 때려 본 자신의 아릿한 뺨따귀까지.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헬리오스는 이 모든 정황에 대한 감상을 겨우 뱉어낼 수 있었다.


“옘병···”


***


그때.

대충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려는 헬리오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기억보다 조금은 앳되지만 여전히 익숙한, 이 모든 곤경에서 자신을 구해줄 목소리였다.


“저하?”


헬리오스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기억보다 훨씬 젊은, 주름 한 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의 소피아가 서 있었다.

한 손은 갓 끓인 듯 커피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철제 잔을, 남은 한 손은 어깨에 둘러멘 소총의 멜빵끈을 붙잡고 있었는데, 푸른색 근위병 제복의 견장대 위로 그녀 특유의 긴 갈색 머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담갈색의 깊은 눈동자, 생기가 느껴지는 안색, 군인 특유의 건강미까지. 그 모든 것을 갖춘 소피아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


자신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헬리오스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소피아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저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지요?”


헬리오스는 다시 한번 최후의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연료로 태워 가면서까지, 단 한 사람만은 추락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평생 동안 추락만을 맛본 못난 인간의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판단이었고, 그나마 성공적인 최후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때 그 결정의 보상인 것인가.

반대로 그 모든 것이 꿈이었고, 그 모든 경험들은 절대 그 지점에 가닿지 말라는 경고에 불과했던 것일까.

헬리오스는 비행기가 반등하기 직전, 어둠 속에서 소피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이 말이었나··· 그런데 소피아는 어떻게 그걸 알았지? 소피아한테 그럴 힘이 있었나? 아니 소피아가 맞긴 한 건가.’


헬리오스는 소피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되뇌었다.


‘설마··· 꽃 안 줬다고 돌려보낸 건가?’


헬리오스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피아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지? 여긴 어디지? 이것도 꿈인가?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여전히 아름답네? 어떤 꽃을 좋아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문장들이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에게 소피아는 다시 한번 재촉 아닌 재촉을 했다.


“저···하?”


그리고 그 재촉 덕분에 헬리오스는 드디어 입을 열 수 있었다.


“소피아?”

“예, 저하.”


그리고 그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헬리오스가 떠올린 것 중 가장 최악의 문장이었다.


“혹시 담배 있어?”

“예?”


***


“저하, 지시하신 보고서입니다.”


소피아는 병사들의 막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헬리오스에게 몇 장의 서류를 전달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도주 계획 보고서.


30분 전, 횡설수설하던 헬리오스는 그녀에게 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부탁했다.

소피아는 헬리오스의 명령을 자신이 아는 대로 이해했고 그 이해를 모두 보고서에 담아냈다.


보고서에는 이 그룹의 최종 목표지부터 시작해 이동 경로 관련 세부 사항, 인원 및 물자 현황, 예상 위험 상황까지 담겨 있었다.


“고마워.”


헬리오스는 지나가던 병사에게 얻은 담배를 꼬나문 채, 소피아의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헬리오스는 담배를 물고만 있을 뿐 불을 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입술에 갖다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째 흡연욕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피아는 그런 헬리오스를 가만 쳐다보다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하?”

“응?”

“송구한 말씀이옵니다만, 원래 담배를 태우셨습니까?”

“응. 원래 피웠··· 지 않았나?”

“제가 알기론 저하는 담배를 입에 대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 그래?”

“예. 혹시 병사 중 누군가가 저하께 담배를 강권했었는지요? 말씀만 해 주신다면···”

“강권? 아냐. 그냥 내가 몰래몰래 피운 거야.”

“아··· 알겠습니다. 주제넘어 죄송합니다.”

“뭔 주제까지야.”


소피아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헬리오스는 그제야 손에 든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헬리오스는 현재 자신이 앤버 왕국의 접경 도시, 루메인으로 향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앤버는 그의 고국인 아슬란의 경쟁국인 동시에 이웃 국가인 곳이었다.

현 위치는 접경 지역인 루인 산 서남부 방면 3부 능선 어딘가.

정확한 위치 좌표는 기재되지 않았다.


헬리오스는 주변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국경은 넘었다는 말이군.’


병사는 모두 근위병 출신이며 총 스물네 명. 그중 네 명은 정찰 임무, 여덟 명은 경계 임무로 자리를 비운 상태이기에 당장 이곳에 남은 병사는 총 열둘에 불과했다.


보고서에는 식량은 약 사흘 치 정도가 비축되어 있다고 나왔지만, 그가 한 차례 살펴본 결과 이 수치는 줄이고 줄인 결과에 불과했다.


식량은 건빵과 곰팡이 핀 빵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그가 보기엔 상당히 부족해 보였다. 넉넉잡아 하루 제대로 먹으면 끝날 양.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피아를 비롯해 병사들의 제복은 지속된 전투로 이곳저곳이 헤지거나 찢어져 있었다.

천막은 네 동에 불과했고 근거지 한쪽엔 이곳저곳에 녹이 슬어 철골에 구멍이 뻥뻥 뚫린 농업용 트럭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천막만 그나마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었고, 자신의 복장만 여전히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헬리오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데···”


소피아 역시 부인하진 않는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을 지키기만 할 뿐이었다.


“소피아?”

“예, 저하.”

“혹시 막사에 마도 비행기는 없나? 전투기면 더 좋고.”

“전투기는 어떤 연유로···”

“세세히 묻진 말고. 전투기가 있는지만 말해 줘.”

“없습니다.”

“···그러면 부대 내에 파일럿은 있나?”

“정확한 건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없습니다. 병사들 대부분이 지상전이 특기입니다.”

“그렇군. 나는 즉시 전력은 아니란 말이군.”

“···”

“혹시 지도를 좀 볼 수는 있나?”

“죄송합니다. 지도를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도가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이 인원이 움직이고 있는 거지?”

“병사들의 기억과 별자리를 토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도가 없다고··· 좀 실망스러운데.”

“죄송합니다.”

“아냐. 상황이 상황이니까.”

“···”


더는 살필 것이 없다고 판단한 헬리오스는 발길을 자신의 천막 쪽으로 돌렸다. 소피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헬리오스는 물고 있던 담배를 예의 경대 위에 놓아두고는, 대신 그 위에 놓여 있던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여전히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헬리오스는 시선을 다시금 소피아에게 돌렸다.

그녀는 하명할 게 있느냐는 듯 그를 가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헬리오스가 말했다.


“소피아?”

“예, 저하.”

“선물이야.”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에 꽃다발을 쥐여 줬다. 그러나 소피아의 반응은 헬리오스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저하,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요?”

“잘못? 왜?”

“혹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갑자기 자신을 어려워하는 소피아를 가만 쳐다보던 헬리오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마디 건넸다.


“혹시··· 그거 소피아가 만든 거야?”

“예. 피난길에 오른 이후로는 항상 제가···”

“아···”


헬리오스는 다시 한번 마른세수를 하고는 소피아에게 쥐여 준 꽃다발을 뺏듯이 챙겨 들었다.


“아냐. 마음에 들어. 좋아. 아주 좋아. 이 난리통에 꽃다발까지 챙겨주는 사람은 세상천지 소피아밖에 없을 거야.”

“···”

“···”


헬리오스는 뒤통수를 한 번 긁적이고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루메인에 도착한 뒤로는 계획이 어떻게 되지? 따로 연락 온 지역이나 타격할 만한 지점은 있나?”

“아직은 마땅히 없습니다. 우선 저하의 망명을 완료한 다음 계획을 수립하려 했습니다.”

“망명? 나를? 왜?”

“···”

“···”

“저하, 정말로 불경하기 그지없는 질문입니다만, 혹시 정신 마법에 당하셨거나 머리를 다치셨다면 소신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루메인에 도착하는 대로 성직자나 의사를 수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래.”

“저하···”

“···”

“저하. 전하께서는 마지막 순간, 소신에게 저하의 안전을 부탁하셨습니다. 물론 소신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상심이 크시겠지만, 어떻게든 저하를 끝까지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하. 저는 제 목숨을 이미 저하께 바쳤습니다.”


헬리오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봤다.

소피아는 한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뭔가를 놓친 건 아닐지 고민해 보더니, 아까 전, 소피아가 제출한 보고서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보고서의 겉면 상단 우측.

아까까지는 정신이 없어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곳엔 하나의 정보가 더 기재되어 있었다.


====


도주 계획 보고서


보고자 : 수석 근위메이드, 소피아 헬레나.

보고 일시 : 마도력 1819년 봄의 57일. 21시


====


1819년 봄의 57일.

헬리오스의 나이 열여덟.

왕국이 멸망한 날로부터, 그가 왕궁에서 목숨만 부지한 채 탈출한 날로부터 딱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반은 둘째 치고, 땡전 한 푼도 없이 맨몸으로 앞으로 다가올 풍파를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에 헬리오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항군은? 해방 선언서 낭독은? 1차부터 3차 제국 패퇴 사건은? 5국 연합은?”

“잘 못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

“내가 뺑이 친 것들이 전부···”


아득함의 끝에서, 그는 한마디 지독한 읊조림을 뱉어내고 말았다.


“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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