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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해방 전선의 에이스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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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잘생겼네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01
최근연재일 :
2021.06.02 23:59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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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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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글자수 :
95,580

작성
21.05.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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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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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연함

DUMMY

역적질도 부지런해야 하는 법이다.


자신이 살아오며 체득한 소중한 격언을 지금 헬리오스는 여실히 실행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드러누운 채 고개만 까딱 돌려 소피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피아는 헬리오스에게 필요한 정보를 추려내고자 수기로 보고서를 작성하던 차였는데, 간간이 옆에 둔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물론 왕궁에서라면 불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헬리오스가 멀뚱히 서 있지만 말고 뭐라도 하고 있으라고 허락해 준 덕분에 그녀는 왕자 보필 임무와 자신의 개인 업무 두 가지를 한결 편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은 허리까지 올라오는 갈색 체크무늬 롱스커트에 하얀색 프릴 블라우스를 착용했는데, 그녀의 등 위로 한 줄기로 묶은 머리카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으르게 누워만 있던 헬리오스는 그녀의 포니테일 아래, 뒷덜미로 떨어진 잔머리가 여름 바람에 솔솔 흔들리는 것을 가만 바라보다가 이내 늘어지게 하품이나 해댔다.


잠시 후, 침대에 파묻혀 아무것도 하지 않던 헬리오스가 말했다.


“소피아.”

“예 저하.”

“소피아는 왜 맨날 내 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거야? 이젠 소피아 방도 따로 생겼잖아.”


소피아는 예상외의 질문에도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저하, 저는 저하의 근위병인 동시에 수석 메이드이기도 합니다. 저하께서 휴식을 취하시거나 손님맞이와 같은 대외 활동을 하실 땐 언제나 제가 대기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 그치만 여긴 왕궁이 아닌걸?”

“그렇지만 저하가 계신 곳입니다.”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따라올 거야?”


소피아는 헬리오스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네. 무조건 갈 겁니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헬리오스는 급작스럽게 떠오른 옛날 생각에 얼굴은 활짝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약간의 처연함을 느꼈다.

실제로 그녀는 그랬으니까.


그는 일부러 반응을 크게 하며 그녀에게 농담을 건넸다.


“오~ 소피아. 멋있는데.”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저하.”

“소피아.”

“예 저하.”

“난 그렇게 말해 주는 소피아가 참 좋아.”

“···”

“근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어떨 땐 소피아 먼저 생각해.”


하지만 소피아는 그 말에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헬리오스는 그녀의 불충 아닌 불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말했다.


“소피아?”

“네 저하.”

“오늘 뭐 할 거 있어?”

“아닙니다. 편하게 지시하십시오.”


그 말에 헬리오스는 일부러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더니 그녀에게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 놀러 나갈까?”


***


“저하, 제가 진짜 그랬습니까?”

“응. 아마 그 먼 곳에서부터 엄청 밟았을 거야.”

“···”


소피아는 헬리오스의 얼굴에 조심스레 수염을 붙이고 있었다.

둘은 간단한 옥신각신 끝에 결국 시내에 잠시 나갔다 오기로 했다.

소피아는 정보가 뚫린 마당이고, 실제로 한 번의 위협도 있었으니 위험하다고 했다.

헬리오스는 그녀의 의견을 가볍게 묵살하려 했지만, 몇 차례의 논쟁 끝에 결국 죽기 직전에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한 번 더 내뱉고야 말았다.


“소피아는 전에도 그랬지만, 참··· 고집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어.”


그 말에 소피아는 마찬가지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건조하게 답했다.


“송구합니다 저하. 하오나 저하의 안위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불충을 저지른 소신을 욕해 주십시오.”

“···”


군신 간의 짧은 토의가 끝난 뒤, 그들은 둘의 의견을 적절히 섞은 타협안, ‘변장하고 놀러 가기’를 실행에 옮기던 중이었다.

더불어, ‘전에도’라는 말로 물꼬를 튼 둘의 잡담은 어느새 헬리오스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 상태기도 했다.

헬리오스의 지시에 따라 수염을 붙이던 소피아가, 잠시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제 잘못이었군요. 지금의 저라면 절대 저하가 돌아가시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저하가 출격하는 것을 지켜보지도 않았을 거고 말입니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 아닐까?”

“···저하.”

“왜?”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 어디서, 어느 순간에서도 장담하고, 또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하의 안위를 위해서, 또 저하의 뜻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헬리오스는 가만히 소피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에선 마치 그녀의 굳은 다짐이 보이는 듯했다.

소피아는 분명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그랬었다.

헬리오스가 말했다.


“하지만 내 뜻이 그걸 원한다면?”

“예?”

“내가 죽기를 원했다면? 그리고 그것만이 왕국민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수였다면?”

“···”


소피아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헬리오스는 이를 앙다문 소피아가 속으로 분함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른척했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아무런 대화 없이 수염 붙이는 데에만 열중했다.

소피아는 고개를 숙여 수염이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한 올 한 올 세심하게 붙였다.

헬리오스는 그런 소피아의 눈동자를 가만 바라봤다.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고 있는 그 눈동자는 조금 붉어져 있었다.


‘괜한 짓을 했나.’


하고 헬리오스는 속으로 자신을 잠깐 책망했다.

소피아가 아무리 단단한 인간이든 간에 아직은 분명 자신만큼이나 어렸으니까.


헬리오스는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얼마 후 시선을 그녀의 코 끝에다 고정했다.

그녀의 옅은 살 냄새가 미처 숨기지 못한 콧바람을 타고 자신에게로 훅 끼쳐 오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풀어볼 요량으로 잠깐의 고민 끝에 헬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소피아?”

“···네 저하.”

“코에서 숨 냄새 나.”


소피아의 손길이 멈췄다.

그녀는 집중을 멈추더니 고개를 다시 들어 거리를 만들었다.

물론 한 손으론 자신의 입을 막은 채로.

헬리오스는 그런 소피아를 살짝 고개를 돌리곤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부지불식간에 소피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하···”

“응?”


소피아가 말했다.


“신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알았어. 근데 나쁜 냄새는 아니야.”

“···신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시금 무표정해진 소피아가 거울을 건네며 분장이 끝났음을 알렸다.

거울을 건네받은 헬리오스는 분장이 끝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외마디 읊조림을 뱉어 버렸다.


“이런···”


거울 속엔 십삼 년 후의 자신이 박혀 있었다.

전투도 없고, 희생도 없는. 왕국이 멸망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며 조용히 나이 먹어 갔을 법한 삼십 대의 자신이.


헬리오스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진 않자 소피아가 물었다.


“저하.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헬리오스는 시선을 여전히 거울에 둔 채 잠시 침음을 흘리고는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아냐. 잘했어.”


그러곤 자신의 얼굴 곳곳을 가리키며 몇 가지 요청을 추가했다.


“여기, 턱 끝엔 가로로 흉터 좀 집어넣어 주면 좋겠네. 그리고 오른쪽 눈썹 위에도 3센티 정도 비스듬하게 흉터 넣어 주고. 그리고···”


헬리오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소피아는 군말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몇 분 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야성미 넘치는 삼십 대의 사내가 거울 속에 들어가 있었다.

헬리오스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살피더니 한 번 씨익 웃었다.

그가 말했다.


“새끼. 잘생겼구만.”


***


“박사님, 그렇다면 저는 전략을 좀 더 공부하는 게 옳을까요?”


챙이 긴 리넨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린 소피아가 옆에서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박사’ 헬리오스에게 물었다.

헬리오스는 중절모에 외눈 안경까지 끼고 있었는데, 근엄한 표정으로 파이프 담배를 뻐끔뻐끔 태우고 있었다.

소피아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으나 숨기진 않았다.

헬리오스가 답했다.


“엣헴. 전략도 좋지만 상황 판단에 있어 유연성을 기르면 좋겠군. 자네 일신의 무위와 전략의 성장은 내 믿어 의심치 않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유연성은 늘 부족했으니까. 엣헴. 안 그런가?”


헬리오스는 과장스럽게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한편으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양 마구 손짓했다.


그의 오른손이 웅변가의 그것처럼 수차례 휘둘리자 그녀는 방금과 마찬가지로 살짝 웃으며 답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그 유연성을 길러야 할까요?”

“내 밑에서 오 년간 석사 과정을 밟아 보게. 내 자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줄 수 있다네. 에엣헴.”

“아, 그러시군요.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건가요?”

“아무렴. 엣헴.”


둘은 무성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초여름 밤의 옅은 후덥지근함과 기분 좋은 나른함이 그들을 둘러쌌다.


헬리오스는 흘러내리는 외눈 안경을 고쳐 끼웠다.

길거리엔 카페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대체로 손님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밤바람을 만끽하기 위해 야외 테라스에도 많은 남녀가 자릴 잡고 저들끼리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게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헬리오스와 소피아는 시내 외곽까지 펼쳐진 돌길을 따라 걸었다.

그들의 산책엔 카페들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백열등 불빛, 애틋한 남녀들의 웅성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피아노 연주 소리가 함께했다.


언뜻 보면 로맨틱하기까지 한 그 순간, 소피아는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박사님. 이 거리는 연구할 거리가 정말 많은 곳이네요.”

“엣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눈이 참 많은 동네야.”


벌써 여섯 명째.

그들이 발견한 비밀경찰이나 스파이들의 숫자가 벌써 여섯이나 되었다.

둘은 카페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신사를 스쳐 지나친 뒤, 가볍게 웃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 일곱인가?”

“네, 박사님.”

“거참, 귀찮게 되었군. 엣헴.”

“박사님, 이럴 땐 어떡해야 하나요? 제게 가르침을 주시죠.”

“이럴 땐···”


헬리오스가 잠시 말을 뜸 들이더니, 그녀의 귀에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냉큼 도망쳐야 한다네.”


소피아는 가볍게 피식 웃고는 대화를 이어 갔다.


“어머? 이 위험한 길거리에 저 같은 숙녀를 내버려 두겠단 말씀이신가요?”


소피아는 짐짓 앙칼진 척 연기했다.

물론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깔려 있었다.

헬리오스는 그 모습을 잠시 즐겁게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엣헴. 그러면 이 위험한 밤길, 이 박사께서 직접 에스코트해 드리겠네.”


소피아는 헬리오스의 오른손을 슬쩍 쳐다보고는 마찬가지로 즐거운 표정을 지은 채 답했다.


“어머. 너무 능글맞으신 거 아니에요? 박사님?”

“엣헴. 박사란 다 그런 법이야.”


소피아는 헬리오스의 오른손 위로 살포시 자신의 왼손을 올렸다.

헬리오스는 그 손을 꽉 붙잡기는커녕, 몇 걸음 걸은 뒤 걷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자고 제안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소피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잡고 있으면 좀 유연해지는 기분이 들어서요. 박사님.”


라는 이유로.


***


짧지 않은 나날이 흐른 뒤.

상사의 운영은 집사에게 맡기고 공업사의 허름한 격납고에서 두문불출하던 쟝이 어느 날 헬리오스를 공식적으로 호출했다.


도금과 축복이 끝났지만 페인트 칠은 하지 않은 철판 덩어리 비행기와 함께.


눈이 휘둥그레진 헬리오스가 시선은 여전히 비행기에 고정한 채 쟝에게 말했다.


“몇 주 만에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자랑스러워하는 쟝의 면전에다 대고 헬리오스가 말했다.

쟝은 눈앞의 철제 비행기를 텅텅 두드리며 답했다.


“되더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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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험 비행 21.05.28 63 8 18쪽
» 유연함 +2 21.05.26 80 7 12쪽
9 어둠 속에서 +2 21.05.25 81 7 14쪽
8 폭격 21.05.23 97 6 12쪽
7 두 번째 첫 비행 +4 21.05.22 106 5 14쪽
6 미리보기 +2 21.05.21 95 5 15쪽
5 이야, 분위기 좋은데? 21.05.20 112 7 13쪽
4 레지스탕스 메이커 (2) 21.05.19 115 8 14쪽
3 레지스탕스 메이커 (1) +3 21.05.18 129 5 12쪽
2 귀환 21.05.17 137 7 14쪽
1 프롤로그-추락 +4 21.05.17 210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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