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엑스트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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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02
최근연재일 :
2021.06.18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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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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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엘 자하드(2)

DUMMY

ㅡ언니, 이것 좀 봐! 언니 그려왔어!


언니의 방에 놀러 갈때면 항상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면 눈을 감고 손가락을 우아하게 놀리던 예쁜 언니가 나를 반겼다. 악보도 안 보고 어떻게 피아노를 저렇게 잘 칠까. 항상 건반을 틀리던 소녀는 그런 언니가 정말 멋져보였다.


"고마워. 우리 엘은 나중에 유명한 화가가 되려나, 이것도 벽에 걸어놔야겠네. 자리가 없어서 큰일이야."

"나중에 언니가 왕이 되면 왕관 쓴 언니도 그려줄게!"


그러고보면 왕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니의 표정이 조금 슬퍼보였던 것도 같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착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착한 왕이 될거야.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도 많이많이 그려서 언니한테 칭찬 들을거야.


그렇게 순수한 상상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왕궁 정원에 활짝 피어난 꽃을 배경 삼아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던 여자 아이의 꿈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잠을 자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창 밖을 내려다보니, 괴성을 지르는 폭도들이 근위병들을 무참하게 도륙하면서 왕궁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학살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옷차림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은 시녀건 관리건 가릴 것 없이 모두 반란군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바로 죽여주는 것은 참 자비로운 축에 속했다. 사지가 찢기고 두 눈이 파인 다음 온갖 조롱을 당하며 절규하는 사람도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왕궁 정원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큼지막한 나무를 돌았을 때 수십 명의 남자들과 마주쳤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던 그들의 손에는 녹슨 농기구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그 흉칙한 몰골을 본 그 순간 나는 모든 희망을 놓아버렸다.


발정기를 맞은 짐승마냥 그 더러운 놈들은 나를 보자마자 하반신이 시키는 욕망을 따라 내게 달려들었다.


눈동자에 비치는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기에 눈을 감아 버렸다. 그 직후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괴상한 비명들이 들렸다. 한번 시작된 소음은 생각보다 꽤 오래 이어졌다.


내가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잠시 뒤 눈을 떳을 때 그 남자들은 전원 깨끗하게 목이 잘린 채 죽어있었다. 솟아오른 시체 옆에는 한 여자가 환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배경으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사람은,털이 달린 두터운 갑주를 차고 피가 잔뜩 묻은 긴 칼을 쥐고 시체들을 툭툭 걷어찼다.

여자의 망토에는 반란군이 자랑스레 내걸던 깃발에 그려져 있던 초승달 문양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친숙한 얼굴이었다. 지난 몇 년간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바로 어제 만난 것 처럼 생생했다.

잊어버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정성껏 그린 수십 점의 초상화는 하나같이 이 여자를 상상하며 그렸던 것들이니까.


유채꽃이 잔뜩 피어난 꽃밭에서 내게 웃으며 화관을 씌워주던 언니는 3년 전 실종되고나서 죽어버렸다.


이제 내 눈 앞에 서 있는 자는, 자하드 왕가를 무너트리고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반란군의 수장인 루아 자하드일 뿐이었다.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고 칼을 집어넣은 루아 자하드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사방에서 어딘가로 갑자기 사라진 자신들의 지휘관을 소리쳐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 발견되면 바로 죽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루아 자하드는 나를 붙잡지는 않았지만, 쫓아오지도 않았다. 도망치는 길에 다행히 반란군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폭도가 삼중 사중으로 포위하고 있던 왕성에서, 내가 도망치는 길에만 인기척 하나 없었다. 어떻게 단순히 운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프란 발트펠트가 한 말들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단 한 가지를 빼놓고는.

용감한 기사가 나를 구해주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를 살린 자는 루아 자하드다.

루아 자하드는 왕궁에 남아있던 왕족과 귀족들을 모조리 사로잡았다. 오직 나만을 빼놓고, 일부러 직접 나서서 칼을 휘두르면서까지 나만을 살려보내준 것이다.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어린 동생들까지 빠짐없이 잡아간 주제에 왜 나만 보내주었던 것인가.

도대체 왜.


아버지와 어머니는 쇠사슬에 묶여 맨발로 수도의 거리를 사흘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끌려다녔다. 남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뒷골목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바로 수도를 떠났다. 레시미아를 떠나 남서쪽으로 목적지없이 무작정 걸었다.


길었던 머리를 가위로 대충 산발하고 뒷골목에서 주운 거적떼기를 입었다. 그럼에도 완전히 겉모습을 감출 수 없었는지 나를 잡아 죽이려는 추격대가 붙었다. 하룻밤 신세를 지러 들른 민가에서 내 정체가 들킨 날도 있었다. 군대를 부르는 낌새를 눈치채고 꼭두새벽에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 그렇게 몇 천 리는 떨어진 에르문트 제국까지 기어들어왔다.


어느 도시의 뒷골목에서 곰팡이핀 빵을 씹고 있을 때 키가 다소 작은 한 여자가 다가왔다.

홀릴듯한 미모였다. 하지만 무언가 광기가 짙게 드리워져있는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 하얗다 못해 창백한 웨이브진 백발은 레시미아에서 으레 보이던 설산을 연상케 했다.


그 여자가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마련해준 새로운 거처는 나쁘지 않았다.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하는 날이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서 이유없이 물벼락을 맞을 때도, 구둣발에 발길질을 당할때도, 주먹질에 코피가 터질 때도 참아낼 만 했다. 아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드러내는 적대감에 오히려 자비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과격할망정 잔혹하지는 않았다.


표정을 지우고 감정을 죽이고 생각을 멈췄다. 자신을 죽일 수록 살아가는 것은 편해졌다. 끔찍했던 기억도 조금씩 희석되어 갔다. 메이드의 삶에 익숙해졌다.

수십 명의 메이드가 프란 발트펠트의 행패를 못 버티고 저택에서 떠나갔지만 나는 남았다.


그래서 네가 갑자기 착한 사람으로 돌변했을 때 나는 순간 루아 자하드를 떠올리고 말았다. 희미해져가는 그 날의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혐오스러운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네게 일부러 차를 끼얹었고, 스프에 설탕을 넣었고, 결국에는 한밤중에 이 곳으로 찾아와 따지고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나를 잘 알고 있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릴하며 내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네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꽤나 설득력 있어보이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ㅡㅡㅡㅡ


ㅡ루아 자하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루아 자하드는 부족한 점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나만큼 언니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고,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사람도 많았다. 루아 자하드의 눈에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루아 자하드가 내게 먼저 다가오는 날은 없었다. 항상 내가 루아 자하드의 방을 찾아갔을 뿐.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 나는 루아 자하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ㅡ프란 발트펠트는 나를 원한다.


프란 발트펠트는 수영을 못하는 메이드를 연못에 빠트려놓고 허우적대는 것을 보고 조소하는 인간이었고,

맹견을 풀어놓고 메이드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것을 보고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 네가 어울리지 않는 폼까지 잡아가며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여유있는 척 자세를 잡으며 허세를 부렸지만 나는 눈치채고 있었다. 프란 발트펠트는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고. 자기 나름대로는 필사적인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뿐이었지만, 적어도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변해버린 루아 자하드는 내 손을 뿌리쳤고,

변해버린 프란 발트펠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기묘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ㅡ인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책정된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루아 자하드에게 내 존재 가치는 없었다. 아그웬 발트펠트도 마찬가지다.

그런 유형의 인간들은 나를 쉽게 속이고 미련없이 저버린다.


프란 발트펠트는 지나가는 고양이와 싸워도 대등한 싸움이 될 거 같은 허술하고 못난 인간이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고 말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적어도 나를 기만하고 배반할 인간은 아니다.

애초에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도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도와주도록 할게. 프란 발트펠트.


절대로 네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야.착각하지 마.


그저ㅡ


내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 하나를 너를 이용해 이루고 싶을 뿐.

그것 뿐이야.

ㅡㅡㅡㅡ


"프란 발트펠트 님. 저는 여전히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 자하드가 조용히 감았던 눈을 떳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내게는 영원과 같았지만 말이다.


"이대로 자기 할 말만 멋대로 하고 죽어버리면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지만 간신히 테이블을 붙잡고 자세를 유지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부탁하지."


엘 자하드가 품 안에 숨겨놨던 단도를 꺼내든다. 수수하지만 결코 조악하게 세공되지 않은 비수의 손잡이에는 조그맣게 자하드 가를 상징하는 Z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비수가 칼집에서 뽑히자 방 안의 기온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는다. 입김을 뿜으면 새하얀 김이 서릴 것만 같다.


ㅡ[서리바람]이다.

효과는 영향권 내의 대상의 이동 속도를 감소시키며 공격력을 낮춘다. 소설 속 세상으로 끌려와서 처음 보게 되는 마법이다.


그 순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복면의 암살자 중 한 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곧바로 내 등 뒤에서 칼날이 쇄도한다.


수련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프란 발트펠트가 피하기에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날카로운 움직임이다. 평범한 엑스트라인 나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치명적인 공격. 이대로면 의심할 것도 없이 죽는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막아준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나는듯이 발을 박찬 엘 자하드가 내 목을 향해 들어온 칼날을 비수로 흘려보낸다. 과격한 움직임에 어울리지 않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음에도 발놀림은 경쾌하다.

뜻밖의 방해를 받은 암살자는 두 번째 공격을 가하는 대신 내게서 다시 거리를 둔다.


[엘리시움 연대기]에서 『보좌관』이 사기 소리를 듣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능력치 상승과 경험치 증가라는, 메인 캐릭터를 서포팅하는 유틸성이 말도 안 되었다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그런 주제에 본인의 전투 능력도 최상급이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살을 에는 냉기가 가득 서려있는 북방의 동토 레시아나의 왕녀이자,지울 수 없는 과거로 인해 가슴 속 깊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된 소녀라는 설정에 어울리는 천재적인 재능.


그것이 네게 깃들어 있다.


ㅡ[엘리시움 연대기]의 6대 원소 마법중 하나인, 『빙결 마법』의 재능 말이다.


급소를 정확히 노려 내리치는 암살자의 칼날을 비수로 가볍게 흘려낸다. 그 순간 빈 틈을 노리던 나머지 세 명이 한꺼번에 엘 자하드의 배후를 들이친다. 등뒤에서 세 방향으로 날아드는 칼날을 막아내는 것은 평범한 메이드에겐 불가능하다.


평범한 메이드라면.


ㅡ[결정화].


공중에 떠다니는 정사면체의 얼음 결정을 조작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 마법.


암살자가 기세좋게 내지른 칼은 허공에 나타난 정사면체의 두꺼운 얼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엘 자하드의 곁에는 어느새 그러한 4개의 결정체가 생겨나,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주위를 맴돈다.


회심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 화가 단단히 난듯 암살자들의 공격이 갈수록 거칠어진다.눈앞에서 수십개로 갈라진 칼날이 어지럽게 허공을 가르며 춤춘다. 네 명의 인간이 각자 휘두르는 칼날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게 진로가 전혀 겹치지 않는다.


얼핏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처럼 보이는 칼날의 움직임은 철저하게 엘 자하드의 급소만을 향해 쇄도한다.


그 매서운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어느새 네 개에서 여덟 개로 늘어난 얼음 결정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칼날의 궤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8개의 결정체를 동시에 조작하는 일은 곡예에 가까운 일이다. 그 묘기를 엘 자하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해내고 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서로 간에 수십 합이 오간다. 수십 조각의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튄다. 칼날이 향하는 궤도 사이로 독이 발린 단검들이 날아온다. 때때로 급소를 노리는 발길질이 내질러진다. 그 오직 살인에 특화된 기술들을 엘 자하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능숙하게 흘려내고 있다.


균형을 이루던 천칭이 조금 한 쪽으로 쏠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엘 자하드의 배후를 잡으려던 남자가 갑자기 진로에 나타난 빙벽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세게 부딪힌다. 순간 뇌진탕에 걸린 남자가 기동력을 상실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엘 자하드가 시전한 [얼음창]이 남자의 두 다리를 찌른다.


치밀하게 짜여진 4명의 연계 공격이 순간 붕괴한다. 더 이상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적들이 엘 자하드에게서 떨어져 약간 거리를 둔다.


지고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간의 대결에서는 수싸움만으로도 수백 합을 겨룬다고 한다. 방금까지 서로의 투기가 사납게 부딪히던 방 안을 이제는 숨막히는 고요함이 지배한다.


그 긴장감 가득한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전투가 다시 벌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상황을 살피던 암살자들은 돌연 부상당한 자신의 동료를 업어들고는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홀연히 사라진다. 불청객들이 떠나버린 방은 찢긴 카페트와 칼자국이 잔뜩 난 벽. 그리고 유리조각과 얼음이 녹은 물만 남았다.


"죽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정도 수준의 암살자들과 4대1로 붙어서 쫓아낸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성과다."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멋대로 쳐들어왔다 멋대로 물러난 것 뿐.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살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사실은 석연치 않은 승리다. 단순히 죽이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물러난 과정이 개운하지 못하다. 전세가 불리해져 퇴각했다기엔 너무 이른 포기다.


예상보다 강했던 메이드 한 명이 무서워서 도망쳤다고는 할 수 없다. 4명이나 떼를 지어 쳐들어와서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여자 한 명에게 패배해 도망쳤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될게 뻔하다. 바로 아그웬 발트펠트에게 가죽이 벗겨질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실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 자체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치심을 무릅쓰고 도망쳐야만 했던 타당한 이유는 단 한 가지. 퇴각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그만한 실력자들을 미련없이 퇴각시킬만한 자는 당연히 한 명밖에 없다.


[황혼]이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존재.


ㅡ『하얀 악마』


계승 전쟁 최악의 적중 한 명인 아그웬 발트펠트가 개움직인다. 을 알 수 없는 여자인만큼 분명 의도가 있을 터.

조만간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 때 가서 대처하면 될 일이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나쁜 소식도 있는 법.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수는 없다.


지금은 눈앞에서 무표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충성스러운 메이드가 한 명 생긴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웃으며 엘 자하드에게 손을 내민다.


"네 현명한 선택에 감사를 표한다. 엘 자하드."


쾌활하게 내민 손은 상대를 찾지 못한 채 외롭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손을 거둬들이면 이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을 것이다.


잘못하면 엉거주춤 팔을 내민 이 상태로 그대로 석상마냥 굳어질지도 모른다.

부탁합니다. 잡아주세요.


"하아..."


한동안 싸늘한 표정으로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엘 자하드가 깊게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손을 잡는다.


냉기가 전해져오는 메이드 답지 않게, 손은 의외로 많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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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프리아의 시험(1) 21.06.13 10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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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슈리 엘레인(2) 21.06.11 124 4 15쪽
14 슈리 엘레인 21.06.10 126 6 13쪽
13 시아 샤르나 21.06.07 126 8 17쪽
12 마법 강의 +1 21.06.06 132 5 16쪽
11 입학식(3) +1 21.06.04 146 6 16쪽
10 입학식(2) +4 21.06.04 151 9 13쪽
9 입학식 +2 21.05.21 169 6 15쪽
8 샤리아 오리카(3) +1 21.05.18 170 5 12쪽
7 샤리아 오리카(2) 21.05.17 175 7 11쪽
6 샤리아 오리카 21.05.16 215 8 12쪽
5 아그웬 발트펠트 21.05.15 248 8 15쪽
» 엘 자하드(2) 21.05.14 297 9 17쪽
3 엘 자하드 +1 21.05.13 338 14 14쪽
2 선의와 악의 +1 21.05.12 412 18 15쪽
1 엑스트라라도 살고 싶다. +3 21.05.12 636 2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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