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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하이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0
최근연재일 :
2022.04.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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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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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57(125~126)

DUMMY

125



제롬의 공언대로 초단파 기기의 무단 사용 건은 군사 위원회에 회부 되지 않았다.





“제롬 소위님, 본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짐을 챙겨서 나오시죠”




사흘 동안 대부분 시간을 영창의 한쪽 구석에서 누워만 있었던 제롬은 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서 빠른 손놀림으로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수색대 외부작전은 모두 끝마쳤나?”




그는 간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감방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물었다.





“.......”



간수 병은 차가운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제롬은 마지못해 간수 병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그런 질문을 던질만한 상대가 아닐 텐데”



갑자기 간수 병의 뒤에서 제이슨이 나타났다.




그의 몰골은 매우 초췌해 보였다.





“중위님”




“제롬”




제이슨은 굳은 표정으로 짧게 대답하고는 간수 병에게 뭔가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간수 병은 잠금 해제용 열쇠를 제이슨에게 건네주고 제롬을 한 번 바라본 후 그 자리를 떠났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요”




“......”




“수색대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 말입니다”




“......”




제이슨이 계속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제롬은 무안한 듯, 얼른 표정을 바꾸고 짐을 꾸리던 일을 계속했다.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정보부에서 하는 일을 수색대가......”




“시간이 많지 않아”




한동안 닫고 있던 제이슨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제롬의 기대와는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제롬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제이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두르게”




“알...겠습니다만.... 방금 전 간수 병은 제가 본대로 복귀할 거라고.....”




“......”





제롬은 하는 수 없이 서둘러 가방을 꾸리고 나서 어깨에 걸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제이슨 중위가 아직 감방의 잠금장치를 풀어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기분이 약간 상해있는 상태였다.




“나갈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만”





뻣뻣한 자세로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제롬을 제이슨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든 열쇠를 잠금장치에 끼워 넣었다.




제롬은 열쇠를 쥐고 있는 제이슨의 오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의 손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제이슨은 제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방금... 저에게 서두르라고 하신 건.....”




“......”




“중위님”




제롬은 눈에 힘을 주며 제이슨의 행동에 유감을 표시하고 싶었다.





“한 가지만 묻겠네”




제이슨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과 관련된 정보부대 내부 지침에 대한 거라면 답변 드리기가 곤란한데요”




“자네....”




“제 권한은......”




“초단파 발생기를 시험해보려는 게 아니었지?”




“.........”




제롬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제이슨은 그때 서야 고개를 들고 제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




“주....중위님... 왜 갑자기 그런......”




제롬은 제이슨의 시선을 피하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밖에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정보부대 요원들이 서 있어. 기회는 지금뿐이네”




“중위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




“시간이 없다구”




“........”




“내가 자네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제롬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된 채 더욱 많은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언제가 들을 기회가 있겠지. 하지만 일단은 내 말을 잘 들어”




“.......”




“우리가 작전을 나갔을 동안 나에게는 큰 변화가 닥쳤어. 그리고 초단파 발생기의 시험작동은 자네 부대에서도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됐지”




“중위님, 그건....”




“개인 자격으로 자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지?”





제롬은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해봤지만 모두 허사란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궁지에 몰려있는 걸 파악할 수 있었어.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도 마지못해 해야만 할....”




“왜 저를 도와주시려고 하는 거죠?”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운명이 우리를 시험하는군”




제이슨은 자물쇠를 열고 감방의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 왜....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




“그들이 내 가정도 파괴했기 때문이야. 자네나 나는 지금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어”




그는 제롬의 옷깃을 잡아당겨 감방의 밖으로 빼낸 다음, 등을 밀어 출구 쪽으로 향하게 했다.





“잘못 된 걸 바로 잡을 수 있어. 제발 포기하지는 마”




제롬은 그 말을 듣고 나서 고개를 뒤로 돌려 제이슨을 바라본 다음 문을 열고 감호소를 빠져나갔다.




제이슨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격렬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126



“아주... 잘 자랐군”




“생각보다는요”




“자네...말고 또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없어요, 박사님”




“그럼...... 이걸 어떻게 혼자서 다 일궈냈나, 웨인”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저절로 자라난 셈이죠”




“뭐라구?”




“왜 그렇게 놀라세요 조엘 박사님, 박사님께서 원하시던 게 바로 이런 것 아니었나요?”




“쉿, 목소리를 조금 낮춰”





조엘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 채 허리를 구부려 버섯의 표면에 코를 들이밀었다.





붉은나팔버섯은 밑둥이 서로 연결되어 이끼 표면에서 그물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는데, 손으로 갓을 잡아당겨도 쉽사리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대단했다.





“옥수수 농장에서 이놈들 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 지금도 별로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랬을 테지....”




“아무리 뽑아도, 뽑아도 계속 번져가는 바람에 박사님께 차라리 모두 불태워버리자고 계속 졸라댔던 것 기억하시죠?”




“.......”




“인부들은 색깔도 재수 없다며 저 버섯 위에 침을 뱉곤 했잖아요. 혹시라도 죽지 않을까 해서 그 위에 용변을 보기도....”




“자연스럽게 이놈의 생장력을 시험하게 된 거지”




조엘은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낑낑대다가 겨우 한 뭉치의 버섯 덩어리를 뽑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때 제 옆집에 살던 촌장은 무당을 시켜서 저 재수 없는 종자를 불러온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하자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했었죠”




그 말을 듣고 조엘은 웨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촌장은 내가 처음 그 마을로 들어갔을 때부터 나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으니까”




“아.... 박사님, 제가 박사님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에요”




“나도 자네 탓을 하는 게 아니야”





조엘은 서로 엉켜있는 여러 갈래의 버섯 줄기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줄기만 남겨놓고 주변의 자잘한 버섯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웨인은 겸연쩍은 듯 뒷머리를 손으로 긁어대다가 말을 이었다.




“농사는 점점 힘들어지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옥수수밭까지 이 버섯 때문에 피해를 보다 보니, 박사님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지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네?”




“내가 지하실에서 여러 가지 버섯을 키우면서 비록 그 일부를 자네들에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건 사실이지만, 붉은나팔버섯까지 생산목록에 끼워 넣을 생각은 없었다는 말이야”




“아니... 그게.....”





“촌장은 이 버섯이 번식력만 강하고 하등 쓸모가 없는 종자란 걸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겠지. 사실은 나도 그 정도밖에 이 녀석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고”




“그런데요?”




“어느 날 촌장이 내게 그러더군. 당신이 재배한 버섯 중에 해가 되는 버섯이 온 마을에 퍼져서 온통 난리가 났으니 이 일을 당신이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박사님께서 그 종자를 특별히 관리하신 건 맞지만 마을에 퍼뜨린 책임은 없으시잖아요”




“그거야 당연하지. 촌장은 나도 모르게 시험가공용 샘플에 섞여 있던 이 버섯을 빼내서 마을 곳곳에, 그것도 축사나 곡식 저장고 주변에 뿌려놨던 거야”




“뭐... 뭐라구요? 박사님께서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고?”




“........”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가 어느 날 내게 알려줬지. 우리 촌장님은 박사님께서 기르시던 빨간 버섯을 너무 좋아하셔서 직접 그걸 가져다가 마을 여러 곳에 옮겨 심으셨다고”




“이해가 안 돼요 박사님, 촌장님이 왜 그런 짓을.....”




“촌장은 보기보다 욕심이 많았어. 내가 자네 마을에 부임한 이후부터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설마... 그래서.....”




“그런데 나는 촌장과 맞설 생각이 전혀 없었어.... 일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내 불찰이라고 그에게 인정하고 나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어”




“그랬더니요?”




“반박을 하며 공격적으로 나올 줄 알았던 내가 오히려 그렇게 순순히 나오니까, 무당을 불러 나를 지목하려던 그의 계획이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조용하게 나보고 마을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하더군. 그러면 모든 뒷감당은 자기가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지만....”




“그 대목에서 나도 그에게 제안을 한 가지 한 거야”




“뭘 말이죠?”




“내가 마을에서 나가는 대신, 마을에 퍼진 이 버섯은 당신이 모두 거둬들여 달라고”




“그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잖아요”




“촌장은 내 제안을 받아줄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몰렸을 거야. 왜냐면....”




“???”




“이미 라이언 총통이 그의 수하를 통해 우리 버섯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지. 중앙에서 파견된 정보원이 나와 접촉하고 있다는 걸 눈치 빠른 촌장이 모를 리가 없었거든”




“하하하, 그랬었군요”




“어느 날 그의 면전에서 내가 자네에게 붉은나팔버섯을 모두 없애버리라고 호통을 쳤을 때 촌장이 어쩔 줄 몰라하던 표정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군, 흐흐”




“큭큭큭”




“아무튼, 약삭빠르지만 순진한 촌장 덕분에 이 녀석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으니, 나중에라도 그에게 훈장을 추천하고 싶을 뿐이야”




조엘은 잘 다듬은 큰 버섯 덩어리를 손에 들고 힘겹게 허리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웨인은 잽싸게 그의 팔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촌장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박사님”




조엘은 일어서다 말고 웨인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웨인은 아무 말 없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촌장은 나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였는데.....”



웨인은 조엘의 다리에서 갑자기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조엘의 시선을 계속 피하다가 체념한 듯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사실을 고백했다.




“촌장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의 대부분 사람이 살아남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박사님과 저, 그리고 버섯들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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