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 언더그라운드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대체역사

주드하이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0
최근연재일 :
2022.04.08 08:00
연재수 :
175 회
조회수 :
9,211
추천수 :
29
글자수 :
946,171

작성
22.03.18 08:00
조회
44
추천
0
글자
12쪽

Chapter#166(286)

DUMMY

286



막스는 몹시 지쳐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은 자신의 딸이 맡겨져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시급히 닥친 일은 정식 보고 회의 이전에 이번 협상의 본질에 대한 내막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여장을 푼 후, 작전지역에서 미리 작성해 놓은 보고서 꾸러미를 가방에서 꺼내 잠금장치가 있는 서랍에 은밀히 집어넣었다.




“대위님, 세 시간 후에 회의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정찰부대 행정관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알겠네. 장소는 예정된 그대로인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대위님 보고 석 옆 자리에......”



행정관은 손에 든 좌석 배치도를 힐끔 바라보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뭔데”




“처음 보는 이름이군요. 왜 이분이 보고 석에 배정되었는지.... 그것도 대위님 바로 옆에...”




“누구지?”




“정보부 소속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소령이고..... 이름은.... 하머.... 아시는 분인가요?”




“........”



막스는 분명히 얼마 전에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누구인지 알아볼까요?”




“아니, 됐네”



그는 행정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가봐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럼, 이따가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 잠깐”




“네?”




“회의 시작 전에 누구든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의무과에 갔다고 말하게”




“...알겠습니다”



행정관이 돌아간 후, 막스는 시계를 바라봤다.



그는 서둘러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대규모 병력의 지원군과 평화 협상단이 일시에 복귀하는 바람에 어수선해진 막사 내부의 허술해진 분위기를 틈타, 막스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 행정부처가 몰려있는 센터 구역으로 진입했다.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세르니움의 핵심 요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중앙청사의 경계는 생각보다 삼엄했다.




“정찰부의 막스 대위요”



막스는 자신의 신분증을 경계병에게 보여주며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사복을 입은 그를 눈여겨보는 이는 거의 없어 보였다.




“약속이 되어 있나요?”




“아니, 부총통께 급한 일이라고만 전달해주면 고맙겠군”




“.........”



경계병은 막스의 위아래를 유심히 훑어보다가, 옆 기둥에 걸려있던 인터폰으로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들어오시라고 하는군요. 6구역 맨 끝방입니다. 구역 경계 지점에서 또 한 번의 검문이 있을 테니, 신분증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고맙소”



막스는 모자를 다시 깊게 눌러쓴 후 서둘러서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이군요”



율리스는 책상에서 일어나 막스에게 다가갔다.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지금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막스는 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다듬었다.




“왜.... 사복 차림으로 온 거죠?”




“남들 눈에 최대한 띄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앉으세요”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면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급한 일이란 게 뭡니까.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정신이 없을 텐데”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고 회의도 얼마 남지 않았죠”




“나도 그 회의에 참석예정입니다. 지금, 기존에 올라왔던 전시 정황 보고서를 다시 검토하고 있었어요”



율리스는 자신의 뒤에 있는 책상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먼저.... 제가 평화 협상단 대표로 지명되었던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오랜 복귀 행군으로 지친 막스의 입안은 갈증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게.... 보고 회의 전 이렇게 급히 알아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요?”




“제일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만, 모든 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 그래요? 그.... 제일 중요한 질문이라는 게......”




“방금 질문에 먼저 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




“제게 대답을 하셔야 할 의무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부총통님은 행정부의 수반이시니까요. 하지만, 저를 이 안으로 흔쾌히 들여보내셨을 때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실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막스, 아직 비상상황이 모두 해제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문제에 직면해있지요. 한순간에 모든 매듭이 풀어질 수는 없습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최근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은,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 취해진.... 아주 세밀한 작전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뜻은, 아직 우리가 성공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과 같은 말이구요”




“점점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그런가요? 음.... 그렇다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보지요. 일단, 이것만 알아두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우리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임무를 부여하고 있어요”




“.......”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면, 모든 건 질서 위에 안착하게 될 거구요”



율리스는 테이블 위에 있던 금속 잔에 식은 차를 따른 후 그걸 막스 앞으로 내밀었다.





“역...반란인가요?”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막스가 율리스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



율리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부인하지 않으시는군요”




“표현방법에 따라 다르겠지”




막스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놨다.




“.....왜.... 저....였나요”




“방금 전 말했잖소.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자에게 임무를 맡기고 있다고. 그리고... 루이사의 제안도 결정적으로 작용했지요”




“루.... 루이사? 생명 연구소의 루이사 박사를 말하는 겁니까?”



막스의 물음에, 율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건.... 우리의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맡은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돼요”




“그건 더 이해하기 어렵군요. 제 임무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충실하라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감을 잡았을 텐데”



율리스는 자신의 잔에도 차를 따라 부었다.




“부총통님”




“오늘 보고 회의에 우리 쪽 사람이 한 명 당신에게 붙을 겁니다. 그가 순간순간 당신에게 조언을 해 줄 거에요. 하지만 회의 전에 미리 만나지는 말기 바랍니다”




“대체... 뭘 바라시는 건가요”




“더는 질문을 받지 않겠소. 당신의 마음과 지혜로 판단하세요”




“.........”



막스는 여전히 율리스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만나는 상대방으로부터 뭔지 모를 연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혼란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본국으로 돌아온 이상, 이곳의 분위기로부터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




“신임 총통 각하도 같은 뜻을 같고 계신가요?”




뜻밖의 질문에, 율리스는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분이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겠죠. 이 모든 일이”



막스는, 스스로 단정을 하면서 율리스의 답을 유도하려 했다.




“..........”



율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막스를 노려봤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말씀처럼, 제 가슴 속에서 판단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이젠, 내가 질문할 차례요”



굳어 있던 율리스의 입에서 굵은 음성이 튀어나왔다.




“........”




“당신을 내 사무실로 들인 건, 이걸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그는 한동안 막스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한숨을 크게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델룽인들이 우리에게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겠습니까?”




율리스의 찻잔이 다시 채워졌다.




막스는 숨을 가다듬고 나서 답했다.



“의외로군요.... 궁금하셨던 게......”




“왜요. 게르인들이나, 우리 군의 상황에 대해 묻지 않아서 놀랐나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델룽을... 언급하실 줄은.....”



막스는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요, 당신이 항상 궁금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이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율리스의 질문에, 막스는 감춰왔던 비밀을 들킨 듯 당황해했다.



이미 그의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루이사에게 접근하고 지금까지 친밀함을 유지했던 것 아니에요?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 정부와 군이 하는 일들을 그녀에게 발설했죠? 거기서 뭘 얻으려는 거였습니까?”



막스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빨라졌다.



하지만, 그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을 모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자리에서 당신을 신문하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마치 당신의 관심이 델룽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없다는 시늉을 하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에요”



율리스도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심호흡을 하며 다시 차를 들이켰다.




“.....제 ...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젠, 나를 신뢰한다는 뜻인가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막스가 얼굴을 들고 율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제 마음을 열고 말을 할 수 있겠군요”



율리스가 다시 찻잔을 내려놨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인지를 물으신다면......”




“.......”




“단언코....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군요”



율리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들은 모든 게 엉성했습니다. 주변에 대한 상황인식, 계획, 실행, 그리고 판단력까지.... 솔직히 처음 조우했을 때는 허무하기까지 했죠”




“그런데?”



율리스가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그들과 여러 번 접촉하면서, 뭔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감정이 왜 제 내면으로부터 솟아났는지 저도 알 수 없었어요”




“........”




“어쩌면 영영 풀지 못할 숙제라고 고민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더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알 수 없는 분위기란 게 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소?”




“.......”




“이건 단지, 당신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서 묻는 겁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그건.... 어쩌면.... 뛰어난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힘..... 그리고.....”




“그리고?”




막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봐요”




“...그... 마음의 힘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막스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율리스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더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제 능력이 원망스럽군요”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적이라는 건가요? 미지의 영향력 때문에?”




“.........”




“너무 형이상학적이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율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고 싶군요. 이건...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만....”




“.......”




“당신은 델룽인들이 분명히 우리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들로부터 느낀 감정은.... 불안감이었나요? 아니면....”




“.......”




“.... 일종의 희열이었나요”




막스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호흡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 앞에서 답을 하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우리끼리 다시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조만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래요”



막스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우리끼리라는 건... 우리 외에도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회의에 늦지 않도록 하세요”



율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정신이 몽롱해진 막스는 풀린 다리를 겨우 수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며 보고 회의 전 루이사를 만날 시간이 있을지 판단해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멀티플 언더그라운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5 Chapter#175(295) 22.04.08 45 0 12쪽
174 Chapter#174(294) 22.04.06 42 0 12쪽
173 Chapter#173(293) 22.04.04 41 0 11쪽
172 Chapter#172(292) 22.04.01 41 0 13쪽
171 Chapter#171(291) 22.03.30 53 0 12쪽
170 Chapter#170(290) 22.03.28 45 0 11쪽
169 Chapter#169(289) 22.03.25 42 0 13쪽
168 Chapter#168(288) 22.03.23 45 0 12쪽
167 Chapter#167(287) 22.03.21 42 0 13쪽
» Chapter#166(286) 22.03.18 45 0 12쪽
165 Chapter#165(285) 22.03.16 44 0 12쪽
164 Chapter#164(284) 22.03.14 42 0 13쪽
163 Chapter#163(283) 22.03.11 45 0 12쪽
162 Chapter#162(282) +1 22.03.09 53 1 13쪽
161 Chapter#161(281) 22.03.07 44 0 12쪽
160 Chapter#160(280) 22.03.04 46 0 12쪽
159 Chapter#159(279) 22.03.02 46 0 13쪽
158 Chapter#158(277~278) 22.02.28 44 0 12쪽
157 Chapter#157(276) 22.02.25 50 0 12쪽
156 Chapter#156(275) 22.02.23 50 0 13쪽
155 Chapter#155(274) 22.02.21 51 0 13쪽
154 Chapter#154(273) 22.02.18 51 0 13쪽
153 Chapter#153(272) 22.02.16 46 0 14쪽
152 Chapter#152(271) 22.02.14 47 0 13쪽
151 Chapter#151(270) 22.02.11 46 0 11쪽
150 Chapter#150(269) 22.02.09 49 0 12쪽
149 Chapter#149(267~268) 22.02.07 49 0 12쪽
148 Chapter#148(266) 22.02.04 51 0 12쪽
147 Chapter#147(265) 22.02.02 48 0 12쪽
146 Chapter#146(263~264) 22.01.31 49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