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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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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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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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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69(289)

DUMMY

289



“볼코프, 이제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고 들었소”




“네, 총통 각하. 모든 게 다 각하의 배려 덕분입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자들에 대한 원한은 없소? 솔직히 말해보시오”




“.......”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구태여 그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진은 은근히 볼코프를 자극해 보려고 마음먹었었다.




“그 당시에.... 왜 당신의 조직을 배반한 거요?”



볼코프는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의 행적을 캐묻는 유진이 원망스러웠다.




“.......”




“나는... 당신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소. 작고하신 라이언 총통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도....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하오”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마도... 당신은 조직을 배반하고서라도 하보크의 힘에 의지하고 싶었겠지”




“........”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오. 사람의 생리란.... 원래, 강자의 무리에 속해 있고 싶은 거니까”




“우리 조직이 단지 약자라서는 아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보크와 동등한 입장에 놓일 수도 있는 힘을 가졌었으니까요”




유진은 볼코프가 서서히 자신의 의도에 말려들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맞소. 라이언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도 그 당시에 당신들 무리가 단지 순진한 과학자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




“조엘 의장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의외로군요”



유진은 시치미를 떼며 크게 놀란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저는... 그의 수제자로 커왔죠. 아주 오래전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에 대한 신뢰감은 없었던 모양이군”




“그건.... 개인적인 감정과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군”



유진은 속으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총통 각하께서 저를 사적인 이유로 살려주신 게 아닌 것과도 흡사하죠”




“그걸.... 당신이 어떻게 장담할 수 있소”




볼코프는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다음 말을 이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총통 각하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볼코프의 그 말에, 유진은 다소 긴장하기 시작했다.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닌 것 같군”




“아닙니다. 제 견해로는 각하의 그런 성품이 이 시기를 겪는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기분 나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감성이 지나치게 풍부한 자들은 눈앞의 중요한 일들을 쉽게 놓치기 마련이죠. 저는.... 제 성격조차도 그렇지 않게 만들려고 꽤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유진은 굳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이거, 혼동이 되는군. 당신의 표현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제가.... 제 스승인 조엘 박사를 존경하고 따랐던 이유도, 그의 차가운 성품과 곧은 심성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그런 냉혈한 같은 고집쟁이를 따르는지”




“인간적으로 좋아한 건 아니라는 뜻이군”




“조엘 박사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한평생을 홀로 지냈지요. 주변에 여자조차도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가 그렇게 외골수인 줄은 몰랐소”




유진은, 볼코프를 극한의 죽음에서 구해낸 게 바로 조엘이었다는 사실을 속으로 삭이면서 그의 생각을 더 끌어내 보려고 했다.




“학자로서의 능력과 실행력은 그 누구보다 월등했던 분이죠. 하지만, 어떤 계기로 그는 조직에서 추방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쫓겨나다시피 된 이후에도, 저는 그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건... 라이언이 시킨 일인 줄로 알고 있는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볼코프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제 영욕을 위해서 하보크에게 그를 팔아먹은 건 절대로 아니에요”




“아,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오. 오해하지 말기를”



유진이 손사래를 쳤다.




“HHI 조직의 집행부는 나중에야 조엘을 퇴출시킨 걸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필요로 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선뜻 그에게 다시 손을 내밀 수가 없었어요”




“그랬군.... 그래서 당신이 나섰나?”




볼코프는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오래전의 일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저에게는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조엘을 다시 영입하는 데 공을 세우면서 동시에 라이언 총통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잖소”




“하지만.....”



볼코프의 안색이 급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너무 당신을 몰아붙인 것 같군.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유진은 볼코프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면서, 그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시간적 여유를 두려고 했다.




“죄...죄송합니다. 갑자기 오한이 나는군요.....”



볼코프는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체온 유지가 더 힘들어지곤 했다.




“춥다는 건가? 이 무더위 속에서? 혹시 열이 나는 건........”




“그건... 아닙니다. 제 중추신경계가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모포로 감싸고 있어야 견딜 수 있는데.....”



그의 말 대로, 볼코프는 총통을 알현하는 자리에 감히 모포를 뒤집어쓰고 나타날 수는 없었다.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군. 비서실 친구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대신 사과하겠소”




“아, 아닙니다. 모포를 벗어 던지고 온 건 순전히 제 결정이었으니까요”



볼코프는 온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유진은 비서실에 연락을 취해 당장 덮을 것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모포를 몸에 감은 볼코프는 그제야 조금씩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던 말씀을 계속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오. 오늘만 날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유진은 그가 속히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HHI는 그리 어렵지 않게 조엘의 재합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의도와는 조금 달랐어요”




“그랬소? 조금 흥미롭군”



유진은 손을 턱에 고였다.




“조엘은... 생각하지도 못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뭐였나요”




“조엘은 자신이 개발한 미래의 먹거리를 HHI에 보여주고 그들이 그걸 바탕으로 삼아 하보크와 협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의장 자리를 되찾으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었거든요. 저에게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구요”




“다시 HHI의 의장이 되고 말고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였소?”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조엘이 다시 의장이 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게 뻔했습니다”




“복잡해진다고? 왜지?”




“........”




“사연이 있었던 게로군”




“더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아마, 말씀을 드린다 해도,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볼코프는 유진에게 털어놓을 이야기의 깊이에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온 게 틀림없어 보였다.





“흠, 뭐, 어쩔 수 없군요”



유진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하지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왜 제가 하보크에 더욱 충성하기로 결심했었는지”



볼코프는 체온에 안정을 되찾은 듯, 단호한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봤다.




“.......”




“그들은.... 그러니까.... HHI의 사람들은... 결코, 성공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었어요”




“뭐라고?”




“단지... 학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몇백 년 동안 비밀을 유지해왔을 뿐, 그들이 세상을 주물렀다가는 모두가 파멸에 이를 게 뻔했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심지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 대해서?”




유진의 물음에, 볼코프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




“오늘 당신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내게 너무나도 의외로 다가오고 있소.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건.... 한 개인의 자격으로 인정을 하는 것 뿐이지, 모는 걸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오”




“객관적인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아직은.... 그 판단을 보류하겠소. 나도... 그 시절을 같이 겪은 사람이니까. 내가 갖고 있는 정보와 일치할 때만 고려대상이 될 거요. 어디, 더 이야기를 해보지, 볼코프 박사”




“그들은 복수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인정받지 못하고 숨어서 지내야만 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을 복수로 대신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은 건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은 아니었어요”




“보, 복수라니”




“다가올 태양의 폭발하에서, HHI의 구성원만 살아남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게끔......”



유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에겐 학자적 양심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핍박받은 세월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핑계....라고?”




“태양으로 인한 파국을 예견한 홉킨 박사는,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규합하면서, 그들의 사상적 배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그들 모두가 옳은 사고방식을 갖췄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죠.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고”




“당신이 말하는 뜻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소. 하지만, 그런 조직이 수백 년 동안 음지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군”




“조직을 유지했던 건....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한 가지 목적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이기심.... 이라고 불리우죠”




“강한.... 이기심이 공동의 목적을 유지해왔다.... 이건가?”




“이건, 단지 제, 개인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조직원 누구에게 물어도, 쉽게 부정하지 못할 거에요”




“아, 알겠소”



유진은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




“저는 조엘이 다시 의장직을 수락한다면,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똘똘 뭉쳐서 거짓으로 라이언을 농락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농락....이라니.... 지금.... 무슨.....”




“세상 사람들은 조엘과 HHI가 순수한 뜻으로 라이언을 도와 피난처로 향하려고 했다고 믿었겠죠”




“그럼.... 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요?”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계속해 보겠습니다. 판단은 총통 각하의 몫이니까요”




“좋아요.....”




“HHI는 나름의 구상이 있었지만, 그걸 실행할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당연했겠지요. 숫자와 기호로만 만들어진 세상을 그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정변으로 힘을 갖게 된 라이언이 HHI와 접촉했습니다. 바로... 저를 통해서였죠. 우리 조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그리고 조엘은 의장직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생각을 실제 상황에 접목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당신이 조직을 등지게 된 이유였군”




“라이언 총통에게 HHI의 본심을 전달하지 않은 건 제 실수였습니다. 저는 단지... 숨어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결국에는 양쪽 모두에게 버림을 받게 된 거로군”




“조엘과 HHI가 성공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연을 방해해서 라이언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었어요”




“........”




“하지만, 라이언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조엘의 말만 믿고, 자신을 도우려 했던 저를 변절자로 못박아......”




“그만, 됐소”




“........”




볼코프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실험실로 끌려간 그때의 순간이 오롯이 떠오르면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마저 풀려가기 시작했다.




“볼코프, 그만 잊어버리시오. 좋지 않은 과거는 과감히 지워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




“....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 결정을......”




“나는 어떨 것 같소?”



뜻밖의 질문에, 볼코프는 잔뜩 움츠렸던 상체를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나도 변절자였소. 당신이 잠들어 있던 그...와중에..... 그렇게 되어버렸지”



유진은 볼코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좀처럼 풀어놓지 않았던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말씀은.... 자연스런 권력의 이양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까..... 라이언 총통의 자연사가 아니라는.....”



유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소... 같은 변절자끼리.... ”



두려움에 경직된 볼코프를 바라보면서, 유진은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볼코프의 음성은 갈라지고 있었다.




“당신이 오래전부터 추구해 왔던 것..... 세상을 구하되, 하나로 통합하는 일....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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