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 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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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생이
작품등록일 :
2021.05.12 15:02
최근연재일 :
2021.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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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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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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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 아랑

DUMMY

처용은 비명이 들리는 전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달빛이 어슴푸레 방안을 비추어, 어느 정도 앞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방 모서리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잔뜩 몸을 오그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이부자리가 펴져 있었고, 그 위에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앉아있었다.


동자귀였다.


처용이 귀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동자귀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꺄르르르르~”


바로 등 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용이 뒤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또 허탕이었다.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동자귀가 천정에 두 손과 두 발을 붙이고는 자신을 거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용이 검을 세워 천정을 향해 던져 올렸다.


아쉽게도 귀가 한 발 더 빨랐다.


천정에 그의 검만이 덩그러니 꽂히고 말았다.


처용은 위로 뛰어올라 검을 다시 회수했다.


그리고는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귀를 찾아봤지만,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몸에 붙은 벌레라도 떼어내려는 듯 손으로 마구 휘젓고 있었다.


처용의 눈에 동자귀가 여인의 등에 찰싹 붙어 업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에 처용 역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인 때문에 귀를 향해 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꺄르를르~ 헤헤헤헤헤~’


기분이 더 좋아졌는지, 귀가 까무러치며 웃어댔다.


소름 끼칠 정도였다.


처용은 더욱 당황스럽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게 처용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갑자기 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바로 처용의 품에 와락 안겼다.


순간 향긋한 내음이 처용의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아주 옅은 사향 냄새에 달콤한 치자꽃 향기가 섞인 향이었다.


아찔했다.


게다가 그녀의 가녀린 떨림이 그의 몸에 전달되자,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처용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인이 처용의 품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살짝 돌려, 천천히 자신의 등 뒤를 돌아봤다.


“휴···”


여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인은 숨결마저 달콤했다.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그때서야 자신이 외간 남자에게 안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화들짝 놀란 여인이 급히 처용에게서 몸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죄···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야말로··· 귀를 쫓다 보니···”


정확히 처용이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귀를 쫓다가 비명을 듣고, 앞뒤 가릴 것 없이 급히 들어오다 보니, 정숙한 여인의 거처인 줄 모르고 불가피하게 소란을 피우게 되어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으나, 처용의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말이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바보 같은 모습에 실망하여 처용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여인이 미소 지었다.


“덕분에 동자귀를 빨리 물러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처용은 동자귀의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 전체를 둘러보았지만, 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동자귀를 다시 찾아다녀야 한다는 낭패감보다, 이제는 핑곗거리가 사라졌기에, 그만 여인의 방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더 아쉬웠다.


“그럼 귀도 물러갔으니 이만···”


처용이 문을 열고 밖으로 막 나오려고 할 때였다.


“아랑입니다.”


“??!”


처용이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았다.


“제 이름 말입니다.”


처용의 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말이 없자, 아랑이 말을 이었다.


“도령은 누구십니까?”


처용은 겨우 정신을 붙잡고 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박가 성을 가진 처용이라고 합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처용 도령.”


아랑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


처용의 가슴은 두근거리다 못해, 이젠 아예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처용은 비단 이불 위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아랑···’


머릿속에 온통 아랑 생각만 가득했다.


“이제 나흘 남았어.”


담집의 목소리에 처용이 눈을 떴다.


아랑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동자귀부터 해결해야 할 터였다.


해결하지 못하면 궁에서 그대로 쫓겨날 뿐 아니라,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젯밤 동자귀는 나타나지 않은 건가?”


“만나긴 했으나, 워낙 빨라 잡을 수 없었소.”


“당연하지. 비록 어리긴 하나, 명색이 귀신인데.”


그때였다.


갑자기 운칠이 쾅!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그쪽이 궁 안에 사는 동자귀를 없애주기로 임금님과 약조했다는 게 사실인가?”


처용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그쪽이 귀신을 본단 말인가?”


처용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쪽이 가끔 혼자서 중얼거리는 게, 혼잣말이 아니라 귀신이랑 얘기하는 것이었나 보구먼···.”


운칠이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실처럼 작은 그의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럼 혹시 지금도 귀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인가?”


처용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그렇소.”


운칠이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어··· 어디? 어디 있는데?”


운칠이 고개를 이리저리 홱- 홱-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찾아? 나 여기 있어.”


운칠을 놀려주고 싶었던 담집이 그의 눈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귀··· 귀, 귀신이다. 아악~!”


운칠이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이제야 좀 조용히 상의할 수 있겠군.”


그러나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려고?”


“귀들의 행동이 빠르고, 내 검의 빠르기가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검술 연습을 더 하는 편이 좋을 거 같소.”


말을 마친 처용이 앞마당으로 나와 검술 연습을 시작했다.


검술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연습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멸귀검으로 연습한다면, 귀인 담집 역시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므로.


검을 휘두르며 처용은 차차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처용이 왕에게 듣기로는 동자귀가 낮에는 나타나지 않고 밤에만 출몰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낮에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밤에 잠든 사람들에게 장난을 쳐서 놀라게 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비록 귀신일지라도 아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어딘가에서 놀고, 밤에는 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놀린다면···.


‘낮에는 누군가 돌봐주고, 그 누군가가 잠이 든 밤에는 같이 놀아줄 상대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처용은 휘두르던 검을 거두고, 아랑의 전각으로 향했다.


처용이 궁 안의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왕과 국무, 아랑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 궁 안의 일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아랑이 유일했던 것이다.


처용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아랑을 다시 만날 기대감 때문인지 확실치 않았다.


처용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다행히 아랑은 자신의 방에 있었다.


밝은 낮에 본 아랑의 용모는 더 곱고 단아했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는 신비감을 느끼게 했다.


그녀의 붉은 입술에 눈이 닿자, 그 입술을 훔치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랑의 목소리에, 불순한 몽상에서 깨고 말았다.


“도움을 청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혹 동자귀에 관한 것입니까?”


“예.”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밤마다 놀라는 것에 이젠 지쳤습니다.”


“혹시 궁 안에서 어제 본 동자귀만한 아이가 죽은 적이 있습니까?”


아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입술을 오므리는 그녀의 표정이 귀엽게 보였다.


“글쎄요. 궁에 있는 어린아이라면 왕가의 자손들 뿐인데, 그만한 나이의 왕자는 본 적도 없거니와, 더욱이 왕자가 죽었다면 절대 모를 리 없습니다. 나라의 큰 상이니까요.”


“그렇군요···.”


처용은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혀 소득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랑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봤으니, 절반의 소득은 있는 셈이었다.


“예쁘던데?”


담집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시끄럽소.”


“왜? 연모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가?”


“?!”


“괜찮아, 피 끓는 청춘인데 선남선녀가 끌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 게 아니오. 우릴 몰래 훔쳐봤다면 알 거 아니오? 동자귀에 관해 물어본 것뿐이오.”


“그런 걸 바로 님도 보고 뽕도 딴다고 하지.”


“아니라니까!”


“에이~ 나한텐 애써 그허게 숨기려 하지 않아도 돼. 우리 사이에~”


“귀신이라도 독심술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어찌 내 마음을 안다고 그러시오?”


“굳이 독심술이 없더라도 알 수 있지. 지금 자네 얼굴이 벌겋거든. 꼭 불타는 고구마처럼.”


“···”


처용이 멸귀검을 검집에서 빼냈다.


“왜? 동자귀를 보았는가?”


“아니오.”


“그럼?”


“이 멸귀검을 그 쪽에게 쓸까 생각 중이오. 소멸하면 환생도 안 되지 않나?”


처용 곁에 바짝 붙어서 놀려대던 담집이 금세 세 보 정도 멀찍이 떨어졌다.


“대별왕께서 보낸 조언자를 이런 식으로 협박하다니. 이러면 곤란해.”


“남은 평생 당신의 간섭과 놀림을 받고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냥 소멸시킨 후에 저승에 가서 그 벌을 달게 받겠소.”


처용이 담집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시늉을 했다.


“자, 잠깐!”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으신가?”


“날 소멸시키면 동자귀의 비밀을 알게 될 기회를 잃고 말 텐데?”


“거짓말.”


“젊은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조금 전 아랑 낭자의 방에 나 말고 다른 귀가 하나 더 있었네.”


“?!!”


“이 궁을 오십 년 가까이 못 떠나고 있다는 궁녀의 귀였지. 그 궁녀 혼이 자네와 아랑 낭자가 꽁냥거리는 걸 구경하러 왔다고 하더군. 헤헤헤. 역시 남의 연애를 몰래 훔쳐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해.”


“요점만 말하시오.”


담집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궁녀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는 내게 동자귀에 대해 알려줬거든.”


처용의 눈이 반짝였다.


“어때? 궁금하지 않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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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여인을 희롱하는 귀 21.06.16 3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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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빙의된 가용 21.05.27 53 1 8쪽
10 10. 초혼 21.05.25 60 0 8쪽
9 9. 수명장자 21.05.24 60 0 8쪽
8 8. 파리지옥 21.05.22 67 2 9쪽
7 7. 출생의 비밀 21.05.21 72 1 11쪽
» 6. 아랑 21.05.19 74 1 11쪽
5 5. 귀가 된 담집 21.05.18 77 2 11쪽
4 4. 운석 찾기 21.05.17 79 2 10쪽
3 3. 멸귀검 21.05.14 90 1 12쪽
2 2. 귀향 +1 21.05.13 13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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