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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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5.12 15:23
최근연재일 :
2021.12.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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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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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4)

DUMMY

저쪽(가상현실)과 이쪽(현실)의 시차는 대략 4배다.

이쪽(현실)에서 4시간을 쉬면, 저쪽(가상현실)에서는 16시간이 흘러간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돌아가는 게 좋다고 결론지었다.


“더 쉬고는 싶지만···. 저쪽(가상현실)의 상황이 우선이지.”


나는 4시간 전, 저쪽(가상현실)에서 아이를 구했다. 그것까진 좋다.

하지만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 탓에 나는 아이를 돌턴의 집까지 데리고 와버렸다. 돌턴은 집을 비운 상태다.

한동안 아이의 비위를 맞추고, 식사를 주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게 뒀다. 그랬더니 아이는 금방 잠자리에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저쪽(가상현실)에서 이쪽(현실)으로 도망쳤다.


“하아.”


그것도 끝이다.

더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돌턴이 오면 설명도 해야 한다.

나는 익숙한 흐름으로 【World of Reflector(거울 세계)】에 접속했다.

벌써 몇 번이나 본 화면을 적당히 조작한다. 매끄럽게 절차가 끝났다. 내 시야는 순식간에 저쪽(현실)에서 이쪽(가상현실)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내 시야는 침대다.


“···.”


침대다. 분명 여기는 돌턴의 집이다.

돌턴의 집에 침대는 하나뿐이다.

나는 분명 소파에 누운 채로 로그아웃했다. 하나뿐인 침대는 어제의 아이를 눕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대다.


“이봐. 슬로우?”


게다가 언제 돌아온 건지 돌턴마저 있다.

돌턴의 시선은 침대에 나란히 누운 나와 아이를 확인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겠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돌아온 친구,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집에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게다가 한 침대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웃이다.


‘아.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돌턴의 안면 근육이 완전히 말려 올라갔다.

돌턴의 뻣뻣한 웃음을 직시한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자는 아이를 신경 쓰느라 돌턴이 작게 말하는 모습만이 그나마 구원이다.


‘어쩌면 분노를 가득 담은 모습일지도 모르지.’


나는 사형수가 된 기분으로 침대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


“할 말은 있냐?”

“···있긴 있지.”


돌턴이 조금 전부터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나는 돌턴의 웃음에 이끌려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상황은 순전히 서로의 오해와 착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다. 차분히 설명하면 돌턴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파 도시에 돌아온 건 어제야. 그때 북서부에 잠깐 들렸었고.”

“그래. 그래서? 저 아이는 누구의 아이야? 설마 납치라던 가는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터무니없는 오해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돌턴은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다.


“어제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구한 녀석이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그대로 데리고 와버렸는데.”

“···하아.”


간단한 설명을 끝냈다. 이걸로 돌턴도 내막을 이해한 모양이다.

나는 완전한 무죄다.


“이봐, 슬로우.”


설명이 끝난 나는 안심하고 차를 마셨다.

그런 나를 부른 건 조금 전보다 표정이 일그러진 돌턴이다.

대체로 이런 표정의 사람은 곤란한 말을 한다. 하지만 듣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내심 각오를 해두고 돌턴의 말을 기다렸다.


“너, 머리 위라던가. 내 일이라던가. 할 말은 많았는데. 지금은 저 아이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

“그래.”


지적을 받고 깨달았다. 지금 나는 닉네임이 없다.

이 설명도 잘 풀어야 한다. 자칫 잘못 전하면 돌턴이 착각해버린다.

그런 나의 걱정과 달리, 돌턴은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슬로우, 너. 책임질 수 있냐?”

“···.”

“지금 저 녀석을 떼어놓지 않으면, 앞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해진다. 양쪽 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많이 봐서 알고 있어.”


돌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나는 이해했다.

지금까지 만난 NPC는 선인뿐이다. 그중에는 돌턴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 돌턴이 전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저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지 묻는 말이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맡기는 게 간단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구한 너에겐 정말 고맙다는 감정뿐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안일하게 생각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슬로우. 네가 아직도 별을 건너는 자(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떤 사람이라도 저 아이에게 쉽게 안식처를 건네면 안 된다고.”

“···안식처, 인가.”

“그래.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건 아니야? 저 아이는 시종인이다. 분명, 고아나 갈 곳 없는 아이겠지.”

“그런가.”

“그런 아이에게 네가 안식처라는 환상을 보여주면. 저 아이는 쉽게 마음을 주겠지. 하지만 슬로우. 넌 그런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냐? 저 아이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서 죽을 때까지. 네가 저 아이를 버리지 않을 건지 묻는 거다.”


나는 돌턴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제대로 된 반박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지금은 돌턴의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한참을 말한 돌턴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네가 책임질 수 있다면, 나는 상관 안 하마. 대신, 도와줄 수도 없어.”


돌턴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돌턴의 말을 떠올렸다.


‘확실히, 너무 안일하게 데려왔다.’


본래 저 아이는 병사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올바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돌턴이 언급한 시종인 제도도 나는 모른다. 그런 내가 아이를 데려왔다.

이는, 너무 가볍고도 무책임한 선택이다.


‘책임질 수 있는가. 그런 물음이었나···.’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질문의 대답을 나는 분명 알고 있다.

간단하다.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다.


‘불가능하다.’


나는 책임질 수 없다.

인생은 누군가 책임지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각오를 다졌다.

그 후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책임질 수 없어.”

“그렇다면, 아이는 내일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저 아이는 나와 있겠다는 선택을 내렸어.”

“···.”

“나는 아이와 인연이 생겼고, 그 인연을 쉽게 포기할 생각도 없지.”

“그래서···. 나보고 책임질 수도 없는 사람에게 아이를 넘기라고?”


돌턴은 당황과 황당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내가 돌턴이라면 비슷한 반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정한 게 있다.


“책임은 질 수 없지. 그래도 저 아이가 후회하지 않도록 할 생각이야.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을 기뻐하도록. 앞으로의 인생이 즐겁도록. 내가 도와줄 생각이야.”

“···너. 그거 엄청 무책임한 소리인 건 아는 건가?”


내가 정한 건 단 하나다.

이쪽(가상현실)과 저쪽(현실) 모두 즐기는 것이 전부다.

내가 즐거운 일이다. 선택이 후회되어선 안 된다. 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오롯이 내가 편안해야만 한다.

그러니 나는 저 아이가 원한다면 도울 생각이다.


“돌턴. 인생이 누군가의 책임질 수 있는 일이었나?”

“···하아.”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후회도, 고통도, 즐거움도, 기쁨도 자신이 만든 결과야.”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돌턴은 큰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머리 위에 그건 어떻게 된 건데?”

“이거 때문인 모양인데.”

“설마···.”


어느새 채운 맥주를 마신 돌턴은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나도 돌턴의 장단에 맞춰서 팔찌를 보여줬다.

이 팔찌는 시든 꽃으로 엮인 팔찌다. 그냥 봐도 스산함이 엄청나다.


“저주인가.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스켈레톤이 있는 던전을 공략했지.”

“그게, 무슨···.”


한숨을 내쉬려다 참은 돌턴은 맥주잔을 기울였다.

저 모습을 보니 저주받은 아이템이라는 건 알아본 모양이다. 게다가 맥주잔도 금방 빌 것같다.

결국, 잔을 내리면서 한숨을 내쉰 돌턴은 화제를 돌리기로 한 모양이다.


“이번에 몬스터 대군이 왔는데. 그건 들었나?”

“정보는 상인의 생명이니까.”

“그래. 아···. 이제 그 모습이니 시험도 되겠네.”

“아마도.”

“그건 축하할 일이군. ···축하할 일인가? 아니, 아무튼. 몬스터의 일이다.”


돌턴은 어느새 술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얼굴이 조금 붉다.

말을 번복하면서도 돌턴은 몬스터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뒤처리로 나는 한동안 높으신 분들이랑 이야기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게 끝나면 현장 지휘도 해야 하고.”

“피해는 어느 정도야?”

“북서부의 30%다. 사상자도 무시 못 할 수준이고. 높으신 분들이 화나기 좋은 상황이지.”

“그래···.”


돌턴은 빈 잔을 확인하고는 술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면 최근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다.

북서부의 30%라면 대략, 내가 확인한 구역보다 1.5배 넓은 시점이다. 사상자의 건도 있다.


‘한동안 도시 전체의 물량 부족에 시달리겠는데.’


건축 자재는 물론이고, 플레이어로 부족해진 포션은 완전히 보기 힘들어질 듯하다.

최근 들어서 들이는 양이 늘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한동안은 시세가 폭등할 기세다.

잘 이용하면 거리의 수복과 돈벌이가 동시에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자재 매입은 끝났나?”

“아니, 높으신 분들이 지갑을 꽉 쥐고 있어서 힘들지. 이번 사태 피해가 예상 이상이라고 하네.”

“흠···.”


귀족들이 자금을 내지 않는다.

자재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틈은 있나···.”

“뭐? 아, 슬로우. 너 뭔가 할 생각이냐?”

“그렇지.”

“···하지 말라고는 안 하겠는데. 피해가 갈 일은 적당히 해라.”

“물론. 앞으로는 혼자가 아니니까.”

“하아···. 그래, 그래. 알아서 잘 해봐라.”


돌턴은 순식간에 비운 잔을 아쉬운 듯 바라봤다.

이야기가 끝났다고 판단한 나는 내일의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슬로우.”


그리고.

방으로 가려던 나는 돌턴의 한 마디에 생각할 거리가 늘었다.


“내일부터는 집에서 나가라.”

“···그건, 뭐. 알겠는데. 이유는?”

“귀족들이랑 얽히면 귀찮아지거든. 찍힐 수도 있으니까. 조금 떨어져서 지내라.”

“고생이 많네.”

“누가 아니라냐.”


말을 끝낸 돌턴은 한 손을 적당히 흔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빈 잔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돌턴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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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Episode 48. 마지막 봉인 (7) 21.12.07 88 1 13쪽
172 Episode 48. 마지막 봉인 (6) 21.12.06 88 1 12쪽
171 Episode 48. 마지막 봉인 (5) 21.12.05 84 1 12쪽
170 Episode 48. 마지막 봉인 (4) 21.12.04 7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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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pisode 48. 마지막 봉인 (2) 21.12.02 88 1 11쪽
167 Episode 48. 마지막 봉인 (1) 21.12.01 87 1 12쪽
166 Episode 47. 겉과 속 (4) 21.11.30 86 1 12쪽
165 Episode 47. 겉과 속 (3) 21.11.29 86 1 12쪽
164 Episode 47. 겉과 속 (2) 21.11.28 92 1 11쪽
163 Episode 47. 겉과 속 (1) 21.11.27 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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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Episode 46. 속전속결 (1) 21.11.25 94 1 12쪽
160 Episode 45. 세계 연합 21.11.24 89 1 12쪽
159 Episode 44. 공략 시작 (3) 21.11.23 8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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