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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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더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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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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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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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DUMMY

중성으로 들어가는 문을 막고 선 몬스터는 `마몬`이라는 몬스터로 세계에 알려진 악마 `마몬`의 생김새와 똑같았다. 검은 몸에 새의 머리가 두 개, 손발톱이 길게 자라나 있는 몬스터가 마몬이었다. 최상위 사냥터로 분류되는 마황성답게 마몬은 강기 정도 수준의 기예가 아니면 피부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무공을 배운 사람과 비슷하게 발은 날렵하고 손발톱에는 강기와 비슷한 마력 기반 스킬을 만들어내는 높은 등급의 몬스터였다. 이것 말고도 5서클 마법을 즉발스킬처럼 사용하는 데다가 조금 몰린다 싶으면 짧은 주문으로 6서클 마법을 사용하기도 해 상대하는 유저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알려진 마력 스텟이 600이라 전투 중에는 쉬지 않고 계속 마법을 난사하는 몬스터가 바로 마몬.

또 위기에 처하면 탐욕의 항아리를 소환해 안에 들어가서 회복을 하기도 해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탐욕의 항아리는 8서클 마법 수준 위력이 아니면 깰 수 없어서, 깰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파티에 없는 한 그냥 마몬을 두 번이나 사냥해야 한다고 보면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마몬의 모든 정보였다.


"그런 마몬을 어르신이 단 한 번의 공격에 탐욕의 항아리를 소환하게 하더니, 두 번의 공격에 항아리를 깨뜨렸고, 세 번의 공격에 마몬을 죽이고 사라지게 만들었어요."

한예린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은 모두를 보며 한 말이었다. 어제 첫날 사냥으로 독고진과 한예린은 마몬을 죽이고 중성에 들어갔다 왔다고 말했다.

마몬이 준 아이템은 모두 장비 아이템이라고 한다.

이곳에 온 지 이틀 된 독고진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옆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백상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몰라도 나머지 일행들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오늘 아침 메뉴는 각 세계마다 달랐다.

이레니언과 헤르마누는 이레니언이 추천한 토스트와 5가지의 잼, 크림 수프를 먹으며 얘기를 들었다.

전에 불의 사막지대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 조합의 메뉴.

헤르마누는 맛에 놀라고 한예린의 말에 놀라느라 바빴다. 마몬이 5~6서클 마법을 사용한다는 점보다 마력 스텟이 600이라는 점에 더 놀라워했다. 맷집이 피의 하수인보다 더 좋다는 말에는 놀라 표정을 굳히기도 했다. 이보다 더 놀라고 표정을 심각하게 굳히게 된 순간은 후식으로 나온 호떡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였다.

"저기 도우미 님이 호떡 아이스크림이라는 디저트 요리법 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듣기로는 헤르마누의 할아버지는 세계에 단 2명 있는 9서클 마법사에, 아버지는 8서클 마법사라고 하니 흥미를 빨리 잃는 것도 그렇게 놀라운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진과 백상우는 천가휘가 추천한 잡채와 양념돼지갈비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아침을 먹었다. 천가휘와 다르게 둘은 아침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루 힘을 쓸 수 있다면서, 아침에는 꼭 고기를 먹고는 했다. 근육량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먹는 양은 보통 사람의 4~5배는 되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식사 시간이 비슷한 걸 보면 위장이 타고난 사람들 같았다. 먹고 나서 속이 부대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해볼 수 있는 추측이었다.

말 그대로 추측일 뿐. 혹시 모를 일이다. 위장능력을 끌어올리는 특수한 방법 같은 게 있을지도 말이다.


"오늘 비 오는 날인데 탐사 나가신다면서요?"


다른 일행들의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한예린이 말을 걸어왔다. 나흘 동안 간간이 만나 나눈 대화로 알게 된 건 나이가 28살이라는 것 정도다.

친분을 쌓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직은 좀 어색했다.

친해지기도 전에 서로 각자 처한 상황을 알게 되어 약간 더 어색한 감이 있었다.


"네."


4일 전에 비 올 때는 탐사를 하지 않았지만 기사들이 아직 안 보였다는 점에 우리는 오늘 탐사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도에 피의 늪지대 2/3가 열렸는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비 오는 날에 기사가 나타나는 시스템일지도 몰랐다.


"길드에 요청해 탐사하는 거 도와드릴까요?"

"저희끼리도 충분해서 안 도와주셔도 될 거 같아요. 맵도 이제 거의 다 열어서 탐사는 막바지거든요."

"아, 네."

약간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잇는 그녀다.

"그냥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은 곳인데, 비 오는 날 들어가시니 조심하세요."

"감사해요. 마황성은 피의 늪지대보다 더 높은 등급의 사냥터이니 한예린 씨도 몸조심하세요."


짧은 대화는 이게 끝이었다. 식사 시간은 일행들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오늘처럼 금방 흘러 지나가고는 했다. 한예린도 이제는 좀 익숙해졌는지 당황하기보다는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독고진에게 곧잘 말을 걸고 웃는 것만 봐도 사교성이 나쁜 여성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마암병 환자라는 점에 더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한예린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

기부와 괴수로부터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사례 등 기억나는 선행만 해도 십수 건에 달하는 유저가 한예린이다.


"자 어서 가자꾸나!"


우리 중 제일 부지런해 보이지 않는 독고진이 먼저 앞장서서 여관을 나섰다. 모두가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보르마르 성과 피의 늪지대까지 가는 데 드는 시간은 30분이 채 안 걸리는 반면.

마황성에 가는 데는 3시간이 넘게 소요되어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그만큼 사냥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여유가 있는 우리와 달리 독고진과 한예린은 빨리 출발해야 밤이 찾아오기 전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곽 지대는 몰라도 밤에 중앙지대에 머무르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해가 정확히 사라지는 순간 중앙지대는 완전한 암흑이 되어 그 어떠한 빛 마법이나 아티팩트로도 밝힐 수 없었다. 바퀴벌레 같은 몬스터 수천 마리가 땅에서 나와 정확히 지대에 있는 유저를 찾아 공격한다고 알려진 곳이 중앙 지대였다.


"다들 조심하시고 저녁에 봬요!"


한예린이 떠나가며 남긴 말에 백상우가 우락부락한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우리 사부님 잘 챙겨드려! 다치지 말고 저녁에 봐!"

한예린과 백상우는 독고진과 만난 날 저녁에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옆에 서 있는 백상우를 보다가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이 느껴져 뒤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희도 가요."

이레니언의 표정이 약간 시무룩해진 것 같은 느낌은, 아무래도 기분 탓이라 넘기기에는 같이해온 시간이 꽤 길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말에도 가끔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긴가민가했던 일이 차츰차츰 쌓이고 쌓여 이제는 확신이 되었다.

이레니언의 눈치를 보던 천가휘와 눈을 딱 마주치게 된 건 그 순간이다.


형님. 어떻게 이레니언이랑 상우 형 한 번 엮어 볼까요?

표정과 작은 손짓에 전해져온 뜻.

읽은 내가 신기한 게 아니라 천가휘가 잘 전달한 것이다. 천가휘는 또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상대방을 웃게 한다.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바투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머리를 툭툭 치며 속삭인다.

그거 재밌겠다.

뭔가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미소가 오랫동안 머물렀다.


앞장서서 걷던 백상우가 뒤돌아 모두에게 웃어 보였다. 떠오르는 햇살을 등진 백상우는 활기차게 공중제비와 허공을 걷는 기예로 풍경에 한층더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조금 떨어져서 풍경을 장식한 헤르마누와 이레니언의 짧은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동생아."

"좋기는 개뿔."

"갑자기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느냐?"

"기분 안 좋은 거 아니거든?"

지구와 다를 바 없는 흔한 나스탈인 남매 대화로 모두를 웃게 하는 두 사람이다.


일단 제가 상우 형님을 살짝 떠볼게요.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래.

응.

응, 은 바투아가 한 대답.

워낙 작은 목소리로 말해 백상우도 신경 쓰지 않는 한 들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일행 중에서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헤르마누는 우리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난 찬성일세."


역시 괜히 7서클 마법사가 아니었나 보다.


어느새 시야 끝에는 피비가 내리는 피의 늪지대가 걸리고 있었다.

딱 나뉜 구역의 풍경을 봐도 이제는 놀랍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확실히 냄새가 더 진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레니언을 둥글게 에워싸는 진형을 갖춘 채 피의 늪지대로 걸어 들어갔다.

날이 날인만큼 모두는 웬만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걷거나 달려드는 몬스터를 사냥해 나갔다.

피를 먹는 행위에는 감염되지 않지만 먹는 것 자체가 일반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레니언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꿋꿋이 백상우의 뒤를 따라붙었다.

모두가 남아있길 원했는데도 꼭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라 못 이기고 데려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앞에 서서 나아가던 백상우가 잘 따라붙는 이레니언이 대견해 보였는지 틈틈이 어깨를 툭툭 쳐주기도, 머리를 툭툭 눌러주기도 했다.

한 번은 주먹을 얼굴 옆에 가져다 대고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근데 넌 정말 얼굴이 주먹만 하구나."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 진짜 얼굴만 해 새삼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던 순간이다.

같은 남자가 봐도 듬직한 등과 겉으로 드러나는 착한 심성과 부가적인 준수한 외모, 멋들어진 무공 동작 등.

만약 내게 동생이 있었다면 소개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성이 백상우였다.


"나 남자한테 관심 없다."

내 시선을 의식한 백상우가 한 말인데 왠지 기분이 나빴다. 여동생이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은 취소다. 어이가 없어서 바로 말을 받아쳤다.

"맞고 싶냐?"

"때릴 수는 있고?"

"전에 대련할 때 물 싸대기 한 대 맞은 거 기억 안 나나 봐?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최근 일이지 않나?"

"그때는 방심했던 거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도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최근 일이지 않나?"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오늘 저녁에 다시 한 번 붙어보면 방심했던 건지 아니었던 건지 알 수 있겠네."

"오늘은 안 봐준다."

전력을 다하면 당연히 난 백상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항상 봐주면서 때때로 조언을 해주어 창술은 나날이 실전형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몬스터를 상대로 연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계속 사냥을 이어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던 그때였다.


"바라던 봐..."

웃고 있던 백상우의 표정이 서서히, 그렇게 빠르게 굳어져 갔다.

잔뜩 굳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찰나 기이한 소리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세는 지상에 내려앉았다.


쿠오오오!


빗소리가 아니었다. 하늘 위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피검이었다.


"기사인가."


백상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떨어져 내리는 피의 검 손잡이 끝 부분에는 한 존재가 서 있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내리는 핏물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떠오르는 푸른 용과 피의 검이 격돌하는 순간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굉음은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하는 백상우의 무력을 처음 보게 된 날이었다.


*


마황성은 넓었다. 몬스터의 종류도 그만큼 많았다.

외성에 들어서면 몬스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어제 독고진이 사냥한 몬스터는 무려 200마리가 넘어갔다. 그런데도 그중에서 공격을 한 번 이상 받아낸 몬스터는 없었다. 오늘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몬스터를 사냥하며 어제 본 중문 입구로 향했다.

한예린은 어제와 똑같이 뒤따라가면서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줍기 바빴다.

외성에 들어와 걸음을 처음으로 멈춰 세우게 한 몬스터는 중문을 또 막고 서있는 마몬이었다.

마황성은 열쇠 하나당, 보스몹을 각각 한 번 사냥할 때만 아이템을 준다고 알려진 곳.

두 번째부터는 그저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에 지나지 않는다.


마몬이 걸어오는 독고진을 보고는 마법을 쓰기 위해 손을 들었다. 시전어를 외치려 입을 떼다 말고는 갑자기 사라진 독고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마몬은 뛰어난 몬스터답게 영감靈感 이라는 특수 스킬을 활용해 다가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는 몬스터였다.

다만 문제는 대응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란다는 점이었다.

바로 앞에 모습을 나타낸 독고진에게 손톱을 휘둘러보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가슴에는 큰 구멍이 생겨난 이후였다. 그대로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고유 특성인 탐욕의 항아리를 발현시켰다.

돌연 항아리가 허공에서 생겨나 몸을 집어삼켰다.

단 30초만 버티면 완전회복을 할 수 있는 장치가 탐욕의 항아리.

완전히 몸이 들어가기도 전에 검은 액체는 항아리에 가득 채워지게 된다. 검은 액체로 가득 찬 항아리에서 마몬은 몸을 웅크리려 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들어온 지 1초도 되지 않아 독고진의 손이 뚫고 들어와 마몬의 목을 움켜쥐었다.

쑥 꺼내 패대기치고는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려찍었다. 주먹질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머리를 함몰시키는 것도 모자라 주변 일대의 땅이 들썩거렸다.

마몬은 구덩이 속에 처박힌 채로 사라져 가며 경험치를 떠올렸다.

첫 번째 죽음보다는 그래도 편한 죽음이다.

첫 번째는 몸에 십수 개의 구멍이 뚫린 뒤에야 죽었던 마몬이었으니.


중성의 몬스터는 당연하게도 외성의 몬스터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몬스터 말고도 지형지물에는 갖가지 트랩이 자리해 나아가는 시간을 지체시켰다.

닿기만 해도 피부와 뼈를 녹이는 독가스 함정하며, 정해진 시간 없이 1초에서 1분 사이로 계속해서 날아오는 마력이 담긴 화살 하며, 바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발을 움켜잡는 암흑의 손 역시 점점 주기가 짧아져 가며 침입자에게 경고를 보냈다.

탐사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죽을 가능성은 커진다!

중성에 처음 들어온 한예린은 그렇게 느꼈다.

화살과 암흑의 손 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어 갔다.

몬스터 수준도 외성보다 높은 곳에 이 같은 트랩이 주어지니 치를 떨게 할 정도의 높은 난이도였다.

함께 들어온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장치들이었다.

화살은 정확히 노리는 사람에게 한 발씩 날아들었고.

벽 뒤에 있어도 뚫고 날아오기도 해서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독고진이 한예린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무공을 배우지 않은 한예린은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독고진이라 해도 몇 시간 동안 내내 마력소모가 큰 초식을 사용하는 것은 피로하게 하는 일이다.

"재밌구나!"

재미.

수십 년 동안 몸을 단련해온 독고진과 백상우에게는 몸을 피로하게 하는 일이 재밌는 일된 지는 오래다.

이윽고 도달한 막다른 길에는 중성의 성문 두 배에 달하는 높이의 내성 성문이 앞을 막고 위풍당당하게 검은 오라를 뿜어내었다.

검은 오라는 일정 영역에 이르자 뭉쳐서 한 존재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루키푸게 로포칼레.


악마 로포칼레 역시 세계에 알려진 생김새와 똑같았다. 상반신은 인간에 하반신은 당나귀 다리와 꼬리를 갖고 있는 존재가 로포칼레.

2m의 거구 장신에 머리에 나 있는 세 개의 꼬아진 뿔이 인상적인 몬스터다.

마몬보다 뛰어난 몬스터라는 걸, 독고진은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제야 제대로 싸워볼 만한 상대가 나타났구먼."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면서 마주 섰다. 다가오는 독고진을 보며 로포칼레가 오른손을 허공에다가 휘저었다. 무수히 많은 검은색 불꽃 다발이 생겨나 독고진에게 날아들었다.

동시에 왼손을 휘젓자 땅밑에서는 실 같은 촉수 수십 개가 솟아올라 손과 밝을 옭아매려 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마력 화살 함정은 화살을 날려 보냈다.

독고진이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더 넓게 벌리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전신에서 빛 뭉치가 순식간에 피어올라 몸 전체를 뒤덮었다. 빛 뭉치는 닿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촉수와 불꽃 다발과 화살은 닿은 부위부터 시작해 티끌만 한 잔재도 남지 않고 사라져 갔다.

이 모든 일은 그야말로 찰나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예린에게 날아드는 화살도 허공섭물의 기예로 막아내 주었다.


본격적인 전투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느새 근접한 로포칼레가 주먹과 당나귀 발로 독고진의 전신을 힘차게 두드려댔다.

몸을 감싸고 있는 빛 뭉치로 막던 것도 잠시.

이내 사라지게 하고는 날아오는 손과 당나귀 발에 정확히 손과 발을 뻗어 맞대었다.

북 터지는 소리가 성안 가득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한예린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로포칼레는 마몬보다 훨씬 강력한 몬스터였다.


독고진과 로포칼레는 선 자리에서 조금도 물러섬 없이 격돌을 이어갔다.

마력을 한껏 머금은 손과 발이 너무 빨라 잔상이 되어 남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손과 발이 어긋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어긋날 때마다 둘 중 하나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씩 생겨나고는 했다. 친선대련이 아니었으니 상처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독고진은 몸에 상처가 생겨나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반면 평온해 보이던 로포칼레의 얼굴은 점점 악귀같이 일그러져 갔다. 누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지는 두 사람의 전체적인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일단 처음에는 몸에 상처가 나도 바로바로 재생시키던 로포칼레의 재생력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공세를 받아넘기기가 힘들었는지 뒤로 물러나는 경우도 점점 생겨났다.


독고진이 사용했던 강기의 색은 처음에는 푸른색이었으나, 색이 하얀색이 되고 난 뒤로는 로포칼레가 확실히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로포칼레와의 격전은 장장 40분 동안 이어졌다.

한예린에게 날아드는 마력 화살을 전투 중에도 계속 막아주었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로포칼레가 얼마나 대단한 몬스터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로포칼레를 죽이고 얻은 경험치는 무려 8천.


한예린은 독고진과 로포칼레의 무력에 놀라고 떨어진 아이템이 10개나 된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독고진은 전투로 입은 상처는 많지 않았지만 5갑자에 달하는 내공 대부분을 소진하게 되어 더이상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한두 시간 뒤면 해가 져서 지금 빠져나가야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둘은 내성의 풍경을 한 번 보고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중성에 있는 몬스터는 외성에 가지 못하고 내성에 있는 몬스터는 중성에 가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열리는 문틈으로 거대한 궁전 일부가 나타나 눈길을 끈다. 궁전 전체에는 성벽과 성문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들로 가득 차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스산한 느낌도 들었다.

한예린은 웅장한 궁전을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감았다가 뜨던 그 사이에 누가 잡아당기듯이 뒤로 밀려나 본능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내성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네가 그곳의 보스라는 우두머리겠구나."

독고진이 앞에 오롯이 선 존재를 보며 한 말.

한예린을 뒤로 옮겨준 사람은 독고진이다.


검은 인간의 몸에 검은 산양의 뿔과 뼈마디만 남은 6쌍의 날개를 가진 존재가 성문 경계선 앞에 나타났다.

하얀 부분은 눈 흰자가 전부.

생김새보다 말없이 쳐다보는 게 더 소름 끼쳤다.


"저 괴물은 이곳으로 못 넘어오는 게 확실한 것이더냐. 예린아."

"네, 네! 어르신."

"그럼 이만 돌아가자꾸나."


독고진과 한예린이 멀어져감에 따라 열려있던 성문은 서서히 닫혀간다.

완전히 닫히기 전까지 보스 몬스터는 두 사람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황 루시퍼의 등장에 항상 웃고 있던 독고진의 표정이 굳었다는 사실을 한예린은 뒤늦게 깨달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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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4화 +6 21.06.21 1,363 65 16쪽
63 63화 +2 21.06.20 1,360 66 24쪽
62 62화 +3 21.06.19 1,268 63 14쪽
61 61화 +7 21.06.18 1,292 74 16쪽
60 60화 +2 21.06.17 1,285 69 15쪽
59 59화 +3 21.06.16 1,258 66 15쪽
58 58화 +3 21.06.15 1,296 6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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