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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체스게임의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레쉬폰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6.29 22:4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75,154
추천수 :
2,625
글자수 :
157,299

작성
21.05.12 19:37
조회
4,576
추천
155
글자
17쪽

Prologue.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DUMMY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건.

······아니, 세상이 고작 게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맞닥뜨린 것은.


<종족전쟁(種族戰爭)>


위와 같이 일컬어지는 이 게임은 ‘우주적 존재’의 유희를 위해 만들어졌다.


‘킹’과 ‘퀸’.

‘룩’과 ‘비숍’, 그리고 ‘나이트’.

마지막으로 ‘폰’까지.


순서대로 여섯 가지의 직위가 존재했다.

익숙하지 않은가? 흔히 체스에서 볼 수 있었던 기물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체스란 무엇인가.

체스는 자신의 기물을 각기 다른 행마법에 따라 움직여 상대의 최고 기물인 ‘킹(king)’을 잡으면 되는 게임이다.


<종족전쟁(種族戰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게임의 주체가 뒤바뀐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 게임이 시작된 이후, 인간에겐 더 이상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게임을 주도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한낱 체스말에 불과했고. ‘우주적 존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일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마치 체스의 기물처럼 사람에게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가치가 재단되는 게임.

직위가 전부인 불합리한 세상에서.


[당신은 인간종족의 ‘폰’으로 선별되었습니다.]


나는 ‘폰(Pawn)’이었다.



* * *



이 빌어먹을 게임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년. 우리는 게임의 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엔드게임(Endgame)>


그것은 게임의 종반전으로, 살아남은 종족이 단둘일 경우 시작되는 마지막 스테이지였다.

현재 인간종족과 마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은 모두 게임에서 탈락한 상황.

최후를 앞둔 마지막 전장에서, 마족(魔族)이라 불리는 생명체가 하늘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마, 마족이 온다!

─공격을 대비해!


말 끝나기 무섭게 하늘 위로부터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격.

마족의 공습이었다.


투콰콰콰콰!


지상에 거대한 폭발이 일었고, 이에 대응하던 인간들이 무참히 폭사했다.


─크아아악!

─막아! 저 박쥐 새끼들을 막으라고!

─젠장, 빌어먹을 영웅 새끼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빗발치는 공격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보지만, 그 목소리가 원하는 대상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우리가 구원을 바라는 영웅.

즉, 직위가 ‘룩(Rook)’급 이상인 사람들은 이곳이 아닌, 다른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

‘비숍’급 이상의 마족들만 모인 이 전장에서 그보다 낮은 직위에 불과한 우린 고작해야 일회용에 불과한 소모품.


“쿨럭, 쿨럭!”


그저 시간끌기용 졸(卒)에 불과했다.


“젠장, 죽을 거 같네······.”


바닥에 널린 시체들 사이에서 누군가 기침 소리를 낸 것은 그때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상태가 위태로운 한 남성이 있었다.


“유성호.”


아는 사람이었다.

‘비숍(Bishop)’급 직위의 인간들 중에서도 최상위 격의 실력을 지닌 존재. 이번 전쟁에서 수많은 마족을 베어낸 강자였다.

물론, 지금은 목숨이 간당간당한 일개 환자에 불과했지만.


“······그 목소리, 김연우냐? 이 난리 통에 용케도 살아남았군.”

“그러는 당신도.”

“어떻게 살아있었······ 아니, 아니지. 보나 마나 도망치거나 숨어서 목숨을 부지했겠지.”


마치 확신한다는 듯한 유성호의 한마디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맞는 말이었다.

그것이 내가 여태껏 살아남은 방식이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였으니까.

어차피 나는 가진 능력도 변변찮아 전투에 가담한다 한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유성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이기적이지만 부디 이런 날 원망만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유성호의 몸에서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쿨럭─”


당한 상처가 깊은 듯, 유성호의 입 밖으로 각혈이 왈칵 쏟아졌다. 토해낸 부산물을 씁쓸히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봐, 김연우.”

“유언이라면 들어줄게.”

“하! 유언은 개뿔이. 혹시나 해서 묻는 거다. 그래서······ 뭐, 숨겨둔 한 수 같은 건 없나?”


하, 어리석은 질문이다.


“······내가?”


또한,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유성호 같은 ‘비숍’급의 강자들도 살아남기에 급급한데 일개 ‘폰’인 나라고 어떠할까.

그 사실을 떠올린 유성호가 헛웃음을 삼켰다.


“······젠장. 그렇겠지.”

“차라리 기적을 바라는 건 어때?”

“기적? 그거 좋지. 만약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정말 기적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맞는 말이다. 게임의 최종승리 보상.

우린 그것만을 바라보고서 여기까지 달려왔고, 그 여정도 이제 막바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우리가 저 마족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모르겠으나, 그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흐흐, 좆같네 진짜.”


퉤, 유성호가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었다.


“우리가 [엔드게임]에 도달한 건 기적이야. 숱한 종족을 꺾고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이지. 그 이상의 기적을 바라는 건 내 욕심인 걸까?”


유성호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물음에 어떠한 답도 해줄 수 없었다.


“······시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게임의 끝이 눈앞인데······.”


유성호의 말끝이 흐려졌다. 원한에 사무친 듯 번뜩이던 눈동자가 점차 차갑게 식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의 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죽었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다.

이 정도만 해도 오래 버틴 거겠지.

나는 죽어서도 살벌하게 치켜뜬 유성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는 묵묵히 상념에 잠겼다.


“후우······.”


입안이 씁쓸하다.

그동안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봐왔지만, 이토록 여운이 감도는 죽음은 오랜만이다.


“인류를 위해 투쟁하고, 끝내는 죽는다라···.”


숭고한 희생이다.

비록 유성호는 영웅이라 불리지는 않았지만, 인류를 위해 희생한 숨겨진 영웅이었다.

그건 여기서 죽어 나간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그 마지막 최후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느껴지는 점이 많았다.


“······기적.”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린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정말이지 아득바득 버텨왔다.

항상 살아남고자 노력했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받았다.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적도 있었으며, 배신한 적도 있었다.

나중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토록 외면해왔지만······.

어쩌면, 결정할 때가 온 거 같다.


·

·

·


[당신은 ‘폰(Pawn)’의 고유 능력을 발동할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 * *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인류의 심장 격인 ‘킹’도, ‘퀸’도 아니었으며, 하다못해 ‘나이트’조차도 되지 못하는 병졸.

아무런 능력도, 쓸모도 없는 일개 ‘폰’에 불과했지만.

그런 ‘폰’에게도 한가지 기적만은 존재했다.


“나는 내 직위를 변경하겠다.”


바로 고유한 조건을 달성했을 시,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가.


[고유 능력, ‘프로모션’을 발동합니다!]

[당신에게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


─변경할 종족과 직위를 선택하십시오.


1. 킹(King)

2. 퀸(Queen)

3. 룩(Rook)

4. 비숍(Bishop)

5. 나이트(Knight)



※단, 1번 ‘킹(King)’을 선택할시, 해당 종족의 ‘킹’은 사망합니다.

※위의 경우, ‘킹(King)’의 죽음은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섯 가지의 선택지.

개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한가지 있었으니.


킹(King).


그것은 <종족전쟁(種族戰爭)>의 핵심이자 한 종족의 근원이 되는 직위였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체스라는 게임에서는 ‘폰’이 ‘킹’이 되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것이 상식이고, 규칙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게임은 우주 위에 군림하는 ‘GM’이라는 우주적 존재.


즉, ‘그랜드 마스터’가 주관하는 게임이다.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는 스케일. 거기에 인간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무의미했다.

‘킹’이 다른 직위보다 약하지 않고 가장 강한 무력을 소유하듯이, 최하에 속한 ‘폰’이 정점에 있는 ‘킹’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인간종족의 ‘폰’, 김연우.]

[변경할 직위를 선택하십시오.]


······하, 재촉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이대로 망설여봤자 애꿎은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며,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다는 것을.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한 지 오래.

나는 앞서 생각했던 계획을 입에 담았다.


“나는 내 직위를 마족의 ‘킹’으로 전환하겠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물의 요청을 확인.]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인간종족, ‘폰(Pawn)’ ▶ 마족, ‘킹(King)’]


·

·

·


[‘프로모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마족의 ‘킹’이 되었습니다!]


성공인가.

마족의 ‘킹’이 되었다는 문구와 함께, 가슴 한편으로 알 수 없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신체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겨났다.


[당신의 육신이 마족의 것으로 전환됩니다.]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머리 위로 솟아난 한 쌍의 뿔과 어깨 위로 돋아난 검은 광택의 날개.

그리고, 마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새카만 ‘마기’가 피부 위를 겉돌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그 빌어먹을 ‘킹’의 힘이구나.


한 종족의 심장이자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직위. 정말이지 탐나는 힘이다. 당장에 느껴지는 힘만으로도 눈앞에 얼씬거리는 존재들을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러나 소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고 했던가?

확실히, 직접 왕관을 써보니 알겠다.

이 강대한 힘은 일생을 ‘폰’으로 살아온 내게 있어 큰 유혹이지만, 한편으로는 독이라는 것을.


‘킹’이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감.


한 종족의 명운을,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나도 좁았다. 방금 한 결심조차 내심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마족으로의 변화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되돌아가기는 이미 늦었지.]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나는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스스스슷!


칼자루를 쥐자마자 새카만 마기가 칼날 위로 뻗어 나왔다.

주변을 잠식하는 사악한 기운. 그에 전투를 치르던 마족과 인간들이 일시에 멈춰섰다.


[인간?]

[아니, 동족이군. 그런데 이 강대한 마기(魔氣)는······.]

[······설마!]


쿵!


무언가 눈치챈 마족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널린 시체들을 지르밟은 채 고고히 서 있는 마족들. 놈들의 전신에서 풍기는 흉흉한 기세가 살갗으로 확실히 느껴졌다.


[그 모습. 설마······ ‘폰’의 고유 능력을 사용한 건가?]


역시, 내려온 이유는 그것밖에 없겠지?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래.]

[하, 하하하! 설마 ‘폰’의 고유 능력을 발동할 줄이야. 정말 대단하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놈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폰’의 고유 능력.

그것은 게임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능력이니만큼, 발동조건이 극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 놀라워할 필요는 없어. 내 조건은 남들보다 훨씬 쉬웠기에 가능했으니까.]

[아무렴. 그렇겠지요. 하지만 지금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요.]


반말에서 존대로, 마족의 말투가 바뀌었다.

덕분에 확실하게 실감이 났다.


“퉤, 더러운 배신자 새끼.”


지금의 나는 인간종족이 아닌, 마족의 진영에 속한다는 점과.


[마왕이여. 우린 그대를 환영합니다.]


그들의 ‘킹(King)’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족의 말에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킹’들의 무위를 몸소 경험한 그들이니만큼, 희비는 명백하게 엇갈렸다.


마족들은 내게 환희의 시선을, 인간들은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는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당연했을뿐더러 예상했던 반응이었으니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다만, 놈들의 착각을 한가지 바로잡건대 마족의 ‘킹’은 오롯이 나 하나뿐이었다.


분명 시스템 메시지가 말했던가? 내가 ‘킹’을 고르는 순간, 해당 종족의 ‘킹’은 사망한다고.

그러니 나는 현재 유일무이한 마족의 ‘킹’이었으며, 그들의 명운을 등에 업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떠올렸다.


이 빌어먹을 게임의 승리조건은 본인 종족의 ‘킹’이 최후의 ‘킹’이 되는 것.

다시 말해, 본인 종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의 ‘킹’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내가 상대 종족의 ‘킹’이 되어 죽는다면, 과연 이 게임의 승패는 어떻게 될까?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마족의 덕목이 배신이라고 하던가?]

[······?]

[그거, 참 좋은 말이야.]


이렇게라도 너희들을 엿먹일 수 있으니까.


내 말투에서 불순한 의도를 느낀 마족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놈들이 내 말의 속뜻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잠깐······!]

[어서 막아라! 누가 저기 있는 미친 마왕을 막으란 말이다!]


마족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는 오른손에 들린 단검을 가슴 위로 높이 치켜들며 선언했다.


나의······ 아니.


[우리의 승리다.]

[아, 안돼!]


나는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는 칼끝을 심장부에 겨눠 넘치는 힘을 다해 찔러넣었다.


푸욱!


동시에 격한 고통이 일었다.


뚝. 뚝.


인간의 붉은 피와는 달리, 마족의 새카만 혈액이 단검을 타고 흘렀다. 단검에 덧씌워진 마기가 심장을 파괴하고, 상흔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전신을 입자 단위로 분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회생 불능의 상태.


[네, 네놈은 대체!]


그 광경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마족들은 망연자실한 눈치였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푸흐! 쿨럭, 큽!]


마음 같아선 놈들에게 조소를 퍼붓고 싶지만,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입 밖으로 울컥 쏟아지는 피와 턱 하니 막히는 호흡. 그동안 느껴본 적 없던 강렬한 고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강렬한 희열은 입 밖으로 슬며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끝인가.]


감격스럽다. 설마 내가 이 길고 긴 게임의 종지부를 찍을 줄이야.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시켜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은 없었다. 그건 영웅들이나 가질법한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인간종족의 ‘폰’으로써, 마족의 ‘킹’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단지 그것뿐이었다.


신체의 파괴 활동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정신은 서서히 몽롱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을 비추던 사위가 불길하게 흔들렸다.


······슬슬, 한계인가.


세상이 점차 흑백으로 물들어가는 가운데, 죽음을 낭송하듯 한가지 메시지가 귓가에 울렸다.


[마족의 ‘킹’이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내 시야는 암전되었다.


·

·

·


[‘킹’의 고유 능력······.]

[······을 발동합니다.]


·

·

·


하지만 나는 눈을 떴다.

죽지 않았던 걸까? 모르겠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바닥을 나뒹구는 단검과 바닥에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넘쳐흐른 검은 피.

죽음을 맞이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심장이 파괴되어 바스러졌을 신체가 원상태로 수복되어 있었고.


[게임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든 채 그대로 멈춰있었다.

마치 게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플레이어가 ‘일시 정지’를 누르듯이.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마족의 ‘킹’이 사망했습니다.]

[마족의 ‘킹’이 살아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메시지를 바라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랜드 마스터, ‘흑(黑)’이 길길이 날뛰며 주심을 부릅니다.]

[그랜드 마스터, ‘백(白)’이 당신의 행위에 침음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게임의 주인이자 플레이어, ‘그랜드 마스터’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소란의 원흉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했다.

게임의 오류, 그것이 문제시된 거로 보였다.


[심판이 긴급회의에 들어섭니다.]

[게임의 판결이 보류됩니다.]


물론, 나는 반발했다.


[제기랄, 그게 무슨 소리─]


내 승리, 아니 우리의 승리다.

내 죽음이, 우리의 희생이.

이렇게 헛되게 사라진다고?


지랄하지 말라지.


당장이라도 항의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지금의 내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을뿐더러, 저 우주 위의 존재들에게 닿기에는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이 부족했다.

씁쓸한 무력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심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내 기대에 부응하듯 대답은 들려왔고.


·

·

·


[그랜드 마스터, ‘흑(黑)’이 동의합니다.]

[그랜드 마스터, ‘백(白)’이 동의합니다.]


우주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해지는 망막 위로 한가지 메시지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거기까지가 내 의식의 끝이었다.


작가의말

다시 시작했습니다. 꾸벅.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 작성자
    Lv.58 단결정규소
    작성일
    21.05.14 15:28
    No. 1

    어디서봤는기억이... 리메?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40 달걀말
    작성일
    21.05.18 13:55
    No. 2

    킹은 위험한 선택인거 같네요. 혹시나 다른 폰이 고유능력을 발동해서 킹으로 변한다면, 자신은 사망할테니

    찬성: 10 | 반대: 0

  • 작성자
    Lv.61 루온이어
    작성일
    21.05.19 20:21
    No. 3

    킹의 메리트가 없어보이네요
    자기종족 폰이 아니더라도 폰이 다른종족 킹으로 변할수있으면 인간이 결승에 오기전에도 여러번 킹의 종족이 바뀌었을것 같은데
    주인공처럼 자살특공대로 하면 바로 끝이나버리니

    찬성: 2 | 반대: 5

  • 작성자
    Lv.60 나미럴
    작성일
    21.05.22 17:05
    No. 4

    폰이 다른 기물로 변하는건 일반 체스에서도 굉장히 힘들고 작가님이 글에서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셨어요
    또 일반 체스 룰도 폰이 마지막 칸까지 전진 할때 다른 기물로 변할수 있기에 최후까지 폰으로서 생존해야하는게 다른기물로 변할수 있는 조건 같고
    그 희박한 조건을 뚫고 아무런 힘도 없는 폰이 자기 희생을 할정도의 인품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이네요
    작가님이 세계관을 정말 잘 만드신거 같으니 그냥 믿고 보면 될거 같네요

    찬성: 16 | 반대: 1

  • 작성자
    Lv.21 DC베르테르
    작성일
    21.05.23 04:04
    No. 5

    소재가 참신하네요.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31 마점
    작성일
    21.05.26 02:11
    No. 6

    제목이 바뀌면 좋을듯하네요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무로숑
    작성일
    21.06.09 23:32
    No. 7

    엎고 다시 시작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한글만쇄
    작성일
    21.06.25 09:49
    No. 8

    역시 인간이 최고라니까 최종 게임 까지 간것만 봐도 다른 종족들이 얼마나 열등하고 인간들이 얼마나 우월한지 알 수 있는 결과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g7788_ha..
    작성일
    21.06.28 09:54
    No. 9

    근데 좀 그렇다 프로모션에 월래 킹으로 변신은 못한다는걸 떠나서
    상대편으로 변경할수있는건 너무 규칙외인거 같은데 ㄷㄷ

    상황을 비장감있게 표현하고 싶은건 이해하지만
    주인공도 웃긴게 마지막 경기인걸 인지하고 있었고
    시작하자마자 킹으로 변해서 자살하는건 무리수겠지만
    체스판에서 퀸이 가진 위상을 생각해보면
    시작하자마자 퀸으로 변해서 거의 2배의 전력으로 게임을 시작할수도 있었을텐데 ㄷㄷ

    차라리 시작하자마자 퀸으로 변해서 압도적인 우세로 시작했지만 결국 못이기고 죽기전에
    아 킹으로 변해서 자살해볼껄 하고 회귀하는게 좀 더 말이 되는거 아닐까
    회귀는 프로모션의 다른 특전으로 설정하면 되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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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pisode 9. 백병지왕 (1) 21.06.21 1,778 76 11쪽
28 Episode 8. 왕의 증명 (3) 21.06.18 1,805 78 13쪽
27 Episode 8. 왕의 증명 (2) 21.06.16 1,832 80 11쪽
26 Episode 8. 왕의 증명 (1) +5 21.06.10 1,866 83 12쪽
25 Episode 7. 즉위(卽位) (4) +3 21.06.09 1,879 81 15쪽
24 Episode 7. 즉위(卽位) (3) +1 21.06.07 1,883 81 10쪽
23 Episode 7. 즉위(卽位) (2) +1 21.06.05 1,914 80 10쪽
22 Episode 7. 즉위(卽位) (1) +3 21.06.04 1,943 80 9쪽
21 Episode 6. 폐위(廢位) (3) +3 21.06.03 1,962 83 11쪽
20 Episode 6. 폐위(廢位) (2) +2 21.06.02 2,004 75 10쪽
19 Episode 6. 폐위(廢位) (1) +1 21.06.01 2,059 71 8쪽
18 Episode 5. 몰락한 종족 (4) +2 21.05.31 2,111 65 9쪽
17 Episode 5. 몰락한 종족 (3) 21.05.29 2,139 67 12쪽
16 Episode 5. 몰락한 종족 (2) +1 21.05.28 2,210 71 9쪽
15 Episode 5. 몰락한 종족 (1) +5 21.05.27 2,299 72 11쪽
14 Episode 4. 엄습 (4) +5 21.05.26 2,358 76 11쪽
13 Episode 4. 엄습 (3) +2 21.05.25 2,416 73 9쪽
12 Episode 4. 엄습 (2) 21.05.24 2,494 76 9쪽
11 Episode 4. 엄습 (1) +1 21.05.23 2,568 78 9쪽
10 Episode 3. 추격자들 (3) +6 21.05.22 2,634 79 11쪽
9 Episode 3. 추격자들 (2) +4 21.05.21 2,686 78 16쪽
8 Episode 3. 추격자들 (1) +5 21.05.20 2,759 82 10쪽
7 Episode 2. 적자생존 (3) +10 21.05.19 2,827 83 9쪽
6 Episode 2. 적자생존 (2) +5 21.05.18 2,927 91 11쪽
5 Episode 2. 적자생존 (1) +4 21.05.17 3,156 103 8쪽
4 Episode 1. 오프닝 (3) +9 21.05.15 3,461 114 10쪽
3 Episode 1. 오프닝 (2) +6 21.05.14 3,581 125 17쪽
2 Episode 1. 오프닝 (1) +4 21.05.13 3,851 125 12쪽
» Prologue.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9 21.05.12 4,577 15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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