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체스게임의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레쉬폰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6.29 22:4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75,323
추천수 :
2,625
글자수 :
157,299

작성
21.05.13 18:36
조회
3,857
추천
125
글자
12쪽

Episode 1. 오프닝 (1)

DUMMY

누군가가 말했다.


「체스판은 세상이고, 기물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게임의 법칙은 절대적인 규율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때, <종족전쟁(種族戰爭)>이란 게임의 유형이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고작해야 게임의 요소인 기물.

개중에서도 가장 격이 낮은 ‘폰(Pawn)’이 절대적인 법칙의 허점을 파고들 뿐만 아니라, 체스판 자체를 뒤흔든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그 사실을 접하고 게임을 플레이한 존재들은 이렇게 말했다.


【흥미롭군.】


이라고─

이는 단순한 감상평에 불과했지만, 듣는 대상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고.


“끄으으윽······.”


한편으로는 깊게 가라앉은 내 의식을 일깨우고 있었다.

외압에 신음하던 내가 깨어날 기미를 보이자, 그들은 시선을 거둔 채 나를 일별했다.


【지켜보겠다.】


그 말을 끝으로, 내 의식은 수면 위로 급격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 * *



의식의 불이 점등하듯,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전신은 흘러내린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았는데.


그게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퓨즈가 꺼진 듯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아무래도 좋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여긴 어디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리 위로 보이는 밝은 형광등과 사방을 둘러싼 베이지색 벽지.

모를 수가 없는 장소였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장도, 마지막 스테이지인 [엔드게임]의 무대마저 아닌 이곳은.


“······자취방?”


10년 전, <종족전쟁>이라는 게임이 시작하기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을 간직한 공간이었다.

나는 방금까지 누워있던 침대를 손으로 훑었다.


스윽.


매트리스에 덧씌워진 거친 감촉의 시트가 느껴졌다. 값싼 재질과 어설픈 마감처리. 언제나 내 잠자리를 지켜주던 침대가 틀림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롱이 무색하게도 바닥에 늘어져 있는 의복들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자기소개서 작성비법’이라든지, ‘취업면접 100문 100답’ 같은 책들.

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게임으로 인해 줄곧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름 김연우. 나이 26세. 직업 취업준비생.


딱히 놀라운 점도, 모난 점도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 이것이 바로 10년 전의 나를 수식하는 문구이자 정체성이었다.


“······하하. 꿈인가?”


죽었다 깨어났더니 과거의 자취방이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주마등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감각이 생생했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내가 이곳에 있는가.

생각보다 답은 금방 나왔다.


“게임의 재시작.”


마지막에 들은 메시지가 그랬으니 틀림없었다.

······되돌아왔다 이건가.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복잡해진 심경을 억누르며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일단, 게임의 시작까지 얼마나 남았지?


나는 우선 침대맡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메인 화면에 떠오른 익숙한 숫자.


[7월 21일]


젠장, 바로 오늘이잖아?

게다가 날짜 옆에 적힌 시간대로라면······.


“앞으로 몇 시간 뒤인가.”


남은 시간마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메모장을 켰다. 머릿속에서 역순으로 재생되는 기억.

그 모두를 천천히 작성하자 빈 메모장은 어느새 빽빽하게 채워졌다.


「처음으로 배정될 장소는······.」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기심에 버려질 동료들도.

이 정보를 잘만 이용한다면,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긴 한데······.”


게임을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진이 빠졌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백서현 취업 축하회 안내]


그러고 보니 이런 자리가 있었지?

취준생이던 시절, 도움이 될까 싶어 다니고 있었던 스터디. 거기에 속해있던 인원 중 한 명이 대기업에 채용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물론, 나는 불참했지만.”


딱히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열등감 때문이었다.


취준생과 직장인의 격차는 명확하다. 그런데 나보다 어린, 그것도 같은 대학을 나온 후배의 취업 소식은 내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심어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어렸구나 싶다. 혼자 질투심에 빠져 남의 성공을 외면하다니.

덕분에 시간이나 때우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축하회··· 한번 가볼까?”


오늘 세상은 바뀐다. 기존에 갖고 있던 직함은 새로운 직위에 덧씌워져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이 자리를 거리낄 이유도 없지.

구태여 추가적인 이유도 덧붙여보자면······.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겠어.”


과거 어울렸던 인물들을 볼 기회가 찾아온 것.

옛 인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옅은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공지 받은 시간에 맞춰 한 상가에 도착했다. 술집은 주변 건물보다 비교적 허름한 외양. 흔히 맛집이라고 불리는 비주얼이었다.


딸랑딸랑.


안으로 들어서자, 기름진 냄새와 술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머릿속으로 전형적인 술자리가 연상되는 가운데, 한 남성이 내게 다가왔다.


“어? 연우 형. 왔어요?”


나는 말을 건 남성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호감형의 인상이다. 밝아 보이는 분위기에 새내기의 풋풋함마저 느껴지는 20대 초반의 남성.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분명 이름이······.


“그래, 호석이었던가?”

“······김호성인데.”


아, 김호성이었지.

오랜만이라 조금 헷갈렸다.


“갑자기 제 이름은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에이, 얼마 전에 한 번 만났으면서.”

“······그랬나?”

“그랬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10년 전의 일.

당연히 기억날 리는 없었다.


“아무튼, 빨리 와서 앉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호성을 뒤따랐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한 테이블에는 이미 십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자자! 연우 형 도착했으니까 이제 마시죠!”


아무래도 내가 제일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눈인사를 해오는 사람들과 가볍게 목례를 나누곤 빈 자리에 앉았다.


“연우 선배님. 오셨어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백열등에 비쳐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지?


“선배?”


되묻는 여성의 목소리에 이제야 기억이 났다.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와 24살의 어린 나이에 대기업 입사까지 골인시킨 이 자리의 주인공.

한때 내가 질투했던 후배였다.


“그래, 반가워.”


그리고 끊긴 대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막상 그녀를 눈앞에서 마주하니 김호성과 마찬가지로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유쾌한 자리는 아니었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요?”


백서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게 아닐까?”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요.”

“요새 연락을 못 했으니까 그럴 거야.”


내 얼버무림에 가까운 말을 듣던 백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괜히 어색해진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술이나 한잔 받을래?”

“아, 네! 좋아요.”


백서현은 밝게 웃으며 내게 잔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웠고,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역시 병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모두의 잔이 채워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저기, 제가 뭐 빼먹었나요?”


시선을 받은 당사자인 백서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거 있잖아? 술자리의 관례.”

“아······ 건배사요?”


관례까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백서현이 말하는 건배사를 듣고 싶은 눈치였다.

백서현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음······ 그럼 짧게 할게요.”


처음엔 그녀도 부끄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합격의 비결은 이건가, 싶을 정도로 유창한 솜씨였다.


“그럼······ 가장 중요한 건배사 말인데요. 모두의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눈부신 앞날을 위해!’ 정도는 어떨까요?”

“크, 좋네. 역시 서현이는 마음씨도 곱다 야.”

“아하하······ 고마워.”


사람들의 반응에 백서현은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밝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늦었지만 합격 축하해.”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님도 꼭 합격하시길 빌게요!”


그녀의 덕담을 나는 씁쓸히 웃어넘겼다.

오늘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나로선 순수하게 축하해주기 어려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술에 담긴 의미도 변색하기 마련.


이것은 네 지난 노력과 성공을 치하하는 축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위로주이기도 했다.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으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제 슬슬 건배하자.”

“아! 그럼 제가 먼저 선창할게요!”


백서현이 술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우리 모두의 눈부신 앞날을 위하여!”

“위하여!”


나 역시 술잔을 다른 이들의 잔에 기울이듯 가져다 대고, 나만의 건배사를 작게 읊었다.


“우리의 눈부신 앞날과······.”


게임의 끝을 위하여.


찡─


잔과 잔이 맞닿으며 맑은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고, 나 역시 느긋하게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유리잔의 차가운 감촉이 입술을 타고 흐르는 그 순간.


“에이, 뭐에요. 그 이상한 건배사는!”


기울어지던 내 손이 멈칫했다.

백서현은 술에 약했는지 한 순배를 돌았음에 불구하고, 얼굴이 옅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걸 들었어?”


분명 작게 말했는데.

귀가 생각보다 좋은 모양이다.


“아하하, 게임의 끝이라니. 무슨 게임 중독자 같았어요.”


중독자라.

세상에서 ‘게임’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나일 텐데 말이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실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백서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게 있어 역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기왕 건배사를 할 거면 게임의 끝이 아니라, 게임의 시작이 어감에 더 좋지 않겠어요?”


‘게임의 시작’이라는 단어에 내 손이 흠칫 떨렸다. 동요한 내 마음을 대변하듯, 술잔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백서현은 말을 계속 이었다.


“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거든요. 선배님의 삶도, 여기 있는 동기들의 삶도.”


나는 술잔을 든 상태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리고는 백서현의 한마디를 머릿속으로 곡 씹으며, 핸드폰 너머의 시간을 힐끗 흘겨보았다.


[PM. 9:59]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절묘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끝마쳐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이르게 잠을 청하며, 우리는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

그런 평범한 오후였지만.


“그래. 이제 시작이지.”


그 모든 일상이 무너지는 날이기도 했다.


꿀꺽.


내가 술을 들이켜 잔을 비우는 순간, 씁쓸한 알콜의 향과 함께 귓가로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랜드 마스터, ‘백(白)’의 기물, 인간종족에 고합니다.]

[금일, <종족전쟁(種族戰爭)>이 시작되었습니다.]


PM. 10:00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체스게임의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며칠간의 휴재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2 21.06.17 649 0 -
31 Episode 9. 백병지왕 (3) +3 21.06.29 1,418 66 13쪽
30 Episode 9. 백병지왕 (2) +2 21.06.24 1,758 78 15쪽
29 Episode 9. 백병지왕 (1) 21.06.21 1,783 76 11쪽
28 Episode 8. 왕의 증명 (3) 21.06.18 1,810 78 13쪽
27 Episode 8. 왕의 증명 (2) 21.06.16 1,838 80 11쪽
26 Episode 8. 왕의 증명 (1) +5 21.06.10 1,870 83 12쪽
25 Episode 7. 즉위(卽位) (4) +3 21.06.09 1,881 81 15쪽
24 Episode 7. 즉위(卽位) (3) +1 21.06.07 1,888 81 10쪽
23 Episode 7. 즉위(卽位) (2) +1 21.06.05 1,917 80 10쪽
22 Episode 7. 즉위(卽位) (1) +3 21.06.04 1,946 80 9쪽
21 Episode 6. 폐위(廢位) (3) +3 21.06.03 1,965 83 11쪽
20 Episode 6. 폐위(廢位) (2) +2 21.06.02 2,010 75 10쪽
19 Episode 6. 폐위(廢位) (1) +1 21.06.01 2,064 71 8쪽
18 Episode 5. 몰락한 종족 (4) +2 21.05.31 2,116 65 9쪽
17 Episode 5. 몰락한 종족 (3) 21.05.29 2,145 67 12쪽
16 Episode 5. 몰락한 종족 (2) +1 21.05.28 2,214 71 9쪽
15 Episode 5. 몰락한 종족 (1) +5 21.05.27 2,306 72 11쪽
14 Episode 4. 엄습 (4) +5 21.05.26 2,363 76 11쪽
13 Episode 4. 엄습 (3) +2 21.05.25 2,421 73 9쪽
12 Episode 4. 엄습 (2) 21.05.24 2,500 76 9쪽
11 Episode 4. 엄습 (1) +1 21.05.23 2,572 78 9쪽
10 Episode 3. 추격자들 (3) +6 21.05.22 2,640 79 11쪽
9 Episode 3. 추격자들 (2) +4 21.05.21 2,691 78 16쪽
8 Episode 3. 추격자들 (1) +5 21.05.20 2,764 82 10쪽
7 Episode 2. 적자생존 (3) +10 21.05.19 2,834 83 9쪽
6 Episode 2. 적자생존 (2) +5 21.05.18 2,932 91 11쪽
5 Episode 2. 적자생존 (1) +4 21.05.17 3,163 103 8쪽
4 Episode 1. 오프닝 (3) +9 21.05.15 3,470 114 10쪽
3 Episode 1. 오프닝 (2) +6 21.05.14 3,588 125 17쪽
» Episode 1. 오프닝 (1) +4 21.05.13 3,858 125 12쪽
1 Prologue.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9 21.05.12 4,583 155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레쉬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