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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체스게임의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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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레쉬폰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6.29 22:49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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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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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7,157

작성
21.06.0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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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0쪽

Episode 7. 즉위(卽位) (2)

DUMMY

대지 위로 하나둘 그림자가 생겨났다. 각 종족의 형태를 띤 듯이 제각기 다른 외양.

하지만 그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게임의 형평성을 위해 다른 종족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끔 하기 위해서겠지.

물론,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전장의 재현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주어진 시련을 완수해야 합니다.]


뒤바뀐 정경을 둘러보던 로키가 말했다.


[선왕(先王)의 시련은 ‘그랜드 마스터’가 ‘킹’급 기물의 무력 향상을 위해 준비한 것. 이전 게임에 참가한 ‘킹’의 경험을 일부 겪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혜택이죠.]


‘선왕’이란, 그런 뜻이었다.

이전 게임에서 ‘킹’으로 선별 받은 기물.

그리고 이곳은 그 전대의 ‘킹’이 겪은 전장의 일부를 재현한 공간이었다.


“그럼 나는 마족의 ‘킹’이 겪었던 전투를 체험하는 건가?”


[흠. 아쉽지만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당연히 마족의 ‘킹’인줄 알았는데.


[‘킹’급 기물에게 주어지는 ‘선왕의 시련’은 객체당 하나. 서로 겹치지 않는 게 원칙이라서 말이죠. 지금은 마족의 ‘킹’이 두 개라는 이례적인 상황인지라 다른 걸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키가 내 가슴팍을 짚으며 말했다.


[바로, 이미 게임에서 탈락한 한 존재로 말이죠.]


심장 어림에 넣어둔 녹색 보석이 빛을 내뿜은 것은 그때였다.


[‘학살자의 원혼석’이 반응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군.


깊은 한이 응어리진 듯한 목소리.

그로부터 울분, 슬픔과 같은 암담한 감정이 전해지는 가운데,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목소리는 분명······.


“고블린 ‘킹’?”


<종족전쟁>에서 탈락한 대가로 이름을 잃어버린 한 존재였다.


─고블린은 약하다.


목소리와 함께 풍경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어느새 나는 타 종족의 형태를 한 그림자 앞에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며 굴복한다. 어째서? 그건 최하위종족에 불과한 우리들로선 상위종족에게 결단코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인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목소리가 점차 격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해졌다.


<종족전쟁>에서는 종족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을지언정, 시작점은 동일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최후의 전장인 [엔드 게임]에 발을 들인 것도. 마족에게도 대항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덕분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은 우리의 경우지 다른 종족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매한 동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회를 놓치고, 굴복하기 바빴지.


시야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장 속에서 부러진 장검을 움켜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일전에 내가 상대한 고블린 ‘킹’.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서서히 눈높이가 낮아졌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터전에 있는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녀석이 되었다.


─약간의 피가 흐르기 마련이다.


[시련의 클리어 조건이 공개됩니다.]


+


─그랜드 마스터, ‘흑(黑)’은 당신이 전(前) 고블린 ‘킹’과 동등한 성과를 보이길 원합니다.


조건 : 고유 능력, [프로모션]을 발동하시오.


+


[당신은 고블린 ‘폰’이 되었습니다.]

[‘퀸’급 기물을 7개체를 살해해 ‘프로모션’을 진행하십시오.]


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고블린 ‘킹’의 직위가 사실은 ‘폰’이었다고?

처음부터 ‘킹’으로 선별 받은 게 아니라?

문득 동굴에서 녀석을 날려버릴 때가 생각났다.


「설마 너 또한 프로모─」


······설마, 그때 내뱉으려던 말이 이거였나.

이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프로모션]을 발동한 ‘폰’급 기물이었다.

나처럼 ‘엔드 게임으로의 진입’ 같은 운 좋은 조건 따위가 아닌, ‘퀸급 객체 7마리 살해’라는 진짜배기 조건을 달고 말이다.


······대체 어떻게?


[이크.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츠즛, 하는 스파크와 함께 로키는 사라졌다.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피해라.


그 말에 나는 곧바로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콰아아앙─!


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철퇴가 날아와 꽂혔다. 전신에 솜털이 오소소 돋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내 몸의 반절은 으스러졌을 것이다.


“고블린 따위가 내 공격을 피해?”


나는 내게 철퇴를 휘두른 존재를 보았다.

삼 미터가 넘는 체고에, 파충류같이 길게 쭉 뻗은 주둥아리. 그리고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샛노란 눈빛. 비록 전신이 그림자처럼 새카만 색상이었지만,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녀석은 ‘적(赤)’의 기물이다.


단순 무력만으로도 최강이라 평가받던, 상대하기 껄끄러운 종족. 저 거대한 철퇴를 제 손 다루듯이 하는 것만 봐도 근력 능력치가 상당해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지면에 박힌 철퇴를 뽑아 든 녀석이 내게 쇄도했다.


사아아아악!


철퇴가 휘둘러지며 묵직한 바람이 스쳐 갔다.

공격을 피해 나는 구르고, 또 굴렀다.

지금의 나는 결코 저 존재를 이길 수 없었다.

물론 여기서 죽어도 단지 보상이 몰수당할 뿐, 진짜로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모든 보상을 쟁취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공격을 피하고 있을 때였다.


“······빌어먹을.”


공격을 이어나가던 녀석이 우뚝 멈춰 섰다.


“모두 후퇴해라! 가증스러운 ‘청(靑)’의 놈들이 본거지에 왔다!”


녀석의 말에 일제히 물러가는 그림자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나 했는데, 아마 박규태가 사용했던 [통솔]과 비슷한 종류의 스킬을 받는 모양이었다.


“크륵! 적들이 물러간다!”

“우리의 승리다!”


곳곳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색상이 있는 생명체. 고블린들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 고블린이 내게 다가왔다.


“학살자! 이번 활약은 잘 지켜봤다!”


학살자가 나를 지칭하는 말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든 높은 직위의 기물. 즉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에게는 이명이 주어지니까.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의 직위는 ‘폰’이었다.

이명이 붙을 리는 없을 텐데.


─원래는 이름으로 불렸다.


녹색 보석이 웅웅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에서 탈락하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불명예뿐이었지. 아마도 이름을 빼앗긴 영향이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녀석은 종족의 명칭도, 기물의 자격도. 끝내는 스스로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 지금은 원래의 이름이 학살자라는 이명으로 대체된 것이겠지.


“학살자여. 그보다 할 말이 있다.”


짧은 대화는 금방 끊겼다.


“마법 추장이 부른다.”

“마법 추장?”


익숙한 단어인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난다.

나는 ‘E4’ 스퀘어에서 고블린들의 직위 체계를 본 적이 있었다. 주술을 사용하던 마법 추장. 맨주먹을 이용해 달려들던 전투 추장.

그들의 직위는 모두 ‘퀸’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크륵. 혹시 전투 도중에 머리라도 맞았나? 바로 뒤쪽이다!”


멀리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바로 뒤쪽에 자리한 고블린들의 진영.

나는 녀석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저 천막으로 들어가면 된다.”


중앙의 천막은 화려한 천과 어디서 수급한 것인지 모를 동물의 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보초를 서던 고블린들이 창끝으로 바닥을 쿵 찍었다.


“어서 들어가라! 마법 추장이 기다린다!”


나는 천막의 문을 젖히고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안에는 마법 추장이 지도를 보며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마법 추장이 고개를 들었다.


“크륵! 잘 왔다. 학살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금 내 겉모습은 고블린과 같았다. 평범하게만 행동한다면 경계를 사진 않겠지.


“부른 용건이 뭐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는 지금부터 ‘청(靑)’의 기물을 도우러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줘야겠다.”


······뭐? ‘청(靑)’의 기물을 도와?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고블린들의 입장에서 타 종족의 기물은 적일 텐데. 도우러 나선다니?


─하! 미친놈.


그제야 고블린 ‘킹’이 늘어놓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녀석들은, 다른 종족에게도 이용당하고 부려 먹히는 글러 먹은 종족이었다.


“이번에 ‘적(赤)’의 기물을 상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더군. 같이 협동해서 놈들을 치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어차피 ‘청(靑)’의 기물도 상대해야 할 적이지 않나?”

“크륵! 잊었는가. 우리는 명예로운 종족이다! 받은 은혜를 결단코 잊지 않지. 분명 ‘담녹(淡綠)’께서도 우리를 보고 흡족해하고 계실 거다.”


글쎄. 아마 복장이 터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학살자여. 명령에 불복할 건가?”


학살자(虐殺者).

그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쉬운 일이었다.

영웅의 이명이라기보단, 멸칭에 가까운 이름.


“······그런가.”


그 순간, 나는 고블린 ‘킹’이 어떻게 [프로모션]의 조건을 충족시켰는지 깨달았다.


“마법 추장. 한 가지만 묻겠다.”

“크륵? 아까부터 말이 조금 짧군. 확실하게 존대를 붙여서 말해라.”

“이 스퀘어에는 고블린 ‘퀸’이 총 얼마나 존재하지?”

“그거야 최소 열은 될 거다. 그보다 어서 존대를 붙이지 못하겠나?”


총 열 개체. 다행이군.

나는 허리춤에 매단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러면 이제 됐다.”


일반적으로 ‘폰’급 직위가 ‘퀸’을 일곱 개체나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푸우욱!


부러진 칼날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켁, 케륵······ 이게 무슨······?”


기습 공격을 당한 마법 추장이 책상에 엎어졌다. 나는 녀석을 내버려 두곤, 옆에 거치된 새 장검을 뽑아 들었다.

불빛에 비쳐 반짝이는 채도가 마음에 든다.


[당신은 ‘퀸’급 기물을 1개체 처치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조건은 여섯 마리.

나는 고블린들의 ‘퀸’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작가의말

다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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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pisode 8. 왕의 증명 (1) +5 21.06.10 1,872 83 12쪽
25 Episode 7. 즉위(卽位) (4) +3 21.06.09 1,883 81 15쪽
24 Episode 7. 즉위(卽位) (3) +1 21.06.07 1,889 81 10쪽
» Episode 7. 즉위(卽位) (2) +1 21.06.05 1,919 8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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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pisode 5. 몰락한 종족 (1) +5 21.05.27 2,307 7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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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pisode 4. 엄습 (3) +2 21.05.25 2,423 73 9쪽
12 Episode 4. 엄습 (2) 21.05.24 2,504 7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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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pisode 3. 추격자들 (2) +4 21.05.21 2,692 78 16쪽
8 Episode 3. 추격자들 (1) +5 21.05.20 2,765 82 10쪽
7 Episode 2. 적자생존 (3) +10 21.05.19 2,835 83 9쪽
6 Episode 2. 적자생존 (2) +5 21.05.18 2,934 91 11쪽
5 Episode 2. 적자생존 (1) +4 21.05.17 3,169 10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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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pisode 1. 오프닝 (2) +6 21.05.14 3,595 12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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