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체스게임의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레쉬폰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6.29 22:4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75,237
추천수 :
2,625
글자수 :
157,299

작성
21.06.07 22:48
조회
1,886
추천
81
글자
10쪽

Episode 7. 즉위(卽位) (3)

DUMMY

[당신은 고블린 ‘킹’과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시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랜드 마스터, ‘흑(黑)’이 흡족해합니다.]


다행히 조건은 충족되었다.

이성현의 [프로모션] 조건은 ‘다른 종족의 퀸급 기물 5개체 살해’. 그리고 고블린 ‘킹’의 [프로모션] 조건은 ‘퀸급 기물 7개체 살해’였으니까.

두 수식언의 차이에, 같은 종족의 기물을 죽여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후우······.”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눈앞에 죽은 마법 추장, 아니 고블린 ‘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검을 붙잡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막상 태연한 척은 했지만, 몸의 반응은 속이지 못했다.


이 떨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건 ‘폰’이 ‘퀸’을 잡은 쾌거에 대한 성취감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던 상식선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 걸까.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고블린 ‘퀸’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품속의 보석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봐. 듣고 있지?”


‘킹’급 아이템, ‘학살자의 원혼석’.

여기엔 고블린 ‘킹’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어째서 너는 ‘퀸’을 죽인 거지?”


녹색 보석이 빛을 발하며 반응했다.


─그건 무슨 말이냐.


“아무리 동족이 답답해도 그렇지, ‘퀸’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그건 곧 게임의 패배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분명 ‘담녹(淡綠)’도 말렸을 텐데?”


이게 원래의 상황이었다면 [그랜드 마스터, ‘담녹(淡綠)’이 당신의 행동에 경악합니다!] 같은 메시지가 떴을 것이다. 어쩌면 ‘담녹’이 고블린 ‘킹’을 배제하기 위한 지령을 내렸을지도 모르지.


─실제로도 떴었다.


······뭐?


─‘담녹(淡綠)’은 내 행동을 제지하고 나를 폐기하려 들었지. 하지만 나는 ‘퀸’을 죽이는 이유를 설득했고, 끝내는 그를 납득시켰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담녹(淡綠)’이 어째서 자신의 ‘퀸’을 죽이는 것을 용인한단 말인가. 스스로의 살을 깎아 먹는 짓을. 대체 왜?


─결국, 그조차도 ‘담녹’의 계략이었지만······.


그 말을 끝으로, 보석의 빛은 사그라들었다.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궁금한 점을 물었는데, 복선을 까는 것도 아니고 모호한 말만 하고 사라지다니. 나는 머릿속에서 녀석의 말을 지웠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선왕(先王)의 시련이 다음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고블린들의 공세를 피해,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나십시오.]

[당신에게 탈출 경로가 제공됩니다.]


허공에 붉은 실이 생겨났다. 어디론가 이어지는 듯한 모습. 이걸 따라가라는 소린가? 그리고 탈출이라는 소리는······ 역시 그걸 말하는 거겠지.

바깥에서 보초를 서던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안에, 무슨 소란이지?”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 뒤, 결론을 내렸다.

일단 여기서 도망쳐야 했다.


“마법 추장! 대답이 없다면 들어가겠다!”


나는 서둘러 고블린 ‘퀸’의 배후로 돌아갔다. 그리고 검을 사용해 천막의 자락을 잘라버리곤 밖으로 빠져나왔다. 길을 지나가던 몇몇 고블린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았다.


“이봐. 왜 거기서 나오는 거지?”

“크륵, 수상한데.”


고블린 ‘퀸’이 있는 중요한 천막에서 입구가 아닌, 수상쩍은 방법으로 빠져나온 내게 의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서서히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보며 칼자루를 쥐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윽고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아악!”

“이런 미친! 이게 무슨 짓이냐!”


······얕았나. 급소인 목을 노렸지만,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피했는지 검이 비껴갔다.

그래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고블린들이 목에서 샘솟는 피를 손으로 틀어막는 사이, 나는 놈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렸다.


푸우우욱!


칼날에 머리를 꿰뚫린 고블린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주변을 훑었다. 소란에 주변 고블린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학살자? 대체 지금 뭐하는······?”

“크륵? 싸움인가?”


나는 선택을 고민했다. 여기서 고블린들을 모두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

일단······ 이거부터 되는지 확인해 볼까.


[고유 능력, ‘마왕화(魔王化)’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해당 시련이 끝나기 전까지 스킬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젠장, 역시 안 되나.

이렇게 된 이상, 전투는 피해야 했다.


─얌전히 도망치기나 해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아직 고블린 ‘퀸’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놈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인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고블린들이 멀어지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멀리서 보초를 서던 고블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어, 어서 쫓아라!”

“크, 크륵? 그게 무슨······.”

“저 자식이 마법 추장을 죽였다!”


그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고블린들이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 번 벌어진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잠깐, 멈춰라······!”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나는 놈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달렸다. 지정된 경로가 가리키는 방향인 숲으로 향했고, 마침내 추격을 따돌려 붉은 실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당신은 성공적으로 위협에서 벗어났습니다.]


“허억, 허억······.”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흐트러진 호흡을 골랐다.

제대로 벗어난 건가?

뒤를 돌아봐도 병력은 보이지 않았다.

안심한 나는 들고 있던 장검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 어떡한다?


첫 단추는 잘 끼웠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나는 이곳의 지리도, 고블린 ‘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숲에서 길이나 잃지 않으면 다행인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시련이 다음 단계로 진행됩니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서서히 정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숲을 구성하던 나무가 사라지고, 그것이 있었던 곳에 수많은 천막이 세워졌다.

방금 내가 빠져나온 곳과 상당히 유사한 장소.

어딘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고블린들이 위치한 진영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흑(黑)’이 빠른 진행을 원합니다.]


그런가. 대충 알겠다.

이동하는 지루한 과정은 스킵이란 말이지.


[다음 고블린 ‘퀸’을 처치하십시오.]


나는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아까 달리느라 소모된 체력은 어느새 회복되어 있었다. 쉴 틈을 주지는 않겠다는 '흑(黑)'의 쓸데없는 배려가 느껴졌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내려둔 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거리를 거닐자, 수많은 고블린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도착이다.


중앙에 있는 천막까지 도달했을 때.

나는 또 다른 고블린 ‘퀸’을 마주 볼 수 있었다.


“크륵, 무슨 일이냐?”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손을 칼자루로 옮겼다.

이제, 같은 일을 반복할 시간이다.



*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E4’ 스퀘어에서 보냈던 시간보다 긴 기간 동안, 나는 많은 수의 고블린 ‘퀸’을 해치웠다.


「카아아악!」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거냐!」


동족이 자신을 공격할 리 없다는 고정관념은 내 상상 이상으로 견고했다.

오히려 살짝 떨떠름한 기분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나도 모르겠거든.

고블린이라는 종족값이 멍청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덕분에 시련의 진행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당신은 ‘퀸’급 기물을 총 6개체 처치하였습니다.]


어느새 남은 조건은 단 한 마리.

하지만, 여기서 나는 큰 난관에 부딪혔다.


“명예로운 ‘담녹(淡綠)’의 병사들이여!”


대기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이곳은 ‘적(赤)’의 기물을 상대하기 위해 조직된 고블린들과 ‘청(靑)’의 기물들의 공동전선이었다.


“우리를 도와 이곳에 와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본인은 그대들의 ‘퀸’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나는 단상 위에서 눈에 띄는 두 존재를 보았다.

묵묵히 서 있는 고블린 ‘퀸’과 한창 연설을 하고 있는 ‘청(靑)’의 기물.

겉으로는 서로 대등해 보였지만, 잘 보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 그대들의 ‘퀸’이 동족의 손에 죽은 일 말이네.”


역시나.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적’을 상대하기에 앞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러니 우리가 약속하마! 이후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대들의 ‘퀸’을 죽인 배반자를 필히 찾아내 엄벌을 보여주겠노라고!”


국지전을 앞둔 상황이라 모두가 예민했다. 전력 하나하나가 중요한 만큼, ‘청(靑)’의 세력에서는 고블린 ‘퀸’을 보호하려 들 것이다.

이전처럼 급습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랜드 마스터, ‘흑(黑)’이 당신의 계책을 지켜봅니다.]


그래, 잠자코 지켜봐라.

나는 군중을 가르고 단상을 향해 다가갔다.

‘청(靑)’의 기물 중 몇몇이 내 앞을 막아섰다.


“······고블린인가. 무슨 용무지? 이곳은 지나갈 수 없다.”


새카만 그림자의 형상에서도 청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의 수장에게 전해라.”


내 힘으로는 ‘퀸’을 정면에서 상대하기도, 저 많은 병력을 뚫고 급습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외세의 힘을 빌리면 된다.

나는 칼날에 묻은 피를 내보이며 말을 맺었다.


“내가 바로 동족을 학살한 그 고블린이라고.”


작가의말

다음화면 드디어 1권 완성이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체스게임의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며칠간의 휴재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2 21.06.17 643 0 -
31 Episode 9. 백병지왕 (3) +3 21.06.29 1,411 66 13쪽
30 Episode 9. 백병지왕 (2) +2 21.06.24 1,755 78 15쪽
29 Episode 9. 백병지왕 (1) 21.06.21 1,780 76 11쪽
28 Episode 8. 왕의 증명 (3) 21.06.18 1,807 78 13쪽
27 Episode 8. 왕의 증명 (2) 21.06.16 1,835 80 11쪽
26 Episode 8. 왕의 증명 (1) +5 21.06.10 1,867 83 12쪽
25 Episode 7. 즉위(卽位) (4) +3 21.06.09 1,879 81 15쪽
» Episode 7. 즉위(卽位) (3) +1 21.06.07 1,887 81 10쪽
23 Episode 7. 즉위(卽位) (2) +1 21.06.05 1,915 80 10쪽
22 Episode 7. 즉위(卽位) (1) +3 21.06.04 1,944 80 9쪽
21 Episode 6. 폐위(廢位) (3) +3 21.06.03 1,964 83 11쪽
20 Episode 6. 폐위(廢位) (2) +2 21.06.02 2,007 75 10쪽
19 Episode 6. 폐위(廢位) (1) +1 21.06.01 2,061 71 8쪽
18 Episode 5. 몰락한 종족 (4) +2 21.05.31 2,113 65 9쪽
17 Episode 5. 몰락한 종족 (3) 21.05.29 2,142 67 12쪽
16 Episode 5. 몰락한 종족 (2) +1 21.05.28 2,212 71 9쪽
15 Episode 5. 몰락한 종족 (1) +5 21.05.27 2,303 72 11쪽
14 Episode 4. 엄습 (4) +5 21.05.26 2,360 76 11쪽
13 Episode 4. 엄습 (3) +2 21.05.25 2,418 73 9쪽
12 Episode 4. 엄습 (2) 21.05.24 2,497 76 9쪽
11 Episode 4. 엄습 (1) +1 21.05.23 2,570 78 9쪽
10 Episode 3. 추격자들 (3) +6 21.05.22 2,636 79 11쪽
9 Episode 3. 추격자들 (2) +4 21.05.21 2,688 78 16쪽
8 Episode 3. 추격자들 (1) +5 21.05.20 2,762 82 10쪽
7 Episode 2. 적자생존 (3) +10 21.05.19 2,832 83 9쪽
6 Episode 2. 적자생존 (2) +5 21.05.18 2,930 91 11쪽
5 Episode 2. 적자생존 (1) +4 21.05.17 3,160 103 8쪽
4 Episode 1. 오프닝 (3) +9 21.05.15 3,465 114 10쪽
3 Episode 1. 오프닝 (2) +6 21.05.14 3,585 125 17쪽
2 Episode 1. 오프닝 (1) +4 21.05.13 3,855 125 12쪽
1 Prologue.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9 21.05.12 4,582 155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레쉬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