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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체스게임의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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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레쉬폰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6.29 22:4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75,178
추천수 :
2,625
글자수 :
157,299

작성
21.06.16 21:48
조회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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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1쪽

Episode 8. 왕의 증명 (2)

DUMMY

잠시 후, 나는 왕좌에 앉아 뒤바뀐 정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제는 고블린이 된, 내 키 정도 되는 높이의 작은 흉벽. 그 너머에는 괴이쩍은 외견의 움막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장의 재현이 완료되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적진으로 이동하십시오.]


·······적진이라.

대충 이번 시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고블린 ‘킹’을 죽인 상대를 처치하라는 내용이겠지.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학살자의 원혼석’이 강하게 반응합니다!]


내 수중에는, 직접 그 일을 겪은 당사자의 영혼이 깃든 아이템이 있었으니까.

나는 품속에서 보석을 꺼내 툭툭 두들겼다.


“이봐. 여기가 어디지?”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여긴······.


고블린 ‘킹’이 기억을 더듬듯 말꼬리를 흐리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6’ 스퀘어다. 내가 동족의 ‘킹’이 된 이후로 처음 행마한 장소이자, 죽음을 맞이한 장소.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과는 다르게, 한 종족의 ‘킹’을 죽일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있는 장소.


“저 너머에 적들이 있다는 건가······.”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팔걸이 옆에는 녹색 대검이 놓여 있었다.

바로 고블린 ‘킹’이 사용하던 무기. 신체의 근력이 높아서인지 대검은 한 손으로도 쉽게 들렸다.


[‘킹’급 아이템, ‘명예의 증명’을 획득하였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이번 시련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대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츠즈즈즈즈!


녹색의 아우라가 칼날 위에 휘감겼다. 점차 몸집을 키워가는 기운을 검극에 날카롭게 벼려내며, 나는 눈앞에 솟은 흉벽을 응시했다.

어차피 싸워야만 한다면, 적들이 눈치채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다.


콰아아아앙!


녹빛의 기운이 폭풍처럼 전방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흉벽이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적들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움막들이 반파되었다.

나는 폐허가 된 주변 일대를 바라보았다.


“······왜 반응이 없지?”


이 정도로 소란을 피웠으면 반격을 시도할 법도 한데, 상대는 어떠한 대응도 없었다.

덕분에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적들은 부재중인 건가?

아니면 다른 장소에 모여있는 걸까?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저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너진 흉벽을 넘어 내부로 들어섰다.


[당신은 적진에 진입하였습니다.]


파괴된 움막의 잔해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나는 그 현장을 지나쳐 멀쩡한 상태의 움막들을 살폈다. 내부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는 흔적을 제외하면, 딱히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인근에는 없나······.”


아무래도 내가 세운 두 가지 가설 중, 맞은 것은 후자였던 모양이었다.

고블린 ‘킹’이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적들은 광장에 모여있을 거다.


“······광장?”


─중앙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나?


나는 움막의 옆에 트인 대로를 바라보았다.

적진의 중심지로 통하는 넓은 길.

그렇군. 이 길의 끝에 적들이 모여있는 건가.


“기왕이면 적의 정체도 알려주지?”


─적이라······ 그래, 내 질문에 대답해 준다면 나 역시 답해주마.


“좋아.”


그 정도라면 남는 장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대로를 따라 걸었다.

잠시 후,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체가 뭐지?


묵직하게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저의가 무엇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내가 입을 열려는 그 순간.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네가 우리 동족들을 ‘식량’으로 사용한 잔학무도한 녀석이라는 걸.


곧바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전투 도중, 네가 마족의 ‘킹’이 되었을 때. 동족을 저버린 신의가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지.


갑자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고블린 ‘킹’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식인종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지 않을까.

그런데 ‘킹’급 아이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녀석을 사용하기엔 내게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을 한낱 체스말처럼 부려먹는 ‘그랜드 마스터’와 내가 다를 게 뭐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본체가 지녔던 생각이다. 지금의 나는 본체에서 파생된 일종의 분체. 따라서 네게 악감정은 없지.


“······.”


─단순한 궁금증이라고 생각해라. 네가 [프로모션]을 발동했다면, 최소한 게임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뜻일 텐데. 어째서 지금 ‘즉위식’을 치르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굳이 녀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더라도, 아이템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의 생각이 자꾸 발목을 붙잡았다.


─만약 이 물음에 대답해 준다면······ 그래, 적어도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네가 가진 궁금증도 조금은 풀어줄 수 있겠지.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쨌거나, 이 녀석하고는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해야 했다. 이참에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좋겠지.


“그래, 좋아.”


나는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새겼다. 적진 한복판에 있는 만큼, 그 모두를 말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핵심만을 추려야 했다.


“나는······.”


그리고 짧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내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고블린 ‘킹’은 말이 없었다. 애초에 감상평을 듣기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 조금도 개의치는 않았다.

모든 설명을 끝낸 나는 고블린 ‘킹’에게 말했다.


“아까 말했었지? 내 궁금증을 풀어주겠다고.”


고블린 ‘킹’의 의문은 방금의 대화로 해소되었을 것이다.

이젠 내 의문을 풀 차례였다.


“네가 고블린 ‘퀸’으로 [프로모션]을 했을 때. 어째서 ‘담녹(淡綠)’은 그 사실을 용인했지?”


지금 와서 이걸 묻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답의 여하에 따라 이번 게임의 끝에서 내가 내릴 결정이 달라질 테니까.

고블린 ‘킹’이 답했다.


─애초에 상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잘못되었다고?”


─‘담녹’은 내가 무슨 직위가 되든, 크게 상관없었을 테니.


무슨 직위가 되든 크게 상관이 없다고?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데.


─너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이 게임의 플레이어라는 것 정도만.”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그거라면 대충 알고 있다.


“게임의 승리겠지.”


─그래. 보통은 그럴 거다.


“······보통은?”


─하지만 모두가 승리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 적어도 내가 겪은 바는 그렇다.


······설마, 그런 의미인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5회 <종족전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담녹(淡綠)’은 애초에 우승할 생각이 없었다.


모든 ‘그랜드 마스터’가 게임의 승리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상위권의 성적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듯이, ‘담녹’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종족의 진영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상위권의 성적을 노렸고, 실제로도 그 계획은 성공했다.


비록 자신의 수많은 ‘퀸’급 기물을 희생시켰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인 ‘적(赤)’과 ‘청(靑)’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족을 밀어주기 위해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한 것이다.


─우습지 않나?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전대의 왕은, 사실 무능하지 않았다.


한 종족의 ‘킹’이라고 한들, 그 역시 한낱 기물에 불과했다.

동족보다 타 종족을 우선시한 것은 ‘담녹(淡綠)’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유능했기에 ‘담녹(淡綠)’의 선택을 받았고, 끝내는 그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죽었지.

“······.”

─결국, 아둔한 것은 나였다.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닌,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움막들의 숲을 벗어나자 보이는 탁 트인 광장. 중심지에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집결해 있었다.

같은 편이라 생각해 안심하려던 찰나, 나는 메시지에 적혀있던 문구를 떠올리곤 숨을 삼켰다.


······어째서, 여기가 ‘적진’인 거지?


“크르륵······ 왔다! 학살자가 왔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고블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서히 갖춰지기 시작하는 전열.

전위에 선 고블린들이 살벌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고, 후위에 선 고블린들이 나를 경계했다.


“모두 비켜라.”


그때 대열이 반으로 갈라지며, 다른 녀석들과는 차별화되는 복식을 걸친 고블린이 나타났다.


“학살자! 네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이라고?”


어째 자신의 ‘킹’에게 하는 언행이 불손하다.


“네놈이 이전 게임에서 저지른 모든 만행을 지켜봤다! 수많은 추장들을 죽이고, 동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모습을!”

“잠깐만.”

“우리는 네놈을 왕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니.

그럼 뭐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소린가?


“비열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너를 지금부터 단죄하겠다! 쏴라!”


다음 순간, 무형의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나는 대검을 앞세워 공격을 막아냈다. 손아귀가 저릿한 통증. 정말로 살의가 깃든 일격이었다.


“날 죽이겠다고?”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제 종족의 ‘킹’을 죽인다면, 이 게임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잠깐만, 이 녀석들 설마?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고블린은 인간과 유사한 사고가 가능할 정도로 고등한 지성을 지닌 종족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고블린 ‘킹’이 동족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란을 일으킬 리는 없었다.

그들은 이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자신들의 ‘킹’을 끌어내린다면, 이 게임은 끝난다는 것을.


고블린 ‘킹’의 죄목을 꺼내든 것은, 그저 자신들이 이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전투 추장의 말에 고블린들이 일제히 내게 무기를 겨누었다. 예리한 날 끝만큼이나 찌릿한 살기가 살갗을 찔렀다.


“모두 스킬을 준비하라!”


마법 추장의 말에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병장기 위로 녹색의 기운이 타올랐다.


“모두, 저 ‘킹’을 끌어내려라─!”


나는 이번 시련에서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시련의 클리어 조건이 공개됩니다.]


+


─그랜드 마스터, ‘흑(黑)’은 당신이 전(前) 고블린 ‘킹’을 넘어선 성과를 보이길 원합니다.


조건 : 휘하의 모든 고블린들을 죽이시오.


+


수많은 병력들이 대형을 맞춰 나를 향해 밀려들었다. 나는 대검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하하······.”


어째서 고블린 ‘킹’이 죽었는지 알겠다.

녀석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킹’의 격을 해방합니다!]


나는 녀석만큼 무디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말

뒤늦게 인사드립니다.

먼저 5일간의 무통보 휴재, 사과드립니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주말을 쉬고 병원을 들렀는데, 휴재가 평일에까지 이어지더군요. 진단 결과도....

공지로 사과의 말 올려두겠습니다.

부족한 글 기다려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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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pisode 9. 백병지왕 (3) +3 21.06.29 1,408 66 13쪽
30 Episode 9. 백병지왕 (2) +2 21.06.24 1,753 78 15쪽
29 Episode 9. 백병지왕 (1) 21.06.21 1,778 76 11쪽
28 Episode 8. 왕의 증명 (3) 21.06.18 1,807 78 13쪽
» Episode 8. 왕의 증명 (2) 21.06.16 1,834 80 11쪽
26 Episode 8. 왕의 증명 (1) +5 21.06.10 1,867 83 12쪽
25 Episode 7. 즉위(卽位) (4) +3 21.06.09 1,879 81 15쪽
24 Episode 7. 즉위(卽位) (3) +1 21.06.07 1,884 81 10쪽
23 Episode 7. 즉위(卽位) (2) +1 21.06.05 1,914 80 10쪽
22 Episode 7. 즉위(卽位) (1) +3 21.06.04 1,943 80 9쪽
21 Episode 6. 폐위(廢位) (3) +3 21.06.03 1,963 83 11쪽
20 Episode 6. 폐위(廢位) (2) +2 21.06.02 2,005 75 10쪽
19 Episode 6. 폐위(廢位) (1) +1 21.06.01 2,060 71 8쪽
18 Episode 5. 몰락한 종족 (4) +2 21.05.31 2,113 65 9쪽
17 Episode 5. 몰락한 종족 (3) 21.05.29 2,141 67 12쪽
16 Episode 5. 몰락한 종족 (2) +1 21.05.28 2,210 71 9쪽
15 Episode 5. 몰락한 종족 (1) +5 21.05.27 2,300 72 11쪽
14 Episode 4. 엄습 (4) +5 21.05.26 2,358 76 11쪽
13 Episode 4. 엄습 (3) +2 21.05.25 2,417 73 9쪽
12 Episode 4. 엄습 (2) 21.05.24 2,494 76 9쪽
11 Episode 4. 엄습 (1) +1 21.05.23 2,568 78 9쪽
10 Episode 3. 추격자들 (3) +6 21.05.22 2,636 79 11쪽
9 Episode 3. 추격자들 (2) +4 21.05.21 2,687 78 16쪽
8 Episode 3. 추격자들 (1) +5 21.05.20 2,759 82 10쪽
7 Episode 2. 적자생존 (3) +10 21.05.19 2,827 83 9쪽
6 Episode 2. 적자생존 (2) +5 21.05.18 2,927 91 11쪽
5 Episode 2. 적자생존 (1) +4 21.05.17 3,157 103 8쪽
4 Episode 1. 오프닝 (3) +9 21.05.15 3,461 114 10쪽
3 Episode 1. 오프닝 (2) +6 21.05.14 3,582 125 17쪽
2 Episode 1. 오프닝 (1) +4 21.05.13 3,852 125 12쪽
1 Prologue. 게임이 재시작됩니다 +9 21.05.12 4,579 15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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