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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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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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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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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샤샤 1-2

DUMMY

이 일을 며칠 후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얘기하니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관에서 사람 하나 사라진 게 뭐가 대단하냐는 식이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반박하고 무시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감정이 상해서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대학 동기인 친구 녀석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졸업하고 내 결혼 소식을 들은 후부터 부쩍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학교 다닐 때는 같이 수업 듣고 밥도 먹고 작업실에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그때는 얘가 이렇게 빈정댐이 심한 줄 몰랐었다. 어떤 말을 해도 실실 웃으며 동조하던 녀석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각자 사회인이 되고 벌이가 달라지자 전과 다르게 나를 비꼬고 공격하는 말투가 늘어났다.


우리는 둘 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나는 만화가가 되었고 그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나마 적성과 재능을 살린 쪽은 나였다. 그는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대학생 때 우연히 올린 웹툰이 인기를 끌어 그 길로 들어서게 됐는데 친구 녀석 입장에서는 그림을 그리며 먹고사는 내가 아니꼽게 보였나 보다.


한 번도 내 만화에 대해 칭찬한 적 없는 그였다. 물론 내 작품은 큰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웹툰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조금 알려진 정도라고 할까. 수익도 이냥저냥 몇십만 원 저축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예술가 지망생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므로 그의 질투와 경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만날 때면 최대한 일과 관련된 얘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나를 볼 때마다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 악플 같은 건 안 달리는지, 지금이라도 안정적인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는지 따위를 묻곤 했다.


그의 물음은 형식적으로 봤을 때 나에 대한 걱정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나에 대한 저주에 가까웠다. 내가 가장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그였다. 차라리 조회 수 올려주면서 악플 다는 사람이 고마웠다.


언젠가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더 이상 우정이라는 명목으로 그의 부정적인 감정의 투사를 버티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니까 친구 같은 건 이제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돈과 가족. 이 두 개만이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의 전부였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극장 아르바이트했을 때 귀신 봤다고."


자랑처럼 하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을 무관심하게 받아들인 그처럼 나도 그의 말을 별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였다.


내가 반응하지 않자 그는 뭔가 초조해졌는지 얘기를 더 늘어놓았다.


"사람 하나 없어지는 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네가 잘못 본 것이거나 그 여자가 도중에 나간 것일 수도 있지. 진짜 무섭고 신기한 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야. 나는 초자연적 현상도 경험해 봤거든."


어떻게든 자기 경험이 더 대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였다. 그쯤 되니까 나는 그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귀신 본 경험을 저렇게 자랑처럼 늘어놓을까, 본인이 영안이나 신기 있는 무당도 아니면서.


"다음 만화는 구상 좀 했어?"


계속 나를 공격하고 싶은 모양인지 그가 일에 관련된 얘기를 꺼냈다. 나는 대략 예상하고 있었기에 불쾌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무덤덤한 태도가 최고의 방어였다.


"잠시 여행 좀 다녀오려고."


내가 답했다.


"여행? 갑자기? 어디로?"


놀랄 일도 아닌데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여행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무작정 떠나보려고."


나는 일부러 건성으로 말했다. 그런 태도가 나를 더 여유롭게 보일 것이었다.


"계획이란 게 있어야지. 아무렇게나 다니면 그게 여행이냐? 그냥 놀고 돈 쓰는 거지."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나는 더 놀랍지도 않아서 그의 심기를 건드릴 요량으로 일부러 거짓말을 지어 냈다.


"플랫폼 회사에서 이번에 여행을 보내준다고 하네. 그래서 좀 갔다 오려고."


"공짜로? 어디?"


"두 군데 중 하나 고르라고 하는데, 캐나다랑 몰디브."


"몰디브? 그 휴양지? 진짜로?"


그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나는 속으로 깔깔 웃었다. 그가 점점 불편해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응, 근데 난 캐나다로 갈 거야. 산이나 호수 보면서 쉬고 싶거든."


"경험을 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쉬면 게으르고 나태해질 뿐이라고. 너한테는 조금이라도 많을 걸 보는 게 도움이 될걸."


그가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여행을 다닌다는 것 자체로 내가 이긴 게임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은 술을 들이켰다. 이제 그와 결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살면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은 하는 거야? 얘기 나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헤어졌냐?"


그는 나를 이겨 보려고 이제 연애 얘기까지 꺼냈다. 여태 살면서 여자 손도 못 잡아 본 그가 자충수를 두니 나로서는 난감할 정도였다.


"여행 갔다 와서 준비하기로 했어."


"너 정말 여자 있긴 하는 거야? 왜 소개를 안 해줘?"


"나중에 식장에서 봐."


물론 그를 결혼식에 초대할 맘은 없었다. 샤샤의 존재도 그에게 끝까지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 우리는 남남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 뒤로 적당히 그를 상대해 준 뒤 술집에서 나왔다. 마지막 만남이니까 계산은 내가 했다. 그는 이게 우리의 영원한 작별임을 당연히 모를 것이었다.


택시 기다리는 그와 함께하지 않고 나는 얼른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그를 배웅해 줄 맘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그가 나의 뒷모습을 보길 바랐다. 그가 나를 떠나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떠나가고 싶었다.


승강장에서 열차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미묘한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군대에서 전역할 때 느꼈던 감정과 흡사했다. 꼴 보기 싫은 녀석을 이제 안 봐도 되니 가슴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귀가 시간으로 인해 승객으로 붐빈 지하철 안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녀를 어떻게 찾을지,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시킬지. 내가 말하는 그녀는 나와 결혼을 약속한 샤샤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우연히 본 추억의 그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면 나에게도 무언가 풀리는 게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다음 작품의 소재가 될 것이었다. 나는 내가 찾는 그 여자를 다음 만화에 그려 넣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지워진 기억의 일부를 복구한다면 그게 또 작품의 줄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헤어진 친구 녀석에게 내 여행의 목적과 계기를 말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이 진실을 알면 떠벌리고 다닐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웹툰 구독자들이 나를 결혼 앞두고서 전 여자나 찾아다니는 호색한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저 기억의 일부를 찾고 싶을 뿐이었다.


주말에 샤샤의 가게에 가 일손이 되어 주었다. 개업을 준비하는 미용실에는 청소하고 준비할 게 많았다. 하지만 15평 정도의 면적이라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남자 친구로서 여자 친구의 일에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는 법이었다.


"여행? 갑자기?"


샤샤도 친구 녀석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상냥했다. 정말로 여행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응, 다음 작품 구상도 할 겸 쉬고 오려고. 내가 전에도 간다고 얘기했잖아."


"맞아. 그랬지. 근데 어디로 가게?"


샤샤는 새로 구입한 에어컨 앞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리모컨으로 작동해 보며 내게 물었다. 정말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만이 할 수 있는 태도였다. 나는 그녀의 적당한 무관심이 고마웠다.


"지방 여기저기 다녀보려고.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어."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자 벌써 경치 좋은 곳에 여행을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샤샤가 계속 에어컨을 틀고 있기를 바랐다. 곧 여름이 올 것이었다.


"며칠 있다 오는 건데?"


샤샤가 에어컨을 끄고 내가 앉은 자리로 돌아와 물었다.


"일주일 이상. 길면 한 달도 될 수 있어."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는데 그녀는 내 대답이 뻔뻔하게 들렸는지 침묵과 함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작품을 위한 여행이니까···. 나 쉬지도 않고 지금까지 일했잖아."


나름 변명을 하니 샤샤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빠도 쉬어야지. 다음 거는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돈 얘기를 꺼냈지만 그게 나를 압박하는 뜻이 아님을 알았기에 나는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 샤샤는 정말로 내가 나를 위해서 많은 돈을 벌기를 바랐다. 그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남자 친구인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노력해 볼게. 쉬면서 준비한 만큼 결과도 좋을 거야."


나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마쳤다.


샤샤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27살이었고 샤샤는 23살이었다. 미용실에서 만났는데 나는 손님이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는 미용사였다.


본래 내가 다니는 가게에서 이상한 홀대를 받았기에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샤샤가 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는 웹툰 작가에게는 꾸밈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동네 미용실에 다녔는데 그날따라 내가 가도 미용실 주인이 나를 반기지 않고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말이다.


나는 기분 상한 채로 먼저 온 손님이 끝날 때까지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다른 손님이 왔고 미용실 주인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다음 차례로 머리를 해 드릴 테니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다음 차례는 먼저 온 나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미용 중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대고 주인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네, 예약 가능해요. 그냥 불쑥 찾아오지만 않으면 돼요."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아니,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 맞았다. 옛날에는 예약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바로 머리 해주었는데 이제 손님이 많아지고 돈 좀 버니까 예약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받기 싫은 모양이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몇 번 고민한 끝에 바로 일어나 가게를 나갔다. 그리고 다른 미용실을 찾아다녔다.


역 근처의 번화가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한 가게가 있었다. 밖을 돌아다닌 지 오래돼서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너무 비싸 보이고 예쁜 아가씨들만 있을 것 같아서 입장하기 겁났다. 그래도 머리를 안 자를 수 없으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커트 하시게요?"


정말 친절하게 여직원이 맞이해서 나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 키가 크고 화장이 진하고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여자였다.


"네, 혹시 예약해야 돼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네 작은 미용실도 예약 손님 위주로 받는데 이런 큰 미용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아뇨, 잠깐만 기다리시면 바로 돼요."


나는 그녀의 친절함과 그곳의 관대함에 무릎을 꿇고 울 뻔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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