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기억 연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로맨스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6 22:1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6,646
추천수 :
126
글자수 :
248,237

작성
21.05.14 23:51
조회
714
추천
2
글자
11쪽

샤샤 1-3

DUMMY

머리 한 번 하는 데 3만 원이 든다면 비싸서 손사래 칠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더욱이 남자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곳의 미용 실력과 서비스가 좋아서 나는 단골이 되었다. 어차피 한 달에 한 번 자르는데 3만 원이라면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 안 했다고 거절 당하는 경우는 이제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 날은 미용실에 갔을 때 담당 선생님이 없어서 다른 분이 해주었다. 앳돼 보여서 나는 그녀가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 미용고에 다니며 실습을 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성인이었다.


"군대에서 첫 휴가는 언제 나와요?"


머리 자르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말투가 순진무구해서 그녀의 친오빠가 입대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100일 휴가 나왔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전역한 지 꽤 되었고 군대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터라 나는 당시의 장병 휴가에 대해 확실히 답할 수 없었다.


"휴가를 100일이나 나와요?"


그녀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요, 100일 동안 나오는 게 아니라 입대한 지 100일 만에 나와서 100일 휴가예요."


나는 수습하듯 답했다.


"아, 100일이면 벌써 지났을 텐데···."


그녀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왜요? 누가 군대 갔어요?"


나는 지루함을 이겨 보고자 그녀와 대화라도 나눌 심산으로 물었다.


"제 친구가 남자 친구 기다리고 있거든요. 근데 통 소식이 없다고 해서···."


자르고 있는 내 머리에 시선을 둔 채 그녀가 덤덤하게 답했다.


"학생이 군인이랑 사귀어요?"


친구라면 그 사람도 그녀처럼 고등학생일 텐데 군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놀라서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학생이에요?"


"친구요."


"성인이죠. 연하남 사귀는 거예요."


"아···."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이고 동안이어서 어려 보인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죄송해요. 학생인 줄 알았어요."


"저 스물셋이에요."


내가 나이를 묻지 않았는데 그녀는 발랄하게 자기 나이를 알려주었다. 그 순간 그녀와 왠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나이를 밝힌 게 의도 없는 행위였을지라도 받아들이는 나로서는 먼저 다가와 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랫동안 집에서 일만 하면 누군가와 연결되고픈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차피 집에만 있기 때문에 의외로 겁 없는 돌발 행동도 할 수 있게 된다.


"선생님은 남자 친구 없어요?"


내가 물었다.


"네,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답한 뒤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내 호감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웃음 때문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다음 번에 갔을 때 나는 편지와 함께 계산할 카드를 내밀었다. 카운터에서 그녀는 고이 접힌 쪽지를 보고 당황한 듯 내 얼굴을 잠깐 쳐다보았다. 나는 눈빛으로 그것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일부러 편지지를 작게 접은 것이었다. 그 속에는 호감이 있으니 한 번 만나서 저녁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글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에서 최대한 담백한 문체로 작성했다.


눈치 빠른 그녀는 내가 건넨 쪽지를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고 계산 마친 카드를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꾸벅 인사한 뒤 미용실을 나갔다. 후련한 해방감이 들었다. 편지에는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볼 기회가 없으니 내 번호로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그녀가 정말로 연락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기분은 좋았다.


"샤샤가 진짜 이름이었어요?"


그녀가 쉬는 수요일에 우리는 저녁을 함께했고 서로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이름이 정말로 샤샤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네, 아빠가 일부러 영어처럼 지은 거래요."


나는 그 이름이 미용실에서만 쓰는 별명인 줄 알았다.


"그럼 셰미 쌤도 진짜로 셰미?"


샤샤 전에 본래 내 머리를 잘라주던 선생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셰미 쌤은 세미에요. 근데 세미가 워낙 흔하니까 일부로 특이하게 셰미라고 한 거죠."


나는 그제서야 아이돌 가수 이름 같은 그들의 내막을 알게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콘셉트처럼 미용사들이 가게에서 특이한 이름을 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무슨 뜻이에요, 이름이?"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아빠가 안 알려줘서."


"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부모가 자식 이름의 유래를 감춘다는 게 신기했다.


"옛날에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뭐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제 이름이 싫었는데 지금은 독특하고 부르기 편하니까 개성으로 생각하고 있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한수 씨는 무슨 뜻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나라 한, 빼어날 수요.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사람이 돼라. 그런 뜻이죠."


내 이름의 뜻이 거창하고 식상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차라리 아무 뜻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네요. 어렸을 때 놀림 안 받았을 거 같아요."


학창 시절 내 별명이 함수였다. 수학 시간에 함수를 배울 때부터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다. 내 이름이 그것과 소리가 비슷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어떤 애는 내 성이 이씨니까 이차함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 딱히 없었죠."


그러나 나는 내 별명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분명히 놀림 받았을 그녀의 과거가 상기될 것 같아 일부러 별명 없던 척했다. 확실히 한수보다는 샤샤가 훨씬 놀릴 게 많았을 거였다.


"전 나중에 아이 낳으면 이름 진짜 평범하게 지을 거예요. 그 대신 뜻은 한자로 묵직하게 할 거고. 한국인은 그게 제일 나은 거 같아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내가 샤샤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상상을 잠깐 해 보았는데 1초도 버티기 힘들 만큼 지옥 같은 기분이었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은 우리는 다음 장소로 맥줏집에 갔고 거기서 또 오래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날 헤어질 때 용기를 내어 고백해 볼까 했으나 첫날에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아서 꾹 참았다. 나에 대한 약간의 호감이 있는 것을 느꼈으니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세 번째 만나는 날 고백을 했고 그녀는 받아주었다. 의외로 되게 쉽게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내 생김새가 맘에 든다고 했다. 살짝 여우처럼 생긴 게 자기 이상형이라고 했다. 쌍꺼풀이 없는 것도 매력이라고 했다. 나는 반대로 그녀의 쌍꺼풀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 사람한테 보기 드문 눈이었다. 우리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녀처럼 아이 눈이 커다랄 것 같았다.


"오빠는 집에서 만화 그리고 나는 숍 차리면 되겠네."


아직 이십 대일 뿐이었는데 우리는 데이트할 때마다 결혼 상상을 했다. 나는 나에게 그런 상상을 허락해 주는 여자가 있어서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만화를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너는 평생 미용하면서 살 거야?"


내가 물었다.


"응, 좋아. 재밌어. 나는 이거 할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그럼 천직 맞네. 내가 돈 많이 벌면 숍 차리는 거 도와줄게."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샤샤는 스스로 열심히 벌었고 모았고 자기 돈으로 스물여섯에 가게를 차렸다.


"몸조심해.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자식 걱정하는 엄마처럼 그녀가 말했다. 에어컨이 꺼지니까 금새 또 더워지려고 했다. 아직 여름은 아니었는데 봄은 우리가 알던 예전의 날씨가 아니었다. 세상이 점점 더워지거나 추워지는 방향으로, 그렇게 극단적으로 변해 감을 느꼈다.


"내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냥 여행 갈 생각이 있으니까 미리 알아 두라는 거야."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는 듯 말했다. 혹시나 혼자 여행을 가서 그녀가 삐친 게 아닐까 싶어 그녀의 눈치를 좀 보았다. 하지만 소녀 같은 그녀의 얼굴에는 유감의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를 다 기억해?"


내가 물었다.


"무슨 뜻이야?"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다 떠올릴 수 있냐고."


"아니, 누구라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사람 인생에서 아예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나?"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은 그렇겠지.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잖아."


"그런 거 말고. 샤샤는 좋아했던 사람들 전부 기억나?"


"갑자기? 왜? 오빠 첫사랑 생각나?"


범죄라도 들킨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눈치 빠른 그녀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기억하느냐고 물은 게 잘못이었다. 남자가 그런 얘기를 꺼내면 여자는 누구라도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의심할 것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며칠 전에 영화관에서 아는 사람을 봤는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 그래서 물은 거야."


"여자였어?"


"응, 아니."


여자가 맞다고 답하면 샤샤가 더 의심하고 여행 자체를 반대할까 봐 여자가 아니라고 바로 고쳤다.


""응, 아니."는 뭔데. 빨리 말해 봐. 오빠가 좋아했던 여자지?"


"아니야. 좋아했으면 내가 바로 알았지. 기억이 전혀 안 나니까 나도 신기해서 그러는 거야."


"오래된 동창이라면 기억 안 날 수도 있지. 졸업한 지 꽤 됐잖아."


"성인 돼서 안 애거든. 근데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여자 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를 하는 게 실례이자 자멸인 것 같아서 나는 스스로 관두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쉽게 납득한 건 아니었다. 미술 학원에서 일할 때 나는 그녀에게 상당한 감정이 있었고 우리는 쉽게 잊힐 만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계획하기 전에 내 방의 책장에 오래 묵혀 두었던 졸업 앨범을 꺼내 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성인이 되어 미술 학원에서 만났지만 어쩌면 같은 학교를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기억이 불분명하기에 학창 시절의 그녀에 대한 추억이 휘발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처음에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았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12반까지 있었던 우리 학교에 그녀라고 짐작될 만한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허탈함은 감출 수 없었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학교 앨범도 보았다.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도 보았는데 역시 시간 낭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졸업 앨범을 봐서 나와 사이가 안 좋았거나 나를 괴롭혔던 애들이 오랜만에 떠올라 기분만 나빠졌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상상 속에서 그 나쁜 친구들을 역으로 때리고 괴롭혔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자는 내내 생각해 보았으나 머릿속 이미지는 미술 학원과 마지막 통화 장면에서 나아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 연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6 해미 2-41 21.07.26 7 2 12쪽
45 해미 2-40 21.07.24 8 2 11쪽
44 해미 2-39 21.07.22 21 2 12쪽
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6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8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4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6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29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59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5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7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89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7 2 13쪽
17 해미 2-12 21.05.30 432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삭개5'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